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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의 고통을 경청하기 위하여
    2022년 논평 타인의 고통을 경청하기 위하여

    2017년 1월, KT 케이블 TV 서비스인 올레TV 영화 검색어 카테고리 중 하나가 ‘성폭행 영화’라는 사실이 논란이 되었다. ‘성폭행 영화’ 카테고리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조정래, 2016)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역사적 고통, 실재한 피해를 재현할 때의 윤리가 창작자와 수용자(그리고 플랫폼)에 왜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한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다룬 작품들은 이렇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집중해왔고, 그에 따른 문제가 불거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듣기 시간』(김숨, 문학실험실, 2021)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게 하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경청하게 한다. 소설가 김숨은 『듣기 시간』에 이르기까지 몇 년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기록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듣기 시간』 단행본 말미에 실린 문학평론가 김형중의 설명을 빌리면 『한 명』(현대문학, 2016)에서 김숨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발언을 300여 개의 각주로 인용함으로써 소설을 일종의 ‘증언 아카이브’로 활용하는 실험을 수행한 바 있으며,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현대문학, 2018)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현대문학, 2018)는 인터뷰어가 거의 개입하지 않은 채로 피해자들의 증언이 날것 그대로 소설의 재료가 된 ‘증언 소설’ 혹은 ‘인터뷰 소설’이다. 같은 해인 2018년에 발표된 『흐르는 편지』(현대문학) 역시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서간체 형식의 역사소설이다. 증언을 기반으로 하는, 증언 자체가 소설의 육체적 토대를 형성하는 이러한 소설들이 태어나기까지 가장 중요했을 증언 녹취 과정 그 자체를 다룬 것이 바로 『듣기 시간』이다. 증언을 녹취하고 그 내용을 소설로 썼을 테니 『듣기 시간』은 내용상으로 보면 다른 작품보다 앞선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더 나중에 쓰였다. 김숨의 『한 명』에서부터 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자. “군인 백 명을 상대할 자가 누구인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군인 백 명을 상대합니까.” 작지만 야무지던 석순 언니가 따지고 들자, 중대장이 병사들을 시켜 석순 언니를 앞으로 끌어냈다.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군인들은 닭 껍질을 벗기듯 석순 언니의 몸에서 옷을 벗겼다. 석순 언니의 몸은 깡말라 사내아이의 몸 같았다. 겁에 질린 소녀들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소녀들을 한 명 한 명 씹어먹을 듯 바라보는 중대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얼른 고개를 떨어뜨렸다. 막사 뒤에서 수십 개의 못을 동시에 박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곧 끔찍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한 명』 중에서 역사적 고통을 증명하는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옮겨내는 작업은 증언을 기록하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중요하다. 픽션에서는 어떨까. 『한 명』은 가까운 미래,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뿐인 어느 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히지 않고 살아온 ‘한 명’의 할머니가 주인공인데, 그는 80여 년 전 열세 살 때 마을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다 사내들에게 잡혀 만주로 끌려갔다. 그는 자신처럼 강제로 끌려온 다른 소녀들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성적 학대와 고문을 당했다. 당시 작가 김숨은 “피해를 증언할 수 있는 할머니들이 아무도 남아 계시지 않는 시기가 올 것이므로 소설을 통해 그런 점에 경각심을 가지게 하고 싶고, 그것이 문학의 도리라 생각한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 바 있는데, 한 사람의 목소리를 옮기는 구성이지만 실제로는 300여 개에 이르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을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피해자들의 증언 자체가 글의 뼈대를 이룬다. 읽는 사람은 피해자가 실제로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를 자세하게 읽게 된다.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서 몇 번이고 눈을 돌리고 싶은 장면의 연속이다. 『한 명』을 읽다 보면 ‘왜 주인공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히지 않으려고 했을까’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겪은 일은 과거 특정 시간에 한정된 경험이라기보다는 한 생애에 걸친 고통의 연쇄였으므로 증언의 범위가 무척 넓다. 그 시간을 다시 복기하는 일 자체가 피해자가 폭력을 다시 경험하는 트라우마적 사건이 된다는 뜻이다. 생존자의 가족들이 말하지 않기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 책 속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 증언을 막기 위해 찾아온 친척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얼마나 사정했는데...... 신고하지 말라고...... 남세스러운 일이니까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고 그냥 조용히 살라고, 내가 그렇게 사정했는데 기어코 신고해서는...... 위안부였던 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신고하면 인연 끊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기어코......” 그런데 제3자 입장에서 추측할 수 있는 그런 이유가 말할 수 없는 이유의 다는 아니다. 『듣기 시간』에서는 증언의 불가능성에 주목한다. 피해자의 증언이 대중에 알려질 때는 정제된 언어로 사건 순서에 따라 정리된 상태지만, 『듣기 시간』에서 우리는 극심한 폭력 피해에 대한 증언은 그 자체로 고통의 시간이며, ‘듣기’라는 작업은 발화자의 고통이 생생해지는 그 침묵을 듣는 일임을 알게 된다.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 ‘침묵’을 들어야 한다. ‘말할 수 없음’을 경청하라. 아마 『듣기 시간』을 요약하면 이 문장이 될 것이다. 김숨의 『듣기 시간』은 1997년 8월 9일 오후 진주의 한 주택에서 녹음기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두 여자의 침묵을 담아내며 시작한다. 녹음기는 소리를 담기 위한 것이지만 도무지 말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 듣기를 시도하는 과정을 담은 『듣기 시간』은 ‘위안부’ 역사를 재현하는 윤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김숨의 앞선 작업들보다 더 중요하게, 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묻는 작업일 것이다. 정교하게 피해를 재현하는 대신, 말할 수 없음 그 자체를 경청하게 하기. 고통을 재현할 수 없음을 재현하기.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방식이야말로 고통을 전달하는 가장 솔직한 언어가 되리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언어가 무력해지는 순간을 포착하기.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작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세부적인 면이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어야 한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지식이 없는, 혹은 피상적인 이해만 있는 사람이 『듣기 시간』을 읽는다면, 책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있을 듯한 타이밍에 소설이 끝나버린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황수남(아마 실명은 아닐 것이다) 할머니의 목소리로 전달되는 첫 번째 말은 “새벽에 깼어......”이다. 그 다음으로는 “커졌어......”라는 말. 시계가 커졌다고 하는데,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알기 어려운 분절된 문장과 단어의 나열만이 이어진다. 구술 증언 채록자인 인터뷰어 성윤주(김숨 작가의 분신일)는 생각한다. “그녀가 상실한 건 ‘말’이 아니라 ‘말 구사력’인지도 모른다. 죽은 물고기들처럼 낱낱으로 흩어져 부유하는 낱말들을 어순에 맞게 배열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인지도. 주어, 목적어, 수식어, 술어를 조합하지 못해서.” 그리하여, “나는 그녀를 들은 적 없다.” 들을 수 없는 이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문맹이라서 제대로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조직화할 수 없다. 때로는 기억하지 않아서 미치지 않을 수 있었고 기억하지 않아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증언할 수 있었을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즉, 『듣기 시간』에서 듣는다는 일은, 우리가 들을 기회가 있던 증언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만큼이나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한 증언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침묵을 듣는다는 작업은 그런 뜻이다. 동시에 듣기란 기다리기다. 『듣기 시간』에서는 구술 증언을 채록하기 위해 성윤주가 계속 여러 일상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답을 기다리며 중요한 증언 내용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나온다. 이 작업은 마침내 성윤주의 어떤 깨달음, 즉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에 다다른다. ‘말할 수 없음’이야말로 핵심적인 증언이 된다. 이 침묵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한국 사회의 (또한 국제 사회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았을까. 피해와 고통의 경험에 대한 재현윤리를 고민한다는 일의 어려움은 여기 있다. 그 고통을 이해하는 이들만이, 침묵 속에서 고통을 읽어낼 수 있다.

    이다혜

  • [김진아-김한상 대담] 여성 재현의 윤리와 난제들
    2022년 인터뷰 [김진아-김한상 대담] 여성 재현의 윤리와 난제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는 <여성 재현의 윤리와 난제들>이라는 주제로 김진아 감독과 김한상 교수의 온라인 대담을 마련했다. 김진아 감독의 미군 ‘위안부’[1] 3부작 제작기를 시작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매체적 재현, 뉴미디어를 통한 대안적 재현 방식, 피해자를 착취하지 않는 재현에 대한 고민을 거쳐 AR을 통한 젠더 헤게모니 균열까지 ‘매체를 통한 재현’에서 교차하는 두 대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진아는 UCLA 영화과 종신교수로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이다. 주요 필모그래피로는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2002), <그 집 앞>(2003), <두번째 사랑>(2007), <서울의 얼굴>(2009), <파이널 레시피>(2014) 등이 있다. 최근작 <동두천>(2017)과 <소요산>(2021)은 몰입형 매체를 활용한 미군 ‘위안부’ 3부작의 첫 두 편이다. 김한상은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주요 연구 분야는 시각문화, 아카이브, 인종주의, 이동성, 영상사회학 방법론 등이다. 그는 최근 웹진 <결>을 통해 <동두천> 등에 나타난 ‘보여주지 않음’이라는 재현의 윤리를 논하며, 일본군‘위안부’ 피해 기억 재현에 있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식에 대해서도 함께 짚은 바 있다. (>>관련 글: ‘시체 구덩이’의 응시와 ‘위안부’ 피해 기억의 재현) 목소리를 갖지 못한 자들에 대한 윤리적 재현 김한상 김진아 감독님과 ‘여성 재현의 윤리와 난제들’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누게 되어 반갑게 생각합니다. 감독님께서 미군 ‘위안부’ 3부작 중 두 작품을 제작하셨고 최근 영화제를 통해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이셨죠. 그 과정에서 작품에 대해 논의하며 대담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결과 오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진아 ‘여성 재현의 윤리와 난제들’이라는 주제를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미군 ‘위안부’ 3부작은 여성과 관련된 여러 폭력과 그것을 감내하는 여성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난제를 고민하면서 나온 작품들이에요. 현재 세 번째 작품을 제작 중인데, 이 모든 것은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인 1992년에 있었던 윤금이 씨 살해사건에서 비롯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건이 예술가로서의 제 정체성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같은 해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김보은·김진관 사건 등 여성인권과 관련해 굵직한 사건이 많이 발생했는데 그중에서도 윤금이 씨 살해사건으로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건 이전에도 미군 ‘위안부’가 한국에 존재하고 기지촌에서 어떤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문제가 그토록 크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그 사건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군 ‘위안부’는 한국에도 미국에도 속하지 못하고, 보호받지도 못하고, 우리 사회의 멸시까지도 감내해야 했던 분들이죠. 그분들의 아이들 또한 기존의 인종과 국가 등의 개념을 교란시키는, 정형화될 수 없는 불편한 존재들로 여겨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윤금이 씨 사건을 완전히 체화해서 제 일처럼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관련 시위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학생회에서 시위를 위해 대량으로 준비한 조악한 찌라시에는 윤금이 씨 사체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어요. 사진을 봤을 때 제가 후기식민지 사회에 사는 여성이라는 처절한 자각이 심장에 낙인으로 찍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학생들은 시위하는 내내 그 이미지가 끝없이 유포되는 것에 괴로워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진이 유통되지 않게 막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때의 죄책감과 부채감을 절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기지촌 범죄의 미군 가해자를 한국 법정에 세우는 승리를 이끌어냈다고는 하지만, 그 이미지를 재생산해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입혔다는 것, 역사의 전진을 위해 피해자를 또다시 희생하게 만든 이 부채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타인의 고통, 특히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약자들을 재현할 때의 윤리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영화에 등장하는 재현의 관습에 불만을 갖게 됐습니다. 그 후 미술, 비디오 아트, 다큐멘터리, 극영화 등 여러 장르와 형식의 작업을 관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재현 윤리’에 대한 고민이 언제나 제 작품의 미학적 기조가 되었습니다. 몸의 부재: absence of body 김한상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홀로코스트나 과거 잔혹한 행위의 이미지 재현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학자 수잔 크레인 같은 경우 재현 문제에 있어 ‘보지 않기를 선택하기’라는 문제도 제시했고요.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어떻게 하면 여성의 몸을 통한 재현이 가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간도 있었고, 도시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후기식민지를 바라보는 재현이 가능한지를 탐구하는 시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경로를 거치면서 어떻게 VR(가상현실)이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재현 전략에 당도하게 됐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진아 제 필모그래피를 훑고 나면 ‘이 사람은 여기에 당도할 수밖에 없었겠구나’라고 명백히 알게 되는 지점이 있어요. 영화인으로서 첫 작품인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2002)를 찍을 때부터 여성의 몸이 영화라는 영상 언어 안에서 재현되는 방식에 굉장한 저항심을 갖고 있었어요. 대안적 시각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초기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들과 미디어 액티비스트들의 작품을 공부하고 제 몸을 촬영하며 치열하게 실험했고, 여성의 몸이 프레임 안에서 어떤 식으로 재현되는지 고민했습니다. 그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남성 화자들과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보고, 시간을 거슬러 존재할 수 있도록 기록-촬영한다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피사체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데, 이 신념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죠. 저는 제가 촬영하는 피사체를 모두 저의 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5년간 <비디오 일기>를 찍으며 훈련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 분류(어머니 혹은 창녀)를 뒤집고 싶어 만든 작품이 <그 집 앞>(2003)이에요. 임신한 여자가 낯선 남자하고도 관계를 갖고, 6분간 자위행위를 하기도 하고, 유부남과 바람피우는 여자가 오히려 금욕적으로 스스로의 몸을 가학적으로 대하는 등 가부장제 사회에서 만들어진 관념에 부합하는 허구적 캐릭터가 아닌 몸의 욕망을 가진 진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두번째 사랑>(2007) 같은 경우에는 백인 사회에서 아시아 남성과 백인 여성,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재현되는 방식을 전복해보고 싶었고요.  <서울의 얼굴>(2009)은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만들게 된 사고의 기초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2006년까지 제가 한국에 갈 때마다 촬영했던 랜덤한 영상들이 편집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어요.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재현의 의미인데, “서울이라는 도시를 보고 싶다”는 선언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도시를 ‘본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물리적으로도 자신보다 큰, 한 개인의 이해를 넘어서는 시간과 공간의 유기적 집합체인 도시를 어떻게 하면 ‘본다’고 감히 말할 수 있나요? 그래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한다’(타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기록하여 표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고민했습니다. 후기식민지 사회의 특이점인 지리적 기표와 기의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노력했고요.  결국 공간을 본다는 것은 시간을 보는 것이고, 풍경이나 광경을 본다는 건 실은 그곳에 없는 걸 보는 것이란 것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무언가의 재현은 무언가의 부재의 재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언제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는데 제 기억 속의 무언가를 촬영하러 가면 그것은 없고 다른 것이 있었어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재현하려 하지만, 정작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기호학적 딜레마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렇게 후기식민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리적으로 풀어낸 게 <서울의 얼굴>이었다면, 미군 ‘위안부’ 3부작에서는 여성 몸에 가해지는 초국가적 폭력과 그것의 재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죠.  이전에는 VR 매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는데,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상현실 영화에 대한 컨퍼런스 모더레이터를 맡게 되면서 좋은 논문들을 많이 접하게 됐어요. 그러다 머릿속에 불이 켜지듯 떠오른 단어가 ‘absence of body’였습니다. 몸(사체)의 부재를 통해 윤금이 씨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어요. 이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언어의 영역을 넘어서는, 감히 형언하기 어려운(ineffable) 타인의 고통을 이야기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는데 그걸 역설적으로 ‘보여주지 않음, 설명하지 않음’으로 극복하려는 것이죠. 하지만 일반 상업영화 틀 안에서는 그런 방식이 받아들여질 수 없었고, 그러다 몰입형 매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것은 미술, 영화, 사진, 시, 연극 등 다른 모든 예술의 형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 매체라는 걸 확신했죠.    재현의 대안적 경로와 확장 가능성, VR과 AR, XR 김한상 <동두천>(2017)은 관객이 VR 기어를 쓰면 동두천의 한 장소로 들어가게 되고, 주변의 소리와 풍경을 통해 어떤 곳인지를 파악하면서 사건이 일어난 장소까지 가게 됩니다. 윤금이 씨 살해사건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문제적인 재현의 역사를 지닌 사건을 다루려는 새로우면서도 대안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관객 참여가 가능하려면 장소와 기술적인 도구뿐만 아니라 VR의 세계로 들어가겠다는 참여 의사나 용기 또한 필요할 텐데요. 재현의 대안적 경로로서 VR을 더욱 확장시키고 보다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진아 저도 고민이 많은데 참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아요. VR 영화가 2D 영화에 비해 굉장히 제한적인 접근 경로를 갖고 있고, VR계에서 와이드 릴리즈(wide release)라고 하면 오큘러스(VR 하드웨어 기업) 앱에 올리는 정도일 텐데, 그조차 오큘러스가 있는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고민의 결론은 이것이었어요. 그래도 이게 맞다. 제가 VR로 영화를 만들게 된 초심을 돌아보자면 ‘부채감’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거든요. 공론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피해자의 사진이 활용되었다는 엄청난 오류를 되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파장을 덜 일으키고, 사람들이 덜 보게 된다 하더라도 좀 더 윤리적인 재현의 방법을 택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AR(증강현실)이라는 몰입형 매체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매체가 유통과 배급 면에서 민주적인 측면이 있거든요.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가 무료이기 때문에 기술만 있으면 그것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 앱스토어에 올릴 수 있어요. 무료 배급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만든 작품들이 AR <증강현실 소요산>(2022)[2]과 XR <확장현실 소요산>(2022)입니다. XR <확장현실 소요산> 앱을 활용하면 성병 관리를 위해 국가가 설립하고 미군 ‘위안부’들을 감금 치료했던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일명 몽키 하우스) 복도 안을 직접 걸어다닐 수 있어요. AR 앱을 다운로드한 후 실행시키면 카메라가 자동으로 실행되고, 그 카메라로 보면 내 방이 소요산 수용소 복도가 되어 그곳을 걸어다니며 체험할 수 있죠. AR <증강현실 소요산>을 통해서는 3D 모델링된 수용소 외경도 볼 수 있는데, 이제 곧 없어질 장소를 사람들이 반영구적으로 볼 수 있도록 아카이브(보존) 해놓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사용하는 몰입형 매체의 형식을 다층화, 다면화해 이슈 전달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김한상 공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 제도 등을 통해 VR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진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VR을 상영하는 건 물론 환영입니다. 영화처럼 상영의 개념보다는 공공 전시의 개념으로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를 해도 좋을 것 같고요. 관객의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VR 체험의 감각 김한상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통해서 윤금이 씨 사건과 같은 비윤리적 재현에 대한 반성, 역사에 대한 성찰적인 재현이 가능하다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상설 전시를 모색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소요산> 같은 경우 아카이빙을 말씀하셨는데, 기본적으로 어떤 장소에 들어가 그곳을 보고 느끼며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장소가 대단히 참혹한 폭력이 자행된 곳이라는 점에서 관객의 성차에 따라 그것을 체험하는 감각이 다를 것 같은데요, 관객에게 직접적인 공포 혹은 두려움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을지요. 김진아 관객의 반응에 대해서는 많은 국가에서 상영이 이뤄졌던 <동두천>이 중요한 사례 연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간이 함의하고 있는 폭력의 잠재성에 대한 공포를 사전 지식 없이도 관객들이 느낀다는 게 놀라웠었어요. 그런데 그게 명확하게 젠더화, 인종화, 국가화되어있습니다. 일단 한국 여성들이 가장 무서워하세요. 그다음으로 공포를 강렬하게 느끼는 관객층은 동아시아 여성들이었어요. 식민지 사회를 거쳐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에 사는 여성들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요. 동양인 다음으로 공포를 느끼는 관객층이 동양인을 제외한 유색인종인데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훨씬 더 무서워하고요. 백인 여성들도 예민한 분들은 무서워하지만 공포를 가장 느끼지 못하는 건 백인 남성들이에요.  <동두천>을 국제 프리미어로 상영했던 베니스영화제에서 제가 만난 관객은 모두 백인이었는데, 특히 남성들의 경우 영화의 정서를 공포와 결부시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혹시 무섭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무섭진 않고 “disturbing(충격적인)하다” 정도로 답하더라고요. 심지어 많은 백인 남성들은 그 공간에서 자신이 폭력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굉장히 적극적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그 공간을 살펴봤거든요. 신기해하는 거죠. 물론 끝에 가선 숙연해지긴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시발점이 달라요. 대부분의 한국 여성 관객들은 동두천 입구가 보이고 밤 신이 시작되면서부터 무서워하세요. 후기식민지 사회의 트라우마라는 게, 그걸 직접 겪지 않은 젊은 여성들에게도 이렇게까지 대물림되는구나 싶어 굉장히 착잡하고 슬펐어요.  김한상 체험을 통해 과거 역사를 알고 문제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체험 자체가 가져올 수 있는 트라우마가 우려된다는 점에서, 윤리적 미디어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께서도 AR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신 것 같은데요, 그러한 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AR 작업을 확대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김진아 젠더 폭력이 일어났던 공간에 간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무서운 일이죠. 실제로 내 몸을 이용해 그 공간 안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현실 세계를 방문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몰입형 매체를 경험할 때 느껴지는, 매체 자체가 제공하는 불안과 공포감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제 특강에 참석하신 에린 정 교수님(존스 홉킨스 대학 정치학과)이 가투(가두 투쟁·길거리에서 행하는 투쟁)를 통해 윤금이 씨 사건이 제 안으로 들어와 체화된 것과 VR의 평행점을 짚어주셨어요.  요즘에는 피켓을 들고 농성을 하지만, 과거 90년대 초반까지는 폭력적인 공권력에 저항할 때 최전방에 자신의 몸을 집어넣었단 말이죠. 최루탄을 맞고 경찰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머리 깨져가면서 말이에요. 단식투쟁 등 몸으로 하는 모든 투쟁이 그런 맥락인데, 굉장히 비극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식의 투쟁이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라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대변하고 싶은 약자를 위해 신체에 가해지는 위험을 무릅쓴 것이죠. 저 또한 그러한 시기를 겪고 25년이 지난 후 VR을 만나게 됐는데, 제일 인상적인 것이 VR 기계를 쓰는 순간 나 자신 또한 가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몸의 부재)을 자각하는 순간 누구나 공포감을 느끼죠. 나는 시선을 갖고 있고, 소리도 들리고, 가상의 존재들도 보이지만 상황과 환경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몸은 없는 거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관객 자신이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예요. 신체적 주체성을 포기하고 가상현실 안으로 들어가 다른 존재를 만나면서 사건이 매번 새롭게 일어나는 거죠. 그런 점에서 VR이 굉장히 혁명적이라고 생각했어요. AR에서는 여성의 주체성과 관련해 다른 차원에서 유의미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여성들이 구조적 젠더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던 역사적 공간을, 관객인 또 다른 젊은 여성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관찰하며 탐사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임파워링하다고 생각해요. 수동적 관객이 아닌 능동적 탐색자라는 위치가 여성 체험자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그것이 VR과 정반대되는, 증강현실이라는 매체가 가진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관계를 뒤집는 민주적 매체 여성의 몸을 여성에게 돌려주기 김한상 가투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참여적이고 초월적 영매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VR은 굿이나 마당극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진아 제가 VR을 처음으로 경험한 게 해저 탐험이었어요. 다큐멘터리에서 숱하게 본 이미지들이 펼쳐질 뿐인데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내 몸이 없어서 느끼게 되는 공포감이란 걸 그때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죠. VR을 경험할 때 관객은 심리적으로 수동적 관찰자/피해자의 입장에 가깝다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이 매체가 연극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어요.  VR을 처음 보고 즉각적으로 느낀 건 VR이 영화보다는 연극, 특히 관객들이 객석이 아니라 툭 터진 공간의 한가운데 모여 앉아있고, 배우들은 사방팔방에서 뛰어나와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는 그런 실험극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가운데 모여있는 관객은 360도로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동시다발적인 사건들을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고, 주의를 기울이는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대사를 들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 거죠. 관계를 맺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내러티브가 달라지는 실험극과 비슷하다는 걸 깨닫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관객과 연출자의 권력관계가 완전히 뒤집히는,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민주적인 매체인 거예요. 주체로서의 ‘나’는 그 안에서는 신체를 잃게 되니까 Spectral Figure(유령의 형태)가 되는 것이고, 그와 관련하여 관객에게 일어나는 VR만의 특이한 심리 기제가 있을 것 같아요.   김한상 여성의 몸을 재현하는 문제는 재현적 미디어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계속된 문제고, 지금 이 시대에도 난제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를 얘기할 때 성차에 따른 윤리를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감독님이 작품으로써 해오신 것 같습니다. 오늘 대담을 통해 그 문제의식에 대한 화두를 다시금 던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몰입적 미디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공공기관이나 교육적 환경을 통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될 수 있기를 바라고,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진아 여성 재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여러 매체를 섭렵하며 꾸준히 영상작업을 해왔는데 혹자는 ‘그래서 네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에 답을 한다면, 저는 여성의 몸을 여성 자신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영상 매체 안에서 여성의 몸이 은유나 알레고리, 상징이 되는 순간 그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삭제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건 여성의 몸을 다른 무엇의 은유나 상징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존으로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에게 자신의 몸과 목소리를, 힘과 생명을 돌려주는 것이죠. 그런 방식이 기존의 남성중심적 영화 문법과 서사에 익숙한 분들에겐 어렵고 불편하겠지만요.    각주 ^ 군부대 위문을 명목으로 국가가 동원한 여성 성착취에 대한 일반적 용어로 사용했으며, 2018년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 고등법원 판결문의 용어를 준용하였음. ^ 김진아 감독이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를 소재로 만든 영화는 총 세 작품으로, <소요산>(2021), <증강현실 소요산>(2022), <확장현실 소요산>(2022)이 있다. 본 대담문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증강현실 소요산>은 AR <증강현실 소요산>으로, <확장현실 소요산>은 XR <확장현실 소요산>으로 표기했다.  

    김진아, 김한상

  • 지금, 여기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란 무엇인가 〈1부〉 - ‘위안부’ 문제를 마주하다
    2022년 좌담 지금, 여기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란 무엇인가 〈1부〉 - ‘위안부’ 문제를 마주하다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다룬 학술의 장이 마련될 때면 청년·미래 세션이 빠지지 않는다. 피해 생존자와 연결된 실질적 감각이 부재한 포스트 메모리(후-기억) 세대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실 여성학, 법학, 외교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는 축적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 공론화 이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곳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웹진 <결>은 이들의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어떻게 의미화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 일자: 2022년 6월 22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이헌미, 황진경, 이안, 장소정 -대담: 백재예(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정치학과 박사과정), 송혜림(연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전소현(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정희윤(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사학과 박사과정)   Q. 선생님들의 전공이 다양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는 분들도 계신데, 현재의 관심 분야는 무엇인지요. 또 어떠한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처음 마주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희윤 전공분야는 ‘유해를 통해 본 독일과 일본의 19~20세기 인종과학 네트워크와 탈식민 활동가 네트워크’입니다. 한국에선 비교적 편리하게 ‘과거청산 연구합니다’라고 말하죠. 국내에서 ‘과거청산’이라고 하면 ‘위안부’를 포함해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 세계적으로는 이것을 전시 성폭력의 문제이자 보편적인 인권과 상식의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 차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에서는 과거청산 활동판과 ‘위안부’ 문제 운동 네트워크 간의 친연성 때문에 국가폭력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어찌 보면 홀로코스트 같은 토템이 되어버린 ‘위안부’의 영역과 국가폭력을 끊임없이 증언하는 ‘위안부’ 사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고민하며 ‘위안부’ 문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위안부’가 토템이라 함은, 홀로코스트가 그렇듯 보편적인 인권의 바로미터가 되어버렸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질문하지 않는다는 뜻에서요. 미국에 가니 이런 양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아시아태평양전쟁과 무관한 곳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 램지어의 부정론에 대한 소식을 저보다 더 빨리 접하고 반대 성명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위안부’ 문제가 그 사회의 윤리적 토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준이 된다기보다 전시 성폭력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수호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미국에서 경험한 위안부 ‘문제’는 모두가 수호해야 하는 담론장이었다면, 한국의 위안부 ‘문제’는 모두를 시험에 들게 하는 담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식민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요. 피해자와 연대해야 한다는 단순한 답을 넘어 이 사회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계속해서 경종을 울리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및 ‘정의연 논쟁’을 경험하면서는 국가폭력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이 사회에서 미끄러지는 것 자체가 폭력이니까요. “‘위안부’와 일본군이 동지적 관계였다”는 일부의 주장에 반대하고, ‘위안부’ 피해자가 생존자로서 존엄을 되찾기 위해 행동하는 행위 주체성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용수 선생님이 평생 연대해온 활동단체를 비판하고 보수정당과 함께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송혜림 저는 제 연구에 대해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말씀드립니다. 하나는 기억이에요. 내가 경험하지 않은 타인의 기억을 나의 것처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서 증언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증언을 정동적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증언이 객관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언어로 인식되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을 말할 때는 언어에 담기지 못하는 많은 부스러기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스러기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 혹은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정동에 녹아있다고 생각하고, 그 증언을 정동의 언어로 재개념화해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증언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읽었던 게 ‘위안부’ 증언집이었어요. 1번부터 6번까지 차례대로 읽어나가면서 그 안에 담긴 양식의 변화, 그리고 증언을 청취·채록·편집했던 연구진과 활동가들의 고민들을 따라가며 연구에 빠져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증언자의 ‘발화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이들이 하는 말, 혹은 미처 하지 못하는 말도 우리가 들을 수 있느냐라는 ‘청취 가능성’으로 옮겨갔죠. 현재까지 그러한 논의가 많이 발전돼왔지만 후세대 입장에선 살아계신 분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게 됐어요. 따라서 물화된 형태로 아카이빙된 증언들을 어떻게 나의 기억처럼 실감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을 분유(分有) 가능성이라는 문제로 진전시켜보고 싶습니다.    전소현 개인적인 이유로 ‘위안부’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제 고향이 부산 영도인데, 부산은 한국전쟁과 제주 4.3 사건 당시 많은 분들이 이주해온 도시이고, 부마항쟁을 겪기도 했죠. 또 영도에는 한진중공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 투쟁이 일상적으로 일어났어요. 그래서 가족이나 이웃들을 통해 말해지지 않은 고통을 자연스럽게 감각하며 자랐습니다. 가족 안에서 세대를 이어 피해가 재생산되고, 피해와 가해가 중첩돼 세대를 넘어 전이되면서 피해자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과정이 고통스러웠어요.  사회학을 공부하면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회학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 5.18 광주시민군이었던 여성분을 만났는데 그때 의아했던 것은 5.18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공식 서사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거예요. 그 서사에서 이야기되지 못한 것들을 당사자분께서 말씀해주셨는데 그것이 생경하게 남았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안에 억압돼있던 감정들이 오롯이 느껴져 신기했어요. 이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갔을 때 또다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할머님들의 사진과 활동상, 소녀상을 보며 위로받았고 제 안의 상처들을 응시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왜 5.18과 ‘위안부’ 문제에서 위안을 받았을까 궁금했고, 페미니즘과 여성의 역사를 연결시켜 생각해보며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백재예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직접 대면하게 된 건 학부 3학년 때예요. 나눔의 집에서 운영한 ‘피스로드’(나눔의 집 부설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주최. 아시아 청년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기관 및 유적지를 방문하여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토론하는 워크숍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마지막 날 즈음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듣게 됐어요. 끝에 푸념처럼 “증언도 폭력이다”, “이제 너무 힘들다”고 하신 말이 지금까지도 제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환경문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중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였는데 그 말 덕분에 길을 정하게 됐죠.  석사과정 당시 교수님께서 진행한 일본군‘위안부’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연구 자료를 개발하고 번역하며 ‘위안부’ 제도를 역사로서 바라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왜 연합군은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서도 도쿄재판이나 전후 재판에서 다루지 않았나’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것과 관련해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그런데 논문을 쓰다 보니 일본군‘위안부’ 역사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시각이나 방법론을 통해 볼 것이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위안부’ 문제를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시 성폭력과 그에 대한 국제법을 공부하는 것으로 방향을 넓혔고, 이를 위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회운동으로서의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그 목표를 위해 국제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동원하는가라는 논의로 나아가고 있고요.  Q. “저는 ‘위안부’ 전공자는 아니지만”이라는 말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서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과거사 청산이나 피해자의 증언이 채록되는 과정, 그에 수반되는 상징적 폭력성 등 복잡다단한 맥락이 존재하다 보니 사건과 이슈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중 대표적으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사건, ‘정의연 사태’ 등이 있었는데요. 이를 통과해오면서 페미니즘 리부트나 미투 운동 등 여러 여성 운동이 결합했죠. 이러한 이슈들이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 과정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그 과정에서 이슈들은 어떻게 결합되고 해체됐을지 궁금합니다.  백재예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제도 혹은 집합적인 경험이 아니라 현재에도 일어나는 전시 성폭력과 관련이 있고, 사회운동으로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간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축적해온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위안부’ 문제가 가진 보편성과 특수성을 어떻게 다른 사회운동과 연계시킬 수 있을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 생겨나고 있는 많은 사회 운동들에 축적된 역량을 제공하고 여성 인권, 소수자 운동 등과 연결되는 운동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외연의 확장을 통해 연계하는 것이라면, 내부적으로는 해체를 통해 지금까지 고착화되어온 운동 패러다임이 변화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것을 해체하며 우리가 이 운동을 왜 시작하게 됐는지, 처음의 핵심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전소현 저에게도 페미니즘 리부트가 중요한 계기였어요. 2010년대 초반 대학 입학 후 소모임에서 공부하며 페미니즘이 굉장히 중요한 인식 틀이자 언어가 됐죠. 그리고 2010년대 중후반 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 정국을 보며 피해 생존자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계속 고민했습니다. 미투 운동 당시 생존자의 말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상황들이 나중에는 ‘위안부’ 증언에 대한 부정과 겹쳐 보였거든요.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성의 말은 오락가락하고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미투나 ‘위안부’ 문제에 있어 계속되는 부정을 만들어내는 것이고요. 그래서 약자의 말하기와 선택이 훨씬 더 사려 깊게 이해되어야 하고, 말하기와 듣기가 관계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램지어 같은 부정론자들이 과거 사료를 절취해 할머니들의 증언은 오락가락한다거나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잖아요. 이처럼 부정론자들이 메시지를 발신하는 ‘주전장’(미국, 유럽 등 주류 사회)이 굉장히 남성중심적인 곳이기 때문에 제게 ‘위안부’ 문제는 페미니즘 문제와 연동되어 현재적인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약자, 여성의 말하기를 어떻게 들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송혜림 증언은 기본적으로 투쟁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함의를 가질 수밖에 없고, 증언의 부담을 지게 되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 같아요. 증언자의 곁에는 수많은 연대자가 모이지만 증언의 책임은 늘 당사자에게만 부여되고, 그 과정에서 위계가 발생하게 되죠. 그로 인해 윤리적 문제가 불거져 나오거나 폭력성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 또한 ‘위안부’ 운동이 부딪히고 깨지며 경험해온 역사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이나 소수자 운동 안에서의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시사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위안부’ 운동이 당사자성이라는 문제를 실감하며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생존자 수를 세며 경각심을 유발하는 전략도 당사자를 계속해서 호명하는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 인식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당사자의 고유한 경험이나 감정을 인정하는 동시에 당사자에게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연대의 균형점을 증언 운동이 잘 시사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증언뿐만 아니라 여러 사료가 다시 해석되거나 발굴되는 경우가 있는데, 수집 및 해석 과정에서 연구자로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정희윤 국가폭력의 증거로서 뼈를 연구하고 있는데 ‘정의연 사태’를 보면서 그 생각을 했어요. 유해가 ‘위안부’ 생존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하고 있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유해가 하는 말들은 보통 그들이 놓인 자리, 관련 자료, 그리고 감식 결과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유해가 건넨 ‘말’들에는 당연히 해석 싸움이 붙습니다만, 이 유해가 증언하는 폭력 자체가 기각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반면 이용수 선생님의 경우, 당신이 겪은 고립과 ‘피해자다움’에 대한 압박을 계속 말해왔지만 기각된 부분이 있죠.  국가폭력의 증거로서 뼈가 지닌 텅 빈 기표는 ‘국민’의 자리라 보충적인데, ‘위안부’의 자리는 ‘국민’이 아니라 여성, 성폭력 생존자의 자리로 호명되어 대립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위안부’ 지형이 곤경에 처해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 결과로, 증언을 볼 땐 정세 판단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세에 따라 증언에 대한 해석이 매번 달라진다면, 연구자는 억압의 주체와 객체가 누구인지 정세를 판단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겠죠. 따라서 증언 자료를 볼 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 증언이 어느 지형과 위치에 놓이는가’입니다.    백재예 그간 사료나 증언이 많이 발굴되고 축적된 것과 더불어 일본군‘위안부’ 활동가로서의 위치성이나 활동가로서 바라보는 운동 자체에 대한 시각도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자의 증언뿐만 아니라 활동가가 운동 속에서 경험한 증언도 중요한 사료이기 때문이죠.    전소현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는 사료나 증언을 어떻게 교차시켜 해석해야 할까 고민됩니다. 과거의 사료를 현재적으로 해석한다는 건 자기 입맛에 맞게 절취하는 게 아니라 당대의 맥락을 고려하여 올바른 해석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료의 유형도 다양한데, 일본군이나 연합군이 생성했던 공문서뿐만 아니라 운동 역사 속에서 기록해온 영상이나 증언도 많습니다. 최근 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위안부’ 활동 영상들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영상은 정돈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의미화해야 할지, 또 프레임 밖에 남겨진 것들은 어떤 식으로 유추하고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송혜림 정희윤 선생님께서 뼈가 제일 시끄럽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당사자가 부재할 때의 연구자나 활동가들이 행하기 쉬운 착취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주 4.3 사건 증언에 대한 석사 논문을 쓸 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할머니와는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어요. 그 상황에서 할머니가 남기신 증언의 자료는 저에게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료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주변적 맥락들을 조사하다 보니 제가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증언이 관계적인 정황 안에서 구성된 언어이고, 철저하게 선택과 배제에 의해 남겨진 기록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연구자가 사료에 접근할 땐 내재적인 분석에만 치우쳐선 안 되고, 그것이 아카이빙 될 때의 맥락 또한 세밀하게 파헤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 게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라는 소설입니다. 『소년이 온다』(창비, 2014)에서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당사자와 목격자들이 증언하는 문제를 다뤘다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가 남긴 유품을 후세대가 어떻게 증언으로서 새롭게 의미화할 것인가를 보여줘요. 이 작품에선 딸 ‘인선’이 엄마 ‘양정심’의 고통을 언어화된 서사로 듣기보다 육체로 느끼고 실감합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엄마가 모아놓았던 4.3에 관한 기사, 기록, 사진들을 새롭게 교차하고, 사료의 공백을 메우려는 조사를 통해 기존 증언들을 맥락화하는 노력을 보여주지요. 그것이 바로 연구자가 소화해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 아닐까 싶습니다.

    웹진 <결> 편집팀

  • 지금, 여기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란 무엇인가 〈2부〉 - ‘위안부’ 문제의 세대 전환
    2022년 좌담 지금, 여기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란 무엇인가 〈2부〉 - ‘위안부’ 문제의 세대 전환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다룬 학술의 장이 마련될 때면 청년·미래 세션이 빠지지 않는다. 피해 생존자와 연결된 실질적 감각이 부재한 포스트 메모리(후-기억) 세대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실 여성학, 법학, 외교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는 축적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 공론화 이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곳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웹진 <결>은 이들의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어떻게 의미화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 일자: 2022년 6월 22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이헌미, 황진경, 이안, 장소정 -대담: 백재예(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정치학과 박사과정), 송혜림(연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전소현(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정희윤(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사학과 박사과정) Q. 증언을 생존자에게 직접 듣지 못하게 된 시대가 도래한 만큼 남겨진 연구자들의 몫이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위안부’ 문제에 있어 세대교체에 대해서도 계속 이야기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정희윤 포스트 메모리 시대라고 무엇이 달라질까 싶습니다. 재현의 문제, 실증주의적 이해의 폭력, 증언자가 증언자일 수 있게 하는 언어의 부재 등 현재 제기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요. 이는 ‘위안부’ 생존자들이 모두 돌아가신 이후에도 동일하게 잔존하는 문제 아닐까요. 그런데 이제는 다른 전장이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생존자들의 증언에 AI 기술을 결합하여 만든 작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가치중립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그러한 증언의 전시가 정세나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질 경우, 폭력적이고 위험한 작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증언 이후의 재현물들이 특정한 구성과 배치의 결과이고 어떤 면에선 의도된 것인 만큼, 그 재현들에 어떻게 개입하고 증언이 증언일 수 있게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송혜림 정희윤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터랙티브 전시’에 다녀왔는데, 진화된 기술력과 이를 흡수하는 적극적인 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형태로 기록되느냐에 따라 기록물의 성격과 파급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시도 자체는 좋았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전시 내용 중 하나를 예로 들면, 제가 할머니에게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위안부’로 있을 때 계속 굶었어’라는 엉뚱한 대답으로 이어졌어요. 현재보다는 과거에 대한 질문과 답이 더 많았죠. 우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재현하거나 표상을 만들 때 여전히 과거의 경험에만 고착돼있고, ‘위안부’라는 경험 안에서만 이들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문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 운동을 포함해 증언을 다루는 사회적인 담론 자체가 과거 경험에 고착돼있고, 그들을 증언자로 호명하는 경험에만 천착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를 붕괴시키는 새로운 방식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전환의 이름으로 되어야지, 세대교체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소현 증언을 해석하고, 다시 말하고, 듣고, 쓰는 과정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할머님들이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되는 과정이라면, 왜 미래 세대의 문제로만 이야기되어야 하는가 의구심이 들어요. ‘내가 왜 위안부 문제를 계속해서 고민하지? 이것이 내 삶과 무슨 관련이 있지?’라는 의문에 도움이 됐던 게 영화 <보드랍게>(박문칠, 2022)였어요. 김순악 할머니의 이야기와 증언을 2010년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들려주는 작품인데요, 할머니의 이름은 김순악이기도 하지만 마마상, 요시코, 위안부, 미친개, 순악씨, 깡패 할매, 술쟁이, 개잡년, 기생, 엄마, 사다코 등 굉장히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보드랍게 아우르는 목소리들이 감동적이었어요. 개인 안에서 폭력의 경험이라는 게 매끄럽게 설명되기 어렵잖아요. 자기 안에 수많은 분열이 있을 것이고, 수많은 ‘나’가 충돌하는 경험을 하게 될 텐데, 그러한 경험들을 뒷세대 여성들이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고 자기 삶과 공명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분열시키는 목소리에 맞서 스스로를 수용하고 말해내는 과정이 지금의 페미니즘 활동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백재예 세대교체라는 것이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세대교체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앞서 말했을 땐 내부적 해체라고 표현했는데요, 운동과 학계를 구성하는 구심점, 가령 고착화된 논의나 주장, 접근 방식들이 분화되고 해체되는 방식으로 세대교체가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정주의자들은 곡해와 오독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내부적 해체를 통한 세대교체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동안 축적된 증언과 자료들을 성실하고 면밀히 독해하는 것을 통해 이 운동을 왜 시작했고, 어디로 가고자 했는지, 즉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지닌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그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도 있고, 혹은 기존에 해왔던 것을 폐기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야기를 종합하여 듣다 보니 ‘위안부’ 문제를 사회가 큐레이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대 전환 혹은 세대교체라는 말이 들려올 때 큐레이팅된 ‘위안부’ 문제를 해석/해체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여요. 그렇다면 결국 진정한 전환이란 생물학적인 미래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모두 학술 활동 외에도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문제의식이 어떻게 확장·연결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백재예 그동안 외부 활동을 따로 하지 않아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봤습니다. 그간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가 ‘위안부’ 문제를 통해 동아시아의 역사와 인종·민족 문제 등의 교차 지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전시 성폭력이라는 보편적 카테고리나 일본의 특수한 식민지배와 같은 특수성에 집중한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층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적은 서구 학계에 이 문제를 설명할 때면 늘 파편화시키지 않고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보다 광범위한 대중이나 학계를 대상으로 ‘위안부’ 문제의 복잡한 고민거리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전소현 ‘위안부’ 문제를 공부하면서 화성외국인보호소 피해자 연대 시위에도 다녀오고, 장애 인권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외국인보호소 문제에서도 “한국이나 보호소 사람들은 보호라고 하지만 그건 보호가 아니라 감금이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걸 보면서 “‘위안부’들을 보호했다”고 하는 부정론자들의 말이 떠올랐어요. 장애인의 삶을 시설화시키는 언어들이 장애인을 자기 의사 결정이 없는 무력한 존재로 재현하곤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위안부’ 피해자나 젠더 폭력 피해 여성들을 무력한 존재로 바라보려고 하는 시각이 오버랩됩니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 문제는 여러 사안이 겹쳐있는 문제이고, 다른 사회운동과 연계‧확장될 수 있는 지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송혜림 저는 스스로를 학술장에 있는 활동가로 정체화하고 싶어요. 현장에서 순간순간을 함께하고 물리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연대의 한 방식이지만, 책상 앞에서 필요한 말들을 계속해서 전달하고 외치려는 노력도 넓게 보면 외부적인 활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는 사회적으로 재현되는 재료들로 만들어지는 증언자의 표상을 문제 삼는 조사를 하고 있어요. 영화나 문학, 언론 보도에서 증언이나 증언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또 그 과정에서 내가 취해야 하는 자세는 무엇인지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법정을 자주 가게 돼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언어로서 증언의 기능을 가장 충실하게 강요하는 공간이 법정이기도 하고, 증언이 최종적으로 인정받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그 중요한 의미를 모두 가진 공간에서 증언자가 얼마나 잘 말할 수 있고 그들의 언어가 어떻게 들리는지에 대한 현장 조사를 하며 책상 앞과 법정을 오가고 있습니다.    정희윤 저도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 반성, 죄책감이 있지만 송혜림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책상머리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골과 관련된 인권 및 인종주의 담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과거청산 활동을 하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단체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희생자들을 서울로 봉환하는 일을 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강제동원의 문제는 노동착취의 문제이기도 하고 현재로 끌어올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일본 놈들 나쁜 놈들’로 귀결되는 비극적인 현상과 사회의 묘한 큐레이션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뼈가 갖는 강력한 의미가 있고, 모두가 뼈를 보면 외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뼈는 끊임없이 불화를 낳거든요. 어떤 곳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윤리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고요. 뼈는 사람인가, 이것에 오늘날의 국적을 부여하는 방식이 가능한가, 망자에 대한 인권은 어떻게 고민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야기하면서 우리 사회의 윤리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뼈라는 기억장치-매개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러면서 ‘위안부’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위안부’ 문제는 늘 논란과 윤리적 불화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인데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와 같은 문제를 보며 실증에 갇히지 않으려면 해석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됐고, 뼈를 통해 오늘날 이 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웹진 <결> 편집팀

  • 지금, 여기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란 무엇인가 〈3부〉 - 따옴표 옮기기: ‘위안부’에서 ‘문제’로
    2022년 좌담 지금, 여기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란 무엇인가 〈3부〉 - 따옴표 옮기기: ‘위안부’에서 ‘문제’로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다룬 학술의 장이 마련될 때면 청년·미래 세션이 빠지지 않는다. 피해 생존자와 연결된 실질적 감각이 부재한 포스트 메모리(후-기억) 세대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실 여성학, 법학, 외교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는 축적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 공론화 이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곳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웹진 <결>은 이들의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어떻게 의미화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 일자: 2022년 6월 22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이헌미, 황진경, 이안, 장소정 -대담: 백재예(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정치학과 박사과정), 송혜림(연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전소현(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정희윤(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사학과 박사과정) Q. 정희윤 선생님의 논문 <21세기 식민주의 유골 반환의 딜레마>는 다양한 맥락이 있지만, 유골이 본국으로 반환되어야 한다는 사고 자체가 국가주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문 제목에서도 ‘딜레마’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식민주의 폭력 희생자의 유골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작업 이후 ‘딜레마’ 해체에 더 다가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희윤 2014~2015년경 홋카이도에서 서울로, 베를린에서 나미비아 빈트후크로 봉환된 식민주의 폭력 희생자들의 유해가 소위 ‘본국’으로 반환되는 과정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반환의 과정은 탈식민적인 활동이었고 윤리를 행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텐데, 딜레마로 여겨지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인종주의, 노동문제, 인종차별 문제보다는 남한이나 나미비아 같은 국가적 상징이 더 강력하게 읽혔기 때문입니다. ‘위안부’가 “성노예다, 아니다”라는 언어에 갇혀 그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이 “빨갱이다, 아니다”라는 이분법에 갇혀버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민주의 유해 반환은 “본국인이다, 아니다”라는 미로 속에 갇혀 이름들을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이러한 현상을 딜레마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이름들을 어떻게 되찾아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정세 판단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어떤 유해는 반환되는 게 옳고, 또 어떤 유해는 그대로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이와 같은 딜레마를 해체하기 위해 국가를 해체해야 할까요? 그것은 말이 안 되지요. 결국 일상에 잔존하는 폭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하고,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 기념과 애도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외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딜레마를 해체하기보다는 그대로 둬야 하고, 불화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불화의 과정이 애도의 가능성과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Q. 송혜림 선생님의 <감정의 재의미화와 기억의 해방:4.3 피해자 증언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은 ‘감정기억’이라는 개념을 끌어왔다는 점에서 증언과 기억을 대하는 자세에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증언/기억에 감정을 개입시키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이자 해방이라고 보셨는데, 이를 통해 증언/기억은 현재로 불려오게 됩니다. 분유(分有)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혜림 증언의 어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사건의 제삼자가 사건을 투명하게 진술하는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진술이죠. 그렇기에 후자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일 수 없는 고통의 언어예요. 현재의 증언 담론은 전자에 치우쳐 성립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자의 언어를 더 잘 듣기 위해서는 명료한 언어나 표현에 다 담기지 못해 잉여의 의미들이 잔존하는 정동의 언어로 들어야 해요. 이는 증언자에게서 언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증언의 그러한 한계를 적극적으로 의미화할 청자의 책임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점에서는 기억 분유와 연결될 텐데, 증언을 매개할 때 독자 혹은 관객을 정동적으로 연루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증언을 들을 때마다 인지적 이해보다는 감정적인 동요가 먼저 일어나는데요, 증언의 순간에 함께 있던 연구자나 활동가의 서사를 통해서도 그들이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증언을 듣고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었겠구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듣고 기억하여 전달하는 것이겠구나’라는 책임을 나눠 갖는 것 자체가 기억 분유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위치는 학술적인 영역에 있지만 저는 기억 분유를 절대 학술적인 전형성 안에서만 반복되는 방식이 아닌, 더 많은 이들이 증언을 만날 수 있도록 확장된 영역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Q. 백재예 선생님은 <체계적으로 관리된 성폭력, 일본군‘위안부’제도>라는 논문에서 “연합군의 자료를 통해 인식을 살펴보는 것은 일본군‘위안부’ 제도가 가진 분쟁하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보편적 측면의 인식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에 연합군 자료가 축적되어 연합군의 인식을 포착하고, 그것이 어떻게 전후 전범재판에 반영되었는지를 규명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박사과정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계신 만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어떤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이 현시점에도 이어지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기틀을 국제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마련해갈 수 있을까요. 백재예 그 두 가지 질문이 논문 주제를 설정하고 계속되었던 고민입니다. 기존에 주어져 있는 법 제도에 미뤄봤을 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와 같은 법학 연구가 현재는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국제법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가를 다양한 학제에서 연구하고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법을 사회적 구성물로 바라보는 법사회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면 일본군‘위안부’ 제도와 운동은 전시 성폭력에 대한 정의 실현이라는 보편적 질문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봐요.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적용될 수 있고요. 침략국이 전시 성폭력을 반성하지 않고 군인들을 처벌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피해 생존자들이 어떻게 법을 동원하고 자신들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을 텐데, 30년간 축적된 ‘위안부’ 운동의 경험과 노하우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맞닥뜨렸던 한계가 그 문제에 실존적 함의를 던져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성폭력 재발 방지에 있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문제점은, 국제법이나 법 자체가 형사법 체제하에 있기 때문에 가해자 처벌에 집중돼있다는 것이에요. 반면에 생존자가 자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민사법적 접근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결국 모든 책임이나 권한은 국제형사재판소의 검사나 판사에게 있는 것이죠. 따라서 국제법 자체도 형사법적 정의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주체로서 자신의 피해 구제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국제법의 유효성을 살펴볼 때도 가해자 처벌 여부에만 치중하거나 국가별 법안 입법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국제법이 생존자들의 요구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살펴보는 등 지표가 확장돼야 합니다. 그 지점에서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경험이 시사하는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Q. 전소현 선생님의 <장애인의 시설화되는 삶을 교차적으로 읽기>를 읽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돌봄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 및 지원에 대한 논의는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돌봄은 주요 의제가 되지 못하고 연구 또한 미비해 아쉬운데요. 앞으로 연구자들은 ‘위안부’ 피해자 관련 시설 안팎의 돌봄을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전소현  “돌봄은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고, 돌봄을 받는 사람과 하는 사람의 위치는 고정돼있지 않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저에게 돌봄은 굉장히 일방적인 억압의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었어요. 소논문 발표 후 한 토론자분께서 해주셨던 말이 기억납니다. “돌봄을 억압의 과정으로만 생각하게 되면, 돌봄의 상호적인 과정이나 사람들의 행위자성을 개념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었죠.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돌보고 있다는 생각에는 개인의 능력, 역량, 독립성, 자율성에 대한 기존의 주류적 관점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주류적인 방식으로 생각했을 때 돌봄을 제도화한다는 것도 관료적이거나 일방적인 방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국가의 돌봄 정책이나 보상이 어떤 정책적 개입이나 비개입을 통해 이뤄지고, 사각지대가 활동가들에게 어떠한 노동으로 전가되는지 함께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눔의 집 활동가분들이 수행했던 돌봄 노동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다고 봐요. 돌봄을 억압적인 방식으로만 생각하면 그분들이 오랜 시간 피해자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한 이유에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피해자의 문제를 조력자들이 자신의 문제로 주체화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함께해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당사자와 조력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갔는지 그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그런 관점에서 기록이나 연구가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웹진 <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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