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라는 말에는 따옴표가 붙어 있다. 국가적 성 동원을 미화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은폐하는 완곡어법에 유보의 뜻을 표명하기 위함이다. ‘위안부’의 초기 용례는 1938년 일본 경찰과 육군성 공식 문서에서 발견된다.[1] 그것은 전쟁이 사무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날마다 피해를 상상하지 않은 채 명명할 수 있도록”[2] 정화된 언어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남자를 위로하는 존재’라는 성역할 고정관념 안에서, 여성의 성을 군수물자로 보급한 일제 공권력과 전시 행정의 폭력성을 비가시화한다.
피해가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여성운동이 만들어낸 “피해자의 치욕에서 가해자의 범죄로”의 성폭력 패러다임 변화 덕분이었다. 전통적으로 전시 강간은 상례로 묵인되면서 피해 여성의 수치로 여겨져 법적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 연방 붕괴와 내전 당시 발생한 집단강간이 전시 성범죄 문제의 전환점이 되었다. 전시 강간을 우발적이고 개인적인 ‘사고’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수행된 전쟁 범죄로 파악하는 ‘성노예’ 금지 국제 사법 규정이 출현한 것이다.[3]
때맞춰 1992년 유엔 인권위원회 실무그룹에서 “위안부’는 성노예”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고, 차별방지·소수자보호 소위원회가 1993년 8월 전시 노예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되었다.[4]
한국의 정대협과 일본 및 아시아의 시민단체들은 이후 유엔과 유럽 및 미국 의회, 민간법정들에서 전시 성폭력 및 성노예 프레임을 가지고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2020년 5월 25일, 이용수 님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를 성노예로 지칭하는 것에 반감을 표시했다. “미국 사람 들으라고, 미국이 겁내라고” 하는 더러운 소리[5]라는 것이다.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강박적으로 유보의 뜻을 담아 따옴표 쳐진 위안부라는 기호에서, 따옴표를 뗀다면, 괄호 안에 우리는 어떤 이름을 적어야겠는가이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지난 30년의, 아니 1945년부터 기산한다면 77년의 ‘위안부’ 역사로부터 무엇을 알게 된 것일까?
정부 등록 피해자 240명 가운데 살아 있는 생존자의 숫자를 헤아리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마치 형사소송에서 당사자가 사망하면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처럼, 피해자들이 사라지면 소멸된다고 여기는 그것이 무엇일까. 나아가, ‘위안부’ 제도는 실증되고 인정한 ‘사실’인데, 왜 ‘위안부’는 ‘문제’로 남아 있을까. 여기에서 문제화,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정부 등록과 피해구술 채록은 역사학자뿐 아니라 여성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의 개입과 활동으로 시작되고 유지되었다. 그런데 항상 최종 진실의 판단을 ‘편협한 의미의 실증’에게 맡기려는 반복되는 시대착오적 습관은 태만하고 단순하다. 진상의 규명이 사실 그 자체가 말을 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이해관계와 입장들로 구성된다면, 식민지배, 전쟁, 권위주의 국가폭력 과거사에 대한 증언이 특정 맥락에서 가지는 수행성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홀로코스트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나치 범죄의 가장 절실한 증인은 절멸 수용소에서 죽은 동료들이라고 역설했다. 시대에 대한 완벽한 증인은 없다. ‘위안부’ 생존자들 또한 전시 성동원과 ‘죽음정치’의 궁극적 증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현장에서 죽어간 사람들 몫까지 함께, 자신이 누구인지, 전쟁 때 어떤 일을 겪었는지 ‘커밍 아웃’했다. 그리고 이제 그 분들도 따옴표 쳐진 ‘위안부’라는 호칭을 가진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증언 이후의 삶보다는 과거의 피해에 생존자들을 정박시키는 ‘피해자’라는 이름 또한 ‘위안부’라는 따옴표 쳐진 기표의 질적 대체물이 될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사회적으로, 국제적으로 인정하고 어떤 이름을 붙이든, 그들이 겪은 사건의 폭력성은 되돌릴 길이 없다. 오카 마리는 “‘서발턴’이란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이 담론적 폭력을 당하지 않고서는 표상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부여된 이름”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진정한’ 이름을 묻는 일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부를 때 교섭되고 있는 것을 묻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력하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속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현재의 무력함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6]
그러므로 지금, ‘한 명’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부 등록 생존자 숫자를 세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240명과 20만 명 사이에서 ‘가라앉은 자’들의 이름을 불러내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가라앉고 있는 자들을 ‘구조(救助)’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생존자가 말하기를 통해 커밍 아웃을 했다면, 청자들은 그 증언을 통해 앎을 획득해 가는 비커밍 아웃할 책임이 있”[7]다고 한 도미야마 이치로의 논의를 상기하게 된다. 구조화된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말할 때, 그 앞에는 반드시 마주한 다른 얼굴들이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힌 그들에게 이제 우리가 누구인지 밝힐 차례다.
각주
- ^ 박정애, “총동원체제기 식민지 조선에서 정신대와 위안부 개념의 착종 연구: 정신대의 역사적 개념 변천을 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59(2), 2020, 63쪽.
- ^ 제임스 도즈 지음, 변진경 옮김, 『악한 사람들: 중일전쟁 전범들을 인터뷰하다』 (파주: 오월의봄, 2020), 115쪽.
- ^ 크리스틴 친킨, “대한민국 법원으로 간 ‘위안부’ 생존자들, 마지막 도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 자료집, 30-31쪽.
- ^ 세계일보 2014.8.29. https://www.segye.com/newsView/20140828004633 2022.6.10. 검색완료.
- ^ 연합뉴스 2020.5.25. https://www.yna.co.kr/view/AKR20200525115300053 2022.6.10. 검색완료.
- ^ 오카 마리 지음, 이재봉․사이키 가쓰히로 옮김,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서울: 현암사, 2016), 28-29, 254쪽.
- ^ 권김현영, “침묵은 말이 되었지만 말은 의미가 되었을까?”, 『전쟁, 여성, 폭력: 일본군 ‘위안부’를 트랜스내셔널하게 기억하기』(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기억의 연대 e-시리즈, 2019), 70쪽에서 인용. 같은 곳에 실려 있는 도미야마 이치로, “증언 ‘이후’: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이미 타인의 일이 아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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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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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학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