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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에세이 더 이상 침묵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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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침묵될 수 없는! 전시 성폭력 조명한 영국 최초의 특별 전시 <침묵을 깨다: 분쟁 속 성폭력> 방문기 세계에서 전쟁 관련 영상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꼽히는 영국제국전쟁박물관. '일본군'위안부' 기록물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함께 추진했던 곳이기에 더욱 각별한 이곳에서 뜻깊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Unsilenced: Sexual Violence in Conflict(침묵을 깨다: 분쟁 속 성폭력)>이라는 주제의 이번 전시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2014년 이슬람 국가(ISIS)의 야지디족에 대한 집단 학살과 여성 폭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쟁 현장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조명하고 있다.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의 한혜인 연구위원과 니콜라이 욘센 해외연구원의 글을 통해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전시 성폭력을 집중 조명한 이번 전시의 의미와 현장 모습을 살펴본다. #1. 제국의 전쟁, 기억하는 방식 "3월 30일 보내주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관련 이메일을 잘 받았습니다. (중략) 동료들과 논의한 결과, 영국제국전쟁박물관은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는 귀하의 제안을 기꺼이 지지하고자 합니다. 저희의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지난 2016년 4월 5일, '일본군'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 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가 협력을 요청하자 영국제국전쟁박물관(Imperial War Museums. 이하 전쟁박물관)은 위와 같은 지지와 연대를 보내면서, 단순히 등재허가가 아니라 공동등재기관으로서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그 결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위안부' 피해자 사진을 비롯해 전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약 30점의 자료가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Voices of 'Comfort Women')』의 등재 기록 목록에 포함되었다. 방대한 전쟁 아카이브, 성폭력 생존자와 연대해온 여성단체와 협업한 전시 전쟁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이자 기록물 담당인 브린 하먼드(Bryn Hammond)의 표현처럼 세계에서 전쟁 관련 영상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영상박물관'으로 소개되기도 하는 전쟁박물관은 19세기부터 21세기 사이 발발한 여러 전쟁 관련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다. 박물관의 메인 전시장을 방문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영국이 일본과 전투에서 획득한 일본의 가미카제 비행기, '충성의 맹세'가 적힌 일장기 등도 직접 볼 수 있다. 특히 수장고에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영국군 등 연합군의 일본군'위안부' 관련 증언, 일본군의 가혹행위 등을 증언한 자료도 보존되어 있다. 이들 자료에는 일본군의 포로가 된 영국군이 겪은 참혹한 대우, 가혹행위를 비롯해 강제 동원되어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던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증언, 중국인 등 아시아계 여성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기록이 들어 있다. 이 전쟁박물관이 올해 <침묵을 깨다: 분쟁 속 성폭력>이라는 제목의 아주 특별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전쟁박물관에 따르면 6년에 걸친 준비 끝에 완성된 이 전시의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분쟁 중 성폭력 문제를 중심 주제로 선정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쟁박물관에서는 홀로코스트 문제를 비롯해 여성과 아동 등 비전투 민간인의 관점에서 전쟁의 폭력성을 담아낸 전시, 학습 프로그램 등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전시 성폭력 관련 자료 수집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고,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도 주변화된 문제로 다뤄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투영된 <침묵을 깨다> 전시는 그간의 '침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대표 유물과 기록들로 구성되었다. 지난 5월 23일 시작해 11월 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서 주목할 또 다른 부분은 전쟁박물관이 보유한 방대한 전쟁 아카이브와 함께 한국의 정의기억연대와 여성과인권박물관, 일본의 액티브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 등 성폭력 생존 피해자와 연대해온 여러 단체들과의 협업이다. 전쟁박물관이 전시 성폭력 문제를 과거의 문제로 대상화하지 않고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문제로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제국의 한가운데서 비집고 나오는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 그만큼 <침묵을 깨다> 전시에서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활동 기록물도 적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 번역본, 수요시위 전단과 피켓 등이다. 더욱이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하 2000년 여성법정)' 당시 북한 측이 제작한 포스터는 이번 전시의 주요 시각 이미지로 활용돼 눈길을 끌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 등재 신청을 추진하던 당시 서울시여성재단의 제안에 따라 포스터를 목록에 포함시킨 덕분이었다. 제국들의 전쟁, 권력을 독점하려는 분쟁이 야기한 폭력으로 인해 가혹한 고통과 후유증에 시달려온 여성들의 목소리가 오늘, 전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이었던 영국 런던에서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침묵을 깨다> 전시가 피해자였던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되찾고, 기억의 주체로 서는 여정에 세계가 동행하겠다는 의지를 공유하는 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2. 생존자 중심의 서사로 기존 관념에 도전하다 <침묵을 깨다> 전시를 찾은 것은 2025년 6월 10일이었다. 입구의 안내판을 따라 전시장에 들어서니 영상이 먼저 관람객을 맞았다. 무슨 내용일까, 잠시 귀를 기울이니 수많은 분쟁 상황에서 발생한 성폭력의 범위와 정의를 어떻게 규정하고, 그동안 사회가 생존자의 경험을 어떻게 주변화시켜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알고 보니 영상 속 다섯 인물은 쟁쟁한 전문가들이었다. '올 서바이버스 프로젝트'[1]의 설립자이자 전무이사 차루 라타 호그(Charu Lata Hogg)를 비롯해 영국 매체 '타임스'의 일요판인 '더 선데이 타임스'의 수석 외신 특파원 크리스티나 램(Christina Lamb), 퀸메리대학교의 국제 정치학 강사 폴 커비(Paul Kirby) 박사, 'G7 성평등자문위원회' 전 의장 사라 샌즈(Sarah Sands), 셰필드대학교(University of Sheffield)의 국제 관계학 강사 제이넵 카야(Zeynep Kaya) 박사 등이다. 성폭력을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나아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다뤄야 할 문제라는 것을 강조한 데 이어 피해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일의 중요성과 정의 실현을 위한 과제로까지 나아가는 이들의 토론이 곧 이 전시가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임을 알 수 있었다. 1~2차 세계대전부터 야지디족 집단학살, 러-우 전쟁까지… 성폭력은 보편적이었다! 본격적인 전시는 대규모 희생을 초래한 역사적인 분쟁을 펼쳐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외에도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아부그라이브 수용소 폭력), 보스니아 전쟁, ISIS(이슬람국가)의 야지디 집단학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수단 및 콩고민주공화국 분쟁, 그리고 가자 분쟁으로 표현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등이다. 이 중에서도 1914년 독일의 벨기에 침공과 제2차 세계대전기 일본 제국의 '위안부' 동원, 2014년 야지디 집단학살은 특히 주요 사례로 강조된다. 그리고 그 모든 분쟁에서 발생했고,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성폭력의 수많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된다. 1945년 패전국 독일의 여성은 공식적으로 승인된 소련 적군에 의해, 동시에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았던 영국군과 프랑스군, 미군에 의해서도 강간 피해를 당했다. 성적 모욕과 사회적 벌칙은 연합국의 여성들에게도 가해졌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는 수천 명의 여성이 독일군에게 성적으로 '협력'했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폭행을 당하거나 강제로 머리를 삭발당하고 거리를 행진했다. 군대 문화와 선전이 당시의 사회문화적 맥락 위에서 어떻게 성 역할을 강화하고 불평등은 악화시키는 기제로 활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많다. 예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군 안내서는 일본에서 유곽에 있는 상당수의 여성들이 부모에 의해 '팔려간' 것임에도 일본 사회가 성매매를 '명예로운 직업'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묘사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정당화했다. 비슷한 양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제작된 영국 포스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성병 치료를 무료·비밀로 제공한다는 정보와 '아내에게 성병을 옮기는 것은 그녀와 미래의 자녀에게 가하는 범죄'라는 경고를 병기한 포스터는 군인이 전장에서 지역 주민과 관계 맺는 것에 대해 묵인 혹은 방조하면서, 그 행위의 부정적 결과인 성병은 문제라는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전시에서는 이런 이중적 태도와 연결되는 영국의 1864년 '전염병법'도 소개하고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군 당국은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간주하면서도 성병이 전투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성매매 혐의를 받는 여성은 강제로 검진을 받게 하고 '감금 병원'에 수감한 반면, 남성은 성병을 확진 받은 경우에만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물론 이 법의 성공 여부는 '의문'이며, 1886년 폐지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 1992~1995년 일어난 보스니아 전쟁 중 성폭력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2022년, 늦었지만 마침내 민간인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연,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과 영국군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포로들에게 가한 심각한 고문과 인권 침해는 분쟁 중 성폭력 피해가 성별과 세대를 넘어서는 문제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었다. 생존 피해자와 사회가 함께 기억하는 전쟁 범죄 일본군'위안부' 문제 <침묵을 깨다>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지역이나 시대순이 아닌 '구조와 재현', '행위와 발현', '정의와 화해' 등과 같이 주제별로 분류한 점이다. 이 같은 접근은 특정 국가나 사건을 비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성폭력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보편적 범주 안에서 사례를 나란히 제시해 특정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국가별 입장에 따라 내용을 왜곡하지 않도록 해 갈등이나 분쟁 상황에서 성폭력이 정당화되는 현상에 명확히 반대한다는 전시의 주요 의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제국에 의해 광범위하게 벌어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활동과 시위' 섹션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생존 피해자와 사회가 함께 진상을 규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금까지 끈질기게 이어오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실제 전시에서는 광범한 '위안부' 동원이 이루어지는 배경의 일부로서 일본의 공창제도 관련 자료,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 번역본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소 표지판과 출입증, 영국군 촬영 사진, 수요집회 전단과 피켓, 평화의 소녀상 축소 모형 등 다양한 기록물을 접할 수 있다. 이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와 전쟁과여성인권아카이브, WAM 등 한국과 일본 등 전쟁박물관과 협업한 시민단체가 제공한 것이다. 다양한 인종의 여성이 성폭력에 맞서 연대하는 모습을 묘사한 북한 포스터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반적인 국제 관람객들은 작은 설명문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이 포스터의 북한 출처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한반도 상황에 익숙한 관람객들에게는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도쿄에서 열린 '2000년 여성법정'을 알리기 위해 평양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한 이 북한 포스터는, 지역과 인종 등을 아우르고자 하는 전시의 지향과도 잘 부합한다. 하지만 전시 내러티브에는 남한 외 피해자 국적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고, 한국과 북한, 일본 간 정치적 긴장 관계와 그로 인한 복잡한 과거청산 문제도 다루지 않는다. 2000년 여성법정이나 재판 등과 관련된 자료도 제한적이라 아시아 전역에서 발생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역사적, 지역적 맥락과 연결해 폭넓게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아쉬웠다. 한편, 전시 안내가이드에는 성폭력 관련 용어 12개가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sexual humiliation(성적 모욕), agency(자율성), restitution(배상) 등이 있고, 일본군'위안부' 관련 용어로는 'comfort women'과 '할머니(halmoni)'와 'comfort women corps'가 제시된다. 하지만 'Comfort women corps'의 경우 "제국 일본이 이른바 '위안부'를 조직·관리하는 체계"로 정의하고 있다. 아마 '여자정신대'라는 일본어에 대응하는 것으로 유추되는데, 그렇다면 설명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 '위안부'를 제외하고 다른 성폭행 체계나 피해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없다는 점에서 전시에서 일본군'위안부' 관련 서사가 가장 중심적으로 부각되는 인상을 받았다. 성폭력에 대한 국제적 경각심 위해 상설 전시 포함되길! 전 세계 분쟁 사례와 생존자 중심 서사를 구현한 <침묵을 깨다> 전시는 전쟁 중 성폭력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겼던 기존 관념에 도전한다. 여전히 분쟁 과정에서 성폭력이 발생하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분쟁의 부산물이 아니라는 인식, 따라서 예방 가능할 뿐 아니라 국제법에 따라 처벌 가능한 범죄라는 공감대를 경험할 수 있는 '입문용' 전시라 할 수 있다. 또 특정 분쟁에 대한 세부 정보가 부족한 경우도 있지만, 논쟁적이거나 현재진행형인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다루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이는 '위안부' 문제처럼 다양한 국적의 피해자가 있고, 국가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안에 대해서는 입체적으로 접근되어야 좀 더 본질에 가깝게, 깊이 닿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이번 기회에 <침묵을 깨다> 전시를 전쟁박물관의 상설 전시에 포함시키는 것은 어떨까. 분명 분쟁 중 성폭력에 대한 국제적 경각심과 대응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3. 영국제국전쟁박물관은… 영국 램버스 지역에 위치한 영국제국전쟁박물관을 방문하면 과거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듯 하늘을 향해 거대한 포신을 겨눈 두 문장의 대포가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전함에 탑재되었던 이 인상적인 15인치 함포는 연합군 사상자만 25만 명에 달했을 정도로 참혹했던 1915년 갈리폴리 전투 등 여러 전장에 실제 사용된 무기이다. 전함 시대의 영국 해군력을 상징하는 이 대포는 다른 한편으로 전쟁의 비극과 실패를 떠올리게 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성찰해야 할 지를 묵직하게 되묻고 있다. 대포 뒤로 보이는 박물관은 1917년 3월 5일, 제1차 세계대전 중 "국민이 전쟁의 전모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동시에 전쟁 속 군인과 민간인의 경험을 보존해 단순히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는 것을 넘어 전쟁의 실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기록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다만 설립 당시에는 고정된 박물관 건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기록과 전시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1936년 현재 위치인 런던 램버스로 이전하면서 독자적인 건물을 확보한 전쟁박물관은 전시 범위를 제2차 세계대전과 현대의 국제 분쟁으로까지 확대했다. 1970~1980년대에는 기존 군사 중심 전시에서 벗어나 '전쟁과 사회'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전시를 기획했고, 1990년대 후부터는 홀로코스트, 난민, 전쟁기억, 인권 문제 등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며 국제 사회 문제와 연결성을 강화해 왔다. 박물관 명칭이 복수인 것에서도 엿보이지만 현재 전쟁박물관은 5개 박물관을 아우른다. 램버스에 자리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영국제국전쟁박물관을 대표하는 런던 전쟁박물관 외 맨체스터의 전쟁박물관 North, 항공기 중심 박물관인 캠브리지셔의 전쟁박물관 Duxford, 템즈강에 정박해 있는 HMS Belfast 군함 박물관, 그리고 런던 중심부의 처칠 전쟁 지휘 벙커인 Churchill War Rooms 등이다. 전쟁박물관은 교육과 연구 분야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데, 학교 연계 학습 프로그램과 역사 교육, 홀로코스트 전담 교육 부서를 통한 인권 교육, 구술사 프로젝트 및 기록 보존 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여성, 아동, 난민, 전후 복원 등 '비전투자'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사회참여 활동을 하고 있고, 일본군'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 등재 신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도 드러나듯 국제연대에도 적극적이다. 영국제국전쟁박물관에서 11월 3일까지 개최되는 <침묵을 깨다: 분쟁 속 성폭력(Unsilenced: Sexual Violence in Conflict)> 전시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아래 QR코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분쟁 속 성폭력' 전시인 만큼 학살과 학대, 폭력 현장과 모습을 직접적으로 담은 전시물이 많아 16세 이상으로 관람을 제한하고 있다. 편집자주 ^ ‘올 서바이버스 프로젝트(ALL SURVIVORS PROJECT. ASP)’는 2019년 12월 윌리엄스 연구소와 UCLA 로스쿨 보건인권법 프로젝트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독립 연구 프로젝트로 설립된 뒤 모든 사람이 분쟁 관련 성폭력(CRSV)으로부터 보호받고 모든 피해자와 생존자가 차별 없이 제때 적절한 치료와 지원 및 정의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주로 남성과 소년을 대상으로 CRSV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며 국가적, 국제적 대응을 통해 CRSV를 근절하기 위한 글로벌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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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에세이 ‘모야모야’에서 ‘연대·실천’으로: 일본 대학생이 성찰한 한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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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야모야'에서 '연대·실천'으로: 일본 대학생이 성찰한 한일 역사 일본에서 출간된 지 약 4년이 지난 『'일한'의 모야모야와 대학생인 나』(「日韓」のモヤモヤと大学生のわたし』(오쓰키쇼텐, 2021)를 접한 이들은 먼저 두 지점에서 놀란다.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비롯해 갈등과 긴장으로 점철되어온 한일 양국 관계를 정식 수업 세미나에서 심도있게 살펴보는 일본 대학생들의 진지한 태도와 함께 그 세미나 결과를 엮은 책이 2025년 7월 말 현재 7쇄 1만 2천 부가 판매된 스테디셀러라는 사실이다. 2024년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라는 제목의 한국판도 출간된 이 책을 지도 학생 교재로 사용하기도 한 가나자와대학교 이이쿠라 에리이 교수에게 '일본 젊은이에 의한, 젊은이를 위한 한국 근현대사 입문서'로 자리 잡고 있는 배경과 그 의미를 들었다. "한국은 정말 반일 국가일까?"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인 2004년 초, 부모님의 사정으로 일본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 한국인 유학생과 친구가 되었다. 그해 가을 한국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어 자연스럽게 서두의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질문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려웠다. 아니 외려 더 모호해졌다. 서울 명동과 남대문에서는 중년 상인들이 일본어로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고, 서울을 안내해 준 젊은 여성 가이드도 매우 친절했다. 자매학교 교류 프로그램으로 만난 인천의 고등학생들은 일본 문화에 큰 관심을 보이며 매우 우호적으로 우리를 맞았다. '모야모야'를 경험하는 일본 청년들의 의문 그런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교류회가 마무리되려던 순간, 한 고등학생이 영어로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영어 실력이 이유는 아니었다. 그보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하는 당혹감과 함께 한일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일본에 돌아와 거의 독학으로 한일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고3 때에는 일본군'위안부'문제 등을 주제로, 일본이 과거 한국에 가했던 행위를 일본인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소논문을 과제 연구로 작성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계속 역사를 공부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여전히 당시의 질문은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오늘 소개할 책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는 바로 그 고등학생 시절의 나처럼 일상에서 '모야모야'를 경험하는 일본 청년들의 의문을 풀어내고자 기획되었다. 원 제목에 나오는 '모야모야(モヤモヤ)'는 아지랑이나 연기 같이 흐릿한 모양을 뜻하는 단어에서 발전한 감정 표현으로, 불분명하거나 답답함, 의문이 뒤섞인 상태를 일컫는다. 나의 경험에 맞춰 생각해 보면, 고등학생 때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여러 차례 '한류 붐'을 거치면서 한일 양국의 거리가 꽤 좁혀진 지금도 일본의 역사교육 상황이나 젊은 세대가 품는 의문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책 집필에 참여한 필자는 한일 관계에 대해 나와 비슷한 의문과 위화감을 느껴온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소속의 5명 학생들이다.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와 조일·한일관계사를 전공한 가토 게이키 준교수가 감수를 맡았다. 세미나에 대해서는 일본 대학의 독특한 학사 운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많은 일본 인문사회계 대학에서는 3학년부터 '제미(ゼミ, 세미나)'라 불리는 연구실 단위의 연습 수업을 운영한다. 세미나는 주로 교재를 돌아가며 읽는 윤독(輪読)을 중심으로 경우에 따라 영화 감상이나 답사가 병행되기도 하는데, 4학년에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졸업 논문 주제와 지도를 받을 교원을 정한 뒤 지도교원의 지도 아래 2년간 같은 세미나에 소속돼 문제의식을 기르고 연구 방법을 습득해가며 졸업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는 2020년 세미나에 참가한 학생 일부가 제작한 결과물이다. 2021년 일본에서 정식 출간된 후 2024년 한국에서도 번역된 이 책은 내가 보기에 한국 근현대사에 다가가는 입문서이면서 일본 젊은 세대의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일본 젊은이에 의한, 젊은이를 위한 한국 근현대사 입문서 일본어판 제목에는 '모야모야'나 '대학생인 나'와 같이 부드럽고 친근한 표현이 사용되었고, 표지에는 학생 생활을 묘사한 파스텔 톤의 경쾌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목차에도 '내 최애가 '반일'일지도 몰라', '한일 문제는 '무겁다'?', '한국과 일본은 왜 싸우는 거야?' 등 연구서에서는 보기 드물게 젊은 감각의 표현들이 자리한다. 본문 역시 '왜 한국인은 '레이와' 글에 반응하는 거야?', '케이팝 아티스트가 입은 '원폭 티셔츠'' 등 젊은이들이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주제를 다룬다. 이처럼 부드러운 디자인이나 낯익은 질문으로 인해 일반 연구서보다 훨씬 친근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막상 이 책을 읽어보면 학술적 성과에 기반한 탄탄한 한국 근현대사 입문서[1]에 가깝다. 말 그대로 '젊은이에 의한, 젊은이를 위한 한국 근현대사 입문서'인 셈이다. 그리고 현재 이 책은 일본에서 거듭 증쇄되어 7쇄 1만 2천 부[2]를 돌파한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일본 각지와 한국에서 북토크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지금도 주목받고 있다. 2023년에는 속편으로 가토 게이키 감수, 아사쿠라 기미카 외 편저 『확대되는 한일의 모야모야와 우리(ひろがる「日韓」のモヤモヤとわたしたち)』(오쓰키쇼텐)가 출간되어 한국어로도 번역되었고[3], 2024년에는 같은 세미나에서 『대학생이 추천하는 심층 서울 가이드(大学生が推す深掘りソウルガイド)』(오쓰키쇼텐)가 출판되기도 했다. '사실'을 알고 책임을 자각하는 일본 젊은이들 총 4장으로 구성된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는 각 장에 3~4개의 절이 있고, 절마다 1~3편의 칼럼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장 말미에 집필자들의 좌담회 내용이 정리돼 있다. '일본인이 느끼는 답답함'이라는 제목의 제1장에서는 집필자와 그 지인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K-POP이나 한류 드라마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일본 청년들이 직면하는 '모야모야'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저자 자신이 체험한 '모야모야'를 공유하고, 이를 어떻게 마주했는지가 흥미롭다. "일본은 관용이 넘치는 상냥하고 친절한 나라 아니었어?"라는 첫 번째 절에서는, 한 저자가 일본 사회와 역사, 그리고 자신 안의 차별과 편견을 깨닫고 식민지 지배의 과거를 외면해왔음을 자각하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이는 나의 경험과도 겹치는 부분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몰라서"라는 네 번째 절에서는, 일본의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서는 한일 역사를 거의 배울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며, 서두에서 언급한 나의 고등학생 시절보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음(오히려 악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2장 '한국과 일본은 왜 싸우는 거야?'에서는 제1장의 의문에 이어 일본군'위안부' 문제나 징용공 문제 등 역사 현안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 상황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많은 일본인 독자에게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특히 세 번째 절 "왜 한국 연예인은 8월 15일에 '반일' 글을 올리는 거야?"에서는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 및 식민지 지배하에서 일본이 무엇을 행했는지 해설하고, 한류 스타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해 역사를 잊지 말자고 호소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일본에서는 원폭 투하와 피폭 경험을 기억하며 전쟁과 핵 없는 평화를 기원하듯, 한국에서도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제3장 '한일관계로 되묻는 우리 사회'는 일본 사회와 동아시아 사회를 재고하는 장이다. 두 번째 절 "한국 아이돌은 왜 군대에 가?"에서는 한국인 집필자의 병역 경험을 공유하며, 한반도 분단의 원인이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있다고 논한다. 일본 사회 전체에 널리 공유되지 않은 이 인식은 매우 귀중하다. 또한 재일 조선인을 다룬 "일본인인 줄 알았는데 한국인이었어?"나 칼럼 "전후 일본은 평화국가?"에서는 전후에도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는 일본 사회의 실태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일본 사회의 부족한 인식을 보완하는 중요한 내용이다. 그리고 '"사실은 알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제4장은 역사 문제를 바탕으로 우리가 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를 집필자들의 경험을 통해 고찰한다. '그냥' K-POP을 좋아하던 필자가 한 재일 조선인의 지적을 계기로 일본의 가해 역사에 눈을 돌리게 된 경험은 특히 인상적이다. 이 필자는 ''차별과 배제의 구조'가 남아 있는 한, 역사를 풍화시키지 않고 그 구조를 무너뜨릴 책임이 있다'는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연루' 개념을 소개하고, 독자들이 현재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자각하고 사회 변혁에 나서도록 촉구한다. 일본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로서 먼저 짚게 되는 이 책의 의의와 특징은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시각으로 한일 역사 문제에 접근하면서, 나아가 식민지 지배 문제를 단순히 일본과 한국이라는 양국 관계에 국한하지 않고 재일 조선인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까지 시야를 확장하여 고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알기 쉬운 설명으로 담아낸 한일 관계의 역사적 사실과 주요 현안들 집필자들이 지적하듯,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교과 과정 혹은 언론 보도를 통해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른다'는 것이 어른을 포함한 일본인의 일반적인 감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과정은 독자가 필자들의 다양한 깨달음 과정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공감하고, 스스로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또 재일 조선인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까지 포함하는 시각은 한일 관계를 논할 때 놓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하고 잊어서는 안 될 관점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의의는 최근 한국 연예인의 언행[4]이나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된 사건 등, 우리 주변의 '모야모야'를 단서로 역사를 풀어가는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스타일을 취하면서도, 기존 연구 성과를 적절히 반영해 역사적 사실과 중요한 지점에 있는 현안들을 매우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부분이다. 실제로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가 집필된 시기는 징용공 문제를 계기로 한일 관계가 '전후 최악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던 즈음이었다. 뉴스나 SNS를 통해 매일같이 '반일' 담론이 쏟아졌고, 젊은이들은 다양한 형태로 '모야모야'를 느끼거나 의문을 품던 시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반일'이라는 단어를 비판적으로 재고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즉 '식민지 지배가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거나 '식민지 지배는 조선의 근대화를 이끈 좋은 일이었다'는 등 일본 사회에 만연한 역사 수정주의적 담론에 제대로 반박하며 실제 당시 조선에서의 식민 지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필자들의 연구와 실천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는 또 단순히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차원까지 논의를 발전시키며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는 일반적인 학술서에서는 취하지 않는 방식이다. 학술서는 보통 연구 결과를 현실의 삶이나 행동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까지는 다루지 않지만, 어쩌면 바로 그런 연구자들의 태도가 학문적 성과와 일반 사회의 인식 사이에 괴리를 낳는 한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제4장 좌담회 마지막에 있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라는 소제목에서 드러나듯, 현재 일본의 정치와 차별 상황을 떠받치는 일원으로서 문제를 깨달은 우리부터 행동에 나설 것을 강조한다. 참고로 이 책의 집필자 다수는 지금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사실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Fight for Justice (일본군'위안부' 망각에 저항·미래 책임)'나 '희망의 씨앗 기금'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대학원에서 식민지 지배와 성폭력 문제를 계속 공부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가 인권의 문제라는 공감 마지막으로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는 이미 7쇄를 찍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사회에서 일정한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다. 개인적으로 구매해 공부하는 독자도 많고, 나처럼 대학 세미나 교재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2022년과 2023년, 이전 학교의 학부 3학년 세미나 수업에서 이 책을 교재로 사용했다. 당시 세미나 학생들은 한일 역사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책의 지적이 가장 큰 발견이었다는 평가부터 평소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한일 관계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는 소감, 고등학교 때까지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식민지 지배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는 의견, 그리고 역사는 보지 않고 즐거움만 취하는 건 '문화 소비'일 뿐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는 목소리 등 다양한 의견을 밝혔다. 즉, 학생들은 식민지 지배 문제가 인권의 문제라는 점에 크게 공감했다. 일본 사회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현실과 그동안 식민지 지배 문제에 무자각한 채 즐거운 한국 문화만을 '소비'해왔던 자신들의 모습을 깨달은 것이다. 일본 학생들이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는 통념과 달리, 매번 90분간 진행된 세미나 토론은 지도교수인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을 만큼 활발했다. 어떤 날은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 시간 부족으로 사무적인 연락사항 세 마디만 겨우 전달하고 수업을 마친 적도 있다(참고로 매번 세미나의 사회, 발표, 코멘트, 토론은 모두 학생들에게 맡겼다). 그렇게 배운 학생들 중에는 식민지 지배 문제를 더 깊이 공부를 계속해 ''식민지 책임'론의 관점에서 본 징용공 문제의 해결', 'NHK 프로그램 <질문받는 전시 성폭력>[5]은 왜 정치적 압력을 받았는가' 등의 주제로 졸업 논문을 쓰기도 했다. 나는 현재 가나자와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육만 담당하고 역사 교육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어를 수강하는 학생들로부터 '한국에는 아직도 반일 교육 같은 것이 존재하나?'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면 본격적인 역사 강의를 할 수는 없지만 수업 중에 '반일'이라는 단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성 등을 이야기한 뒤 반드시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역사 수업을 담당하지 않거나,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교원이라도 '꼭 읽고 사유해보길' 자신 있게 권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배운 젊은이들과 함께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일본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나 또한 계속 노력하고 싶다. 각주 ^ 원서 출판사인 오쓰키쇼텐 홈페이지에서는 본서를 “한일관계 ‘초(超)입문서’”로 소개하고 있다(https://www.otsukishoten.co.jp/book/b583927.html, 2025년 7월 31일 접속). ^ X(구 Twitter) 계정 ‘속편 간행! 「‘일한’의 모야모야와 대학생인 나」@히토쓰바시대 가토 세미나 2024년 4월 9일 게시글, https://x.com/info_moyamoya/status/1777670914626273429 (2025년 7월 31일 접속). ^ 가토 게이키・서정완 감수, 아사쿠라 기미카・이상진・우시키 미쿠・오키타 마이・구마노 고에이 엮음, 여현정・박종후 옮김, 『‘뭐야뭐야’를 통해서 함께 알아가는 ‘한일’의 역사와 우리』, 소명출판, 2025. ^ [편집자주] 2018년 BTS 방탄소년단의 멤버인 지민이 원자 폭탄 투하 장면과 함께 애국심, 우리 역사, 광복, 코리아 등의 글자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은 모습을 비롯해 TWICE 사나의 '레이와' 투고 문제,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진 마리몬드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한 가수 출신 배우 수지 등의 사례가 있다. ^ 일본군‘위안부’ 제도를 심판한 2000년 12월 여성국제전범법정(여성국제전범재판)을 취재한 프로그램. 방송 직전에 당시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 신조와 중의원 의원 나카가와 쇼이치의 개입이 있었고, 이로 인해 방송 프로그램 내용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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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좌담 역사 수업 속 ‘위안부’ 교육,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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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수업 속 '위안부' 교육,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2025 기림의 날' 기념 초·중·고 역사교사 대담 (1) 웹진 <결>은 광복 80주년 '2025 기림의 날'을 맞아 서울길음초등학교 배성호 교사, 옥빛중학교 송은하 교사, 하안북중학교 문순창 교사 등 3명의 역사교사와 마주 앉았다.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있었던 1991년으로부터 약 35년,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진실 규명과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기울여온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생애주기에 따른 정규 교육과정에 어떻게 녹아 있고, 미래세대와 어떤 교감을 나누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대담은 '위안부' 관련 교과서 서술부터 창의적 체험 활동 사례, 나아가 AI시대에 조응하는 역사교육의 방향 등 학교 안팎의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학생들과 만나는 역사교사들의 열정적인 고민과 실천 이야기가 쏟아지는 자리이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다양한 과제를 부여받는 자리였다. 웹진 <결>은 7월 31일 오후 6시부터 한국YWCA연합회관 회의실에서 문순창 교사의 진행으로 이뤄진 대담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 문순창 : 광복 80주년 기념일과 8월 14일 '기림의 날'을 앞두고 웹진 <결>에서 초·중·고 학교 급별 일본군'위안부' 교육을 주제로 역사교사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제도권 혹은 비제도권 안에서, 그러니까 교과 및 비교과 과정을 통해 '위안부' 교육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시대적 상황과는 어떤 상호작용이 이뤄지는지 등을 알아보고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를 짚어보려 합니다. 역사교사로서 이런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랐는데, 오늘 그 장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부터 해보겠습니다. 저는 현재 경기 하안북중 역사교사로 있는 문순창입니다. 이전 혁신학교인 운산고에서 근무할 당시에 고등 <동아시아사>와 고등 <한국사> 과목에서 '위안부' 관련 수업을 했었고, 2022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 배성호 : 서울 길음초등학교 교사 배성호입니다. 2009년부터 교과서편찬위원으로 검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고, 일본 역사교사협의회 선생님들과 한일수업교류 모임도 10여 년 넘게 해오고 있습니다. 🧶 문순창 : 배 선생님은 사회 참여 교육으로도 유명하세요. 박물관을 지루한 곳이 아니라 호기심 가득한 공간으로 제안하고, 학생들과 안전지도로 동네를 바꾸거나 오래되고 좁은 교문을 4년에 걸쳐 바꾸는 학교 혁신공간 사례를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연결해 사회나 역사 쪽 관심사를 책으로 펴내는 능력도 탁월해 벌써 서른 권 넘게 펴내셔서 '월간 배성호'라는 별명도 얻으셨어요. 🧶 송은하 : 경기 양주에 있는 옥빛중학교 송은하 교사입니다. 사회교사였다가 2014년 역사로 교과목을 바꿨습니다. 2015년부터 의정부역사교사모임, 시민단체 등 지역사회가 연계해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추진한 '평화나비학교'를 비롯해 '위안부'와 관련된 다양한 캠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해 왔어요. 오늘 그 경험을 잘 공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등, 5학년 2학기 역사 영역에서 첫 대면… 한두 줄에서 언급에서 한 쪽 분량으로 늘어 중등, 2학년 역사1(세계사) 과목에서 2차 대전 중 전쟁 범죄 사례 중 하나로 수업 고등, 한국사 Ⅰ·Ⅱ는 공통이자 수능 필수… '위안부' 서술부터 탐구 활동까지 대대적 🧶 문순창 : 그럼 첫 대담 주제로 학교 급별로 '위안부' 교육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교과과정 혹은 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배성호 : 초등 교육에서는 현재 역사, 지리, 일반 사회 등 세 영역으로 구성된 사회 교과 중 5학년 2학기 역사 영역 단원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일제강점기 침략 전쟁에서 가혹한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부터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 증언, 인권운동의 상징이 된 현재까지의 과정이 1쪽 분량으로 정리돼 있습니다. 사실 제가 국정교과서편찬위원을 시작한 2009년 즈음만 해도 '성', '폭력' 등은 초등에서 지나치게 예민한 주제가 아니냐는 논쟁이 있었어요. 이때 최종순 선생님[1] 같은 선배 교사들이 징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군'위안부' 문제야말로 우리가 회피하지 않고 대면해야 할 역사라고 설득하고, 수업을 멈추지 않은 덕분에 정규 과정에 포함되는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때는 피해 할머니를 교실로 직접 모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 송은하 : 중학 과정에서는 중2 세계사 교과서 5단원 중에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인권 유린 사례로 홀로코스트와 난징대학살,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이 2쪽 분량으로 담겨 있어요. 집중 탐구 주제로 난징대학살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부와 홀로코스트 후 독일 정부의 태도 비교 등 몇 가지를 서술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세계사 속에서 '위안부' 역사를 조망하도록 구성돼 있습니다. 다만 중3 역사2 교과서 내용을 보면 한국사 6개 단원 중 전근대사 비중이 5개 단원으로 높아지고, 현대사 부분이 거의 고등학교로 넘어갔어요. 나머지 한 단원에 개항기부터 현대사까지 압축, 소략되다보니 중3 역사 과목에서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내용이 없습니다. 🧶 문순창 : 고등 교과과정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고등학교 역사과 과목에서는 '위안부' 교육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대대적으로 늘어납니다. 고등 <한국사>가 공통 과목인데다 근현대사를 비중있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는 수능 필수과목이기도 해요. 고교학점제가 되면서 학기별로 한국사 Ⅰ, Ⅱ를 이수하게 되는데, '일제강점기, 1987년 이전의 한국현대사, 1987년 이후 현대사'까지 아우르는 한국사 Ⅱ에서 '위안부' 문제를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어요. 몇몇 교과서 서술(2022 개정)을 예시로 보여드리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교과서는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여성들이 '성노예', 즉 '위안부'로 동원된 역사를 분명히 다룹니다. 그리고 각 교과서 별로 탐구 활동이나 특집 코너로 이전보다 심도있는 수준으로 위안부를 다루고요. 교과서 중 하나인 '해냄에듀'에서는 '일본군'위안부' 평화인권 프로젝트'라고 해서 평화와 인권 실천가로서 피해 할머니들의 삶과 활동을 살펴보고, 프로젝트로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도록 제시합니다. '동아출판' 교과서의 경우 '위안부'를 둘러싼 역사 부정 사례를 자세히 다루고 있고요. 양적 비중은 물론 질적으로도 깊이있게 '위안부'를 학습 요소로 다루고 있습니다.그리고 현대사 중 동아시아 역사문제 해결 관련 서술에서도 역사 갈등의 사례로 '위안부' 문제가 항상 포함됩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이를 둘러싼 논란도 배우고요. 진로선택과목인 <동아시아 역사기행>은 과거 <동아시아사>를 이어 역사 기행이라는 형식으로 재구성한 과목입니다. 동아시아의 공존과 평화를 고민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데 여기에서도 '위안부'는 중요한 학습 요소 중 하나입니다. 🧶 배성호 : 고1 공통 필수 과목 중 하나인 '통합사회' 평화 파트에서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배우고 있어요. 새 입시에서 소위 '문이과'나 희망 전공을 가리지 않고 수능을 치르는 모든 학생들이 보는 과목이라는 점에서 뜻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사회 과목은 전체를 아우르는 특성이 있어요. 특히 초등에서는 통합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나 역사만이 아니라 영화, 그림, 책 등으로 얼마든지 연결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학생 주도형 프로젝트 활동의 모범사례 '평화나비학교' 🧶 문순창 : 개인적으로 예전에 전국역사교사모임 선생님이나 연구자들의 실천 사례를 「일본군'위안부' 수업 실천의 성찰적 진화」(2021)[2]라는 제목의 글로 정리해본 적이 있습니다. '위안부' 교육의 실천 양상을 3가지 시기로 분류했는데, 먼저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부터 일본의 극우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역사 교과서 등장까지를 '1기-진실 알리기'로 분류했어요. 이 시기는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한 때입니다. 2기 '보편화 및 동아시아 역사문제로 확대'는 최종순 선생님 사례처럼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는 여러 수업 실천들이 주목받았던 시기입니다. 할머니를 직접 수업에 초청하는 파격적인 시도도 대개 이때 많이 등장했고요. 김대중-노무현 정부부터는 '위안부' 이슈가 여성부 등 제도 안으로 편입되고, 정규 교과에 포함되는 등 '공식적인' 교육과 연구가 이뤄집니다. 역사교사들의 관심과 참여가 눈에 띄게 늘고 비교과 활동도 활발했습니다. 3기는 성찰과 모색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사건을 전후한 분기점에 주목합니다. 대중적으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평화나비학교'의 활동 혹은 지자체나 지역 시민사회의 '평화의 소녀상' 세우기 운동처럼 학교 안팎에서 진행되는 캠페인이 증가했고요. '위안부' 소재의 영화와 연극, 책 발간도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다루는 양상이 사회 각 분야로 뻗어나가는데, 아이들의 수요시위 참여가 활발해진 것도 이때에요. '위안부' 교육이 학교의 경계를 넘어 시민사회 등 세상과 연결되는 한편 민족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여성인권, 섹슈얼리티 등으로 어젠더가 발전하는 경향도 볼 수 있습니다. 또 학교나 교육청 등의 교육기관이 마을교육공동체 같이 지역사회와 협업하거나 청년, 전문가 등 학교 밖 자원과 연계한 사업도 많이 시도됐습니다. '경기 꿈의 학교'와 같은 정책도 그런 사례인데요. 그 중 가장 성공한 사례가 '의정부 평화나비학교'예요. '위안부' 교육을 주제로 한 훌륭하고 역동적인 실천 사례이죠. 실무자로도 깊이 관여하신 송 선생님께서 이 경험을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송은하 : 2015년, 평화나비학교는 경기도 교육청 꿈의 학교의 하나로 지역의 시민단체인 의정부 희망교육네트워크가 주관하고 의정부역사교사모임이 협력하며 전개되었어요.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해 11월 3일 학생의 날 제막식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운영했습니다. 학생 60명을 목표로 모집을 시작했는데 100명이 신청해 저희도 놀랐죠. 학생 모집이 이루어진 후 할머니들의 용기와 '위안부'의 역사, 당시 20년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이어온 수요시위 이야기 등을 담은 『20년간의 수요일』을 읽은 뒤 함께 독서 토론을 하고, '캠프'를 열어 나눔의 집과 평화의 쉼터,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의 기관을 방문해 할머니를 직접 만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어요. 수요시위에 참여한 뒤 근처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플래시몹도 하고요. 이후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어요. 의정부, 양주, 남양주, 포천 등 경기북부 지역의 역사교사로 구성된 의정부역사교사모임의 선생님들이 '위안부' 공동수업을 하고, 학교에서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모금 활동을 펼쳤어요. 평화나비학교 학생들도 의정부 교육희망 네트워크와 연대하여 소녀상 건립 성금 모금을 위한 바자회, 의정부역, 행복로 플래시몹, 노란 나비만들기 체험 등 캠페인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모금 활동을 이어갔어요. 7월부터 11월까지 약 넉 달 동안 주변 초등학교와 대학교로도 확산되며 총 33개 학교가 모금활동에 참여했고, 이 모습이 지역사회의 단체와 시민들에게 영향을 주어 적극적인 성금 모금이 이루어졌어요. 11월 7일 드디어 의정부역 광장에서 성대하게 소녀상 제막식을 가졌어요. 소녀상 옆에는 아이들이 작성한 '청소년평화선언문' 안내판도 나란히 설치했어요. 소녀상 건립 그 자체로 훌륭한 성과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화나비학교를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수요시위 활동을 주관하고 플레시몹을 제작하고 소식지를 제작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동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신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뿌듯해 했어요. 교사로서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어요. 또 학교와 지역, 시민사회의 폭넓은 연대가 캠페인의 동력으로 작용한 점 등 과정에서 '위안부' 역사를 경험하고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기회가 되었고요. 이후 학생의 날 즈음에 의정부 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기념할 수 있는 수업과 일본군'위안부'문제 관련 공동실천 활동을 하자는 이야기가 있어 학생들과 <눈길>, <어폴로지(The Apology)> 같은 작품으로 공동체 영화 상영회 등을 열어 코로나 전인 2019년까지 이어갔어요. 🧶 문순창 : 창의적 체험 활동은 교내 동아리 활동부터 소소한 자율 활동, 진로 활동까지 포괄하고, 학교 담장을 벗어나 시민사회, 지역사회와 역동적으로 네트워킹까지 가능해요. 평화나비학교에는 이 모든 활동이 다 녹아 있어 울림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이화여고 동아리 '주먹도끼'에서 시작한 '전국 100개 학교 작은 소녀상 세우기 프로젝트'도 화제였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어떤 비교과 활동 사례가 있을까요? 🧶 배성호 : 초등에서는 영화를 많이 봤어요. 초등 역사교사 수만 명이 참여하고 있는 '인디스쿨'이라는 커뮤니티에서 많은 선생님이 추천한 <아이 캔 스피크>가 대표적이에요. 역사와 서사가 함께 있을 뿐 아니라 국어적 접근, 사회통합적 접근까지 되는 영화니까요. 수요시위와 학생 자치를 연계해 보기도 했어요. 초등 사회과 단원에서 서술하고 있는 학생 자치와 민주주의, 학교 자치 등을 실현하는 과정으로요. 그런데 아까도 언급했지만 초등생들에게 '성폭력'을 가르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예요. 개인적으로는 기존 통념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범교과 교육과 연결해 고민하는 중인데, '홀로코스트 없는 홀로코스트 교육'을 유치원 때부터 하는 독일의 방식을 차용해 초등 저학년부터 이뤄지고 있는 우리의 성교육, 인권교육에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성폭력이나 집단학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강제와 차별 등에 대한 관점으로 정서적인 충격은 완화하면서 발달 단계에 맞게 다가갈 수 있거든요. '불편한 역사'를 직면하는 역사교사의 고민 🧶 문순창 : 배 선생님의 고민과 연결해 소환되는 기억이 있는데, '불편한 역사(difficult history)'라고 번역되는 역사 교육계의 개념입니다. 잔인한 폭력, 트라우마처럼 어렵고 민감한 내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지에 대한 논의에서 파생된 개념인데, 논자에 따라서는 폭력사(폭력의 역사를 통한 평화교육)'라는 개념을 제안하기도 합니다.[3] 2016년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위안부' 서술 누락 및 축소 논란이 있었죠. '위안부라는 표현을 빼고 “젊은 여성들이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는 서술, '위안부' 관련 사진 삭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어요.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의 발달 수준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의견과 '2015년 한·일 합의'를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냐는 의견이 부딪혔어요. 교육 현장에서는 꾸준히 직면해야 하는 '불편한 역사'를 가르치는, 나아가 가르쳐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배성호 : 사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지는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 사회문화적 환경 등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잖아요. 때문에 어려움이나 논란보다 개탄스러웠던 점은 건강한 토론을 막고, 얼버무리고, 언급조차 불편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해진 초등 성교육이 과거 터부시된 것처럼요. 다행히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공식 교육 과정 안에서 보편성을 바탕으로 다뤄야 한다는 합의를 진전시켜 왔고, 이 자체로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 송은하 : 지금 중2 수업을 하고 있지 않아 직접적인 어려움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교과서 서술도 '세계사' 중 전쟁 범죄와 관련된 인권 유린 사례로 다루어지고 있어서 불편한 느낌은 적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현재 동아리 활동을 통해 '위안부' 수업을 하고 있어요.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평화나비학교 이후에 양주 등 새로 소녀상이 세워진 곳을 방문하거나 관련 역사적 내용을 살펴보고, <눈길>이나 <아이 캔 스피크> 같은 영화도 봐요. 2~3학년인 저희 동아리 학생 16명 중 13명이 남학생인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당연히 배우고, 해결되어야 할 역사로 무난히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 문순창 : 많은 중등 역사교사들은 '위안부' 역사를 '불편한 역사'라는 개념과 연결해 이야기할 때 학생들과 할머니들의 증언이나 당시의 기록을 읽으면서 피해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단순히 피해 사실을 다루는 것보다는 전시에 일어난 약자에 대한 폭력, 전쟁의 도구나 자원으로 여성을 활용해온 제도와 구조를 함께 보아야 보다 근본적인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폭력의 구조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수업을 역사교육을 통해 시도하는 것이죠. 아울러 요즘은 피해와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머물지 않고 전시 성폭력에 대한 반대처럼 보편적인 인권 활동으로까지 나아간 할머니들과 우리 사회의 '실천의 역사'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피해자로 전시된 삶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당사자로,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실천가로서의 삶을 아이들에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보거든요. 평화교육 혹은 전시 성폭력 문제 같은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렌즈로 위안부 교육을 확장시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주 ^ 前 초등교사. 어린이와 역사교육에 관심이 많아 역사초모, 역사교육연구소 등에서 활동했으며, 일본 도쿄대학교 교육대학원 연구생으로 와코소학교 사회과 수업에 참여하고, 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 대회에서 수업 사례 발표하는 등 역사 갈등과 평화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교육 실천을 이어갔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교실로 초대하거나 관련한 영상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위안부’ 교육을 본격적으로 실천했다. ^ 문순창, 일본군 '위안부' 수업의 성찰적 진화 <역사와 교육> 20호 p.88-108 , 2021. ^ 이동기는 평화사가 폭력의 원인 분석을 통해 평화의 조건을 규명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을 피력한다. 이동기, '평화사란 무엇인가?' <역사비평> 106호 p.16-36,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