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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논평 Uncovering the Tragic Legacy: Movement for the Victims of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in Ti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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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인터뷰 미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자국중심주의 극복하는 글로벌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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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 윌리엄스 사회교육학 부교수 & 필리스 김 CARE 대표 인터뷰 <1부> 미국 사우스다코타대학교 사회교육학 징 윌리엄스 교수와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의 필리스 김 대표, 미국인들에게 '먼 나라의 오래전 불행한 역사'라 할 수 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인권 문제로 접근해 교육하고 활동하는 이들이다. 2018년에 처음 만난 이후 '위안부' 문제 연대 활동을 해온 두 사람은 현재 공동 저술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쯤 나올 예정인 이 책은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방법을 담은 첫 번째 출간물이 될 예정이다. 웹진 <결>은 연구차 한국을 방문한 징 윌리엄스 교수와 서울에 체류 중인 필리스 김 대표를 인터뷰해 2회에 걸쳐 싣는다. <1부> 미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자국중심주의 극복하는 글로벌 시민교육 <2부> 국제사회 왜곡 막고 공감 넓힐 영문 '위안부' 증언집 발간되길 Q.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 징 윌리엄스 :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 천진사범대에서 영어영문학 번역 석사를 마쳤어요. 2014년 미국 오하이오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곧바로 임용된 사우스다코타대학에서 사회교육학 부교수로 일하며 초등 및 중등 사회 연구 방법론을 가르친 지 10년 정도 됩니다. 🧶 필리스 김 : 저는 스무 살, 대학 2학년 때 가족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갔어요. 한국 이름은 김현정입니다. 대학을 마치고 법정 통역사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OMFORT WOMEN ACTION FOR REDRESS & EDUCATION. 이하 CARE)'의 대표로 있는데요, 2020년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왔다가 코로나사태로 발이 묶인 후로 서울에 장기 체류 중입니다. 물론 전시나 행사가 있을 때 미국을 오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주목하게 된 계기 Q. 교육, 특히 역사 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강조돼 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더 특별한 것은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미국 사회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오래 전 먼 아시아에서 전쟁 중에 일어난 '남의 나라의 불행한 역사'일 텐데, 그 안에서 꾸준히 연구하고 관련 활동을 해오신 두 분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 징 윌리엄스 : 말씀드렸다시피 중국 태생이라 난징 대학살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군이 동아시아 전역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미국으로 유학간 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보니 전시 하 아시아 역사는 아주 간략하게 다루는 반면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가득했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이라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된 거죠. 역사 교육을 계속 연구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를 조금 더 깊숙이 파게 됐고, 선생님 혹은 교육자가 돼서 가르칠 때 이 내용을 꼭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목표 중 하나는 사회학을 가르칠 때 전 세계적인 관점을 녹여내는 것입니다. 🧶 필리스 김 : 이민 간 지 얼마 안 된 1992년 4월 29일, 저희 가족이 살고 있던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사회에 엄청난 피해와 후유증을 남긴 'LA폭동'이 일어났어요. 그 현장 한 가운데 있다 보니 미국 내에서 한인으로 산다는 것, 나아가 이민자 커뮤니티와 인종 갈등, 사회 정의, 여성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만난 직접적인 계기는 2007년 채택된 '미국 연방회의 일본군'위안부' 사죄 결의안(H Res. 121)' 캠페인이에요. 전국 네트워크 중 하나인 서부 캘리포니아 캠페인팀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미국으로 초청했는데, 제가 통역사다 보니 할머니의 눈과 귀가 돼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제 역할은 끝난 줄 알았는데 이후에도 사죄나 책임보다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변함이 없고, 오히려 국가 차원에서 '역사 전쟁'을 치르는 것을 보고 '뭔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특히 미국에서의 활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2007년 캠페인을 함께 했던 분들과 단체를 만들고 2013년 글렌데일 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캠페인, 2017년 중국계 분들이 주도해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선보인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 설치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계속 '이슈'를 만드는 일본 때문에 멈출 수도 없었어요. 글렌데일 시에 소송을 걸고, 샌프란시스코 기림비가 설치되자 오사카에서 자매도시 인연을 끊겠다 하고, 일본 외교관이 교과서 저자인 교수에게 '위안부' 관련 문구를 삭제하라고 압박했다는 소식이 언론으로 전해지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방해가 양날의 검이기도 했던 게 저희의 기운을 빼고 정치인을 의기소침하게 하기도 했지만, 교육계·법조계 등에서 '위안부' 문제를 주목하게 되는 효과도 있었어요. 이해관계가 없는 분들에게는 더 깊게 이해하고 지지하는 계기도 됐고요. Q. 거대하고 다양성이 강한 미국 사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활동을 접한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잘 가늠되지 않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게 되는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필리스 김 : 미국 사회 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이 10년 사이 얼마나 변했다 하는 걸 보여주는 데이터나 연구는 없지만 획기적인 변화 중 하나가 캠페인을 벌인 캘리포니아 주에서 '위안부' 문제를 '성노예 제도의 예로 가르칠 수 있다'는 문구가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 과정에 포함된 것입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 뉴욕 주 같은 곳에서 먼저 진보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다른 주들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때가 2016년이었어요. 사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교과 과정에 포함시켜도 아무도 가르치지 않으면 효과가 없잖아요. 직접 선생님들을 만나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부터 전국 단위까지 다양한 컨퍼런스에 다녔습니다. '레슨 플랜', 그러니까 수업 지도안 같은 교육 자료를 싸들고 가서 세션도 열고, 프리젠테이션도 하고, 부스를 마련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선생님이 있으면 알려드리기도 했죠. 그렇게 해도 2017년, 2018년 무렵까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에 대한 선생님들의 이해가 낮았어요.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2023년 11월에 다시 대면으로 열린 전미 사회학 컨퍼런스에서 윌리엄스 교수님과 세션을 하고, 얼마 뒤에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세션을 했어요. 그때 깜짝 놀란 게 많은 선생님들이 세션이나 부스를 찾아와 '나 '위안부' 문제 알아, 더 좋은 자료 있니?' 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르쳐 봤어.' 하는 거예요. 몇 년 전만해도 '위안부' 문제를 설명하면 성과 폭력이 들어가 있어 부담스러운 주제라며 두려움과 우려를 나타냈다면 이제는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로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좀 더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더 알려 달라'라고 하는 걸 보면서 변화를 체감했습니다. 🧶 징 윌리엄스 : 필리스 김 대표님 말씀처럼 1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제가 얘기하면 그때서야 많은 교육자분들이 큰 충격에 휩싸여 '어떻게 내가 몰랐을까' 했어요. 제가 고등 교육을 담당했는데, 처음에는 '위안부' 문제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일어난 난징 대학살을 연구하려고 했어요. 난징 대학살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고 피해를 입는지를 연구하게 됐고, 그래서 '위안부' 문제를 집중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필리스 김 대표님과 저는 전미 사회학 관련 컨퍼런스 때 부스에서 처음 만나 2018년 이후부터 같이 일해 왔습니다. CARE에서 받은 자료 사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사용해 제가 약 90분 분량의 '레슨 플랜'을 만들었어요. 그 지역 고등학교에서 한번 사용해 보기로 했죠. 아이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들려줬는데 역시 '충격'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객관적 역사와 정서적 공감에 기반한 수업 지도안 Q. 그렇게 인식을 변화시키는 교수님의 수업 지도안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 징 윌리엄스 : 90분 정도 진행되는 수업은 제가 일본의 전반적인 역사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요. 일본 제국과 메이지 시대, 그리고 어떻게 군사화와 근대화가 가능했는지, 20세기 일본이 어떻게 해외 진출을 하게 되었는지를 개략하는데, 갑자기 일본이 이랬어라고 말하기보다 역사 전후를 알려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일본이 중국 북동 지역을 어떻게 침략했는지, 난징 대학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특히 난징 대학살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는지 설명하다보면 위안소를 설치해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사실 등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수업에서 너무 적나라한 이미지나 사실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이미지나 자료는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으니까요. <디 어폴로지(The Apology)>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며 조금씩 설명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는 중국, 한국, 필리핀 '위안부' 할머니 세 분이 나와요. 학생들은 할머니들의 증언을 자연스레 듣게 됩니다. 다큐멘터리를 본 다음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해요. 어떻게 이 할머니들이 끌려가게 되었는지, 당시 할머니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얼마나 오랜 기간 '위안부'로 생활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후에 할머니가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지, 할머니가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일지 등입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해야지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만약 일본 정부가 사과한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까? 할머니들의 마음이 그나마 좀 풀릴까?' 물어봤더니 '아니다. 할머니에게서 가장 중요한 걸 앗아갔기 때문에 사과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데 사과조차 안 했으면 어떻게 할까'라고 했더니 '인정할 수 없다, 그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업은 대략 이렇게 진행됩니다. 저는 '위안부' 문제 같은 민감한 사안을 '디피컬트 히스토리(Difficult History)', 풀이하면 '어려운 역사'라고 하는데요. 어렵고 민감한 사안에는 강간, 성폭력이 포함돼요. 또 이렇게 '어려운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가르칩니다. 대학에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될 사람들이에요. 어려운 주제의 예시로 '위안부' 문제를 들어 '나는 이렇게 가르칠 것 같다'고 생각을 나누고, 학생 자신들이 가르치고 싶어 하는 주제에 대해 어떻게 커리큘럼을 꾸려나갈지 함께 레슨 플랜을 짜기도 합니다. Q. 말씀을 들으니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주제를 놓고 상호 교감을 이뤄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미국의 중등, 대학 교과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약간 부가적인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필리스 김 : 미국은 주에서 고등학교 세계사 과정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제시해 주는 주제들이 있어요. 대개 8~10년에 한 번씩 개정하면서 새 이슈를 넣고, 특정 설명을 바꾸기도 합니다. 아까 캘리포니아 주에서 '위안부' 문제를 '성노예 제도의 예로 가르칠 수 있다'는 문구가 교과 과정 아이템에 포함됐다는 건 고등학교 세계사 과정에서 배워야 하는 여러 주제 중에 '위안부' 문제가 들어갔다는 의미예요. 그 중에 교사가 주제를 선택해 가르치게 됩니다. 그런데 교사가 원하는 주제를 가르치려면 준비가 필요하잖아요. 45분짜리 수업 2개로 구성된 징 윌리엄스 교수님 수업 지도안은 그 교사들이 수업에서 활용할 자료예요. 교수님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예비 교사니까 지도안을 이들에게 활용하기도 하고, 실험적으로 고등학교에 실제로 가서 수업 지도안을 활용해 '테스트 티칭'을 하기도 하고요. '위안부' 교육은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일이기도 Q. 도입부에도 나왔지만 한국이나 아시아 국가는 자신들의 과거사이고, 피해 경험이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물론 여성 인권처럼 보편성에 기반해 공감할 수 있지만 미국 사회는 대개 제3자의 역사로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이런 미국 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게 어떤 중요성을 가지는 걸까요? 🧶 징 윌리엄스 : 제가 사회학을 연구하고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글로벌한 관점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도 미래 교육자로서 글로벌한 관점으로 가르치길 바라고요.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겠지만 특히 자국중심주의가 강한 미국은 자국과 연관이 없으면 교육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로벌 교육, 글로벌 시민에 대한 정의는 다양할 것 같은데, 저는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사람들을 '케어'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갈 기회가 있습니다. 글로벌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단순히 '위안부'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인권 문제입니다. 제 수업에 여학생들이 많은데, 우리가 지금은 안전한 곳에 살고 있지만 몇 년 전에 이 나라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이 문제를 꼭 끝내야 된다는 게 아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그 첫 단추를 꿰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몇 년 뒤에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 여성 인권 옹호자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여성 인권과 연결하면 아이들은 관심을 보입니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등에서 오늘도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특히 여학생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마음 아파합니다. 수업이 끝난 후 받은 설문조사를 하는데,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어요. 한 학생의 대답을 짧게 요약해 볼게요. '일본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인간적이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잘못하면 그 잘못을 인정하라고 배우는데 심지어 일본 정부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습니다. 피해 여성들은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또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나서서 본인이 당한 일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특히나 한국의 문화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강간을 당하면 바로 신고하는 게 어렵습니다. 저는 만행을 저지른 남자들은 절대 잘못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법적으로 관련 조치와 벌을 받아야 됩니다. 이 남성들은 '위안부'를 여자로 인식한 게 아닙니다. 단순히 성적 장난감으로 본 것이고 본인의 쾌락을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저는 부끄러움, 트라우마, 정의롭지 못한 행동 그리고 인정하지 않는 이 모든 행동 자체가 잔인하게 보입니다.' 아르메니아 '인종 청소'와 홀로코스트 Q. '위안부' 문제와 인권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와 공감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 필리스 김 : 돌아보니 저희가 교육이나 소녀상과 기림비 설치를 위한 캠페인을 할 때 똑같은 질문을 하는 미국인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미국인이 당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하느냐고요. 그럴 때 저희는 세 가지 설명을 해요. 첫째는 홀로코스트가 미국에서 일어나거나 미국인이 홀로코스트를 당하지 않았지만 배우잖아요. 너무나 중요한 인권 문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세계사적 비극이기에 누구나 배워야 한다라고 얘기하면 모두 동의해요. '위안부' 문제도 같은 얘기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100년도 더 지난 1910년경 아르메니아에서 일어난 '인종 청소'예요. 당시 생존자들은 자기들의 고통에 대해 한 세대가 지날 때까지 침묵을 지켰어요. 그러다 다음 세대가 그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터키 정부에 사실을 인정하고 정의를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분들이 하는 얘기가 그때 바로 국제사회에 '인종 청소'를 알리고, 해결을 요구했더라면 홀로코스트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거였어요. 이제 4세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지금도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열심히 가르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는 거예요. 국가가 저지르는 전시 성폭력을 말할 때 항상 먼 아프리카나 중동 국가를 떠올리지만 사실 미국에서도 조직적인 성폭력, 인신매매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습니다. 그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할머니들의 얘기와 흡사해요. 70년, 80년이 지났지만 결국 본질은 같은, 현재 우리 커뮤니티와 깊이 관련된 문제인 거예요. 마지막으로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낸 최초의 어마어마한 사건이라는 점을 얘기해요. 그전에도 얼마나 전시 성폭력이 많았겠어요. 그럼에도 항상 피해 여성들이 죄를 뒤집어쓰고 부끄러워하고 숨어야 했는데, 처음으로 우리 할머니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셨잖아요. 여성학의 관점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데, 침묵을 깬 할머니들이 '액티비스트'로 변해 이 운동을 이끈 건 정말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Credit 인터뷰어: 손정미, 소현숙 인터뷰이: 징 윌리엄스 사회교육학 부교수, 필리스 김 CARE 대표 글/정리: 손정미 사진 : 팝콘(popcon) 인터뷰 일시: 2024년 6월 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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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인터뷰 국제사회 왜곡 막고 공감 넓힐 영문 ‘위안부’ 증언집 발간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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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 윌리엄스 사회교육학 부교수 & 필리스 김 CARE 대표 인터뷰 <2부> 미국 사우스다코타대학교 사회교육학 징 윌리엄스 교수와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의 필리스 김 대표, 미국인들에게 '먼 나라의 오래전 불행한 역사'라 할 수 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인권 문제로 접근해 교육하고 활동하는 이들이다. 2018년에 처음 만난 이후 '위안부' 문제 연대 활동을 해온 두 사람은 현재 공동 저술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쯤 나올 예정인 이 책은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방법을 담은 첫 번째 출간물이 될 예정이다. 웹진 <결>은 연구차 한국을 방문한 징 윌리엄스 교수와 서울에 체류 중인 필리스 김 대표를 인터뷰해 2회에 걸쳐 싣는다. <1부> 미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자국중심주의 극복하는 글로벌 시민교육 <2부> 국제사회 왜곡 막고 공감 넓힐 영문 '위안부' 증언집 발간되길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업 지도안, 자료집 중요 Q. 사실 지금 한국에서는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 등을 부정하고 오히려 왜곡하는 역사 수정주의가 강화되고 있고, 그들의 주장이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이를 접한 학생들이 선생님을 공격하거나 수업을 흐트러뜨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도 그런 분위기가 보이나요? 🧶 징 윌리엄스 : 사실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면서 부정하거나 공격당한 경험은 없습니다. 자료를 준비할 때 CARE에서 받은 자료,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송 근거 같은 일본 정부의 기록, 또 미군의 증언 등 역사적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강의가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을 나누는 대화와 토론 방식이라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내기 어려울 겁니다. 다만 아직도 이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는 잘못된 의견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는 합니다. 🧶 필리스 김 : 2016년에 캘리포니아 주 교과 과정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포함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할 때 주 교육부에서 주최한 큰 공청회가 있었어요. 다양한 이슈가 논의된 그 자리에서도 '위안부'는 거짓말이다, 매춘부였다, 포함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결국 이사회에서 저희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정됐어요. 그랬는데 마지막에 주 교육부 관계자가 나와서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이슈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위안부' 문제였다, 상반되는 의견이 팽팽해 타협안으로 '위안부' 문제를 포함시키되 마지막에 한국과 일본 정부가 2015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는 문구와 함께 일본 외무성의 링크를 포함을 시키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어요. 그 상태로 개정안이 통과가 된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한국 정부도 주 교육부에 와서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더라고요. 저희도 할 말이 없었어요. 그래서 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업 지도안이나 자료집이 더욱 중요해요. 어쨌든 '위안부' 문제가 주제로 포함되기는 했으니까 선생님들을 돕는 자료집을 만들었어요. 선생님들이 이용하기 쉽게 온라인에도 올리고요. 그런데 한 번은 사회학 컨퍼런스에 설치한 우리 부스에 한 교수님이 와서 캘리포니아 교사들을 위한 '위안부' 문제 자료집을 만들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잘됐다 하면서 초안을 공유해주면 피드백을 드리겠다고 했어요. 초안이 왔는데, 문제는 일본측 시각이 강한데다 2015년 합의문을 과도하게 분석하는 등 적절한 자료에 근거하지 못한 내용이 상당했어요. 일본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왜곡된 주장을 많이 퍼트려놨기 때문에 그런 정보를 접하기가 쉬웠을 거예요. 바로 연락해 여러 참고문헌과 자료를 제공하면서 저희를 언급하지 않아도 좋으니 잘못되거나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은 꼭 반영해 달라고 했어요. 결과물에 100%는 아니지만 다행히 꽤 반영이 됐고요. 한편으로는 일본과 대조적으로 다양한 자료 제공에 소극적인 한국 현실도 많이 아쉬웠어요. 할머니들이 증언하신 지가 30년이 넘었는데 학술적으로 '사이테이션(citation)', 공식적으로 인용할 수 있는 증거 자료가 정말 부족하거든요. 사실 교사나 학생, 나아가 연구자들에게 할머니들의 증언만큼 중요한 출처이자 진실이 어디 있겠어요. 일본 공문서도 1차 자료로 중요하지만 할머니들의 증언에는 거기에 담기지 못한 진실이 훨씬 많잖아요. 할머니들을 모시고 '스피킹 투어'를 다니다 보면 '서바이버', 즉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힘있는 자료인지 느낄 수밖에 없어요. 미국에서는 지금도 항상 억눌려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한다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화두라 '위안부' 문제에서도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와 생생한 증언이 제대로 전달이 되는 게 너무나 중요한데 이걸 인용할 수 있는 학술적인 증언집이 없다는 게 너무나 안타깝고,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Q. 저희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중요한 숙제를 받은 것 같습니다. 🧶 필리스 김 : 그동안 비매품으로 번역되어 나온 증언집이 있긴 한데, 많은 할머니들이 익명으로 처리돼 있어요. 또 시대적 배경이나 문화적 차이 등에 대한 설명, 할머니들의 증언도 여러 이유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불식시킬 수 있는 설명 등을 담은 영문 번역집을 제공하는 게 정말 필요해요.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가 자금력을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어 저희도 우려를 하면서 휘둘리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Q. 수업 지도안이나 교재를 적용하다 보면 현장에서 수정 아이디어나 보완이 필요한 사항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혹시 '위안부' 수업을 하면서 접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 징 윌리엄스 : 자료는 오랜 시간 고민하며 준비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만족합니다.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경험에 많이 공감하고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쌓는 경험을 하게 되고요. 강의 후 설문조사를 할 때 만약 할머니를 실제로 만날 수 있으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는데 '사실 어떤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들었고 알고 있고 전혀 잊지 않았고 우리가 대신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 억울해하지 마셨으면 한다'는 반응이 기억납니다. "제 '위안부' 강의 보호가 가장 큰 어려움" Q. 과정에서의 어려움, 그러니까 미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어려움 혹은 도전 과제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징 윌리엄스 : 제 강의가 항상 효과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사우스다코타라는 주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제가 가르치는 주제와 미국 주의 기준이 어느 정도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사우스다코타는 굉장히 보수적인 주이고 주지사가 '글로벌 스터디스(Global Studies)'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이기도 합니다. 사우스다코타 고등학교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왜 발발했는지, 전 세계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등을 가르쳐요. '위안부'는 그 전쟁의 일부이자 일부의 역사라는 생각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저로서는 제 강의를 보호하는 일 자체가 가장 큰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 필리스 김 : 저의 도전과제를 말씀드리면, 사실 모든 활동이 도전입니다. 교육은 교실에서만 이뤄지지 않잖아요. 저희 단체 이름이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인데, 배상 파트가 있고 교육 파트가 있어요. 배상에는 금전적인 요구만이 아니라 영어로 '리드레스(redress)', 원래 상태로 복구시키는 모든 것을 아울러요.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들에게 정의를 가져다 드리는 모든 캠페인, 의료 지원 활동, 또 소녀상을 세우는 활동도 배상 활동입니다. 교육 활동은 배상을 위한 캠페인, 액티비즘하고 많이 겹쳐요. 예를 들면 저희가 많이 한 소녀상과 기림비 설치 운동은 인식을 높이는 과정에서 교육적인 효과도 있으니까 배상 활동인 동시에 교육 활동이에요. 소녀상 설치를 추진하는 분들과 협력해 캠페인을 하고, 컨퍼런스를 열고, 독일어 등 현지어로 교육 자료집을 만들어 나눠드리는 일이 다르지 않고요. 또 계속 새로운 일을 만듭니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마다 콘테스트를 열고 있어요. 첫 해는 그림, 이듬해는 동영상, 세 번째는 에세이 순으로 콘테스트를 했는데, 학생들이 점점 적극적으로 참여해 창의적이고 훌륭한 작품도 나와요. 한 고등학생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이용수 할머니와 연결시켜드렸더니 너무나 훌륭한 10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더라고요. 작년부터는 기부를 받아 미국 소재 6개 대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장학금을 받은 분들은 프로젝트를 해요. 그림이나 영화,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연구 과제도 가능해요. 저희는 다 모아서 발표회를 열고요. 올해도 진행 중인데, 오는 7월과 8월 중순에 각 2명씩, 그 장학금을 받는 학생 중 4명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에요. 연구소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교수님 중에도 관심을 나타내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미국 사회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은 씨앗을 심는 거죠. 또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 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1차 번역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UCLA 한국학연구소' 온라인 아카이브도 만들고 있어요. 아카이브에는 정리를 마친 1차 자료뿐 아니라 다큐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할머니들 증언이나 인터뷰도 올렸어요. 수업 지도안 같은 자료도 조만간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은 소녀상을 세운 다음 그곳을 중심으로 계속 활동이 있어야 돼요. 저희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마다 거기서 추모제를 지냈어요. 그때 항상 커뮤니티 동포들이 와주시고 중국계, 아르메니아 분들도 와서 같이 추모했어요. 계속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연례 행사도 하고요. 작년에 10주년 행사를 크게 했죠. 올해는 캘리포니아 LA시에서 운영하는 사회정의박물관에서 '위안부' 문제와 함께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알리고 학생들의 예술 작품을 포함한 전시회도 열고 있어요. 징 교수님도 도와주셨어요. 또 '위안부' 문제에 관심있는 교수님들이 저를 직접 부르는 경우가 있어요. 액티비스트 관점을 학생들한테 알려주고 싶은 거죠. 이 이슈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호응을 얻게 된 이유가 여러 캠페인을 하면서 싸움이 일어나고 논란이 증폭되면서 왜 그럴까 하는 관심으로 옮아가는 거잖아요. 학생들한테 사회 변혁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풀뿌리 운동이 중요하다는 걸 가르치는 거예요. 그런 분들은 너희가 해온 활동에 대해서도 알려달라는 요구를 하세요. 저희가 '위안부' 문제와 함께 미국에서 어떤 활동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주면 학생들이 굉장히 관심 있어 해요. 나중에 보면 중고등학교 때의 인연으로 대학에 가서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학생도 있는데, 그럴 때 엄청난 보람을 느낍니다.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방법 담은 첫 출판물 준비 중 Q. 말씀 중에 글렌데일 소녀상 이야기가 잠깐 나왔습니다. 소녀상과 관련해 민감한 이슈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라 글렌데일 소녀상의 근황을 여쭤봅니다. 🧶 필리스 김 : 상징성이 큰 글렌데일 시 평화의 소녀상은 시의회에서 정식으로 통과된 다음 시에서 제공한 부지에 세워졌어요. 부지에 약간의 변동 사항이 있긴 했지만 시 소유라 잘 보호되고 있습니다. 시를 상대로 한 일본의 철거 소송도 이겨냈거든요. 저희가 소녀상을 반드시 공공부지에 세워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그런 안전성, 안정성 때문이에요. 지금도 일본 총영사가 바뀔 때마다 대놓고 소녀상을 없애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는 얘기가 들리지만, 글렌데일 소녀상은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Q.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두 분은 협업하며 액티비스트 못지않게 많은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지금 책 발간 작업을 함께 하는 중인 걸 알았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진척됐고 각각 어떤 내용을 담을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 징 윌리엄스 : 작년에 필리스 김 대표님과 미국 유일의 사회학 교사 단체인 '전미사회학컨퍼런스(NCSS)'에 함께 참가했어요. '위안부' 관련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공신력 있고 잘 알려진 출판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출판물이 있으면 선생님들이 많은 걸 배울 수 있겠다 싶어서요. 같이 그런 출판사를 찾아 헤맸는데 잘 안됐어요. 그러다 NCSS에서 출판됐다고 하면 많은 선생님들이 공신력을 믿고 사용할 것 같아 저희가 제안을 했습니다. NCSS도 저희 제안에 관심이 많은데, 출판되면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방법을 담은 첫 번째 출간물이 될 겁니다. 다만 NCSS에서는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인권 문제, 성별 문제 등 연관될 수 있는 다른 주제도 함께 포함해 달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목차를 개략적으로 말씀드리면 첫 번째 챕터는 '위안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구조를 보면 각 챕터가 있고, 그 챕터 관련 내용과 함께 가르칠 수 있는 45분 정도 분량의 레슨 플랜, 수업 지도안으로 구성됩니다. 질문 중에는 '위안부'는 누구인가, 전 세계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 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수요시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미국은 '위안부' 문제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왜 이렇게 뜨거운 논쟁인가, 지금 생존하고 계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 등이 있습니다. 또 한국과 일본 간 2015년 협상은 어떤 내용이고, 무슨 문제가 있는가, '위안부'에게는 인권이 있는가, 그리고 가장 최근 '위안부'를 부정한 사건은 무엇인가, 이런 내용들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각 토픽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옆에는 레슨 플랜을 제시하고 있어 역사를 배우면서 가르치는 방법까지 깨닫게 되는 출판물입니다. 또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어 어린이책, 다큐멘터리 리스트 등과 함께 할머니들의 증언과 자료도 정리할 거예요. 미래 선생님들이 지도안을 만들 수 있도록 최대한 풍부하게 자료를 담을 예정입니다. 🧶 필리스 김 : 이 한 권을 보면 어느 정도 믿고 가르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미리 말씀 드리는 건 부담스러운데, 내년에 나올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Q. 출판이 돼 국내 교육에도 활용되길 기대하겠습니다. 책이 나오면 한국의 교사들도 영감을 받을 거 같은데, 미국과 한국의 역사 교사들이 협업해 볼 수 있는 기회나 방법도 좀 있을까요? 🧶 필리스 김 : 사실 한국, 중국, 일본 교사들 간 협업은 여러 차례 있었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에서도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제가 한국이라는 특성 때문에 어려운 지점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위안부' 문제를 너무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보는 거예요.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보편적인 여성 인권 문제로 보거든요. 이런 관점이 우리 한국 사회 내 인식에도 상당히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와 바람이 있습니다. 관련해 선생님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축이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선생님들께 응원을 전합니다. Credit 인터뷰어: 손정미, 소현숙 인터뷰이: 징 윌리엄스 사회교육학 부교수, 필리스 김 CARE 대표 글/정리: 손정미 사진 : 팝콘(popcon) 인터뷰 일시: 2024년 6월 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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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에세이 2024 기림의 날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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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기림의 날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합니다! 2024 기림의 날을 기념하여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에서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합니다. 이번 온라인 영화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국내외 영화를 '입을 떼다', '귀를 열다' 두 개의 주제로 묶어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영화나 거의 볼 기회가 없었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온라인 영화제 일정◀ #상영 플랫폼 | 퍼플레이 온라인 극장 #주최·주관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관람 방법 | 퍼플레이 회원가입을 통해 누구나 관람 가능(무료) #상영 기간 | 2024년 8월 14일(수)~27일(화) #문의 | nbf@skunkworks.co.kr 🧶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주제 1. '입을 떼다' 절박한 파란 도깨비불 기록하기 영상기록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존과 그들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에서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입을 떼다'에서는 생존자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들의 구술증언을 영상에 담는 데 집중했던 ‘위안부’ 관련 초기 영화들을 살펴봅니다. 여기에는 최초의 ‘위안부’ 피해자로 발견되었던 오키나와의 배봉기, 네덜란드 출신의 ‘위안부’ 피해자 얀 루프 오헤른의 이야기와 박수남 감독의 초기 작품이 포함됩니다. 상영 기간 : 8월 14일(수) ~ 8월 20일(화) 상영작 🎬 오키나와의 할머니 | 일본 | 야마타니 데쓰오 | 1979년 🎬 아리랑의 노래 - 오키나와의 증언 | 일본 | 박수남 | 1991년 🎬 50년의 침묵 | 호주 | 네드 랜더 | 1994년 🎬 일용할 양식 | 호주 | 루비 챌린저 | 2018년 🧶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입을 떼다' 상영작 소개글 보러 가기 주제 2. '귀를 열다' 더 잘 기억하기 위한 듣기의 모색 초기 작품들이 ‘위안부’로 동원된 피해자들의 피해사실을 그들의 증언을 통해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생존자들이 얼마 남지 않은 2000년대 이후 생산된 작품들은 포스트 피해자 시대를 예비하며 피해자들이 남긴 증언을 어떻게 후세대에 전달하고 기억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귀를 열다’에서는 2000년대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통해 피해자의 증언과 기억의 전승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을 살펴봅니다. 상영 기간 : 8월 21일(수) ~ 8월 27일(화) 상영작 🎬 가이산시와 그 자매들 | 중국 | 반중이 | 2007년 🎬 그리고 싶은 것 | 한국 | 권효 | 2012년 🎬 22 | 중국, 한국 | 궈커 | 2015년 🧶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귀를 열다' 상영작 소개글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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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에세이 입을 떼다, 절박한 파란 도깨비불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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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상영작 소개 1 입을 떼다, 절박한 파란 도깨비불 기록하기 상영 기간 : 8월 14일(수) ~ 8월 20일(화) 상영작 🎬 오키나와의 할머니 | 일본 | 야마타니 데쓰오 | 1979년 🎬 아리랑의 노래 - 오키나와의 증언 | 일본 | 박수남 | 1991년 🎬 50년의 침묵 | 호주 | 네드 랜더 | 1994년 🎬 일용할 양식 | 호주 | 루비 챌린저 | 2018년 🧶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은 '2024 기림의 날'을 기념하는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한다. 2024년 8월 14일부터 8월 27일까지 퍼플레이 온라인 극장에서 함께할 수 있는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는 '입을 떼다', '귀를 열다' 두 개의 주제로 나누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결을 포착해 담아낸 국내외 영화를 소개한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을 비롯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작품도 여럿 포함돼 있다. 웹진 <결>은 영화제 관련 소식과 함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컨텐츠를 4회에 걸쳐 게재한다. (1) 202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1)_ 입을 떼다, 절박한 파란 도깨비불 기록하기 (2) 202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2)_ 귀를 열다, 더 잘 기억하기 위한 듣기의 모색 (3) 202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3)_ 감독의 목소리로 만나는 <오키나와의 할머니> (4) 202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4)_ 박수남과 함께하는 여행 “그들의 눈 속에 타오르는 파란 도깨비불을 보았다!” 일본어로도 한국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참담함을 마주한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박수남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 이면은 절박하고 저릿한 사명이지 않았을까.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증언이 시작된 1990년대 이후, 박수남 감독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피해자들의 증언에 시선을 맞추며 기록화에 나섰다. 증언을 적절하게 구획하고 담아내기가 쉽지 않은 탓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에 다가갔지만 모두가 필사적으로 기록했다는 점만은 다르지 않았다. 1990년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그동안 숨겨져 있던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며,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길지 않은 일본군'위안부' 주제 영화의 역사 가운데 앞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화들은 각각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영화제의 첫 번째 섹션 '입을 떼다'에서는 이러한 초기작들을 모아 당시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었는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배봉기의 삶을 좇은 야마타니 데쓰오 감독의 <오키나와의 할머니>(1979, 86분), 오키나와에 끌려온 조선인들의 강제동원과 착취 그리고 천황제의 황민화 교육에 주목한 박수남 감독의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1991, 100분), 네덜란드 출신의 '위안부' 피해자 얀 루프 오헤른의 이야기를 담은 <50년의 침묵>(1994, 57분), <일용할 양식>(2018, 15분) 등 네 편이다. 이 영화들은 각기 다른 시각과 접근법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24 기림의 날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이 영화들을 통해 다시금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복잡성과 무게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 <오키나와의 할머니> (1979) 이중의 타자화, 제국 앞의 오키나와인과 조선인 야마타니 데쓰오 감독의 <오키나와의 할머니>는 1970년대 후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배봉기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야마타니 감독은 와세다대학 재학 중 독립영화 제작 단체를 설립해 오키나와에서의 집단자결, 강제이주 등 아픈 역사를 다룬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영화는 조선을 포함해 전쟁 중 성노예로 동원된 식민지의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어하는 감독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후 야마타니 감독은 일본군'위안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취재 여행을 하던 중, 오키나와에 남아 살던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배봉기를 알게 된다. 배봉기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계속 오키나와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1972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약 30년 동안 미군의 통치 아래 있던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다. 이때 배봉기는 오키나와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일본 국적의 신원 보증인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렇게 배봉기의 과거가 밝혀지며 '위안부' 생존자로서의 이력이 드러나게 된다. 오랜 취재 여행을 통해 드디어 마주한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배봉기 앞에서 야마타니 감독은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인터뷰를 전개할 지 쉽게 알 수 없다. 말보다 먼저 그가 겪어왔을 험한 시간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접근법 없음'의 곤궁함과 방법론적 부재가 이 영화의 특이성을 구축한다. 영화는 또 패전 앞에서 항복보다 집단자결을 강요당한 오키나와인, 전쟁 상황 속에서 조선인을 죽여야 했던 오키나와인 등 제국 일본에 대해 주변부적 위치에 존재해 온 오키나와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기록 없는 거주민으로 살아온 조선인 배봉기의 존재 앞에서 오키나와의 주변부화는 다시금 상대적인 것이 된다. 이 이중의 대상화, 타자화는 각자의 역사를 청취하는 일본인, 피해와 가해의 위치를 오가는 오키나와인과 카메라를 지닌 감독이라는 위치가 얽히면서 전후 냉전과 탈식민, 젠더의 문제들이 각각의 학문 분과에서 논할 사안이 아니라 한데 서로 연결된 결합물임을 보여준다.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2.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1991) 황민화라는 폭력 혹은 오키나와에서의 아리랑 박수남 감독의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은 일본에 잔류한 재일조선인들의 삶과 고통을 기록한 작품이다. 감독은 일본어와 한국어 어느 쪽의 언어로도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재일조선인들을 만나며, 글로는 이들의 표정과 감정을 담아낼 수 없음을 절감한다. 그래서 영상으로 이들의 한을 기록하기로 결심하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 앞서 만든 박수남의 데뷔작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는 히로시마의 조선인 원폭 피해자를 인터뷰해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담아냈다.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은 데뷔작에 이어 오키나와의 강제동원을 다룬 두 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모두 강제동원된 조선인이라는 결과에 수렴하나 오는 길은 저마다 달랐음을 보여준다. 누구는 징병으로, 누구는 노동력으로, 또 누구는 성노예의 형태로 끌려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소재는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어 기록하고, 그 피해를 식민지배국 일본과 일본인의 착취 구조가 가져온 결과임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다뤄져 왔다. 그랬을 때 가해국 일본과 피해국 조선 사이의 입장을 명확한 구분하면서 그 차이를 극대화해 드러내는 담론적 장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입장은 일본(인)의 가해 행위와 그 가해 행위를 불러온 구조가 낳은 결과의 총합이고, 이로 인해 조선(인)이라는 존재의 속성, 주체와 행위자로서의 조선인을 제대로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박수남 감독이 본 오키나와의 조선인에게 가해진 착취는 천황제 아래 모든 인간을 황민화하려는 동원 체제의 결과였다. 조선인에게 가해졌던 동원과 착취는 그보다 40년 앞서 일본에 병합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도 드리워져 있었다. 박 감독은 강도는 다를지라도 인격을 살해할 정도의 강력한 피해, 혹은 강력한 폭력을 통한 융합을 주장하는 사건의 진원지는 천황제의 황민화 교육임을 기어이 들춰낸다. 영화는 중반에 이르기까지 황민화 교육이 한국인의 정신에 새긴 성공적 결과들을 전시한다. 이후 황민화 교육의 동원과 착취의 가장 바깥에서 커다란 피해를 입은 일본군'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등장한다.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은 황민화에 기반한 동원이 일본인, 오키나와인, 조선인, 그리고 조선의 여성들 모두를 대상으로 삼아 서로를 타자화하도록 만들면서 확산되어갔음을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그 상호적 대상화와 타자화 과정마저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고발한다.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3. <50년의 침묵> (1994) 침묵 너머의 연대 얀 루프 오헤른의 삶과 용기를 담은 <50년의 침묵>은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네덜란드 여성 오헤른이 50년간의 침묵을 깨고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1923년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태어난 오헤른은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에게 1944년 강제 연행을 당한다. 오헤른은 당시 연행된 200~300명에 이르는 '위안소' 성노예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약 석 달 가량 붙잡혀 있었고, 약 50년간 그 누구도 오헤른의 피해를 입에 올리지 않았기에 이야기는 묻혀져 있었다. 그러다 1991년 김학순이 미디어 앞에서 최초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고 나섰다. 이 증언은 전 세계의 뉴스 채널에 보도되었고, 이를 보고 용기를 얻은 오헤른은 피해 증언에 참여하기로 한다. 1992년 12월, 남북한, 중국, 필리핀, 대만, 네덜란드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함께하는 역사적인 국제 공청회가 일본 도쿄에서 열리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헤른이 5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입을 떼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초반에는 오헤른이 대가족과 함께 보낸 행복한 어린 시절, 여름에 할아버지의 리조트에서 보낸 즐거운 기억 등이 홈무비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따뜻한 추억의 순간 뒤로 이어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증언은 관객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영화는 오헤른이라는 한 인물의 용기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증언에 용기를 얻은 다른 네덜란드 여성들이 피해 증언에 나서며 연대를 이루는 과정까지 담고 있다. 오헤른은 이후로도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전쟁 성폭력 반대 운동에 나서며 활발히 활동한다. 2007년에는 한국 영화 <아이캔 스피크>의 모티브가 된 미의회 하원의 청문회에 이용수와 함께 증언하기도 했다. <50년의 침묵>은 공개된 증언의 힘과 피해자 간의 연대, '위안부' 문제가 국가와 민족적 대립의 단위를 탈피해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1990년대에 제작된 이 영화들은 '위안부'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초기의 혼란과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각 영화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그들의 고통과 용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입을 떼다'라는 제목 아래 마련한 상영작들은 당시 영화들이 어떻게 '위안부' 문제를 조망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