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떼다, 절박한 파란 도깨비불 기록하기

황미요조

  • 게시일2024.07.26
  • 최종수정일2024.08.13

<202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상영작 소개 1
입을 떼다, 절박한 파란 도깨비불 기록하기

 

[사진 1] 202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포스터 ©이사각

 

상영 기간 : 8월 14일(수) ~ 8월 20일(화)
상영작
🎬 오키나와의 할머니 | 일본 | 야마타니 데쓰오 | 1979년
🎬 아리랑의 노래 - 오키나와의 증언 | 일본 | 박수남 | 1991년
🎬 50년의 침묵 | 호주 | 네드 랜더 | 1994년
🎬 일용할 양식 | 호주 | 루비 챌린저 | 2018년

🧶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은 '2024 기림의 날'을 기념하는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한다. 2024년 8월 14일부터 8월 27일까지 퍼플레이 온라인 극장에서 함께할 수 있는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는 '입을 떼다', '귀를 열다' 두 개의 주제로 나누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결을 포착해 담아낸 국내외 영화를 소개한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을 비롯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작품도 여럿 포함돼 있다.
웹진 <결>은 영화제 관련 소식과 함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컨텐츠를 4회에 걸쳐 게재한다.

 

“그들의 눈 속에 타오르는 파란 도깨비불을 보았다!”

일본어로도 한국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참담함을 마주한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박수남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 이면은 절박하고 저릿한 사명이지 않았을까.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증언이 시작된 1990년대 이후, 박수남 감독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피해자들의 증언에 시선을 맞추며 기록화에 나섰다. 증언을 적절하게 구획하고 담아내기가 쉽지 않은 탓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에 다가갔지만 모두가 필사적으로 기록했다는 점만은 다르지 않았다.  

1990년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그동안 숨겨져 있던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며,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길지 않은 일본군'위안부' 주제 영화의 역사 가운데 앞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화들은 각각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영화제의 첫 번째 섹션 '입을 떼다'에서는 이러한 초기작들을 모아 당시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었는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배봉기의 삶을 좇은 야마타니 데쓰오 감독의 <오키나와의 할머니>(1979, 86분), 오키나와에 끌려온 조선인들의 강제동원과 착취 그리고 천황제의 황민화 교육에 주목한 박수남 감독의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1991, 100분), 네덜란드 출신의 '위안부' 피해자 얀 루프 오헤른의 이야기를 담은 <50년의 침묵>(1994, 57분), <일용할 양식>(2018, 15분) 등 네 편이다.

이 영화들은 각기 다른 시각과 접근법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24 기림의 날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이 영화들을 통해 다시금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복잡성과 무게감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1. <오키나와의 할머니> (1979)
이중의 타자화, 제국 앞의 오키나와인과 조선인 

[사진 2]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 오키나와의 할머니 ⓒ이사각

 

야마타니 데쓰오 감독의 <오키나와의 할머니>는 1970년대 후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배봉기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야마타니 감독은 와세다대학 재학 중 독립영화 제작 단체를 설립해 오키나와에서의 집단자결, 강제이주 등 아픈 역사를 다룬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영화는 조선을 포함해 전쟁 중 성노예로 동원된 식민지의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어하는 감독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후 야마타니 감독은 일본군'위안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취재 여행을 하던 중, 오키나와에 남아 살던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배봉기를 알게 된다.
배봉기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계속 오키나와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1972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약 30년 동안 미군의 통치 아래 있던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다. 이때 배봉기는 오키나와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일본 국적의 신원 보증인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렇게 배봉기의 과거가 밝혀지며 '위안부' 생존자로서의 이력이 드러나게 된다. 

오랜 취재 여행을 통해 드디어 마주한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배봉기 앞에서 야마타니 감독은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인터뷰를 전개할 지 쉽게 알 수 없다. 말보다 먼저 그가 겪어왔을 험한 시간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접근법 없음'의 곤궁함과 방법론적 부재가 이 영화의 특이성을 구축한다. 
영화는 또 패전 앞에서 항복보다 집단자결을 강요당한 오키나와인, 전쟁 상황 속에서 조선인을 죽여야 했던 오키나와인 등 제국 일본에 대해 주변부적 위치에 존재해 온 오키나와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기록 없는 거주민으로 살아온 조선인 배봉기의 존재 앞에서 오키나와의 주변부화는 다시금 상대적인 것이 된다. 

이 이중의 대상화, 타자화는 각자의 역사를 청취하는 일본인, 피해와 가해의 위치를 오가는 오키나와인과 카메라를 지닌 감독이라는 위치가 얽히면서 전후 냉전과 탈식민, 젠더의 문제들이 각각의 학문 분과에서 논할 사안이 아니라 한데 서로 연결된 결합물임을 보여준다.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2.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1991)
황민화라는 폭력 혹은 오키나와에서의 아리랑 

[사진 3]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 아리랑의 노래 ⓒ이사각

 

박수남 감독의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은 일본에 잔류한 재일조선인들의 삶과 고통을 기록한 작품이다. 감독은 일본어와 한국어 어느 쪽의 언어로도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재일조선인들을 만나며, 글로는 이들의 표정과 감정을 담아낼 수 없음을 절감한다. 그래서 영상으로 이들의 한을 기록하기로 결심하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 앞서 만든 박수남의 데뷔작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는 히로시마의 조선인 원폭 피해자를 인터뷰해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담아냈다.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은 데뷔작에 이어 오키나와의 강제동원을 다룬 두 번째 작품이다. 영화는 모두 강제동원된 조선인이라는 결과에 수렴하나 오는 길은 저마다 달랐음을 보여준다. 누구는 징병으로, 누구는 노동력으로, 또 누구는 성노예의 형태로 끌려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소재는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어 기록하고, 그 피해를 식민지배국 일본과 일본인의 착취 구조가 가져온 결과임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다뤄져 왔다. 그랬을 때 가해국 일본과 피해국 조선 사이의 입장을 명확한 구분하면서 그 차이를 극대화해 드러내는 담론적 장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입장은 일본(인)의 가해 행위와 그 가해 행위를 불러온 구조가 낳은 결과의 총합이고, 이로 인해 조선(인)이라는 존재의 속성, 주체와 행위자로서의 조선인을 제대로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박수남 감독이 본 오키나와의 조선인에게 가해진 착취는 천황제 아래 모든 인간을 황민화하려는 동원 체제의 결과였다. 조선인에게 가해졌던 동원과 착취는 그보다 40년 앞서 일본에 병합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도 드리워져 있었다. 박 감독은 강도는 다를지라도 인격을 살해할 정도의 강력한 피해, 혹은 강력한 폭력을 통한 융합을 주장하는 사건의 진원지는 천황제의 황민화 교육임을 기어이 들춰낸다. 

영화는 중반에 이르기까지 황민화 교육이 한국인의 정신에 새긴 성공적 결과들을 전시한다. 이후 황민화 교육의 동원과 착취의 가장 바깥에서 커다란 피해를 입은 일본군'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등장한다.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은 황민화에 기반한 동원이 일본인, 오키나와인, 조선인, 그리고 조선의 여성들 모두를 대상으로 삼아 서로를 타자화하도록 만들면서 확산되어갔음을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그 상호적 대상화와 타자화 과정마저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고발한다.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3. <50년의 침묵> (1994)
침묵 너머의 연대

[사진 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 50년의 침묵 ⓒ이사각

 

얀 루프 오헤른의 삶과 용기를 담은 <50년의 침묵>은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네덜란드 여성 오헤른이 50년간의 침묵을 깨고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1923년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태어난 오헤른은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에게 1944년 강제 연행을 당한다. 오헤른은 당시 연행된 200~300명에 이르는 '위안소' 성노예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약 석 달 가량 붙잡혀 있었고, 약 50년간 그 누구도 오헤른의 피해를 입에 올리지 않았기에 이야기는 묻혀져 있었다.

그러다 1991년 김학순이 미디어 앞에서 최초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고 나섰다. 이 증언은 전 세계의 뉴스 채널에 보도되었고, 이를 보고 용기를 얻은 오헤른은 피해 증언에 참여하기로 한다. 1992년 12월, 남북한, 중국, 필리핀, 대만, 네덜란드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함께하는 역사적인 국제 공청회가 일본 도쿄에서 열리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오헤른이 5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입을 떼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초반에는 오헤른이 대가족과 함께 보낸 행복한 어린 시절, 여름에 할아버지의 리조트에서 보낸 즐거운 기억 등이 홈무비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따뜻한 추억의 순간 뒤로 이어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증언은 관객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영화는 오헤른이라는 한 인물의 용기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증언에 용기를 얻은 다른 네덜란드 여성들이 피해 증언에 나서며 연대를 이루는 과정까지 담고 있다. 

오헤른은 이후로도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전쟁 성폭력 반대 운동에 나서며 활발히 활동한다. 2007년에는 한국 영화 <아이캔 스피크>의 모티브가 된 미의회 하원의 청문회에 이용수와 함께 증언하기도 했다. <50년의 침묵>은 공개된 증언의 힘과 피해자 간의 연대, '위안부' 문제가 국가와 민족적 대립의 단위를 탈피해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1990년대에 제작된 이 영화들은 '위안부'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초기의 혼란과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각 영화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그들의 고통과 용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입을 떼다'라는 제목 아래 마련한 상영작들은 당시 영화들이 어떻게 '위안부' 문제를 조망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글쓴이 황미요조

영화 연구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강사, 서울동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의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