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붙여진 고유 이름으로, 아르메니아어로 ‘용기’를 뜻한다. 평화의 소녀상이 해외에 처음 설치된 곳이 미국 글렌데일인데, 주민의 40%가 아르메니아계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큰 아르메니아 이주민 공동체가 있는 도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튀르키예에 의한 집단 학살의 기억을 공유한 아르메니아인들의 연대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결정적 동력이었다. ‘아리’ 이전 베를린 코리아협의회가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모형 소녀상 이름이 '용이'였는데, 용기의 '용'자를 썼다.
1904년 당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오늘날의 나마비아)에서 독일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헤레로인과 나마인들이 독일 제국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독일 제국은 헤레로인과 나마인을 사막으로 내몰았고 독일군의 봉쇄로 사막에서 탈출할 수 없었던 헤레로인과 나마인 수만 명이 탈수와 기아로 사망했다. 1985년 UN이 발표한 휘태거 보고서는 이 사건을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 사례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16년에 이 일을 인종학살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나미비아에 대한 메르켈 수상의 공식 사과는 독일 사회 각계의 요구에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전범 자필진술서는 전쟁 범죄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 사죄의 의미나 용서 등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면에서 여러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전쟁 후 네덜란드는 전범재판을 위한 바타비아 임시군사재판(Temporaire Krijgsraad in Batavia)을 실시하였는데, 이 재판은 전쟁 중 행해진 성폭력과 일본군‘위안부’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과거사 청산과 화해에서 독일은 일본의 대립 모델로 여겨진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글은 나치 정부로부터 피해입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미국보고서 자료해제 3부. 미 전시정보국(OWI) 49번 보고서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미국보고서 자료해제 4부. 동남아시아 번역통역부(SEATIC) 심문회보 제2호
이미지 작가의 ‘위안부’ 탐구 3부작 프로젝트 ‘입’과 《망시토리》전시 이야기
이미지 작가가 직접 전하는 ‘위안부’ 역사 리서치 트립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 및 징용 노무자 동원 및 연행, 수송 과정 전반에 개입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다
당대의 맥락주의와 인권의 현재주의 사이의 지적 긴장 위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인식하고 조망하기
역사교사에게 듣는 초·중·고 생애주기별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학교 교육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