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작 프로젝트 입’은 여성, 신체, 이주, 노동이라는 핵심어를 따라 공동체의 기억 속 묵인된 자리에 남은 빈자리를 질문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사회적 낙인과 배제, 그 주변에 형성된 침묵,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여성의 삶의 의지를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던 나는 군 ‘위안부’ 역사 속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반복되는 삶의 현실에 주목하며, 남겨진 것에서 여성의 일상 순간들을 발견하고자 했다.
3부작 중 1부 ‘입’(2023~2024)은 오키나와에 있던 일본군‘위안부’ 중 전후 귀환하지 못한 한 여성의 삶을 담아낸 증언 기록에 대한 연구가 바탕을 이루었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2부 ‘그리고 그 후에 남은 것’(2025–2026)에서는 전후 문학, 영화 등 대중매체 속에 재현된 미군 ‘위안부’ 역사를 살펴보고, 한국과 독일에 있는 미군 기지 인근 캠프타운을 답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 ‘빈자리에서 떠오르는 입’(가제. 2027~2028)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내 미군 기지 주변 기지촌 경제에서 노동의 주체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부터 조사할 예정이다.
프로젝트는 탐구 과정에서 한번도 뵌 적 없는 배봉기님에 대한 감정(Rapport)이 일방적으로 비대해져가던 즈음인 2023년, 독일의 한 큐레이터에게 개인전을 제안받으면서 한층 가시화됐다. 이미 완결된 다른 작업을 주목했던 큐레이터와 달리 진행 중인 작업을 공유하고 싶었던 나는 배봉기님의 삶과 기억, 기록을 탐구한 1부를 가지고 개인전 《입》(Münder)[1]을 준비했다.
‘위안부’라는 주제어를 통해 그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배봉기라는 사람’ 그 자체였다. 배봉기로 태어나, 아키코가 되었다가, 노부로 살고, 다시 배봉기가 된 여자. 최봉기로 소개되기도 하고, 결국 ‘배봉기 할머니’로 기억되는 이름들[2] 속에서, 특히 그녀가 스스로 선택했던 이름 ‘노부’와 또 다른 결정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 ‘빈자리’를 알고 싶어 떠난 오키나와로의 리서치 트립은 모호함으로 가득했다. 그녀가 살았다고 언급된 지역들을 따라 이동하며 그녀가 했을 노동을 상상하며 무작정 걸었다. 일방적임을 알면서도 생각은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배 선생님의 일상과 종결되지 않은 이 세계의 불평등 등으로 옮겨갔다. 이 불평등에 대한 감각은 다시 내게 삶의 조건을 질문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내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는 사실이 만드는 일상 속 불균형.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이런 조건으로 삶의 선택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그 일로 차별을 당할 수 있는 부당한 현실이 내 안에 응어리진 감정, ‘침그루사’를 깨웠다. 일본어로 번역 불가능한 오키나와 고유의 표현인 침그루사는 마음이 아프다, ‘나도’ 마음이 쓰리다, ‘나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가슴 어딘가 응어리처럼 남아있는 깊은 슬픔에 대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한’과 비슷하다.
공동체의 망각을 바라보다 잊힌 현실의 세계를 열고 말았다. 일본군‘위안부’라는 주제어를 통해 배봉기님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미군 ‘위안부’에 대한 앎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다시 기지촌 경제, 오늘날의 초국가적 성 노동자의 삶의 현실 문제로 확장하는 중이다. 만약 배봉기님의 삶이 ‘순결한 소녀’, ‘끌려간 딸’이라는 기준에 맞춰 부분적으로 전해진다면, 남북 분단 상황에서 외면당한 풍경 중의 한 사람으로 호명한다면 우리는 배울 수 있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그녀가 남긴 말을 그대로 들을 수 있다면, 그 말들은 다른 잊힌 여성들을 기억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12월 프로젝트 1부와 2부를 소개하기 위해 서울에서 가진 개인전 《망시토리》는 나의 문제의식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전시명 《망시토리(Mangshitori)[3]》의 어원은 영어 ‘Monster’로,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한 후 미국으로 이주한 여성이 사용한 고유명사이다. 한국계 작가인 그레이스 M. 조의 저서 『전쟁 같은 맛』에서 인용한 단어인 ‘망시토리’는 당시 사회 규범과 질서 안에 속하기 어려웠던 군 ‘위안부’를 은유하는 표현인 동시에 여성에 대한 타자화를 전복하고자 하는 프로젝트 입의 기획 의도를 내포한다.
망시토리로 불리며 가족과 고향,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주의 삶을 선택해야 했던 여자들을 기억하며, 오늘의 내가 지녀야 할 환대의 태도를 고민했다. 여성 개인을 조명하는 동시에 그가 놓인 사회 구조와 지위를 관객이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유사하게 반복되어 온 여성들의 삶에서 느낀 침그루사는《망시토리》에서 다섯 여성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하기로 한 직접적인 배경이었다.
2부 ‘그리고 그 후에 남은 것’ 역시 처음에는 한국을 떠난 한 미군 기지촌 출신 여성의 삶과 그 딸에 대한 지극한 끌림에 집중했다. 그러다 작업 중에 프로젝트의 각 단계–일본군‘위안부’, 미군 ‘위안부’라는 시간적 구분–가 한 사람의 삶으로 대표되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 한 인물로 압축된 대표성이 오히려 ‘위안부’ 역사를 단순화하는 것은 아닐지 혼란스러웠다.
전시《망시토리》에 소개된 다섯 여성, 그러니까 『빨간 기와집』의 배봉기와 토미요,『전쟁같은 맛』 속 군자, 『뺏벌』의 승자와 미옥 가운데 넷은 생의 초년기에 빈곤과 위기, 그리고 군 ‘위안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삶은 개별적이다. 다섯 여성에 대한 자료의 양과 성격, 그 자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모두 달랐고, 그로 인해 다섯 여성의 사회적 위상에 대한 고민도,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의 크기도 동일하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를 전시 안에서 어떻게 위치시킬 수 있을까.
전시에서는 서로 다른 고유한 성격과, 시공간에서 살아간 다섯 여성을 통해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에서 쉽게 지워질 수 있는 개개인을 개별적 존재로 바라보려 했다. 어쩌면 ‘(여성)피해자다움’이라는 기준으로 인해 여성이 살아낸 삶의 에너지나 방식의 다양성이 역설적으로 누락되고 망각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그녀들의 자리를 만들었다. 돌파구로 선택한 방식이 여성들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지점을 가시화하는 것이었다. 어떤 조건에서 삶을 시작했고, 어떤 노동을 수행했으며, ‘여자’라는 성별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여성이 어떤 선택으로 인해 미끄러지는 순간이 아니라 선택하는 순간의 마음과 그를 둘러싼 조건에 의미를 두었다. 이 시선은 전시 《망시토리》의 기획과 구성 전반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미지 작업은 그때그때 가장 맞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시도해 보겠다는 의도였다. 리서치를 하며 대면한 질문을 어떻게 감각화하고 시각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에는 목적지가 없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답인지 알 수 없기에 결국 가능한 것들을 모두 시도했기에 전시 《망시토리》에는 사진과 사운드, 글, 자료, 출판, 3D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가 포함되었다.
사진은 크게 나누면 필드 트립에서 촬영한 것, 스튜디오에서 찍은 정물, 인물, 기록 자료를 활용한 것들이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하고 선택하는 과정에서, 본능적으로 하기 싫은 것에 대한 감각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 같다. 그 결과로 불편한 감정이 드는 이미지들을 제외하고, 여자의 삶을 상상하는 보조 역할로서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미지가 스펙타클하다고 느껴지면 선택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예를 들어 배봉기님의 눈물–삶의 고통–이 강조되는 기사 사진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사운드는 맨 처음 대사가 있는 작업 <Mal Mal 말>(2024)에서 시작해 이후 대사가 없는 <헤아릴 수 없는 간극을 상상하며 따라 걷기>(2024), <Home>(2025), <무고의 집>(2025) 으로 이어졌다. 이 작업들은 사운드 디자이너로 협업한 느윗(NWIT)과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며 나눈 긴 대화를 통해 나온 결과였다.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Wenn ich mich an all das erinnern würde,
아마 살지 못했을거에요
hätte ich wohl nicht überlebt.[4]
(...)
따박따박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
Als ich nach Okinawa kam
따박따박 들어오는 음식
habe ich überhaupt kein Japanisch gesprochen.
따박따박
Nein
따박따박
denn ich kannte damals noch keine Wörter.
따박따박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
Es war ein großes Schiff mit all den Soldaten darauf
따박따박
also war es ein großes Schiff.
따박따박
Ich konnte nicht sprechen.
Ich kam aus Korea nach Japan. Ich weiß es nicht, weil ich überhaupt nicht sprechen konnte.
따박따박
따박따박 감은눈사이로만[5]
<Mal Mal 말> 대사에서는 배봉기님의 증언에서 마음에 남았던 말들을 직접 인용하거나 픽션 에세이를 쓰고 음률을 살려 편집하였다. 관람자가 헤드셋을 쓰고 사운드작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대사는 각 언어에 모국어 사용자가 아닌 여성들이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독일어로 낭독하도록 했다. 이후 분해된 영화라는 작업 방법을 시도하며 사운드에서 대사를 제외했다. <무고의 집>은 전시장을 집으로 상정하고, 집에 돌아온 여자가 듣는다는 상상을 하며 느윗(NWIT)와 안전한 장소에 대한 생각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만들었다.
<Mal Mal 말>(2024) 듣기
<헤아릴 수 없는 간극을 상상하며 따라 걷기>(2024) 듣기
<Home>(2025) 듣기
<무고의 집>(2025) 듣기
프로젝트 안에서 글은 생각을 기록한 소묘가 되기도, 시대상을 비추는 풍경이기도 하다. 문학, 구술사, 기사, 아카이브 자료, 위키피디아, 블로그 등 다양한 출처의 인용 글은 픽션에세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작성한 글, 작업 노트, 사람을 소개한 글과 함께 나란히 전시했다. 《망시토리》전시장에서는 초입에 시아노 프린트로 감광한 자료 사진과 함께 <8장의 사진과 38개의 텍스트>라는 제목으로 배치하였다. 관람자가 전시장에 놓인 이미지를 보며 초반부 텍스트를 다시 떠올리고, 저마다의 상상하기를 바랐다.
전시에서 3D 애니메이션 <두 암컷>은 가장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작업이었다. 프로젝트 1부의 중심 인물인 배봉기님의 이주민으로서의 삶, 그 속에 존재했던 오키나와 지역민들과 연대를 시각화하고 싶었다. 버려진 딸 ‘바리데기’ 이야기를 생각하며 물 위에 뜬 배에 집을 지었다. 집의 형태는 오키나와 전통가옥의 기와, 미국 목조 주택의 틀, 유리방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집 위에 수호신인 두 암컷 시이샤[6]가 깨무는 행위로 서로 액운을 떼어주고, 악운으로부터 소중한 시이샤 입 안의 구슬을 지킨다는 설정이다. 집인 전시장에서 열린 ‘입(생의 이야기)’들을 지키고자 한 제의적 작업이었다. 또 한정된 전시 공간이라 생략할 수밖에 없는 지난한 과정을 내밀하게 소개하기 위해 출판물도 배치했다.
전시 《망시토리》는 ‘분해된 영화’라는 방법론을 통해 열린 환대의 자리를 만들고자 했던 시도였다. 사진 시리즈 <입의 윤곽>, <Texas Everywhere>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아닌 반복되는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각화해 여성들의 일상을 상상하는 매개체로 배치하였다. 사운드 <무고의 집>은 ‘위안’이라는 단어를 사유한 시도였다. 자료 <8장의 사진과 38개의 텍스트>는 다방향적 기억을 제안하는 장치로, 3D 애니메이션 <두 암컷>은 전시장의 수호신이자 여성의 연대, 가부장제 뛰어넘기로까지 의미망을 넓힌 작품이었다. 시간 기반의 영화가 가진 요소들을 전시 공간 안에서 해체함으로써, 관람객 개개인이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된 백 개의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길 희망했다.
다만 작업과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재현의 (불)가능성을 짚어보며 하나의 명쾌한 재현만큼은 피하려 했다. 프로젝트 입도 수많은 기억 행위의 하나로, 완벽한 재현이 아닌 지금 당도한 하나의 질문으로 남기를 바랐다.
여전히 진행 중인 프로젝트 2부의 전반부에서는 문학을 중심으로 미군 ‘위안부’ 역사를 조사한 결과였다. 전시 《망시토리》를 마치고는 광주에서 지내며 한국 내 미군기지 인근 과거의 캠프타운들을 방문했다. 기지촌을 방문하며 점차 미군 기지촌 가까이에 있는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망각을 인식할 수 있었다. 베를린으로 돌아온 요즘은 독일 주둔 미군이 독일 여성들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조사 중이다. 이번 여름은 서독의 ‘독일-미국 친선 축제(Deutsche Amerikanisches Volksfest)[7]’에 참여해 기지 인근의 마을들을 답사할 예정이다. 군사주의와 가부장제라는 거미줄 위에서 군 ‘위안부’의 긴 역사와 팔려간 딸에 대한 초국가적인 침묵을 바라보며, 이 기억들이 연결되어 말하고 있는 것을 따라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