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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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과 젠더 폭력은 TRC의 미완수 과업: 젠더 정의를 향해 계속되는 남아공의 여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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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과제는 정의와 인권, 특히 젠더 정의와 젠더 인권 보호를 위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투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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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일본의 성 착취와 여성혐오에 맞선 콜라보(Colabo)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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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여성들과 콜라보 자매들이 보여준 용기는 소녀들이 덫에서 벗어나 학대와 성 착취라는 더 넓은 역사적 시각으로 자신의 경험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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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수정주의에 저항하는 BTS 팬덤의 기억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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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기억을 증언하고 백서를 발간하는 활동은 적극적인 역사 인식을 위한 실천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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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러설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 이금주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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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주는 소송을 처음 제기하면서 동지들에게 외쳤던 “계속 투쟁하자”는 그 말 한마디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았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운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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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닿지 못한, 그러나 확보해야 할 전쟁 경험의 말‘들’: 베트남민간인학살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 이후 ‘민(民)’의 확장을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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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말을 한국 사회에 전달하고 들리게 하는 활동은 ‘어떻게’라는 방법론에 대한 더 첨예한 논쟁이 필요하고, 이것이 당사자성에 ‘갇히지 않는’ 혹은 당사자성을 ‘확장해 가는’ 운동이 되기 위한 고민 또한 더 깊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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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 시민운동과 미국에서 일본군‘위안부’ 역사교육이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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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가적 여성인권 운동으로 자리매김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인권운동은 큰 힘이자 계승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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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피해자법에 대한 역사적 검토: 보호·지원을 넘어 인권의 문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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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제정된 위안부피해자법은 한국 사회의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그 피해자들을 보는 시각의 변화를 반영하며 바뀌었고, 또 그것을 바꿔온 기제이기도 했다. 위안부피해자법 제정 30주년을 맞이하여 제정 경위와 내용의 변화, 그 의미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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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문제와 일본 국회 입법운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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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성 중심 사회야말로 ‘위안부’ 문제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다. 결국 이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일본 국회가 자력으로 입법 해결을 하지 못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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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문제와 일본 국회 입법운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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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은 국가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운동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입법 해결을 목표로 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1996년 12월에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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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잘 해냈단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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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필리핀 의회와 마르코스 주니어 행정부가 유엔 권고 사항을 이행하기를 고대하며, 지금까지도 필자와 제자들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글로벌 정의 실현 운동과 관련한 필리핀 관료들의 지식, 태도 및 실천적 행동을 주제로 인터뷰를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