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 위안부피해자법에 대한 역사적 검토: 보호·지원을 넘어 인권의 문제로
    위안부피해자법에 대한 역사적 검토: 보호·지원을 넘어 인권의 문제로

    1993년 제정된 위안부피해자법은 한국 사회의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그 피해자들을 보는 시각의 변화를 반영하며 바뀌었고, 또 그것을 바꿔온 기제이기도 했다. 위안부피해자법 제정 30주년을 맞이하여 제정 경위와 내용의 변화, 그 의미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재임

  • ‘위안부’ 문제와 일본 국회 입법운동 (2)
    ‘위안부’ 문제와 일본 국회 입법운동 (2)

    일본의 남성 중심 사회야말로 ‘위안부’ 문제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다. 결국 이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일본 국회가 자력으로 입법 해결을 하지 못했다고 확신한다.

    도츠카 에츠로(戶塚悅朗)

  • ‘위안부’ 문제와 일본 국회 입법운동 (1)
    ‘위안부’ 문제와 일본 국회 입법운동 (1)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은 국가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운동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입법 해결을 목표로 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1996년 12월에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도츠카 에츠로(戶塚悅朗)

  • 당신은 잘 해냈단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요?
    당신은 잘 해냈단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요?

    19대 필리핀 의회와 마르코스 주니어 행정부가 유엔 권고 사항을 이행하기를 고대하며, 지금까지도 필자와 제자들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글로벌 정의 실현 운동과 관련한 필리핀 관료들의 지식, 태도 및 실천적 행동을 주제로 인터뷰를 지속하고 있다.

    버나드 카르가닐라(BERNARD KARGANILLA)

  • 일본군의 중국 여성에 대한 잔혹행위 기록하기
    일본군의 중국 여성에 대한 잔혹행위 기록하기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이 끊이지 않고, 여성 강간이 여전히 무력 분쟁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오늘날 세계에서 ‘위안부’의 이야기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되살리는 일은 중요하다.

    페이페이 치우(Peipei Qiu)

  • 기억의 바다를 넘어서 - 관부재판이 1990년대 일본 사회에 물었던 것
    기억의 바다를 넘어서 - 관부재판이 1990년대 일본 사회에 물었던 것

    서로 다른 역사성 사이에서 공감의 길을 찾던 과정, 관부재판의 법정은 바로 그 현장이었다. 

    마치다 타카시

  • 냉전 시기 대만의 슬픈 낙원, 軍中樂園
    냉전 시기 대만의 슬픈 낙원, 軍中樂園

    대만의 군중낙원이, 종적으로는 식민제국주의 전쟁 시대의 일본군위안소가 어떻게 전후 탈식민 분단체제로 얽혀 들어가는지, 횡적으로는 동아시아 냉전과 군사문화의 연동 속에서 어떻게 위안소 및 ‘위안부’ 문제가 전유되고 담론화되며 새로운 파동들을 낳는지를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고리라는 점이다.

    임우경

  • 일본군‘위안부’와 여성인권에 접근하는 네덜란드의 양면성
    일본군‘위안부’와 여성인권에 접근하는 네덜란드의 양면성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전쟁 중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는 전쟁의 부산물로 간주되곤 했으며, 식민체제 하의 여성인권은 ‘피식민’과 ‘여성’이라는 이중적 ‘타자’의 위치에서 무시되고 침묵되었다.

    문지희

  •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일본군‘위안부’와 바타비아 임시군사재판의 의의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일본군‘위안부’와 바타비아 임시군사재판의 의의

    전쟁 후 네덜란드는 전범재판을 위한 바타비아 임시군사재판(Temporaire Krijgsraad in Batavia)을 실시하였는데, 이 재판은 전쟁 중 행해진 성폭력과 일본군‘위안부’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문지희

  • 도미야마 다에코의 예술-운동: 비/인간 존재의 ‘포스트 메모리’를 기다리며 (2)
    도미야마 다에코의 예술-운동: 비/인간 존재의 ‘포스트 메모리’를 기다리며 (2)

    도미야마의 예술-운동은, 시공간적 거리와 인/종적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폭력과 차별에 노출된 채 삶을 버텨온 존재들을 알리고 연결시키려는 끊임없는 시도였다.

    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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