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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군‘위안부’ 투쟁 영역의 확장 〈3부〉 - 다르게 선택하기
    2022년 좌담 일본군‘위안부’ 투쟁 영역의 확장 〈3부〉 - 다르게 선택하기

    일본군‘위안부’운동은 제국과 식민지, 남성과 여성, 국가와 인민 사이의 차별적 권력 구조에 맞서 소수자와 인간, 여성의 몫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와 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청년좌담에서는 젊은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이은진, 이재임, 최성용과 만나 이들의 삶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어떤 의미와 동인이 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동세대인 신진 연구자들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원들과의 문답을 통해, 기지촌 여성들의 생애 구술 채록, ‘피해’와 ‘피해자’를 둘러싼 법적 담론 분석, 한국 사회의 일본군‘위안부’운동과 담론에 대한 탈식민적 비판 작업 등을 만나 보시죠. -좌담 일시: 2022년 9월 6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 이헌미, 황진경, 장소정, 이안 -대담: 이은진(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이재임(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최성용(성공회대학교 국제문화연구학과) -정리: 퍼플레이컴퍼니   Q. 평택 기지촌 여성 구술집 『영미 지니 윤선: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기지촌 여성 구술집에 대한 감상으로 ‘재밌다’는 표현을 쓰기 어려울 텐데요, 그만큼 구술자와 채록자 여섯 분이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이야기’를 나누셨던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독자들에게 그 재미를 알려드리고 싶은데요, 작업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은진 저희가 구술집 작업을 하면서 일방적인 인터뷰보다는 대화 형식을 취했어요. 라포가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구술자분들도 저희에게 궁금한 게 많으셨죠. 저희가 가면 이모들이 질문을 던졌고, 주 관심사 중 하나가 연애사였어요. 그래서 제 연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책 중반부 <데뷔>라는 영상 작업에도 “꿀이 뚝뚝 떨어진다”고 자랑하는 것이 나오는데, 작업을 마치고 출판하는 사이에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게 됐지 뭐예요. 책에 들어간 저의 이야기를 정말 편집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출판물에 실리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지난 연애의 흑역사 정도가 아니잖아요. 본인의 근간을 흔들었던 문제에 대한 증언이고, 기록의 형태로 오랫동안 남게 되고, 그것이 보여질 사람들의 범위를 조정할 수도 없죠. 그런 것들을 어렴풋이나마 체감하게 됐던 것 같아요.    Q. 『낙태죄의 의미 구성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고찰 - 포스트식민 한국 사회의 법제, 정책, 담론 검토』 논문 말미에 “그 시기를 지나온 여성들의 체험이 어떠했는지 이야기되지 않아 왔다”고 쓰셨는데, 이것은 앞서 언급한 ‘평택 기지촌 여성 구술집’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말하기와 그것을 듣고 기록하는 것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이러한 작업을 할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은진 그동안 말해지지 못했던 목소리를 발굴해서 알린다는 자의식을 경계하는 편이에요. 아카데미나 사회운동의 담론 지형에서의 뒤틀림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데 기여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렇게 하면 목소리를 내고 싶은 분들은 스스로 말하게 되지 않을까요? 목소리들이 더 들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해나가긴 할 테지만 그 형태를 구술작업에 국한할 생각은 없어요. 연구가 될 수도 있고, 법률 작업이 될 수도 있고, 예술과의 협업이 될 수도 있겠죠.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Q. 『‘정의연 사태’의 중층적 성격과 운동의 질문들』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탈역사적·탈정치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가진 한계를 짚어주셨습니다. 이것을 상징폭력과 지적 식민성으로 명명하면서 아시아 지평과 탈식민 사회 역사에 대한 인식 두께를 확보하자고 제안 주셨는데요. 특히나 신진 연구자일수록 말씀하신 지평과 인식을 확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현실적 한계들을 건너왔던(건너는 중인) 경험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최성용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의 흑인운동은 자신들이 경험한 억압과 차별, 혐오를 얘기하면서 인종주의 역사를 말해요. ‘위안부’ 문제도 당사자분들이 겪었던 것을 설명하기 위해, 또 우리가 대항하고 바꿔야 하는 게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얘기해야 하죠. 그 역사는 가부장제, 식민주의, 계급 등 여러 가지가 착종되어 있는데, 민족주의적으로만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면 젠더를 지우게 되는 것처럼, 오늘날 역사 부정은 식민주의 역사를 지운다고 생각해요. 식민주의 청산론이 식민 경험 없는 민족의 근대화라는 본질주의적인 환상을 노정한다면, 그 반대편에 역사 정의에 대한 요구를 민족주의로 환원해 그것만 도려내면 평화로워진다는 또 다른 본질주의가 있는 것 같아요. 식민주의는 단순하게 청산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지반이자 지층이죠. 그렇다면 그 역사를 딛고서 무엇을 할 것인가, 식민주의 역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질문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사죄와 법적 보상, 천황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식민주의와 냉전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가 어떻게 은폐되고 굴절되어 왔는가에 대한 두터운 맥락을 인지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것’ 혹은 ‘진영 논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만 규정해버리면 ‘위안부’ 문제는 탈역사화되고 탈정치화된다고 생각해요. 탈역사화하려는 시도는 너무 쉽게 이 문제를 이른바 화해론으로만 덮어버리려는 것 같아요. 계속 시끄럽게 굴지 말고, 한일 관계도 어느 정도 타협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를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정의로운 것인가 질문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위안부’ 운동이 가진 고유한 급진적 정치성을 표백시켜 ‘위험하지 않은 무언가’로 순치시키려는 것 아닌가, 그것이 역사 부정이 의도하는 바 아닌가 생각합니다.    Q. 『‘20대 남성’ 담론을 질문한다』와 『청년이 말하는 청년세대론, 이번엔 다를까?』 등 청년에 대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계십니다. 단일하고 매끄럽게 범주화함으로써 작동하는 오류들에 대해 다각도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계신데,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호명 방식, 운동의 몰역사적 이해를 문제 삼으신 점이 연결될 듯합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연구 분야에서도 청년이 종종 호명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납작한 호명을 탈피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최성용 일종의 진보적인 청년 학생에 대한 상, 이미지, 재현 등이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4‧19혁명을 시작으로 90년대 중반까지 진보적인 학생운동이 전체 사회운동을 주도해왔다는 서사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운동에서도 진보적인 청년, 학생을 호명하며 그 이미지를 활용, 소비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페미니즘의 위대한 역설』을 쓴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조앤 월라치 스콧이 여성 범주를 다룬 방식이 청년 범주에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청년은 스스로가 아닌 외부에서 호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기도 긍정하기도 하면서 그 범주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평화나비 내에서 그런 분들을 많이 봤어요. 처음에는 청년 학생 이미지에 갇혀 있었지만 ‘위안부’ 문제를 접하고 페미니즘 리부트를 거치면서 자기 고민을 해나가고 서사를 변주시키며 고정된 상으로부터 멀리 나아갔죠. 청년에 대한 호명 방식과 담론을 깨뜨리기 위해선 개인의 다양한 서사가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해요. 동시에 그 개인들도 청년 범주를 대할 때 나에게 도움이 될 땐 취하기도 하고 혹은 부정하기도 하는 부단한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Q. 석사논문 『일본군‘위안부’피해와 피해자의 의미: 한일청구권협정 부작위 위헌소송을 중심으로』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문제화하는 방식을 다시 물으면서 이것을 페미니스트 이행기 정의 관점에서 풀어내셨습니다. 기존의 문제의식에서 미끄러지고 누락된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특히 위헌소송을 살펴보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재임  ‘위안부’ 문제를 두고 굉장히 많은 싸움이 일어나잖아요. 그것은 일본 정부를 향하기도 하고, 한국 정부를 향하기도 하죠. 램지어처럼 학술적 연구라는 외피를 쓰고 운동을 공격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고요. 그런데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기보다는 분석적인 거리를 두고 각각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담론들의 모순이나 긴장을 발견하는 것이 논문의 취지였어요. 위헌소송에서 생산된 문서들을 봤던 이유는, 피청구인인 외교부 측과 청구인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일본군‘위안부’ 운동 측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국익, 정치적 해결, 동북아 안보 등을 두고 싸우는 장이 되었기 때문이었어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이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 회복이 아니라 인도주의적인 조치로 빠지게 되는 것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 운동이 가진 여러 측면 중 충분한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건 그것이 여성평화운동으로서 한일 외교관계를 적극적 평화와 여성 인권을 중심으로 재구축해가려고 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운동의 피해자 정치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운동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피해자로 만듦으로써 그들의 행위성을 빼앗고 수동적인 위치에 놓이게 해 피해 발화를 반복하게 만들었다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것에 동의할 수 없어요. 여느 페미니즘 운동이 그러했듯 남성중심적인 법체계와 섹슈얼리티 규범하에서 무엇이 피해(자)인지 정의하는 과정도 굉장히 지난한 투쟁이었단 말이죠. 운동이, 그리고 함께해 온 우리가 피해자들의 고통과 원한, 슬픔을 말하면서 의도했던 것은 이들을 피해자로 고착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변혁해나가기 위한 것이었는데 왜 자꾸 그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위안부’ 운동을 페미니스트 이행기 정의라는 관점에서 다시 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미 선행 연구에서 많이 이야기된 지점이기도 하지만, 이 시점에서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 생활지원법안부터 헌법재판소 조서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법 문서를 상세하게 분석하셨습니다. 이 자료들 사이에서 ‘피해’와 ‘피해자’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어떤 고민들이 있었을까요?  이재임 물론 법정에서의 싸움에는 그것이 갖는 한계가 있어요. 청구인은 개인이고 위헌소송은 피해자 개인의 권리 회복을 위해 제기됐던 것이니 개인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는 쉬운 비판을 할 수도 있는데, 어찌 됐든 법정의 언어들을 보며 읽으려고 했던 것은 두터운 맥락이에요. 전시 성노예제 담론, 국제 인권법 담론을 통해 피해자들이 구제와 배상의 주체인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라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부작위를 묻는 위헌소송이 열리게 되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지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요구에 따라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 정부가 과거사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때 했던,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위헌소송이 제기되었고요. 그래서 그런 언어와 두터운 맥락들을 읽어내고 싶었어요. 그것이 작업의 최우선이었습니다. 논문에서 몇 가지 말씀드리면, 먼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냈던 청원서를 보면 스스로를 ‘우리’라는 표현으로 지칭하고 계세요. 김학순 님을 이어 나온 ‘우리’가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증언의 집합성, 연속성을 읽었어요. 그리고 논문에 일본군‘위안부’지원법의 변화를 정리하며 표를 만든 게 있는데요, 초반에는 법 목적을 인도주의적인 보호, 지원 조치로 명시했던 것을 2000년대 이후에는 ‘피해자’의 명예 회복, 진상규명, 인권회복으로 명시했어요. 이처럼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읽어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 피해자의 고통과 부정의를 이야기하고 사회 공동체를 재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되묻고 싶습니다.   ‧이은진 발언 참고 https://www.ildaro.com/8525 https://view.pong.pub/28   

    웹진 <결> 편집팀

  • 한반도 평화와 여성
    2022년 논평 한반도 평화와 여성

      한반도 맥락에서 평화를 ‘여성’이라는 열쇠 말로 읽어낼 때 크게 두 관점이 교차된다. 하나는 평화 구축 과정에서의 여성 참여를 강조하는 현실적 입장과 다른 하나는 젠더를 고려하지 않은 평화적 상태는 가능하지 않음을 주장하며 여성주의적 평화 담론에 천착하려는 시각이다. 예컨대 한반도 평화와 여성의 ‘역할’을 질문할 경우에는 안보 의제나 평화 구축 과정이 남성 행위자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여성 참여를 관철시키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도출하고자 한다. 반면에 여성주의적 평화를 강조할 경우에는 한반도의 반평화 구조가 내포하고 있는 가부장성과 위계 서열 등을 문제시하면서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평화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밝혀내는 것에 논의의 무게 중심이 있다.   이 짧은 글에서 두 관점을 굳이 구분하여 소개하는 이유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여성의 참여와 여성주의적 평화 구성이라는 두 축이 단계적이 아닌 동시적으로 상호 연관성의 맥락에서 실천되어야 함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녹록하지 않은 한반도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평화 구축 과정에서의 여성 참여 증진을 강조해 온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과연 여성주의적 평화를 탐색하는 데도 비등하게 역량을 모아 왔는지 성찰적으로 반성해보자는 것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여성주의적 평화에 대한 두터운 담론과 토론이 부재한 까닭에 여성 참여를 넘어서는 여성 평화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보자는 뜻이다.      먼저 두 입장의 차이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선 여성 참여를 강조하는 입장은 반평화 상태에서 가장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는 여성이 평화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식민과 전쟁, 거기에 이어진 분단체제까지 ‘전쟁과 같은 상황’에 놓인 한반도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을 역사화하고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와 구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지하듯 2000년에 발표된 유엔 안보리의 ‘여성, 평화와 안보를 위한 결의안 1325호’가 이러한 시각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유엔 1325호 결의안은 예방, 보호, 참여, 구호와 재건 등 네 가지 핵심 영역 아래 전쟁이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여성 인권 침해는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평화 구축 및 재건의 모든 과정에서 성인지 주류화를 강조한다. 또한 평화와 안보 의제에서 여성의 참여를 강조하고,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향상할 것을 권고한다. 특히 최근 결의안에서는 ‘전쟁’을 군사적 분쟁으로만 협소하게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나 가뭄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 극단주의와 테러리즘과 같은 ‘전쟁과 같은’ 상황으로 확장한다. 안보 문제는 이제는 국가 수준에서 발생하는 국가 간의 전쟁에서 지구적 수준의 위기와 일상의 폭력 등과 결합하여 더욱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으며, 이에 평화도 국가 중심의 전통 안보 영역 밖에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문제에 적극 조응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유엔 1325호 결의안과 이후 후속 결의안은 안보 문제의 영역이 복잡해지고 있음을 문제시하면서 여성이 마주하고 있는 다층적 현실을 성주류화를 통해 타개하여 평화에 접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국제적 조류에 따라 한국 여성계는 한반도 안보와 평화 의제에서 지속적으로 여성의 참여를 요구해왔다. 남북 대화가 본격화되었던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남북 여성 사이의 대화가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정전체제 내에서 남북 여성이 경험하는 불평등이나 가부장성을 문제시하고자 했다. 특히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서 다른 아시아 피해여성과 함께 북한 여성과의 대화와 연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남북 대화에서 여성의 참여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으며 전통 안보 혹은 경제교류협력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여성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다뤄져왔다.  이것의 이면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남한 당국자와 시민사회에서 여성 어젠다에 대한 시급성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화나 통일의 문제를 국가 수준이나 민족 문제로 접근하는 상황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에 대한 논의가 끼어들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대화와 교류 상대인 북한 여성들의 경험과 위치가 남한 여성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 여성들이 젠더적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평화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을 때 북한 여성들은 체제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서 이를 공감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북한 여성의 위치가 국가와 가정의 책임이라는 이중의 부담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상대적 자율성도 존재했던 까닭이다. 더 큰 문제는 북한 정권의 규율체계나 정치적 레토릭으로부터 독립적인 북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안타깝게도 여성 참여에 기반을 둔 한반도 평화 구축은 남북 모두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이후 남북 사이의 대화와 교류가 멈추게 되자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 여성의 역할을 찾기란 더욱 힘들어지게 된다. 일본군 성노예, 한국군 ‘위안부’, 그리고 미국군 ‘위안부’와 같은 전쟁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연대는 지속되었지만 한반도 정전체제 극복과 평화 안착을 위한 남북 여성 사이의 활발한 토론이나 실천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어젠다가 평화 담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여성 참여라는 목표는 평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통일이나 평화 담론 지형에 여성주의적 접근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못했다. 국가 수준에서 논의되는 통일, 평화 담론에서 젠더 폭력이나 불평등의 문제가 제한적으로 다뤄져온 까닭에 여성의 위치에서 경험되는 평화의 다층성에 대한 논의도 진전되지 못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정전체제와 군사적 긴장이 지루하게 지속되면서 남한 여성들에게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가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되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남한 여성들은 가상 세계를 포함한 일상에서의 성폭력과 위협, 직장이나 학업에서의 성차별이나 문화적으로 존재하는 성규범 등에 대해서는 반평화적인 문제로 감각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한반도가 여전히 ‘전쟁’ 중이며 이로 인해 여성들의 위치가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는 충분히 감각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는 군사 중심의 ‘안보’ 문제이며, 이에 여성주의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패배의식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한반도의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과 위협의 대부분은 정전체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남성 중심적 문화와 권력은 정전체제라는 ‘불완전한 국가’를 빌미로 유지되고 있으며, 군대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 권력도 국가 안보라는 틀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다. 다시 말해 분단 문제 극복이 여성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평화에 근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라는 뜻이다.  한반도의 맥락에서 여성주의적 평화에 대한 담론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상과 문화의 폭력과 정전체제라는 구조가 결합되어 있는 한반도적 비평화 매커니즘을 밝혀냄으로써 평화의 상을 다층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사실상 ‘전쟁이 지속되어 온’ 한반도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은 때로는 직접적인 성폭력과 성착취로 가시화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의 비가시적인 문화와 관습의 모습으로 여성들의 삶과 의식을 옥죄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단순히 두 국가 사이의 관계 개선 혹은 통일을 의미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구축된 사회 전반의 폭력과 위계 구조를 문제시하는 것이 평화 만들기의 과정이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축이 바로 젠더인 것이다. 그만큼 여성주의적 평화란 분단과 일상이 결합되어 작동하는 젠더 위계를 무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미시적 문제로 분단 구조를 문제시하는 것이며, 동시에 분단이라는 국가 수준의 폭력을 일상과 연관 시켜 사고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남북한 여성들 사이의 유다른 경험을 아우르는 여성주의적 평화 담론도 필요하다. 지난 교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남북 여성들이 현재 위치한 세계는 상당히 다르지만 이들이 여성주의적 평화라는 더 큰 미래를 공유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만들어내는 진전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일 수 있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진전될 수 있는 상태를 한반도 평화의 일부로 포함시키기 위해 더욱 다양한 상상력들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핵과 미사일 같은 안보 영역에서의 평화도 어려운데 여성주의적 평화를 주장하는 것이 다소 이상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단계적으로 평화에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조언도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주의적 평화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비전이 부재한 상황에서 현실적 수준에서의 평화 실천이나 평화 운동은 방향을 잃고 표류해왔던 것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요즘, 모두들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한반도 평화 구축의 근본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현실적 참여와 운동에 분주해 잠시 뒤편으로 미뤄두었던 여성주의적 평화에 대한 토론을 이제라도 시작했으면 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근본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말을 되새겨보도록 하자. 가장 멀어 보여 주저했던 방법이 목표로 다가가기 위한 유일한 길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김성경

  • 나는 반성한다 - 피해자 되기, 피해자 되기를 벗어나기
    2022년 논평 나는 반성한다 - 피해자 되기, 피해자 되기를 벗어나기

    나는 좋은 청자였던 적이 없다. 미디어에 쏟아져 나오는 피해자의 말을 읽을 때 자주 화가 났다. 누구나 쉽게 미디어에 가해자를 고발하고 피해를 밝힐 수 있는 시대라지만, 피해자가 말을 할 수 있으려면 피해자의 말을 들어주는 청자, 응답하는 청자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글이나 피해자의 글에 달린 공감과 응원, 가해자를 향해 분노와 처벌을 요구하는 댓글을 읽을 때면 혼란스럽고 제어할 수 없는 감정에 빠지곤 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2차 가해자, 가해자의 논리를 내면화한 명예 남성이라는 비난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정말 가해자의 처지에서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일까? 정작 나는 피해자의 서사를 읽으면서 매번 내가 겪은 폭력의 경험을 고스란히 떠올리는데?  매일 되새기지 않는, 조금은 잊힌, 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의 기억을 복기하게 한다고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한 가족, 상사, 동료를 고발하는 이들에게 화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피해자의 용기를 주저 없이 지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은 감정과 억울한 심정이 얽혀 더 큰 혼란을 만들어냈다.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비판적 지성을 가장했다. 온라인 해시 태그 성폭력 고발과 미투가 이어지는 동안, 새롭게 등장하는 피해자의 글,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비난의 반응을 읽으면서 나는 전복적인 시대에 생겨날 수 있는 윤리적 누수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공동체에서 가해자를 골라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가 직면한 윤리적 질문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것이라고. 그럴듯하고 중요하지만 시시한 소리를 적지 않게 늘어놓았다. 고발당한 사람이 창작자일 때는 나의 전공과 지식을 동원해서 작품은 작가에게 속한 것이 아니므로 작가를 처벌하더라도 작품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내가 했던 말에는 담론적 근거가 있다. 내가 한 말은 파렴치하지 않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강박적으로 말했다. 미투의 열기 속에서 피해자를 위해 연대하기보다, 미투의 열기에 녹아내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나는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나의 분노와 고통, 회피, 변명, 정당화의 패턴을 관찰하는 일에 매달렸다. 골몰하는 시간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피해자로서 피해자에게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이미 홀로 직면했던 피해를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발견하는 일은 무엇 때문에 나를 화나게 했을까? 피해자성에 대한 격렬한 부인이라는 말로 이 모든 혼란을 설명할 수 있을까? 여하튼 나는 내가 피해의 경험을 부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용기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불안했기 때문에, 부인에 대해서도, 비겁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변명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열심히 ‘격동의 역사에 휩쓸리고 마는, 예기치 않게 생겨나는 또 다른 피해자’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피해자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피해자성, 소수자성, 타자성을 지닌 사람들이 맺을 수 있는 연대를 곧바로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적어도 SNS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발, 고백, 호소가 쏟아져 나오던 첫 번째 시기에 나는 그러지 못했다. 강박적 자기변명에 매달리며 피해자에게 제대로 연대하지 못했던 일은 경솔하고 무책임한 일이었지만 그에 대한 자책을 드러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혼란이 묻어있는, ‘아직’ 피해를 스피크 아웃하지 않았거나, ‘영원히’ 말하기를 거부하거나, 이미 ‘내면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피해자로서 ‘밖으로’ 말하기를 거부하는 피해자(가 아닌 자)의 목소리에 관하여 쓰고 싶었다. 피해를 스피크 아웃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피해자의 까다로운 변증법을 경험하는 일이라는 것, 피해자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처럼 듣는다는 것은, 나를 대리하여 발화하는 피해자를 경험하는 일이라는 것에 관해 쓰고 싶었다. 이 역시 피해자로서 말하기의 고유한 모순과 고통이기 때문이다.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제이 로치, 2020)은 폭스 뉴스 회장을 성폭력 혐의로 고소한 폭스 뉴스 여성 아나운서의 2018년 스피크 아웃을 다룬 영화다. 그의 고소는 간판 아나운서를 포함, 피해를 겪은 동료들의 추가 고소를 끌어냈다. 간판 아나운서(그레천 칼슨)의 첫 번째 고소가 진행되는 사이, 과거 같은 상사의 성폭력을 경험한 또 다른 간판 아나운서(매긴 켈리)는 갈등한다. 매긴 켈리는 단지 피해를 부정하고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모는 타인의 수군거림과 괴롭힘에 대한 염려로 갈등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 아나운서인 그는 고발에 동참하게 될 때 피해자-약자라는 낙인을 얻게 될 것 역시 두려워한다. 다시 말하자면 피해자가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기 위해 다투고 극복해야 하는 것은 타인의 공격, 괴롭힘, 비방만이 아니다. 성폭력은 인격을 훼손하는 폭력이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일, 성폭력 피해자, 나아가 희생자임을 밝히는 일은 존엄의 훼손을 경험했다는 자기 인식, 약자의 위치에 처해있다는 자기 인식을 가질 때 가능하다. 역설적이게도 피해자는 존엄한 존재임을 입증하기 위해 존엄의 훼손, 가해자, 상황, 사건, 폭력을 증언해야 한다. 훼손의 입증을 통해 훼손되지 않은 존엄성을 지닌 인간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피해자를 ‘짓밟힌 가녀린 꽃’이라 칭하는 동정의 여론은 피해자를 영원한 약자의 위치에 고정한다. 피해를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상처’로 표현하는 일은 피해자의 존엄을 상처 난 것으로 명명한다. 법의 법정과 공감의 법정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매일의 악몽’과 같은 표현을 통해 피해의 심각성과 영구성을 입증하고 강조하는 피해자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는 법정과 사회야말로 인간의 얼굴을 가진 법정과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바람직하고 타당한 주장이다. 그래서 피해의 과거, 현재, 미래, 영향과 극복을 재현하고 표현하는 일의 곤란함이 더욱 커진다.     나치 장교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은 나치의 악마성에 대한 증거와 생존자의 증언이 쏟아졌던 재판이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번역, 한길사, 2006)에서 폭로된 나치의 악행을 비판하고, 증언대에 선 증인의 용기를 치하하는 데 인색했다. 대신 아이히만을 납치해서 재판한 예루살렘 법정의 정당성, 나치 치하 유대인의 순응을 문제 삼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특히 아이히만의 행적을 재검토하며 “악의 상투성”과 “무사유” 등의 표현으로 ‘최종 해결’ 실행자 중 한 사람인 아이히만의 책임을 상대화했던 한나 아렌트의 주장은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그런데 유대인 사회가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격렬하게 비난했던 것은 책에 몇 번 등장하지 않는 “악의 상투성”이라는 문구 때문만은 아니다. 아렌트는 한편으로 아이히만 재판이 “피고에 대해 요구된 형량을 가늠하고 판결을 내리고 적절한 처벌을 내리는” 법의 주된 업무를 위해서가 아니라 “희생자의 복수의 권리에 대한 요구 만족”을 위해 열렸다고 비판한다. 이때 아렌트는 법의 이름으로 동족 피해자의 고통을 고려하는 일, 공감하는 일을 거부하거나 적어도 멀리한다.  다른 한편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이 공동체의 가치와 ‘정의’를 위한 재판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피해자의 고통을 다루는 재판으로 축소되면서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유례없는 나치 범죄의 성격을 제대로 다루는 것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은 일반적인 범죄를 다루는 재판과 같은 차원의 재판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돌아보는 일을 정의의 숙제로 삼지 않는다. 유대 사상가 숄렘은 아렌트가 “사려 깊은 방식으로” “유대인의 딸”로서 말하지 않았다고 적은 서한을 보낸다. 아렌트는 책을 펴낸 후 민족을 배반한 유대인, 독일인화된 유대인, 냉혹한 지식인, 감정적으로 가해자를 두둔한 여성으로 비난받았다. 독일인 사상가, 수용소를 경험한 유대인, 미국인 필자 한나 아렌트, 동족의 1/3이 몰살당한 역사적 재난의 가해자와 고통을 호소하는 법정 안팎의 동족 피해자 사이의 아렌트, 개인적이지 않은 것(impersonal)을 주제로 가장 친애하는 여성에 대한 책(<Rahel Varnhagen: The Life of a Jewess>)을 펴낸 아렌트, 연민(pity)과 연대를 구분하려고 애쓰던 아렌트, 아이히만의 법정 방청석에서 재판을 중계하는 텔레비전 카메라를 바라보던 아렌트, 피해를 소비하는 이스라엘의 국가주의와 미디어의 선정성을 목격하고 있는 정치철학자 아렌트가 느꼈을 곤란, 피해자와 거리를 두려고 애쓰는 아렌트를 상상해본다. 아렌트는 독일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고통과 훼손의 이미지 속에 유대인을 가두기를 거부하지 않았을까? 아렌트가 질문하지 않고 질문했던 바는 피해의 존엄성이 아니었을까? 고통의 겪음(피동)과 고통의 주장(능동), 훼손과 회복의 변증법을 생각하지 않고서 피해자가 된 피해자의 존엄성을 생각할 수 있을까? 한꺼번에 약자, 훼손당한 자, 분노의 한가운데 있는 자,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을 거부하는 자, 용기 있는 자, 싸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피해자가 겪는 특별한 고난이다. 역설적으로 피해자는 한꺼번에 이 모든 존재일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 속에서 특별한 존엄을 갖는다.  유년기 친족 성폭행의 경험을 담은 소설 『근친상간』(L'Inceste, 1999)으로 명성을 얻은 크리스틴 앙고(Christine Angot)는 텔레비전 토크쇼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논쟁적인 프랑스 중견작가다. 2017년 그는 한 심야 토크쇼에서 환경 정당 내 성폭력을 고발한 후 펴낸 에세이 『말하기 Parler』를 소개하러 나온 여성 정치인(산드린 루소, Sandrine Rousseau)에게 책의 서사와 주장이 빈곤하다고 지적하고, “여성을 희생자의 지위에 가두려 한다”는 독설을 퍼부어 대중의 격렬한 질타를 받았다. 정치인은 피해자의 스피크 아웃의 치유적 의미를 강조하는 분위기에서 내놓을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펼쳤을 뿐이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프랑스에 성폭력 경험에 대한 말하기가 전무한 것에 대한 충격” 속에서 책을 썼다고 밝히며, 여성 일반이 (자기 경험을) 말할 수 있는 문화를 위한 교육과 응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가는 자신이 겪은 강간을 말할 수 있는 이는 각 개인 자신뿐이라며, 여성 일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정치인을 힐난했다. 정치인은 “나는 내가 겪은 것을 썼다, 이것은 틀림없는 내 이야기다”라며 눈물을 터트리고, 방청객은 “나의 강간”을 내뱉으며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하는 작가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이후 점잖은 매체에는 두 명의 여성, 두 사람의 피해자, 두 가지의 고통, 두 가지 방식의 말하기를 언급하는 글이 실렸지만, 대중의 반응은 텔레비전 토크쇼 현장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해자의 말이 공적 공간에 비로소 쏟아져 나오는 미투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대중에게 작가는 피해자를 다시 공격하는 가해자와 다름없었다. 논쟁적 작가의 또 하나의 미디어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될지 모를 이 장면은 내게 깊은 충격을 안겨줬다. 해소될 수 없는 심리적 난폭함이 두 가지의 피해 경험과 자기 자신의 고통을 목격한 두 사람의 증인, 무대 위와 무대 뒤-작가는 야유가 쏟아지자 녹화 현장을 박차고 일어나 대기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의 두 울음, 그리고 피해자의 말을 듣는 청자, 연민하고, 분노하고, 비난하며 연대하는 청자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제3세계 여성의 진실을 대리 표상하려는 서구 페미니즘의 제국주의적 욕망을 비판하고, 글을 쓴다는 행위와 타자 표상의 밀접한 얽힘에 주목했던 오카 마리라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자기가 겪은 폭력의 경험을 표상할 수 있는 글쓰기의 특권을 가진 작가(크리스틴 앙고)가 자기의 고통을 스스로 발화한 피해자에게 표상의 이름으로-앙고는 피해 경험을 다소 상투적인 묘사와 연상 작업을 빌려 기록하는 루소의 글을 인용하며 “당신의 책에는 이야기가 있을 뿐 아무런 담론이 없습니다!”라고 외쳤다- 폭력을 휘두른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서구 세계의 두 피해자의 관계를, 말을 빼앗긴 제3세계의 타자와 발화 권력을 지니고 있는 서구인의 관계에 비교할 수 있을까? 연민과 연대를 구분했던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경청했던 오카 마리, 타자의 증언을 듣는 일, 타자의 고통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는 일은 타자가 겪은 사건의 ‘정보’를 전달받는 일이 아니며, 타자의 사건에 대해 철저히 무력한 존재로서 사건을 나눠 갖는 일이라고 썼던 오카 마리, 공감의 말을 찾는 조건은 고통을 겪고 있는 타자와의 동일화가 아니라 고통에 대한 공감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오카 마리라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새롭게 불어오는 시대의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만이 연대와 연민은 구별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는 모두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인 것은 아닐까?  이 글에서 나는 피해자 되기에서 겪었던 복잡성과 혼란의 경험을 불러냈다. 의문문이 가득한 글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나의 피해 경험 역시 모든 사람의 피해 경험과 ‘다르지 않게’, 나에게 ‘고유하다’. 우리는 선의와 악의를 가지고 타자의 경험을 해석한다. 제도의 언어를 동원하고 ‘모두’의 경험으로 상상하게 한다. 정말 다행스럽고 안타깝게도. 나는 아마도 근대적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표상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개인, 자신의 주장을 밝힐 지식과 언어를 배운 사람, 입은 피해를 다시 읽는 사람, 쓰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아마도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인식한다고 가정된 근대적 주체의 분열을 두려워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란스러웠고 질문을 멈추지 못했던 것인지, 그런데도 답을 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던 것인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함에 관하여 쓰는 것도 스피크 아웃의 역할일 테니까, 피해자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것일 테니까 나는 써보기로 했다. 

    이나라

  • 포스트메모리 시대 역사학자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황병주 편사연구관 인터뷰
    2022년 인터뷰 포스트메모리 시대 역사학자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황병주 편사연구관 인터뷰

    영화 〈코코순이〉(이석재, 2022)는 이제까지 나온 일본군‘위안부’ 다큐멘터리와는 상당히 다른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말 연합군 포로심문보고서 49호에 ‘KOKO SUNYI’로 기록된 한국인 ‘위안부’ 여성의 삶을 추적하면서, 영화는 무엇보다 매우 트랜스내셔널한 시야를 보여준다.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로드무비이자 탐정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코코순이〉의 ‘주연배우’이다. 그는 미얀마 미치나 지역 포로심문보고서에 등장한 20인의 조선인 ‘위안부’ 명단, 그 가운데 ‘코코순이’라는 이름의 ‘코코’가 한국 성씨 ‘박(朴)’의 일본식 발음인 ‘보쿠’일 수 있다는 중요한 직관을 제공하고, 경남 함양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호적등본을 뒤지고,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을 심문한 일본계 미군 생존자를 만나려고 미국까지 감독과 동행한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전문가적 자문과 해석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포스트메모리 시대에, 역사학자로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고민하며 분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서,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이헌미 학술기획팀장이 황병주 편사연구관을 만나 보았다.      이헌미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황병주 당시 일본군‘위안부’ 및 전쟁범죄 자료 수집 사업의 일원이었습니다. 김득중 선생의 아이디어로 2017년에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그분이 관심을 두었던 것이 버마(미얀마)에서 포로로 잡힌, 코코순이가 포함된 20명의 조선인 ‘위안부’였어요. 사안이 워낙 독특해서 이를 주제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KBS PD와 접촉했습니다. 그 결과 〈시사기획 창〉에서 8.15 특집으로 2부작이 제작되었죠. 1부를 이석재 기자가, 2부를 류호성 기자가 맡았어요. 이석재 기자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영화로까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펀딩을 받게 되면서 제작 여건이 마련되어 영화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헌미 국사편찬위원회의 ‘위안부-전쟁범죄 조사팀’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지금은 종결된 사업인가요?      황병주 종결된 것은 아닙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시대 불문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되는 문제죠. 사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기초 토대를 튼튼히 하고 확대하는 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대 일본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군사력이고, 일본 내외부적으로 군사주의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일본 군부의 행위 중 가장 문제가 되는 전쟁범죄까지 포함해 자료를 축적하게 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새로 재편되지 않았습니까.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하며 보편주의를 지향하고 그 실물적 틀거리로 UN을 만들었죠. UN의 이념적 근거로서 보편적 휴머니즘, 자유주의, 민주주의, 인권 등의 체제를 만들어냈고 그 체제하에서 한국이라는 근대 국민국가가 세워졌어요. 그러면서 미국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서 2차 세계대전의 전범재판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재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어요. 전후 세계 질서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식민지로 전쟁에 동원되면서 가해와 피해가 뒤얽힌 경험을 하게 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했고 또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자료를 축적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범재판을 우리의 시각으로 어떻게 해석, 설명,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역사학적 판단 또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국내 최고의 자료집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헌미 한국에서 ‘위안부’ 다큐멘터리나 극영화가 일종의 장르화가 되면서 민족적 피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되어 온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갖는 차별성이 눈에 띄었어요. 기존의 다른 일본군‘위안부’ 다큐멘터리는 국내 피해생존자의 삶이나 일본, 미국에서의 활동가와 피해자 간의 관계를 조명한 것이 많은데, 〈코코순이〉는 경남 함양, 제주, 미국, 호주 브리즈번, 파키스탄, 몽골 등 전혀 다른 시야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코코순이’라는 이름에서 ‘박순이’를 추정해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트랜스내셔널했고요. 영화에 참여하면서 이 부분을 의식하셨는지요? 황병주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전쟁을 통해 사건들이 어떻게 뒤섞이게 되는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코코순이는 미얀마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고 미군 포로가 되었다는 것까지 대략의 행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후 귀국까지의 과정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이 인도의 포로수용소였죠. 저희가 취재 막판에 함양에 가서 주민등록번호를 하나 확인했는데, KBS 방송 당시에는 시간이 없어 추적 조사를 못했어요. 이석재 기자가 영화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 부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제적부상에는 박순이 씨가 10대 후반에 중국을 갔다가 2004년도에 귀국한 것으로 기록돼있어요. 고향은 전라도 남원이고, 함양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다 여차저차해서 ‘위안부’로 가게 된 것이라고 추정돼요. 박순이 씨 조카분들을 통해 박순이 씨가 중국 내몽고 지역의 고려촌이라는 마을에서 살았다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얀마,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갔던 거예요. ‘위안부’ 20명 중 상당수가 집단 이주를 한 것 같은데, 아마 몇 분이 중국 경험이 있거나 했겠죠. 박순이 씨의 그러한 삶을 통해 트랜스내셔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헌미 〈코코순이〉의 시놉시스와 홍보물을 처음 보았을 때, 다소 선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모티브인 버마 미치나 지역에서 생포된 조선인 ‘위안부’ 20명이 모두 나온 포로 사진이 굉장히 주목성이 강하고 흥미를 돋우는 동시에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선생님은 이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황병주 충격적이었죠. ‘위안부’가 집단으로 찍힌 사진이 거의 없어요. 제가 본 것 중에는 영국에서 찍은 것이 하나 있네요. 지역은 태국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의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었어요. 여성 대여섯 명에 남성 2~30명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죠. 여성들은 옷을 양식으로 잘 차려입었고, 남성들은 체육대회였는지 스포티한 옷을 입고 있었어요. 여자들은 ‘위안부’였고 남자들은 B·C급 전범이라고 불리는 조선인 포로 감시원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제외하고는 단체 사진이 정말 드물어요.  제가 처음 본 ‘위안부’ 사진은 증언집에 실려있던 것이었는데, 현재의 모습이 찍힌 것만 있었기에 과거 모습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머릿속에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갖고 있다가 직접 마주하니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미군 통역병이었던 니세이(Nisei. 일본계 미국 이민자 2세)들의 표정이랄까, 심지어 웃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찍혔고 무엇을 이야기해주는 것인지 호기심을 갖게 됐죠.   이헌미 선생님께서는 이 영화에서 다채로운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는 다큐멘터리 속 역사학자의 관습적 이미지(양복을 입고 연구실이나 서재를 배경으로 한 자문)로 출연하신 분량도 있고, 함양에서 버마 미치나, 미국까지 동행하면서 위안소의 위치를 비정하거나, 가장 위험하고 험한 최전선에 조선인 ‘위안부’를 배치했다고 해석하는 등 현장에서 전문가로서의 시각 또한 보여주고 계신데요.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다큐 제작에 관여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황병주 저희는 사료를 통해 이야기해야 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간혹 무미건조하게 진행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특히 김득중 선생이 원 로이 챈이라는 중국인 장교에 많은 관심을 두었는데요. 그는 관리자급인 엘리트 장교였고, 1차 심문관이었던 니세이들과는 차이를 보였어요. 니세이는 ‘위안부’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좋아야 객관적이고 드라이하게 사실을 기술하는 정도고, 나쁜 경우 알렉스 요리치처럼 윤색과 주관적 판단이 가미된 보고서를 작성했어요. 반면에 원 로이 챈은 ‘위안부’에 상당히 동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를 추적해보면 미얀마의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다른 무언가를, 예컨대 공식 기록이나 사진이 아닌 개인의 일기 등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추가 조사를 해보고 싶었어요. 사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거나,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늘 느꼈고 욕망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득중 선생이 방송까지 제안했던 것이죠.    이헌미 많은 이들이 이미지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흡수하는 시대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나 태평양 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가 소멸해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전쟁이란 무엇인지를 재현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죠. 그런 때인 만큼 역사가가 이런 종류의 다큐 영화에서 가지는 역할이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역사 연구자는 자료에 대한 전문가적 해석 등 제한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이 영화는 심문보고서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역사학자가 지배적인 서사를 더 줄 수도 있고 관여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병주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는 이석재 감독의 것입니다. 저는 인터뷰를 해주고 참고 자료를 제공하며 보조적인 역할을 한 것이고요. 다만, 각자의 전문분야가 다른 만큼 공동작업을 통해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사례가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개인에게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보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헌미 요즘의 역사부정론자들은 사료나 이미지를 생산, 유통시키는 권력이나 맥락에 대한 비판 없이 한 부분만을 절취하여 실증인 것처럼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위안부’의 사진을 앞에 내세우지만 프레임 밖의 이야기들에 접근해요. 그런 접근이 역사부정론자가 역사를 사용하는 방식과 대적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병주 사료가 중립적·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문서도 어찌 됐든 사람이 쓴 것이에요. 포로심문보고서만 놓고 보더라도 국가의 제도와 이데올로기 등이 큰 틀에서 작동하죠. 군대는 명령 차원뿐만 아니라 주체 스스로가 구조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압력을 내재하고 있어요. 특히 니세이는 가족들이 대부분 수용소에 들어가 있고, 자신은 모국과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아시아 쪽에서는 니세이들을 심리전이나 포로 심문에 활용했는데 자신들이 왜 그런 역할로 쓰였는지 알았겠죠. 새로운 조국인 미국의 시민권자로서 본인을 확인시켜줘야 했던 거예요. 구조적 압력과 개인의 역사적·사회적 맥락, 가족사적인 배경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면서 그런 보고서가 나온 것일 텐데, 그것들의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엮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요리치 보고서는 다른 보고서와 비교해도 많이 튀어요. 원래 보고서라는 것이 간단하고 드라이하게 핵심을 적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요리치 보고서는 여러 명을 대상으로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여 분석한 보고서이기에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군 보고서라고 보기에는 수식어도 많고 화려해요. 사실 너머에 화자의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내면과 심리 상태를 갖고 있었기에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을까 호기심이 들었죠. 컨텍스트를 대입해보니 그는 니세이였고, 하층민 출신 사병에서 소령까지 진급한 사람이었어요. 그만큼 군대의 구조적 압력을 잘 소화하는 인물이었겠다는 결론까지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헌미 전시 성폭력을 피해자의 수치로 돌리는 문화 속에서는 피해의 규모나 피해자들의 신원을 입증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남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증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증인의 신빙성을 공격하는 역사부정론이 기승을 부리기도 하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위안부’ 이슈를 중심으로 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갖는 남다른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병주 추가적인 자료 발굴도 물론 중요하겠죠. 하지만 문제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규정하고 있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거예요.  코코순이의 행적은 많은 걸 보여줍니다. 그는 친척 집에 얹혀사는 상황이었고,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상황에서 ‘위안부’로 가게 되었죠. 큰집에서 제대로 보호하지 않은/못한 것이라고 봐요. 일제강점기 때는 그런 상황이 워낙 많았어요. 사회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이 온몸으로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거죠. 박순이 씨를 구성하고 있었던 다양한 압력들이 무엇이었는지 복잡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전복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좋은 다큐가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Credit  인터뷰어: 이헌미 인터뷰이: 황병주 정리: 퍼플레이 강푸름 사진: 오늘의 나  일시: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장소: 국사편찬위원회(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황병주, 이헌미

  • 페미니즘 국제정치학: 또 다른 이야기
    2022년 논평 페미니즘 국제정치학: 또 다른 이야기

    이 글의 주요 내용은 황영주, 2021, “페미니즘 국제정치이론,” 박건영·신욱희 편, 『국제정치이론』(서울: 사회평론 아카데미)에 근거하고 있다.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군사주의(militarism) 연구로 유명한 신시아 인로(Cynthia Enloe)가 1983년, 『카키색이 너에게 어울릴까?(Does Khaki Become You?)』라는 기념비 같은 저작을 통해서 여성의 삶이 군사주의와 서로 양립될 수 없다는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 학문 영역에 비해서 국제정치학 분야에 있어서 젠더의 수용은 ‘많이’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각(遲刻)’은 국제정치학이 갖는 학문적 속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정치학이라는 학문은 이론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 관심을 국가와 국제정치체제에 두는 경우가 많다. 즉, 국제정치학의 주요 이슈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국제정치체제 유지다. 또한 국제정치학은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 확보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 안보와 세계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제기구나 국제법을 활용해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정향이 있는 반면에, 군사력 확보 및 동맹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입장도 존재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국제정치체제를 분석의 대상으로 하는 것에는 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분석 방법으로서 젠더 수용이 늦어졌다는 점은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즉, 국가와 국제정치체제에 초점을 맞추는 학문적 속성상 젠더 또는 여성(개인)의 수용을 꺼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냉전체제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 확보와 그것을 매개로 하는 권력(power) 행사에 학문적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젠더를 수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로의 군사주의 비판은 시대를 앞선 혜안을 보여주었다 하겠다.  실제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의 시작은 냉전 해체라는 국제정치체제의 변화에 따라 등장한 1990년대 초반의 후기구조주의 접근을 수용함으로써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국제정치학이 젠더를 분석의 도구로 수용하게 된 것은 국제정치학자들의 다양한 또는 대안적 방법론 모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 해체에 따른 국제정치 현실의 변화는 국제정치학에서의 전통적 접근 방법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국제정치학에서는 비판이론,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이론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젠더 또는 페미니즘으로 국제정치학을 분석하는 방법도 나타났다.    1992년 안 티커너(J. Ann Tickner)의 『여성과 국제정치 : 국제안보 달성을 위한 페미니즘 관점(Gender in International Relations: Feminist Perspectives on Achieving International Security)』(한국어판: 안 티커너 지음, 황영주 외 옮김,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01)은 국제정치에서 젠더를 수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저작물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티커너는 국제정치학의 전통적 주제인 안보를 각각 국가안보, 환경안보, 경제안보로 세분한 다음, 안보와 관련된 전통적인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어 이 전통적 관점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해체한 이후, 젠더를 수용하여 ‘달리 보이는’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크게 두 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세대는 국제정치학이 갖는 전통적 방법론, 인식론, 존재론에 도전하는 비판적 입장을 갖는 접근이다. 이들의 노력은 90년대 초반의 후기구조주의의 학문적 세례와 함께 진행되었다. 티커너 이외에도 국제관계를 ‘관계의 국제화’로 재정의를 요구하는 크리스틴 실베스터(Christine Sylvester)의 『페미니즘 국제관계이론: 끝나지 않은 여정 (Feminist International Relations: An Unfinished Journey)』(2001)이 제1세대의 대표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세대는 1세대의 이론적 재구성에 힘입어 그것을 국제정치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응용해 나가는 경향이다. 제1세대가 국제정치의 방법론, 인식론, 존재론에 대항하는 방법론적 다양성을 모색했다고 한다면, 2세대는 이미 확보된 방법론적 다양성을 실제 국제정치에 적용하는 노력에 집중한 세대이다. 그 대표적인 접근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저작은 한국인 2세인 캐서린 문(Katherine H. S. Moon)의 『동맹 속의 섹스: 한미관계에서 군사 매매춘 (Sex Among Allies Military Prostitution in U.S.-Korea Relations)』(1997년)(한국어판: 캐서린 H.S.문 지음, 이정주 옮김, 삼인, 2002)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대 구분 이외에도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일반 국제정치학 이론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국제정치(학)에서 여성의 존재 확인(경험), 남성의 경험을 추상화하는 국제정치(학) 비판(비판), 여성의 경험이 투영된 바람직한 국제정치(학) 만들기(규범) 등으로 그 특징을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특징으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여성의 경험을 국제정치학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국제정치(학)에서 여성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행위자로서의 여성에 관한 관심일 뿐만 아니라, 극히 젠더화된 국제정치에서 여성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기존의 국제정치(학)가 갖는 기본적 가설 들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속에서 여성의 경험과 활동을 확인하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making the invisible visible)’노력인 것이다. 이는 인로의 공헌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다양한 저작물에서 신흥공업국의 경제발전에서 어린 여공들의 헌신, 외교 관계에서 외교관 부인의 가사노동과 공헌, 매매춘 여성들의 외화벌이와 국가 경제와의 상관성 등 국제정치에서 여성의 존재에 주목했다.   두 번째 특징으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기존의 국제정치학에 대한 매우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주로 국제정치학이 남성의 경험만을 추상화한다는 비판은 제1세대에서 제기되었다.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의 비판적 특징은 국제정치와 그 이론이 남성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 여성을 포함하는 인간의 경험과 이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에서 국가의 권력 추구행위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볼 때는 ‘지배적인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의 이념형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가설 중 하나인 ‘국내-질서/국외-무질서’는 젠더의 사회적 구성과 극히 유사한 것이 된다.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를 국내-질서-남성성/국외-무질서-여성성이라는 이원적 대립구조로 병치하여, 국제정치이론 자체가 젠더화된 속성을 갖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세 번째 특징으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은 대개 규범적 입장을 갖는다. 부분적이며 왜곡된 남성의 경험으로 형성된 국제정치(학)는 여성의 경험과 인식을 통해서 개선시켜 나가야만 한다. 권력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지배적 남성성을 가진 남성과) 다른 경험은 현재의 무질서한 국제정치 현실을 바로 잡는 데 적절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국제정치를 국가 권력 추구 및 안보에 초점을 맞추는 전통적 국제정치에서 인간의 보편적 이익을 확보하는 것으로 그 관심을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티커너의 저서에서, 안보(security)는 국가의 안전(safety of state)이라는 제한된 정의(definition)에서 벗어나 젠더 관계를 포함하는 모든 불평등한 사회관계의 제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펼쳐진다. 이렇듯,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자들의 노력은 그 이론에서 다양한 성취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도약 중 하나는 군사주의 비판과 페미니즘 평화이론이라고 할 것이다. 인로가 보여준 관심과 같이, 군사주의와 여성의 삶과의 길항관계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학)의 궁극적 가치인 국가 안보 쟁취를 위한 군사력 의존은 군사주의의 재생산과 함께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만다.       “국가 안보와 결합한 군사주의는 외부 적과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 보호를 핑계 삼아, 남성 우위의 기존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유지·강화하는데 핵심적 기제로 작동한다.”[1]  제2세대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소개한 캐서린 문의 『동맹 속의 섹스』는 1970년대 미군 군사기지촌 인근의 ‘양공주’로 명명되는 여성들의 육체가 어떤 방식으로 국가 안보를 위하여 ‘이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를 담고 있다. 미군 철수에 대응하기 위하여 매매춘 여성에게 ‘깨끗한 성(clean sex)’을 강제하고 그를 통해서 국가 안보를 구현하고자 하는 1970년대 국가의 군사주의적 폭력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다면 폭력적 국가의 속성을 확인하게 되지만,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에서 보면 여성의 몸으로 체현(體現)되는 강대국과 약소국의 국제관계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의 수용은 어떨까? 한국의 활발한 페미니즘 운동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국제정치학 분야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작동되고 있는 강한 가부장제를 가장 큰 이유로 들 수 있겠다. 더군다나 국제정치학 분야는 국가 권력 및 안보를 다루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관여를 극도로 저어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남북한의 대치 상황은 국제정치이론에서 현실주의 관점이 우선시되어 페미니즘적 시도를 ‘순진한’ 것으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제정치학을 다루는 대표적인 학자들이 특정 국가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새로운 페미니즘적 접근을 대단히 낯설어했을 가능성도 높다.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그동안의 국제정치에서 다루지 못한 영역에 혜안을 제공할 수 있다. 전통 국제정치이론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양국의 외교 갈등의 원인으로만 조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약,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의 시각을 채용한다면 ‘위안부’와 관련되는 한일 양국 간의 관계를 살펴보는데 다른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를 국가의 외교 문제로 그 관심을 두는 대신에, 각 국가 내부의 젠더 구조와 담론이 어떤 방식으로 양국 간의 갈등 구조를 완화 또는 격화시키는지 분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여전히 낯선 학문적 여정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면서 국제정치학의 젠더화된 측면을 비판하고, 무엇보다도 폭력을 종식하고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에 합당하는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각주 ^ 황영주(2021), 앞의 책, p.421.

    황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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