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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인터뷰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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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이슈를 이야기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지금과 같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뉴스들이 넘쳐나고 정치적으로 쟁점화된 상황에서는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온전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해주세요 – 세 번째 노래들>에 참여한 뮤지션들이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말과 글로도 어려운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냈을까. <이야기해주세요> 세 번째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을 만나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1부 - 김목인, 백정현, 김율희, 한받 2부 - 이정아, 최고은, 황푸하, 김해원 김목인 할머니의 산책 Q. <할머니의 산책>은 어떻게 만들어진 곡인가요?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입니다. 어느 날 길을 잃어버린 할머니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 할머니의 따님이 오실 때까지 잠시 할머니 곁에 있게 되었어요. 따님을 기다리는 동안 분위기가 어색해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봤는데,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게 됐어요. 왠지 이 할머니로부터 곡 작업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사람들의 시간을 뺏을까 걱정하시는 그 할머니의 모습이 묘하게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상황과 겹쳐 보였어요. <할머니의 산책>은 그렇게 출발하게 된 노래입니다. Q.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는 보통 자신의 이야기, 혹은 관심사 안에서 촉발된 이야기로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야기해주세요>와 같이 특정 주제를 다루는 컴필레이션 앨범의 곡 작업을 할 때는 평소 하던 방식과 달라서 어려움이 있어요.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고 시작을 하긴 했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 당사자가 아니고, 가까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보니까 더 어려웠어요. 솔직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어느 지점에 서서 노래를 만들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Q.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이렇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나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더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예전 같았으면 뉴스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기사가 나왔을 때 그저 사회의 복잡한 여러 가지 일들 중 하나라고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개인적으로 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고 나면 주변에서 부담스러운 작업을 하는 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하지만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것처럼 많은 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잖아요. 저처럼 음악을 통해서 참여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좀 더 거리를 두고 작업할 수 있기도 하고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주거나 참여한 팀들과 함께 공연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는 거예요. 언젠가 공연을 통해 <할머니의 산책>을 들려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집에 오는 길 안개비가 내리던 날 우산도 없이 산책을 나온 할머니 이곳 주소가 어떻게 되오? 우리 딸이 데리러 온다는데 주소를 아는 우리 집 앞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먼 곳을 바라보네 뉴스에는 93세로 떠난 한 많았던 인생이 남긴 긴 이야기들 하나의 아픔이 영원해지고 하나의 인생이 결국 지나가도록 열리지 않는 입들에 대해 가만히 서서 곰곰이 생각할 때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찾고 있는 딸 "아니 바쁜데 이래도 되오?" "아니 전혀 바쁘지 않습니다." 주소를 아는 우리 집 앞에 서서 주소가 없었던 이들을 생각하네 백정현, 김율희 무정세월 Q. 간단한 자기소개와 노래에 대한 설명을 해주세요. 김율희 : 저는 소리꾼 김율희라고 합니다. 전통 창작 국악팀 ‘바라지’, 그리고 레게밴드 ‘소울소스 meets 김율희’에서 판소리 보컬로 활동하고 있어요. 백정현 : 백정현이라고 합니다. 작곡과 프로듀싱을 하고 건반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Beck&Fontenot 이라는 이름의 팀으로 활동하고 있고, 싱잉볼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6년간은 제주도에서 요가를 하며 지냈어요. 지금은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무정세월>은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 연습실에서 즉흥으로 맞춰봤던 곡이에요. 서로 어떻게 해달라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드는 합이 나왔죠. 김율희 : 노래 가사 중 ‘달이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해가 또 넘어가네. 이 내 청춘이 아차 한번 늙어지니 다시 청춘이 어려워라’는 단가 <사철가>에서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제가 할머니들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냐마는, 만약 ‘내가 그때의 할머니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고 더듬고 아파하며 쓴 부분이에요. Q.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요? 김율희 : 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을 가진 상태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당사자의 슬픔에는 전부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감히 이렇게 접근해도 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소리꾼은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웃길 수도, 울릴 수도 있잖아요. ‘소리꾼 김율희’로서 이 주제를 어떻게 노래에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서 시작하기 전까지도 확신이 없었어요. 백정현 : 맞아요. 우리가 진짜 이해를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이 상태에서 해도 되나?’ 하는 마음이 있었죠.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드니까 아예 이야기도 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Q. <이야기해주세요> 앨범에 참여하고 느낀 점을 말씀해주세요. 김율희 : 저는 이전보다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마음과 관심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20년 가까이 판소리를 해오면서 전통 소리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이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주체적으로 작업한 일이 드물었죠. 이번 작업을 통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명확해진 것 같아요. 할머니들께서 정말 건강하게, 오래오래 더는 아프지 않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더 이상 그분들을 상처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백정현 : 앨범 제목이 <이야기해주세요>인 것이 참 좋아요. 어렵더라도 사람들이 계속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이 음악을 만든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거나, 할머니의 마음을 완전히 치유해주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걸 같이 느껴보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헤아려보는 기회들이 계속되면 좋겠어요. 몸의 어떤 부분이 아프면 전신의 모든 세포들이 전부 그 부분을 치유하기 위해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회의 어딘가가 아픈 상태라면 모두가 힘을 합쳐 여길 어루만지고 치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달이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해가 또 넘어가네 이내 청춘이 아차 한 번 늙어지니 다시 청춘이 어려워라 한받 우린 리우데자네이루 언덕에서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았지.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 Q. 독특한 곡 제목과 곡의 분위기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한받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립음악가입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서울 중구 만리동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제가 참여한 곡 <우린 리우데자네이루 언덕에서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았지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 대해서 생각해봤어>는 제목과 스타일 모두 독특한 곡이죠. 예전에 실험적인 거리극을 다원 예술 퍼포먼스로 연출한 적이 있어요. 이 거리극에 <이야기해주세요> 기획팀 송은지 님이 출연진으로 함께 했거든요. 은지 님이 거리극에 사용한 배경음악을 모티브로 <이야기해주세요> 수록곡을 작업해보자고 제안하셔서 그 음악을 편곡한 곡이 바로 이 곡입니다. 음악에서 계속 반복되는 멜로디는 철거 예정인 지역의 지도에 있는 선들을 음계로 표현한 것이에요. 재개발로 철거민들이 쫓겨난 동네들을 선율로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이걸 듣고 송은지 님이 다시 멜로디 라인을 만들었고, 우리 아이들이 함께 부르면서 새로운 곡이 되었죠. 노래에 가사가 없기 때문에, 제목에서 하나의 서사를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목은 리우데자네이루에 갔던 꿈 속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어요. 휘황찬란한 풍경과 빈민들의 뒷골목이 공존하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언덕에서 바다와 하늘을 바라봤던 꿈이요. 그 꿈 속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하던 아이들의 감정을 떠올렸어요. 상실을 음악에 담아낼 때 정말 우울하고 처절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도 풀어내고 싶었어요. 아이들의 멜로디와 스캣 선율처럼 가사 이외의 다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지기를 바랐어요. Q.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곡에 녹아있는 것 같아요. 다른 음악가들보다는 간접적인 접근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던 곳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원곡의 모티브인데, 이것이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수요시위에서 공연하기 위한 곡 작업이었다면 분명히 다른 스타일의 노래를 만들었을 거예요. 시위 현장에서는 연대의 퍼포먼스로 ‘야마가타 트윅스터’ 스타일의 음악을 했을 거예요. Q.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나요? <이야기해주세요> 곡 작업을 하면서 제가 남자로서 누려왔던 일상적인 권위에 대해 반성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번 곡은 저의 기존 작업과는 다른, 이질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만든 곡입니다. 음악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겼다는 점이 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요. 베렛떼 뿌다부바 베렛빠바 데렛데 라라랄랄라 라랄랄랄라 랄랄라 음- 나난나나나 나난난나나 나나나 Credit 기획/진행/인터뷰/글 : 현승인 편집 : 금혜지 사진 : 팝콘(popcon) 일시 : 2020년 6월 10일 수요일 장소 : 서울시 마포구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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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인터뷰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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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이슈를 이야기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지금과 같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뉴스들이 넘쳐나고 정치적으로 쟁점화된 상황에서는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온전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해주세요 – 세 번째 노래들>에 참여한 뮤지션들이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말과 글로도 어려운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냈을까. <이야기해주세요> 세 번째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을 만나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1부 - 김목인, 백정현, 김율희, 한받 2부 - 이정아, 최고은, 황푸하, 김해원 이정아 Three Hundred Thousand Flowers Q. 참여곡 <Three Hundred Thousand Flowers>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싱어송라이터 이정아입니다. <그리고 싶은 것>(권효, 2013)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한·중·일 작가들이 각자 생각하는 ‘평화’의 이미지를 그려 『꽃할머니』(권윤덕, 사계절, 2010)라는 동화책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있는데요, 그 영화와 책을 바탕으로 노래를 쓰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면, 할머님께서 유난히 꽃을 좋아하셔서 책이나 앨범 사이에 꽃을 꽂아 놓으시고 압화(꽃누르미)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곡 제목은 당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굉장히 많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아무리 에둘러 표현해도 고통스럽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되도록 쉬운 멜로디와 단순한 가사로 표현하여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곡을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다가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겪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나물 캐러 갔다가 끌려가신 분도 계시잖아요. 제가 조금만 일찍 태어났다면 장 보러 나갔다가 끌려갈 수도 있었던 거죠. 그런 사실을 일상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나였을 수도 있고, 너였을 수도 있는, 모두의 일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Q. 곡을 만들면서 느낀 점과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접근 자체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작업을 위해 공부하면서 힘들기도 했죠. 특히 피해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정말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서 끝까지 다 못 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우리가 계속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주제의 작업이 있다면 참여하려고 해요. 필요한 일 같아서요. */ It was an ordinary dayAnd the sun was shining On the meadow and the hills And on the trees But as rain fell on the ground A dark dark shadow was coming around And rootlessly they torn the flowers Oh as cruel as they could be They were just starting to bloom At the edge of sixteen They were just starting to bloom At the edge of sixteen 35 whole years Then the shadow disappeared But the flowers oh our flowers Were left bleeding and abused How can someone do these things And say it isn't true? How can someone do these things And just go by as if they're through? But they couldn't take away The scent of the flowers Spreading through And through here in our hearts It was never your fault Please don't be afraid And you'll never fade away Cause you're in our hearts And you'll never fade away Cause you're in our hearts 최고은 악순환 Q. <악순환>은 어떻게 시작된 곡인가요? 저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라고 합니다. <이야기해주세요> 3집에 <악순환>이라는 곡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노래는 최승자 시인의 시집 『즐거운 일기』(문학과지성사, 1984)에 수록된 「악순환」이라는 시와 제목이 같아요. 이 시는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게 공포였다”라는 구절로 시작하거든요. 이게 <이야기해주세요> 작업과 맞아떨어진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시의 구절을 토대로 작업을 시작했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한이 많은 남도의 판소리를 배웠는데, 의도한 정서를 담으려니 자연스레 국악적인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악순환>은 그런 한국적인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올해는 제가 데뷔한 지 10년이 되는 해예요. 10년 전에는 노래를 만들면 생각과 표현 사이에 괴리가 컸어요. 음악을 할수록 그 간극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쁨이 있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을 때 <악순환>을 작업하게 됐죠. 2019년 겨울에 한 달 반 정도 유럽 투어 공연을 했어요. 30여 번의 공연에서 매번 <악순환>을 불렀습니다. 관객들이 가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한’을 느꼈는지, 공연 때마다 <악순환>에서는 박수 소리가 길게 나왔어요. 곡에 대한 상반된 피드백도 재미있었어요. 기획팀 서상혁 님은 처음 이 곡을 듣고 내재된 ‘흥’을 느끼셨대요. 반대로 송은지 님은 공포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Q.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소감은 어땠나요?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굉장히 반갑고 좋았어요. 음악으로 소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이 만들어진다는 게 기뻤거든요. 그래서 곡이 술술 나올 줄 알았는데, 주제를 담으려다 보니 스스로 검열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이야기해주세요> 시리즈를 응원하고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참여했는데, 그러려면 ‘사람들이 더 쉽게 들을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최소한 저에게는 좀 더 소신을 지키는 방향으로 작업했습니다. <이야기해주세요>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많은 뮤지션이 정말 좋은 음악들로 참여했는데, 기획팀이 부디 지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웃음) 네 번째, 다섯 번째 이야기가 계속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게 공포였다 시간이 가도 시간이 온다 어제가 가도 어제로 온다 나는 나를 사용하면서 하루하루 생산한다 일 년을 생산한다 인생을 생산한다 황푸하, 김해원 나의 고향 Q. <나의 고향>이라는 곡에 담긴 메시지를 소개해주세요. 김해원 : 안녕하세요, 김해원이라고 합니다. ‘김사월X김해원’이라는 포크 팀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지금은 솔로 활동과 영화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고향>을 황푸하 씨와 함께 만들었어요. 저는 편곡과 프로그래밍, 믹싱 등을 맡았습니다. 황푸하 : 저도 포크 음악을 하는 황푸하라고 합니다. <나의 고향>에서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었습니다. <이야기해주세요> 앨범 안에서 이 곡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다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 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은유적으로 나무들이 우리에게 계속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가사를 썼습니다. 지금도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들으려 하지 않거나 곡해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런 소통의 부재와 답답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김해원 : 저희가 함께 작업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작업했죠.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이 주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아주 모호하기도 했습니다. 황푸하 : ‘고향’이라는 키워드 안에는 잃어버린 곳을 다시 꿈꾸는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가 있어요. 처음 곡을 구상할 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재난의 피해자들이 고향을 잃어버린 장면을 떠올렸어요. 김해원 : 황푸하 씨가 처음 가사를 보여주셨을 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사건을 겪기 전에 살던 공간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봤어요. 어릴 적 배웠던 동요나 근대에 만들어진 신민요 안에 담겨있는 향수의 정서 같은 걸 계속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Q.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김해원 :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이 주제에 대한 일종의 음악적인 연구 결과라고 생각해요.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증도 필요하고, 해당 주제에 대한 사유의 결과를 감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해야 하죠. 저도 그 어려운 과정을 겪었죠. 황푸하 : 예전에 <세월호 미수습자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 ‘집에 가자’> 앨범에서 사회 이슈를 음악을 통해 저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작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윤리적 책임감을 가지고 음악 작업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런 작업을 통해 책임감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김해원 :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고 있는데, 사실 제 자신이 아닌 주변과 사회 구성원의 이야기를 소재로 음악 작업하는 것을 어려워했어요.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 계속 음악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또 이 주제에 대해서 더 찾아보고 공부하게 되었어요. 김해원 : 처음에는 앨범을 정말 많은 분이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 일종의 작은 연구를 했다는 것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황푸하 :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뉴스가 쏟아지고 여론이 다양하게 형성되는 과정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이 ‘이야기’의 근본적인 부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은 정치적인 논쟁이나 여론몰이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서 끌어낸 근본적인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을 들으시면서 음악에서 언어보다 더 깊이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 우리 동네 골목길 나무들의 이야기 그동안 살아오며 많은 걸 봐왔었다 우리 동네 골목길 나무들의 이야기 그동안 살아오며 많은 걸 봐왔었다 바람이 유독 많은 날 더 크게 말하잖아 누군가가 살았었다 꽃이 피는 언덕의 봄 무심하게 아름다운 파란 하늘 그리운 나의 고향 내가 겪은 일들을 수없이 말했었어 많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말했었어 내가 겪은 일들을 수없이 말했었어 많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말했었어 빗방울 떨어지는 날 더 크게 말하잖아 누군가가 살았었다 꽃이 피는 언덕의 봄 무심하게 아름다운 파란 하늘 그 아래서 살고 싶다 살고 싶다 그리운 나의 고향 Credit 기획/진행/인터뷰/글 : 현승인 편집 : 금혜지 사진 : 팝콘(popcon) 일시 : 2020년 6월 10일 수요일 장소 : 서울시 마포구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