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온전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해주세요 – 세 번째 노래들>에 참여한 뮤지션들이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말과 글로도 어려운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냈을까. <이야기해주세요> 세 번째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을 만나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목인
할머니의 산책
Q. <할머니의 산책>은 어떻게 만들어진 곡인가요?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입니다. 어느 날 길을 잃어버린 할머니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 할머니의 따님이 오실 때까지 잠시 할머니 곁에 있게 되었어요. 따님을 기다리는 동안 분위기가 어색해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봤는데,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게 됐어요. 왠지 이 할머니로부터 곡 작업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사람들의 시간을 뺏을까 걱정하시는 그 할머니의 모습이 묘하게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상황과 겹쳐 보였어요. <할머니의 산책>은 그렇게 출발하게 된 노래입니다.
Q.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는 보통 자신의 이야기, 혹은 관심사 안에서 촉발된 이야기로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야기해주세요>와 같이 특정 주제를 다루는 컴필레이션 앨범의 곡 작업을 할 때는 평소 하던 방식과 달라서 어려움이 있어요.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고 시작을 하긴 했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 당사자가 아니고, 가까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보니까 더 어려웠어요. 솔직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어느 지점에 서서 노래를 만들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Q.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이렇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나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더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예전 같았으면 뉴스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기사가 나왔을 때 그저 사회의 복잡한 여러 가지 일들 중 하나라고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개인적으로 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고 나면 주변에서 부담스러운 작업을 하는 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하지만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것처럼 많은 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잖아요. 저처럼 음악을 통해서 참여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좀 더 거리를 두고 작업할 수 있기도 하고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주거나 참여한 팀들과 함께 공연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는 거예요. 언젠가 공연을 통해 <할머니의 산책>을 들려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집에 오는 길 안개비가 내리던 날
우산도 없이 산책을 나온 할머니
이곳 주소가 어떻게 되오?
우리 딸이 데리러 온다는데주소를 아는 우리 집 앞에 서서
아무 말 없이 먼 곳을 바라보네
뉴스에는 93세로 떠난
한 많았던 인생이 남긴 긴 이야기들
하나의 아픔이 영원해지고
하나의 인생이 결국 지나가도록
열리지 않는
입들에 대해
가만히 서서 곰곰이 생각할 때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찾고 있는 딸
"아니 바쁜데 이래도 되오?"
"아니 전혀 바쁘지 않습니다."
주소를 아는 우리 집 앞에 서서 주소가 없었던 이들을 생각하네
백정현, 김율희
무정세월
Q. 간단한 자기소개와 노래에 대한 설명을 해주세요.
김율희 : 저는 소리꾼 김율희라고 합니다. 전통 창작 국악팀 ‘바라지’, 그리고 레게밴드 ‘소울소스 meets 김율희’에서 판소리 보컬로 활동하고 있어요.
백정현 : 백정현이라고 합니다. 작곡과 프로듀싱을 하고 건반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Beck&Fontenot 이라는 이름의 팀으로 활동하고 있고, 싱잉볼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6년간은 제주도에서 요가를 하며 지냈어요. 지금은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무정세월>은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 연습실에서 즉흥으로 맞춰봤던 곡이에요. 서로 어떻게 해달라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드는 합이 나왔죠.
김율희 : 노래 가사 중 ‘달이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해가 또 넘어가네. 이 내 청춘이 아차 한번 늙어지니 다시 청춘이 어려워라’는 단가 <사철가>에서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제가 할머니들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냐마는, 만약 ‘내가 그때의 할머니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고 더듬고 아파하며 쓴 부분이에요.
Q.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요?
김율희 : 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을 가진 상태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당사자의 슬픔에는 전부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내가 감히 이렇게 접근해도 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소리꾼은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웃길 수도, 울릴 수도 있잖아요. ‘소리꾼 김율희’로서 이 주제를 어떻게 노래에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서 시작하기 전까지도 확신이 없었어요.
백정현 : 맞아요. 우리가 진짜 이해를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이 상태에서 해도 되나?’ 하는 마음이 있었죠.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드니까 아예 이야기도 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Q. <이야기해주세요> 앨범에 참여하고 느낀 점을 말씀해주세요.
김율희 : 저는 이전보다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마음과 관심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20년 가까이 판소리를 해오면서 전통 소리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왔어요. 이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주체적으로 작업한 일이 드물었죠. 이번 작업을 통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명확해진 것 같아요. 할머니들께서 정말 건강하게, 오래오래 더는 아프지 않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더 이상 그분들을 상처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백정현 : 앨범 제목이 <이야기해주세요>인 것이 참 좋아요. 어렵더라도 사람들이 계속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이 음악을 만든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거나, 할머니의 마음을 완전히 치유해주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걸 같이 느껴보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헤아려보는 기회들이 계속되면 좋겠어요. 몸의 어떤 부분이 아프면 전신의 모든 세포들이 전부 그 부분을 치유하기 위해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회의 어딘가가 아픈 상태라면 모두가 힘을 합쳐 여길 어루만지고 치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달이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고
해가 또 넘어가네
이내 청춘이 아차 한 번 늙어지니
다시 청춘이 어려워라
한받
우린 리우데자네이루 언덕에서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았지.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
Q. 독특한 곡 제목과 곡의 분위기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한받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립음악가입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서울 중구 만리동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제가 참여한 곡 <우린 리우데자네이루 언덕에서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았지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 대해서 생각해봤어>는 제목과 스타일 모두 독특한 곡이죠. 예전에 실험적인 거리극을 다원 예술 퍼포먼스로 연출한 적이 있어요. 이 거리극에 <이야기해주세요> 기획팀 송은지 님이 출연진으로 함께 했거든요. 은지 님이 거리극에 사용한 배경음악을 모티브로 <이야기해주세요> 수록곡을 작업해보자고 제안하셔서 그 음악을 편곡한 곡이 바로 이 곡입니다. 음악에서 계속 반복되는 멜로디는 철거 예정인 지역의 지도에 있는 선들을 음계로 표현한 것이에요. 재개발로 철거민들이 쫓겨난 동네들을 선율로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이걸 듣고 송은지 님이 다시 멜로디 라인을 만들었고, 우리 아이들이 함께 부르면서 새로운 곡이 되었죠.
노래에 가사가 없기 때문에, 제목에서 하나의 서사를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제목은 리우데자네이루에 갔던 꿈 속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어요. 휘황찬란한 풍경과 빈민들의 뒷골목이 공존하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언덕에서 바다와 하늘을 바라봤던 꿈이요. 그 꿈 속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하던 아이들의 감정을 떠올렸어요. 상실을 음악에 담아낼 때 정말 우울하고 처절하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도 풀어내고 싶었어요. 아이들의 멜로디와 스캣 선율처럼 가사 이외의 다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지기를 바랐어요.
Q.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곡에 녹아있는 것 같아요.
다른 음악가들보다는 간접적인 접근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던 곳에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원곡의 모티브인데, 이것이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수요시위에서 공연하기 위한 곡 작업이었다면 분명히 다른 스타일의 노래를 만들었을 거예요. 시위 현장에서는 연대의 퍼포먼스로 ‘야마가타 트윅스터’ 스타일의 음악을 했을 거예요.
Q.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나요?
<이야기해주세요> 곡 작업을 하면서 제가 남자로서 누려왔던 일상적인 권위에 대해 반성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번 곡은 저의 기존 작업과는 다른, 이질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만든 곡입니다. 음악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담겼다는 점이 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요.
베렛떼 뿌다부바
베렛빠바 데렛데
라라랄랄라
라랄랄랄라 랄랄라
음-
나난나나나
나난난나나 나나나
Credit
기획/진행/인터뷰/글 : 현승인
편집 : 금혜지
사진 : 팝콘(popcon)
일시 : 2020년 6월 10일 수요일
장소 : 서울시 마포구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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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해당 주제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와 대면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음악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화를 건네는 뮤지션들을 만나보았다.
- 글쓴이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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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해주세요 캠페인 팀은 현재 송은지, 황보령, 서상혁, 이윤혁, 김보휘, 허영균, 박창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성원들은 각각 뮤지션, 기획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이 프로젝트를 최초로 제안한 송은지(소규모아카시아밴드 보컬)님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3집에서는 황푸하, 김해원, 황보령, 슬릭, 소월, 백정현, 김율희, 김목인, 이정아, 신현필, 이봉근, 김완선, 최고은, 사이, 라퍼커션, 악당광칠, 한받, 9,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레인보우99, 송은지, 김오키 새턴발라드, 김일두, 백현진, 조웅, 이태훈 총 26팀이 음악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