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온전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해주세요 – 세 번째 노래들>에 참여한 뮤지션들이다.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할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말과 글로도 어려운 이야기를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냈을까. <이야기해주세요> 세 번째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을 만나 ‘위안부’ 문제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정아
Three Hundred Thousand Flowers
Q. 참여곡 <Three Hundred Thousand Flowers>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싱어송라이터 이정아입니다. <그리고 싶은 것>(권효, 2013)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한·중·일 작가들이 각자 생각하는 ‘평화’의 이미지를 그려 『꽃할머니』(권윤덕, 사계절, 2010)라는 동화책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있는데요, 그 영화와 책을 바탕으로 노래를 쓰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면, 할머님께서 유난히 꽃을 좋아하셔서 책이나 앨범 사이에 꽃을 꽂아 놓으시고 압화(꽃누르미)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곡 제목은 당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굉장히 많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아무리 에둘러 표현해도 고통스럽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되도록 쉬운 멜로디와 단순한 가사로 표현하여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곡을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다가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겪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나물 캐러 갔다가 끌려가신 분도 계시잖아요. 제가 조금만 일찍 태어났다면 장 보러 나갔다가 끌려갈 수도 있었던 거죠. 그런 사실을 일상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나였을 수도 있고, 너였을 수도 있는, 모두의 일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Q. 곡을 만들면서 느낀 점과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접근 자체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작업을 위해 공부하면서 힘들기도 했죠. 특히 피해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정말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저럴 수 있을까?’ 싶어서 끝까지 다 못 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우리가 계속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주제의 작업이 있다면 참여하려고 해요. 필요한 일 같아서요.
It was an ordinary dayAnd the sun was shining
On the meadow and the hills
And on the trees
But as rain fell on the ground
A dark dark shadow was coming around
And rootlessly they torn the flowers
Oh as cruel as they could be
They were just starting to bloom
At the edge of sixteen
They were just starting to bloom
At the edge of sixteen
35 whole years
Then the shadow disappeared
But the flowers oh our flowers
Were left bleeding and abused
How can someone do these things
And say it isn't true?
How can someone do these things
And just go by as if they're through?
But they couldn't take away
The scent of the flowers
Spreading through
And through here in our hearts
It was never your fault
Please don't be afraid
And you'll never fade away
Cause you're in our hearts
And you'll never fade away
Cause you're in our hearts
최고은
악순환
Q. <악순환>은 어떻게 시작된 곡인가요?
저는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라고 합니다. <이야기해주세요> 3집에 <악순환>이라는 곡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노래는 최승자 시인의 시집 『즐거운 일기』(문학과지성사, 1984)에 수록된 「악순환」이라는 시와 제목이 같아요. 이 시는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게 공포였다”라는 구절로 시작하거든요. 이게 <이야기해주세요> 작업과 맞아떨어진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시의 구절을 토대로 작업을 시작했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한이 많은 남도의 판소리를 배웠는데, 의도한 정서를 담으려니 자연스레 국악적인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악순환>은 그런 한국적인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올해는 제가 데뷔한 지 10년이 되는 해예요. 10년 전에는 노래를 만들면 생각과 표현 사이에 괴리가 컸어요. 음악을 할수록 그 간극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쁨이 있어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을 때 <악순환>을 작업하게 됐죠. 2019년 겨울에 한 달 반 정도 유럽 투어 공연을 했어요. 30여 번의 공연에서 매번 <악순환>을 불렀습니다. 관객들이 가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한’을 느꼈는지, 공연 때마다 <악순환>에서는 박수 소리가 길게 나왔어요.
곡에 대한 상반된 피드백도 재미있었어요. 기획팀 서상혁 님은 처음 이 곡을 듣고 내재된 ‘흥’을 느끼셨대요. 반대로 송은지 님은 공포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Q.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소감은 어땠나요?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굉장히 반갑고 좋았어요. 음악으로 소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이 만들어진다는 게 기뻤거든요. 그래서 곡이 술술 나올 줄 알았는데, 주제를 담으려다 보니 스스로 검열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이야기해주세요> 시리즈를 응원하고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참여했는데, 그러려면 ‘사람들이 더 쉽게 들을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최소한 저에게는 좀 더 소신을 지키는 방향으로 작업했습니다.
<이야기해주세요>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많은 뮤지션이 정말 좋은 음악들로 참여했는데, 기획팀이 부디 지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웃음) 네 번째, 다섯 번째 이야기가 계속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게 공포였다
시간이 가도 시간이 온다
어제가 가도 어제로 온다
나는 나를 사용하면서
하루하루 생산한다
일 년을 생산한다
인생을 생산한다
황푸하, 김해원
나의 고향
Q. <나의 고향>이라는 곡에 담긴 메시지를 소개해주세요.
김해원 : 안녕하세요, 김해원이라고 합니다. ‘김사월X김해원’이라는 포크 팀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지금은 솔로 활동과 영화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고향>을 황푸하 씨와 함께 만들었어요. 저는 편곡과 프로그래밍, 믹싱 등을 맡았습니다.
황푸하 : 저도 포크 음악을 하는 황푸하라고 합니다. <나의 고향>에서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었습니다. <이야기해주세요> 앨범 안에서 이 곡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다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 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은유적으로 나무들이 우리에게 계속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가사를 썼습니다. 지금도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들으려 하지 않거나 곡해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런 소통의 부재와 답답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김해원 : 저희가 함께 작업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작업했죠.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이 주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아주 모호하기도 했습니다.
황푸하 : ‘고향’이라는 키워드 안에는 잃어버린 곳을 다시 꿈꾸는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가 있어요. 처음 곡을 구상할 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재난의 피해자들이 고향을 잃어버린 장면을 떠올렸어요.
김해원 : 황푸하 씨가 처음 가사를 보여주셨을 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사건을 겪기 전에 살던 공간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봤어요. 어릴 적 배웠던 동요나 근대에 만들어진 신민요 안에 담겨있는 향수의 정서 같은 걸 계속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Q.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김해원 :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이 주제에 대한 일종의 음악적인 연구 결과라고 생각해요.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증도 필요하고, 해당 주제에 대한 사유의 결과를 감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해야 하죠. 저도 그 어려운 과정을 겪었죠.
황푸하 : 예전에 <세월호 미수습자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 ‘집에 가자’> 앨범에서 사회 이슈를 음악을 통해 저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작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윤리적 책임감을 가지고 음악 작업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런 작업을 통해 책임감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김해원 : 현재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고 있는데, 사실 제 자신이 아닌 주변과 사회 구성원의 이야기를 소재로 음악 작업하는 것을 어려워했어요.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 계속 음악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또 이 주제에 대해서 더 찾아보고 공부하게 되었어요.
김해원 : 처음에는 앨범을 정말 많은 분이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 일종의 작은 연구를 했다는 것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황푸하 :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뉴스가 쏟아지고 여론이 다양하게 형성되는 과정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이 ‘이야기’의 근본적인 부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은 정치적인 논쟁이나 여론몰이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서 끌어낸 근본적인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 앨범을 들으시면서 음악에서 언어보다 더 깊이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동네 골목길
나무들의 이야기
그동안 살아오며
많은 걸 봐왔었다우리 동네 골목길
나무들의 이야기
그동안 살아오며
많은 걸 봐왔었다바람이
유독 많은 날
더 크게말하잖아
누군가가
살았었다
꽃이 피는
언덕의 봄
무심하게
아름다운
파란 하늘
그리운 나의 고향내가 겪은 일들을
수없이 말했었어
많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말했었어내가 겪은 일들을
수없이 말했었어
많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말했었어빗방울
떨어지는 날
더 크게말하잖아
누군가가
살았었다
꽃이 피는
언덕의 봄
무심하게
아름다운
파란 하늘
그 아래서
살고 싶다
살고 싶다
그리운 나의 고향
Credit
기획/진행/인터뷰/글 : 현승인
편집 : 금혜지
사진 : 팝콘(popcon)
일시 : 2020년 6월 10일 수요일
장소 : 서울시 마포구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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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해당 주제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와 대면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음악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화를 건네는 뮤지션들을 만나보았다.
- 글쓴이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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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해주세요 캠페인 팀은 현재 송은지, 황보령, 서상혁, 이윤혁, 김보휘, 허영균, 박창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성원들은 각각 뮤지션, 기획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이 프로젝트를 최초로 제안한 송은지(소규모아카시아밴드 보컬)님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3집에서는 황푸하, 김해원, 황보령, 슬릭, 소월, 백정현, 김율희, 김목인, 이정아, 신현필, 이봉근, 김완선, 최고은, 사이, 라퍼커션, 악당광칠, 한받, 9,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레인보우99, 송은지, 김오키 새턴발라드, 김일두, 백현진, 조웅, 이태훈 총 26팀이 음악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