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자국중심주의 극복하는 글로벌 시민교육

징 윌리엄스 필리스 김

  • 게시일2024.07.15
  • 최종수정일2024.09.23

징 윌리엄스 사회교육학 부교수
& 필리스 김 CARE 대표 인터뷰 <1부>

 

미국 사우스다코타대학교 사회교육학 징 윌리엄스 교수와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의 필리스 김 대표, 미국인들에게 '먼 나라의 오래전 불행한 역사'라 할 수 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인권 문제로 접근해 교육하고 활동하는 이들이다. 2018년에 처음 만난 이후 '위안부' 문제 연대 활동을 해온 두 사람은 현재 공동 저술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쯤 나올 예정인 이 책은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는 방법을 담은 첫 번째 출간물이 될 예정이다. 웹진 <결>은 연구차 한국을 방문한 징 윌리엄스 교수와 서울에 체류 중인 필리스 김 대표를 인터뷰해 2회에 걸쳐 싣는다. 

<1부> 미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자국중심주의 극복하는 글로벌 시민교육
<2부> 국제사회 왜곡 막고 공감 넓힐 영문 '위안부' 증언집 발간되길


 

Q.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 징 윌리엄스 :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 천진사범대에서 영어영문학 번역 석사를 마쳤어요. 2014년 미국 오하이오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곧바로 임용된 사우스다코타대학에서 사회교육학 부교수로 일하며 초등 및 중등 사회 연구 방법론을 가르친 지 10년 정도 됩니다. 

🧶 필리스 김 : 저는 스무 살, 대학 2학년 때 가족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갔어요. 한국 이름은 김현정입니다. 대학을 마치고 법정 통역사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COMFORT WOMEN ACTION FOR REDRESS & EDUCATION. 이하 CARE)'의 대표로 있는데요, 2020년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왔다가 코로나사태로 발이 묶인 후로 서울에 장기 체류 중입니다. 물론 전시나 행사가 있을 때 미국을 오가고 있습니다.  

 

[사진 1] 징 윌리엄스 부교수(왼쪽)와 필리스 김 대표 ©popcon

 

 

미국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주목하게 된 계기

 

Q. 교육, 특히 역사 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강조돼 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더 특별한 것은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미국 사회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오래 전 먼 아시아에서 전쟁 중에 일어난 '남의 나라의 불행한 역사'일 텐데, 그 안에서 꾸준히 연구하고 관련 활동을 해오신 두 분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 징 윌리엄스 : 말씀드렸다시피 중국 태생이라 난징 대학살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군이 동아시아 전역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미국으로 유학간 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보니 전시 하 아시아 역사는 아주 간략하게 다루는 반면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가득했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이라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된 거죠. 역사 교육을 계속 연구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를 조금 더 깊숙이 파게 됐고, 선생님 혹은 교육자가 돼서 가르칠 때 이 내용을 꼭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목표 중 하나는 사회학을 가르칠 때 전 세계적인 관점을 녹여내는 것입니다. 

🧶 필리스 김 : 이민 간 지 얼마 안 된 1992년 4월 29일, 저희 가족이 살고 있던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 사회에 엄청난 피해와 후유증을 남긴 'LA폭동'이 일어났어요. 그 현장 한 가운데 있다 보니 미국 내에서 한인으로 산다는 것, 나아가 이민자 커뮤니티와 인종 갈등, 사회 정의, 여성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만난 직접적인 계기는 2007년 채택된 '미국 연방회의 일본군'위안부' 사죄 결의안(H Res. 121)' 캠페인이에요. 전국 네트워크 중 하나인 서부 캘리포니아 캠페인팀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미국으로 초청했는데, 제가 통역사다 보니 할머니의 눈과 귀가 돼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제 역할은 끝난 줄 알았는데 이후에도 사죄나 책임보다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변함이 없고, 오히려 국가 차원에서 '역사 전쟁'을 치르는 것을 보고 '뭔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특히 미국에서의 활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2007년 캠페인을 함께 했던 분들과 단체를 만들고 2013년 글렌데일 시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캠페인, 2017년 중국계 분들이 주도해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선보인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 설치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계속 '이슈'를 만드는 일본 때문에 멈출 수도 없었어요. 글렌데일 시에 소송을 걸고, 샌프란시스코 기림비가 설치되자 오사카에서 자매도시 인연을 끊겠다 하고, 일본 외교관이 교과서 저자인 교수에게 '위안부' 관련 문구를 삭제하라고 압박했다는 소식이 언론으로 전해지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방해가 양날의 검이기도 했던 게 저희의 기운을 빼고 정치인을 의기소침하게 하기도 했지만, 교육계·법조계 등에서 '위안부' 문제를 주목하게 되는 효과도 있었어요. 이해관계가 없는 분들에게는 더 깊게 이해하고 지지하는 계기도 됐고요. 

 

Q. 거대하고 다양성이 강한 미국 사회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활동을 접한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잘 가늠되지 않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게 되는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필리스 김 : 미국 사회 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이 10년 사이 얼마나 변했다 하는 걸 보여주는 데이터나 연구는 없지만 획기적인 변화 중 하나가 캠페인을 벌인 캘리포니아 주에서 '위안부' 문제를 '성노예 제도의 예로 가르칠 수 있다'는 문구가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 과정에 포함된 것입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 뉴욕 주 같은 곳에서 먼저 진보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다른 주들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때가 2016년이었어요.
사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교과 과정에 포함시켜도 아무도 가르치지 않으면 효과가 없잖아요. 직접 선생님들을 만나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부터 전국 단위까지 다양한 컨퍼런스에 다녔습니다. '레슨 플랜', 그러니까 수업 지도안 같은 교육 자료를 싸들고 가서 세션도 열고, 프리젠테이션도 하고, 부스를 마련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선생님이 있으면 알려드리기도 했죠. 그렇게 해도 2017년, 2018년 무렵까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에 대한 선생님들의 이해가 낮았어요.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2023년 11월에 다시 대면으로 열린 전미 사회학 컨퍼런스에서 윌리엄스 교수님과 세션을 하고, 얼마 뒤에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세션을 했어요. 그때 깜짝 놀란 게 많은 선생님들이 세션이나 부스를 찾아와 '나 '위안부' 문제 알아, 더 좋은 자료 있니?' 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르쳐 봤어.' 하는 거예요. 몇 년 전만해도 '위안부' 문제를 설명하면 성과 폭력이 들어가 있어 부담스러운 주제라며 두려움과 우려를 나타냈다면 이제는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로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좀 더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더 알려 달라'라고 하는 걸 보면서 변화를 체감했습니다.

🧶 징 윌리엄스 : 필리스 김 대표님 말씀처럼 1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제가 얘기하면 그때서야 많은 교육자분들이 큰 충격에 휩싸여 '어떻게 내가 몰랐을까' 했어요. 제가 고등 교육을 담당했는데, 처음에는 '위안부' 문제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일어난 난징 대학살을 연구하려고 했어요. 난징 대학살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하고 피해를 입는지를 연구하게 됐고, 그래서 '위안부' 문제를 집중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필리스 김 대표님과 저는 전미 사회학 관련 컨퍼런스 때 부스에서 처음 만나 2018년 이후부터 같이 일해 왔습니다. CARE에서 받은 자료 사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사용해 제가 약 90분 분량의 '레슨 플랜'을 만들었어요. 그 지역 고등학교에서 한번 사용해 보기로 했죠.  아이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들려줬는데 역시 '충격'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사진 2] 징 윌리엄스 교수(가운데) ©popcon

 

 

객관적 역사와 정서적 공감에 기반한 수업 지도안 

 

Q. 그렇게 인식을 변화시키는 교수님의 수업 지도안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 징 윌리엄스 : 90분 정도 진행되는 수업은 제가 일본의 전반적인 역사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요. 일본 제국과 메이지 시대, 그리고 어떻게 군사화와 근대화가 가능했는지, 20세기 일본이 어떻게 해외 진출을 하게 되었는지를 개략하는데, 갑자기 일본이 이랬어라고 말하기보다 역사 전후를 알려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일본이 중국 북동 지역을 어떻게 침략했는지, 난징 대학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특히 난징 대학살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는지 설명하다보면 위안소를 설치해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사실 등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수업에서 너무 적나라한 이미지나 사실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이미지나 자료는 학생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으니까요. <디 어폴로지(The Apology)>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며 조금씩 설명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는 중국, 한국, 필리핀 '위안부' 할머니 세 분이 나와요. 학생들은 할머니들의 증언을 자연스레 듣게 됩니다. 다큐멘터리를 본 다음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해요. 어떻게 이 할머니들이 끌려가게 되었는지, 당시 할머니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얼마나 오랜 기간 '위안부'로 생활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후에 할머니가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지, 할머니가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일지 등입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해야지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만약 일본 정부가 사과한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까? 할머니들의 마음이 그나마 좀 풀릴까?' 물어봤더니 '아니다. 할머니에게서 가장 중요한 걸 앗아갔기 때문에 사과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데 사과조차 안 했으면 어떻게 할까'라고 했더니 '인정할 수 없다, 그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업은 대략 이렇게 진행됩니다. 저는 '위안부' 문제 같은 민감한 사안을 '디피컬트 히스토리(Difficult History)', 풀이하면 '어려운 역사'라고 하는데요. 어렵고 민감한 사안에는 강간, 성폭력이 포함돼요. 또 이렇게 '어려운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가르칩니다. 대학에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될 사람들이에요. 어려운 주제의 예시로 '위안부' 문제를 들어 '나는 이렇게 가르칠 것 같다'고 생각을 나누고, 학생 자신들이 가르치고 싶어 하는 주제에 대해 어떻게 커리큘럼을 꾸려나갈지 함께 레슨 플랜을 짜기도 합니다.

 

Q. 말씀을 들으니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주제를 놓고 상호 교감을 이뤄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미국의 중등, 대학 교과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약간 부가적인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필리스 김 : 미국은 주에서 고등학교 세계사 과정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제시해 주는 주제들이 있어요. 대개 8~10년에 한 번씩 개정하면서 새 이슈를 넣고, 특정 설명을 바꾸기도 합니다. 아까 캘리포니아 주에서 '위안부' 문제를 '성노예 제도의 예로 가르칠 수 있다'는 문구가 교과 과정 아이템에 포함됐다는 건 고등학교 세계사 과정에서 배워야 하는 여러 주제 중에 '위안부' 문제가 들어갔다는 의미예요. 그 중에 교사가 주제를 선택해 가르치게 됩니다. 그런데 교사가 원하는 주제를 가르치려면 준비가 필요하잖아요. 45분짜리 수업 2개로 구성된 징 윌리엄스 교수님 수업 지도안은 그 교사들이 수업에서 활용할 자료예요. 교수님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예비 교사니까 지도안을 이들에게 활용하기도 하고, 실험적으로 고등학교에 실제로 가서 수업 지도안을 활용해 '테스트 티칭'을 하기도 하고요. 

 

[사진 3] 필리스 김 대표 ©popcon

 

 

'위안부' 교육은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일이기도

 

Q. 도입부에도 나왔지만 한국이나 아시아 국가는 자신들의 과거사이고, 피해 경험이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물론 여성 인권처럼 보편성에 기반해 공감할 수 있지만 미국 사회는 대개 제3자의 역사로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이런 미국 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게 어떤 중요성을 가지는 걸까요?

🧶 징 윌리엄스 : 제가 사회학을 연구하고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글로벌한 관점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도 미래 교육자로서 글로벌한 관점으로 가르치길 바라고요.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겠지만 특히 자국중심주의가 강한 미국은 자국과 연관이 없으면 교육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로벌 교육, 글로벌 시민에 대한 정의는 다양할 것 같은데, 저는 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사람들을 '케어'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갈 기회가 있습니다. 글로벌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단순히 '위안부'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인권 문제입니다. 제 수업에 여학생들이 많은데, 우리가 지금은 안전한 곳에 살고 있지만 몇 년 전에 이 나라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이 문제를 꼭 끝내야 된다는 게 아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그 첫 단추를 꿰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몇 년 뒤에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 여성 인권 옹호자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여성 인권과 연결하면 아이들은 관심을 보입니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등에서 오늘도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특히 여학생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마음 아파합니다. 수업이 끝난 후 받은 설문조사를 하는데,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어요. 한 학생의 대답을 짧게 요약해 볼게요.

'일본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인간적이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잘못하면 그 잘못을 인정하라고 배우는데 심지어 일본 정부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습니다. 피해 여성들은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또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나서서 본인이 당한 일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특히나 한국의 문화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강간을 당하면 바로 신고하는 게 어렵습니다. 저는 만행을 저지른 남자들은 절대 잘못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법적으로 관련 조치와 벌을 받아야 됩니다. 이 남성들은 '위안부'를 여자로 인식한 게 아닙니다. 단순히 성적 장난감으로 본 것이고 본인의 쾌락을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저는 부끄러움, 트라우마, 정의롭지 못한 행동 그리고 인정하지 않는 이 모든 행동 자체가 잔인하게 보입니다.' 

 

아르메니아 '인종 청소'와 홀로코스트

 

Q. '위안부' 문제와 인권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와 공감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 필리스 김 : 돌아보니 저희가 교육이나 소녀상과 기림비 설치를 위한 캠페인을 할 때 똑같은 질문을 하는 미국인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미국인이 당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하느냐고요. 그럴 때 저희는 세 가지 설명을 해요. 첫째는 홀로코스트가 미국에서 일어나거나 미국인이 홀로코스트를 당하지 않았지만 배우잖아요. 너무나 중요한 인권 문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세계사적 비극이기에 누구나 배워야 한다라고 얘기하면 모두 동의해요. '위안부' 문제도 같은 얘기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100년도 더 지난 1910년경 아르메니아에서 일어난 '인종 청소'예요. 당시 생존자들은 자기들의 고통에 대해 한 세대가 지날 때까지 침묵을 지켰어요. 그러다 다음 세대가 그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터키 정부에 사실을 인정하고 정의를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분들이 하는 얘기가 그때 바로 국제사회에 '인종 청소'를 알리고, 해결을 요구했더라면 홀로코스트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거였어요. 이제 4세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지금도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열심히 가르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는 거예요. 국가가 저지르는 전시 성폭력을 말할 때 항상 먼 아프리카나 중동 국가를 떠올리지만 사실 미국에서도 조직적인 성폭력, 인신매매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습니다. 그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할머니들의 얘기와 흡사해요. 70년, 80년이 지났지만 결국 본질은 같은, 현재 우리 커뮤니티와 깊이 관련된 문제인 거예요. 

마지막으로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낸 최초의 어마어마한 사건이라는 점을 얘기해요. 그전에도 얼마나 전시 성폭력이 많았겠어요. 그럼에도 항상 피해 여성들이 죄를 뒤집어쓰고 부끄러워하고 숨어야 했는데, 처음으로 우리 할머니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셨잖아요. 여성학의 관점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데, 침묵을 깬 할머니들이 '액티비스트'로 변해 이 운동을 이끈 건 정말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Credit 

인터뷰어: 손정미, 소현숙
인터뷰이: 징 윌리엄스 사회교육학 부교수, 필리스 김 CARE 대표 
글/정리: 손정미 
사진 : 팝콘(popcon) 
인터뷰 일시: 2024년 6월 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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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징 윌리엄스

중국 출신으로, 천진사범대에서 영어영문학 번역 석사를 마치고 2014년 오하이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사우스다코타대학교에서 사회교육학 부교수로 재직하면서 초등 및 중등 사회 연구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사회교육의 글로벌 관점에 초점을 맞춘 많은 논문을 사회학연구저널, 국제사회학연구저널, 국제교육저널 등에 발표했다.  

글쓴이 필리스 김

2007년 ‘미국 연방회의 일본군‘위안부’ 사죄 결의안’ 캠페인에 참여한 이후 미국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활동하는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 행동’을 만들어 대표로 다양한 관련 활동하고 있다.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 등 국내 활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고, 현재 UCLA에 온라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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