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사(現在史)로서의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

한혜인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 게시일2024.09.02
  • 최종수정일2024.09.09

2024 기림의 날 특집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하여 <3부>


일러스트 ⓒ이사각

 

2015년 최종적으로 7개국 14개 단체가 참여해 결성한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일본군'위안부'의 역사가 여성 인권 회복의 진행형, 나아가 인류 보편의 인권 신장과 항구적 평화에 기여하는 '세계의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공격적인 외교로 그 의의가 왜곡되어 가고 있다. '2024 기림의 날'을 기념해 웹진 <결>은 조속한 해결을 기대하며 10여 년 가까이 추진되어 온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 활동을 3회에 걸쳐 조망해 본다. 

 

통상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소규모의 유네스코 본부 인원과 기록유산 전문가 14명 등으로 구성된 국제자문위원회(IAC)가 함께 한다. 국제자문위원회는 산하에 심사소위원회(RSC)를 두고 등재 가능성에 주목해 신청서를 사전 심사한 다음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에 보고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해왔다. 전체적으로 국제자문위원회가 사업 운영을 주관하고, 2년마다 회의를 열어 제출된 등재 신청서를 선별, 등재 후보를 결정한 다음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등재 결정을 권고하는 수순이다. 이후 이 결과를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대화'를 전제로 한 등재 보류 결정

그런데 2017년에는 이러한 흐름과 사뭇 다른 '이상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2016년 3월 말이었던 신청서 마감이 5월 31일로 연기됐다. 이어 2017년 9월로 예정되어 있던 국제자문위원회도 아무런 설명 없이 10월 24일로 미뤄졌다. 더 놀라운 일은 국제자문위원회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일본군'위안부'기록물에 대한 등재 결정이 연기될 것이라는 일본의 보도가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의 진행 과정과는 다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연기된 국제자문위원회를 열흘 가량 앞둔 10월 16일, 유네스코의 핵심 의사결정기구인 집행이사회가 열렸다. 집행이사회는 "상충되는 견해를 가진 두 신청 간에 '대화'를 요구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삽입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또 10월 24일 열린 국제자문위원회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 등재 여부에 대해 "대화를 전제로 한 연기"라는 기존에 없던 방식의 결정을 내렸다. 이를 전달받은 사업단은 즉각 발언권을 얻어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10월 30일,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별다른 조처없이 한국과 일본에서 제출한 '두 신청자의 대화 진행'이라는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2016-76 개별 일본-미국(NGO): '위안부와 일본군 규율에 관한 문서' 
2016-101 일본군'위안부' 문서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위원회: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2017년 10월 16일 회의에서 UNESCO 집행이사회의 결정에 따라(202 EX/PX/DR 15.8, 항목 15) 사무총장에게 UNESCO가 신청자(No. 101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 및 No. 76 '위안부와 일본군 규율에 관한 문서')와 관련 당사자들 간의 대화를 진행할 것을 권고합니다. 또한 IAC는 가능한 한 모든 관련 문서를 포함하는 공동 등재로 이어질 목적으로 이 대화를 위해 당사자들에게 편리한 장소와 시간을 정할 것을 권고합니다.[2]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절차에서 생긴 이러한 이상 현상은 일본 정부가 만들어낸 것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신청서 마감 기한이 연기된 사이 일본 측이 신청서를 급조해 제출했고, 이는 결국 일본군'위안부'기록물에 대한 '상충되는 견해'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를 근거로 국제자문위원회를 미루고, 집행이사회에서 결정된 '대화' 규정을 인용함으로써 이전에 없던 '대화를 전제로 한 연기'라는 전례없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사진 1] 2017년 10월 공개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결정문 원문

[사진 2] 2017년 국제자문위원회 회의에서 문제제기하는 신혜수 단장 (국제연대위원회 제공)


 

이용되는 일본군'위안부'의 역사 : 누가 역사 갈등을 만들어가는가?

사실 일본의 공세적인 외교 활동이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유네스코를 둘러싼 역사전을 놓고 대개 2014년 중국이 난징대학살 기록물과 일본군'위안부'기록물에 대해 등재를 신청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시작은 2014년 군함도 등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한 일본의 움직임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전 수상이 내건 '강한 일본, 자랑스런 일본'이라는 기치에 따라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석탄, 탄광 산업유산 등재를 추진했다. 등재 대상에는 아베 전 수상이 존경했다는 우익의 대두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이 운영한 학교 쇼카손주쿠(松下村塾)도 있었다. 제국주의의 산실로 알려진 쇼카손주쿠를 포함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인정받겠다는 의미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은 군함도 등 산업시설에서의 조선인, 중국인의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역사는 소거했다. 

일본의 이런 도발에 대해 당연히 중국과 한국의 비판이 거셌고, 유네스코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중국이 난징대학살 기록물과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을 등재 신청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였다.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부정해 온 두 역사적 사실, 난징대학살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가해 책임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다. 이전까지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사업을 민간에 맡겨 놓고 있었던 중국과 일본 정부는 이 시기부터 직접 전면에 나섰다. 아베 전 수상은 중국이 유네스코를 정치적으로 오염시켰다고 비난했지만, 그 이면에서는 이처럼 두 나라 정부 모두 유네스코의 의사 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중국은 난징대학살 기록물과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을 등재 신청했지만, 둘 다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일본과 갈등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두 신청 모두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중국은 초점을 난징대학살 기록물 등재에 맞추고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은 양보를 얻어낼 카드로, 그러니까 일종의 희생타로 제출했다. 물론 이때 국제연대위원회가 중국을 포함한 8개국 15개 단체를 모아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의 등재 신청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도 '희생'을 고려할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로 난징대학살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성공한 후, 중국 정부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 등재를 더 이상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업단이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를 등재 신청할 때 중국이 방해한다고 느낄 정도였다. 타이완의 국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이나 중국 모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역사전의 전면에 내세워 이용하거나 희생시켜 왔다.

한편 2015년 난징대학살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자 일본 우익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아베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역사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베 전 수상은 자민당 의원과 면담에서 "2년 후에는 '위안부' 문제가 나온다. 지금부터 만전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혀 일본군'위안부'기록물에 대한 강도 높은 등재 방해를 예고했다. 이후 일본은 유네스코 분담금 납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고, 유네스코에 등재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일본이 노골적으로 외교적 압박을 가해오자 유네스코는 버티지 못하고 규정 개정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국제자문위원회가 이 문제를 의제로 채택해 논의를 진행했다. 당시 일본은 2017년 회의 전까지 개정 작업을 끝내고 새로운 규정으로 심사를 진행하면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의 등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규정 개정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제202차 집행이사회는 자구책 혹은 절충안으로 "상충되는 견해를 가진 두 신청 간에 '대화'를 요구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202 EX/PX/DR 15.8, 항목 15)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후 국제자문위원회는 위 문구를 근거로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의 등재를 연기해 버렸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가 반발해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활동은 5년 넘게 멈춰 섰다. 

 

새롭게 생성되는 '현재사' 기록들 : 더디게 가는 '대화' 프로세스 

2024년 8월 말 현재,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은 중단된 상태지만 일본군'위안부'기록물 두 신청자는 합의 하에 '대화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유네스코 사무국의 지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무국은 대화 프로세스가 구체적으로 언제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언제 대화가 종료되고 대화가 결렬되면 어떻게 되는지 등 세부적 사안에 대해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국제연대위원회의 일관된 주장은 2017년 등재 신청을 했기에 새로 만들어진 규정이 아니라 구 규정을 따라야 하고, 대화 종료 후에는 심사소위원회(RSC)의 평가를 받아들여 공동등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단체 3곳과 미국 단체 1곳이 공동 신청하는 형태로 구성된 일본측 신청자들이 등재 신청한 자료는 총 6건이다.[3] 이 신청 기록물 자체는 객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서들이다. 그중 미국공문서관 소장 자료와 일본 방위청 소장 자료[4]는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에도 포함된 중복 기록물이기도 하다. 그외 방위청 소장 사료와 미디어보도제작연구센터 소장 자료는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포함할 수 있는 중요 기록물이다. 따라서 국제연대위원회에서는 기록물에 대한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2018년 5월, 유네스코 사무국은 어떤 주제와 방법으로 대화할 지 등 사전 정보 교환도 없이 중재자를 선발했다고 알려왔다. 그럼에도 국제연대위원회는 성실하게 대화 프로세스를 진행할 것을 결의하고, 중재자를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첫 중재자는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대화 프로세스를 진행하지 못하고 1년 만에 사임했다. 유네스코 사무국은 2019년 6월 두 번째 중재자로 잉그리트 패런트(Ingrid Parent)를 임명했다. 그는 캐나다인으로 국제도서관 협회연합회(International Federation of Library Associations)의 회장을 지내기도 한 기록학의 대가이다. 잉그리트 패런트는 두 신청자가 대화할 수 있도록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후보 2건에 대한 '대화' 개최 조건(Terms and Conditions for holding a dialogue regarding two nominations concerning 'Comfort women' for the memory of the world international register)'을 합의하는 것을 목표로 한 듯했다. 국제연대위원회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중재자와 3번의 비대면 회의와 수십 차례의 이메일 교환을 통해 '대화' 개최 조건을 합의해 갔다. 하지만 일본측이 번번이 추가 조건을 내세우면서 결국 대화가 개최되지 못한 채 잉그리트 패런트는 임기를 다하고 말았다. 앞으로 어떤 과정으로 대화 프로세스를 진행할 것인지, 유네스코 사무국도 현재까지 별도의 안내가  없는 상황이다. 

2022년 일본의 공세적 외교의 결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규정이 개정되면서 앞으로 모든 기록물은 국가를 통해 신청해야 한다. 또 기록물 관련국이 이의를 제기하면 심사 프로세스에 들어가지 못하고 소위 '대화'라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일본이 등재를 반대하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에 대해서는 어떤 피해국이 신청해도 심사에 이르기도 전에 모두 좌절하게 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7개국 각각의 시민들의 모임인 14개 단체는 곳곳에서 나타나는 암초를 때로 피하고 때로 뛰어 넘으며 등재 신청 과정을 진행해 왔다. 지난한 시간을 거쳐 어렵게 신청한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 공동등재 추진이었기에 더더욱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강하게 공유하고 있다. 

국제연대위원회는 유네스코라는 장에서 벌어지는 역사전의 최선두에서 이 모든 불합리한 과정을 온 몸으로 견뎌내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대화 프로세스에 참여해, 결국 이겨낼 것이다. 또 세계적 기록물을 여러 위험에서 보호하는 것은 물론 '세계의 기록유산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완전하게 보존되어야 하며, 문화적 관습과 실용성을 적절히 인정해 모두가 방해 없이 영구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원칙과 비전을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지킬 수 있도록 관련 활동과 압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기록은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현재의 문제까지 포괄하며 모든 피해자들의 정의를 지키는 일임을 증명하는 '현재사(現在史) 기록물'이 될 것이다.

 

각주

  1. ^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현재사라는 용어는 주진오 교수가 쓴 『주진오의 한국현재사-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추수밭 2021.11. 03.)에서 차용했다.
  2. ^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결정문을 번역한 내용이다.
  3. ^ 일본측 등재 신청 문서는 다음과 같다. (1)미국공문서관(NARA) 소장 3건( 1.1 Japanese Prisoner of War Information Report No.49 on Oct. 1, 1944 0f United States Officeof War Information, 1.2 Allied Translator and Interpreter Section, South West Pacific Area (ATIS),1.3. South East Asia Translator and Interrogation Center (SEATIC) (2) 일본국립공문서관 소장 1건 (2.1 1945.9.4. 「米兵の不法行為対策資料に関する件」) (3) 일본방위청 소장 1건 (3.1 1938.3.4.「軍慰安所従業婦等募集に関する件」) (4) 일본 미디어보도제작연구센터 소장 (4.1 2006年昭和研究所特別年鑑(元軍人の証言資料))
  4. ^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행동은 그간 발굴된 공문서를 총리 관저로 보내는 운동을 했다. 일본위원회는 이 공문서 보내기 운동을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 자료로 판단해 그 문서의 사본을 등재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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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역사 분쟁 및 역사 대화를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 사업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hanhi8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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