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비엔날레 - 95광주통일미술제. 1995년 개최된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반대하며 광주비엔날레 기간인 1995년 9월 21일부터 10월 5일까지 망월동 5·18 묘역에서 열린 전시. 1995년 문민정부는 광복 50주년 및 미술의 해를 기념하고, 5·18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도시의 상처를 문화적으로 치유한다는 의미에서 광주비엔날레를 창설했다. 하지만 당시 광주미술인공동체 등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의 참여를 배제하며 비엔날레가 준비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안티비엔날레'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예술인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한 가운데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주관으로 개최된 안티비엔날레에서는 장승과 솟대, 1천 2백여 장의 만장 등이 전시되었다.
단체소개 전시성폭력범죄인 일본군위안부제의 진실과 정의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하여 피해여성의 인권과 명예 회복을 실현하고 나아가 성차별, 성폭력 없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시민사회를 만들고자 2002년 설립, 주로 경남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활동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치유사업: 정서적 안정 및 심리치유 사업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인권명예회복사업: 범시민탄원엽서보내기운동, 평화인권문화제, 피해자 소송지원 사업, 국제공조사업 -교육사업: 온오프 대중강연 사업, 심포지엄, 청소년공모사업, 온오프 전시회, 다크투어 -기록사업: 경남지역 피해전수조사사업, 경남지역 피해자료 아카이브 구축사업, 경남지역 해결운동사 기록사업, 경남지역일본군‘위안부’역사관 건립사업
조총련의 대척점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연대하여 재일조선인의 권익 옹호, 경제 발전, 문화 진흥, 일본 지역사회의 발전, 세계 평화와 국제 친선 등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해방 이후 좌우대립에 따라 재일본조선인연맹(조총련의 전신)에서 탈퇴한 우익계 청년들이 모여 1946년 10월 3일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 결성한 것이 시초다. 재일동포 북송 사업 반대 투쟁, 조총련 포섭 운동, IMF 사태 당시 외화 송금 운동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가토 슈이치(加藤周一. 1919~2008)는 의사 출신의 세계적인 문학평론가이자,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지성인이다. 가토 슈이치를 비롯해 오에 겐자부로, 쓰류미 슌스케 등이 주도해 2004년 결성한 ‘9조 모임(九条の会, 규조노카이)’은 일본 헌법 제9조(전쟁 영구 포기 및 교전권 부인)의 개정을 저지하고 평화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풀뿌리 시민 계몽·호헌 운동이다. 개인에 기반을 둔 자율적·지방 분권적 연대 형태를 띠며,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간 ‘9조 모임’의 지역·분야별 조직 수는 3,000여 개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일본 내각부의 ‘특정비영리활동법인의 정관’에 기재된 활동 분야를 집계한 통계를 보면 2026년 3월 31일 현재 ‘제 10호 인권 옹호 또는 평화 활동의 추진을 도모하는 활동’은 9,312개로, 전체의 19.55%인 것으로 확인된다.(https://www.npo-homepage.go.jp/about/toukei-info/ninshou-bunyabetsu)
일명 WAM(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주도했던 일본의 여성운동가 고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유산과 자료를 바탕으로 2005년 8월 건립된 일본 최초 전시 성폭력 자료관.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조사와 기록의 보존, 전시 및 심포지엄 개최 등의 활동을 해 왔으며, 일본 국내와 국제 연대 활동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제도의 실태를 알리고 일본 정부가 가해 책임을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해 왔다. (홈페이지: https://wam-peace.org/)
이들의 몸을 횡단하는 방사성 물질은 이들의 몸속 세포만을 변형시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딸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을 요구받는 여성들의 삶을 굴절시켰다. 한국 여성 원폭 피해자의 생애사의 많은 부분은 그들의 신체에 갊아 있는 민족과 국가, 원폭증 장애, 그리고 가족과 여성이라는 굴레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b id="docs-internal-guid-ede1365b-7fff-04eb-6d21-13d7c3b69f7e">전범 자필진술서라는 형식의 고백이 어떻게 반성이나 성찰의 계기로 작용했을까 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b>
『광주시한교협회회원명부』와 『광주시대한교민회회원명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해방 전‧후 중국 광저우 지역 ‘위안부’ 실태
피해자 증언이나 일본군, 일본 정부 차원에서 작성한 공문서와 달리 일본군인 개인 스스로 적나라한 가해 경험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전범 자필진술서'의 사료적 가치는 각별하다.
일본군은 왜 '위안부' 명부의 작성과 관리를 중시했을까. 일본군이 만든 '위안부' 관련 명부 종류와 연구의 의미를 살펴본다.
[2022 기림의 날 특집] 김문숙 회장의 별세로 인해 야기된 부산정대협과 역사관의 변화 노력은 최근 새로운 전환의 시점에 직면해 있는 국내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몇 가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조경희 (성공회대 교수)
베를린 ‘위안부’ 운동 40년과 소녀상 ‘아리’ 존치운동에서 확인하는 빛나는 연대
도미야마 다에코가 ‘위안부’의 삶에 공감하며 벌였던 예술-운동은, 당사자와 친밀한 관계가 없는 비체험자의 위치에서, 뒤늦게 당사자와 마주한 가해자의 위치에서 그 간극을 극복하고 연결되고자 형식과 내용을 혁신했던 과정이었다.
내셔널한 공동체의 안과 밖, 그 사이-틈새라는 어려운 자리/비판적 위치에서 한국과 일본 사회를 경험하며 ‘위안부’ 문제를 성찰해 온 야마시타 교수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이헌미 학술기획팀장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