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붙여진 고유 이름으로, 아르메니아어로 ‘용기’를 뜻한다. 평화의 소녀상이 해외에 처음 설치된 곳이 미국 글렌데일인데, 주민의 40%가 아르메니아계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큰 아르메니아 이주민 공동체가 있는 도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튀르키예에 의한 집단 학살의 기억을 공유한 아르메니아인들의 연대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결정적 동력이었다. ‘아리’ 이전 베를린 코리아협의회가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모형 소녀상 이름이 '용이'였는데, 용기의 '용'자를 썼다.
2011년 12월 18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측의 결단을 촉구했다. 일본 측은 “지혜를 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고, 오히려 한국 측에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소녀상이 세워질 것”이라고 대응하였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 정상의 격론 이후 한일 갈등은 한층 격화되었다.
2012년 3월 한국을 방문했던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한 해결안으로, 일본 총리의 사과, 주한 일본대사의 피해자 방문 및 사죄, 일본 정부의 경제적 보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 인정을 추가로 제안하였고, 이에 일본이 소녀상 이전, 수요시위 중단 등을 요구하면서 결국 협의에 이르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상하이사범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쑤즈량(苏智良)에 의해 1999년 설립된 연구소. 중국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유일한 연구소이다. 2007년 자료관을 개관하여 대중들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알렸으며, 2016년 10월에는 상하이사범대학교 캠퍼스 내에 '한·중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 동시에 '중국 '위안부' 역사박물관'도 개관하였다. 상하이사범대학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중국 본토에 세워진 첫번째 소녀상이자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세워진 소녀상이기도 하다. 2018년, 피해자들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22(二十二)” 의 감독 궈커(郭柯)와 함께 상하이사범대학교육발전기금회 내에 '위안부연구 및 지원’이라는 이름의 특별조성금을 만들고 피해자 생활 지원 및 ‘위안부’ 사업 연구 발전에 힘쓰고 있다.
공공과 지역사회의 협업으로 추진되는 경남 남해 ‘박숙이기록관’ 건립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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