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여성들의 주요한 기억방식이었다

김옥영 웹진 <결> 편집팀

  • 게시일2025.05.21
  • 최종수정일2025.05.21

"침묵이 여성들의 주요한 기억방식이었다"

제주4·3사건 여성 생존자 담은 다큐 <목소리들> 제작자 김옥영

 

[사진 1] 김옥영 PD  ⓒpopcon  

 

7년 7개월 동안 공식적으로만 3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국가폭력 사건인 제주4.3사건. 부족하나마 국가 차원의 진상 조사가 이뤄지고 해마다 희생자를 기리는 추념식이 열리지만 70년이 넘도록 여전히 어둠 속에 봉인되어 온 거대한 피해가 있다. 삼중 사중의 참혹한 고통과 피해를 겪고도 침묵해야 했던 제주 여성들의 삶이다. 다큐 <목소리들>은 처음으로 가려져있던 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결국 세상 속으로 불러내 위로한다. 이 여정의 전 과정을 함께 한 제작자 김옥영 피디를 만났다. 
 

 

영화 <목소리들> 
감독 지혜원 제작 김옥영 | 다큐멘터리 | 89분 | 개봉 2025. 4. 2.

1948년부터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는 죽음의 섬이었다.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이 공산 빨치산 소탕을 명목으로 섬 주민 3만여 명을 학살하고 집을 불 질렀다. 제주4.3사건 피해자의 상당 부분은 여성들이었지만 그들이 입은 피해는 오래 알려지지 못했다. <목소리들>은 한 헌신적인 제주 4.3 연구자의 길을 따라가며, 어둠 속에 봉인되어 온 제주 여성들의 경험, 침묵 속에 잠겨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 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Q : 반갑습니다.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생소할 때부터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해 오셨는데, 오늘은 영화 제작자로 뵙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로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 김옥영 : 이번에 제주4·3사건 다큐멘터리 영화 <목소리들>을 제작하고 각본을 맡은 김옥영입니다. 30년 정도 여러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는데, 주로 KBS에서 한국 현대사를 전문적으로 다뤄왔습니다. 2010년부터는 ‘스토리온’이라는 제작사를 설립해 직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사진 2] 영화 <목소리들> 포스터

 

 

"4·3사건을 다루게 되면 제주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Q : 그동안 수많은 다큐멘터리(이하 다큐)를 통해 반민특위, 5·16군사쿠데타, 10월유신, 5·18민주화운동, 12.12군사반란 등 한국 현대사를 가르는 굵직한 사건들을 대면해 오셨습니다. 이번에 제주4·3사건(이하 4·3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목소리들>을 기획하고 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 김옥영 : 2005년 4부작 <8.15의 기억>을 제작할 때였어요. 현대사 주요 사건의 쟁점을 실존 인물 인터뷰를 통해 조명해보는 작품으로, 처음으로 구술사를 다큐에 도입해 주목받았었죠. 마지막 4편 주제가 ‘해방공간의 이념 대립’이었어요. 그때 서북청년단 일원으로 부산철도노조 파괴에 참여한 분과 철도 노조원이었던 분을 찾아냈어요. 나레이션 등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두 분의 인터뷰만으로 당시 상황을 드러내기엔 무언가 미진해 당시 이념 대립의 희생양으로 4·3사건에서 남편을 잃은 한 할머니를 출연시켰어요. 근데 할머니는 4.3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지는 않고 그저 모른다는 말만 하셨어요. ‘나는 몰라, 아무것도 몰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라는 말만 하며, 4·3평화공원 위령제단 희생자 명패로 가득 찬 벽 아래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강력해서 잊혀지지가 않았어요.

Q : 시작은 그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으셨던 거예요?

🧶 김옥영 : 아니 세월이 지나면서 흐려졌죠.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0년 1월 공포, 2021년 2월 전면 개정안 국회 통과. 이하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된 후에도 이상하게 연결되는 작품이 없었어요. 그러다 몇 년 전에 제주 어느 마을에서 지내는 4·3위령제 르포 기사를 접했는데, 위령비에 적힌 여자들의 이름이 모두 누구의 처, 누구누구의 여...라는 식으로 쓰여 있다는 대목에서 딱 멈춰지더라고요. 왜 저 여자들은 이름조차 남길 수 없었나 생각이 들면서 자동적으로 그 할머니가 떠오르더라구요. 내가 만일 4·3 다큐를 하게 되면 제주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한 것이 그때였어요. 그 뒤로 4·3사건에 대해 조금씩 공부했죠. 2021년 여름 휴가 때는 제주를 찾아 숙소와 도서관만 오가며 자료에 빠져 지냈어요. 사례사례마다 기가 막혀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22년 제주4·3평화재단의 제작 지원 공고를 보고 기회구나 싶어 지혜원 감독을 설득해 참여를 했습니다.

 

[사진 3] 김옥영 PD  ⓒpopcon

 

 

뒷모습으로, 침묵으로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Q : 김은순, 김용열, 고정자, 홍순공 네 분의 할머니와 중간중간 연구자이자 안내자로 제주4·3연구소의 조정희 연구원이 등장하는 영화 <목소리들>은 "침묵이 여성들의 주요한 기억방식이었다"는 고발 같고, 절규 같고, 아우성 같은 조은 선생님의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살기 위해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에 다가가겠다는 영화의 의지와 선언 같았습니다.

🧶 김옥영 : 2022년 가을에 김경만 감독의 다큐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가 나왔어요. 4.3 당시 형무소로 끌려갔던 수형인 할머니들이 70여 년이 지나 청구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인정받은 내용을 담은 영화인데요. 재판에 이르기까지 할머니들이 겪은 삶을 인터뷰로 담아내고 그 사이사이 제주의 풍광을 심리적이고 은유적 이미지로 활용하는 형식이 저희 기획과 똑같았습니다. 심지어는 할머니 다섯 분이라는 숫자까지 같았죠. 내용이 다르더라도 이런 형식적 유사성은 후발주자에게 극히 불리합니다. 그렇다고 여성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근본을 바꿀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좀더 ‘젠더’적으로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Q : 그동안 4·3사건 피해에 대한 조사가 있었지만 젠더적인, 그러니까 성폭력 등의 피해에 대한 증언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 김옥영 : 제주에 소문은 무성했습니다. ‘그랬다더라’는 이야기는 실로 많아요. 문제는 직접 증언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다큐라는 장르가 ‘사실’을 다루는 장르인데 직접 증언이 없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래서 접어야 하나 이러고 있을 때 김은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지혜원 감독은 당시 출연자를 확정하기 위해 많은 할머니들을 만나보고 있었는데 토산리에서 마을 사람들과 젊은 여자들이 모두 끌려가 죽었을 때 오직 혼자 살아돌아온 할머니가 있다고 해서 찾아간 거죠. 그런데 이 할머니가 칠십 평생 당시의 일을 말씀을 안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4.3 진상조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분들이 찾아와 그날의 일도 증언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그때마다 발작을 일으켰다고 해요. 

Q : 그때 이야기를 꺼내면 김 할머니가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는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는데, 보면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긴장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 김옥영 : 할머니가 그러니 아드님이 촬영팀의 접근을 무척 경계하셔서 그때도 그저 한번 만나보자는 생각으로 간 거지 무슨 본격 촬영을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간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당시 할머니들을 만날 때 테스트 촬영 겸 촬영감독을 동반하고 다닌 것이 신의 한수가 되었어요. 할머니가 발작을 일으키며 이를 딱딱 부딪치며 몸을 떠는 그 모습을 찍어왔는데 영상을 프리뷰하는 순간, 강한 확신이 왔습니다. 이 할머니만 계시면 직접 증언이 없어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 말하지 못하는 / 말할 수 없는 그 고통이 직접 증언보다 더 강력한 파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은순 할머니를 발견한 후에 이 할머니를 중심으로 초기 기획안을 전면 재구성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 할머니의 휴먼 다큐를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특정한 스토리가 아니라 4·3 당시 제주 여자들이 보편적으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었기에 김은순 할머니 외에 각각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할머니들을 복수의 주인공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가장이 잡혀간 뒤 자식들과 살아남기 위해 눈물 흘릴 겨를도 없이 ‘짐승처럼 산 어머니’의 기억을 간직한 김용열 할머니, 철창에 온몸이 찔린 채 살아남은 후유장애인으로 원치않은 결혼을 하고도 평생 물질을 하며 양가를 부양해야 했던 홍순공 할머니, 도피자 가족이 겪어야 했던 설움을 안고 소녀가장으로 안 해본 일 없이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온 고정자 할머니가 그렇게 선택된 분들이었어요.

 

[사진 4-1] 영화 <목소리들> 스틸컷 

[사진 4-2] 영화 <목소리들> 스틸컷

 

 

생존 이후가 더 고달팠던 여자들은 왜 피해자가 될 수 없었는가

Q : 겉으로는 편안해 보이셨던 홍 할머니가 시부모님 제사상을 차리면서 건너방에 함께 준비한 친부모님 제사 이야기를 할 때 애기처럼 울음을 터뜨렸던 모습은 떠올릴 때마다 울컥하게 되는데요, 영화 <목소리들>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자 성취는 할머니들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 그 피해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부분인 것 같습니다.

🧶 김옥영 : 조정희 연구자가 강조한 말이기도 한데, <목소리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 대해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재단해왔는지를 드러냅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4.3희생자 범주는 사망자, 행방불명자, 수형인, 후유장애자 이 네 가지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성희롱을 당했든, 성폭력을 당했든,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했든, 그 일로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해도 다 해당이 안 됩니다. 더욱이 여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겪어온 고통을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관습적으로 의당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수치심 때문이기도 했고, 한 동네에서도 누가 ‘나쁜놈’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4.3사건 당시 사라진 수많은 남성 사망자의 빈 자리를 여성들이 메꿔 왔습니다. 산의 무장대로부터 주민들을 격리하기 위해 마을을 둘러 성담을 쌓았는데, 남자들이 없으니 여자들의 몫이었어요. 보초도 서고 군사훈련도 받았어요. 남자들이 없는 공간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마을을 재건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 모두 여자들의 일이었어요. 즉 제주 역사의 한 축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딛고 여자들의 의지와 노동으로 일구어온 것이었습니다. 이제라도 제주 여성들이 죽을 힘을 다해 힘겹게 밀고 끌고 온 시간을 헤아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치유라도 가능할 겁니다.

Q : 그 과정에서 조정희 연구자의 안내 덕분에 전체적인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김옥영 : 이 다큐는 증언을 하지 않는 김은순 할머니를 중심에 놓다보니 일반적인 방식과는 좀 다르게 스토리텔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김 할머니가 그날 목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의문을 던져 놓고 그 의문을 다른 사례들을 통해 추론해가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이른바 논증구조라고 하는 틀을 가져온 겁니다. 사건의 진행을 주욱 따라가는 방식이 아닌,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구축해가는 이런 구조는 논리의 단락과 단락 사이를 잘 연결해주지 않으면 이야기의 전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저 이야기하는 것 같아 혼란스러워지거든요. 그래서 그 사이를 연결해주는 안내자로 조정희 선생을 모셔왔어요.

오랫동안 4·3사건 속 여성들의 경험을 추적해 왔던 연구자였기에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셨어요. 특히 후반부에 조 선생님이 말하는 "제주의 할머니들은 4·3의 피해를 어머니, 아버지, 오빠 등 가족의 죽음으로만 이야기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기억들은 혼자서 감내해야 할 공포와 수치심이 돼 버렸다. 공허한 눈빛, 긴 한숨, 말라버린 눈물과 침묵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여성의 피해를 4·3이라는 국가폭력의 피해 범주에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볼 때"라는 의미의 내레이션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였습니다. 

  

항상 부차적인 존재였던 여자들을 드러내는 ‘1mm’의 힘

Q : 4·3사건에서 묻혀져 있던, 더 정확히는 지워져 있던 여성의 역사를 드러내는 작업에 남다른 사명감도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 김옥영 : 이 작업을 준비하면서 기획안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언급했는데요. 전쟁과 같은 어마어마한 사건에서도 여자들의 이야기는 후일담이 나오지 않아요. 4·3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건에서 여자들은 부차적인 존재로 취급 당해 왔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시대의 움직임이 제게 좀더 직접적으로 여자들의 이야기를 요구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래 전 통곡하던 할머니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고, 여성의 이름이 지워진 위령비에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허용하지 않았다면 제가 용기낼 수 있었을까 싶어요. 소수라도 처음에 한 사람이, 그 다음에 두 사람이 목소리를 내어온 덕분에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진전돼 왔잖아요. 제게 영화를 만드는 건 그런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누가 봐주든 그렇지 않든 목소리를 내고 누군가 들어주기를, 더 많은 목소리가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관행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스스로 정한 원칙이 있어요. 대신 제게 중요한 건 ‘1mm’예요. 역사를 1mm씩이라도 전진시킬 가능성에 제가 하는 일의 의미가 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별다른 흔적이나 파장을 남기지 못할 수도, 때로 1cm를 후퇴할 수도 있지만 1mm의 힘으로 전력투구를 해요. 그것이 영화나 다큐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변화를 일으키는 시작이기도 하고요. 놀랍게도 요즘 그 믿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며 반짝반짝 빛나는 2030 여성들을 보면서요. 

Q : 영화로 다시 돌아오면, 안개와 거친 파도 등 제주의 풍경을 다룬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부감으로 보여주는 제주의 밭담은 특히 놀라웠는데요, 그동안 변덕이 심한 기후에 적응해온 제주 사람들의 지혜가 빚은 장관으로 알았다가 사실 여성들의 땀과 눈물로 쌓아 올려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 김옥영 : 제주의 풍광 하나하나에도 기억이 녹아 있는 거죠. 제주의 밭담이 성담으로 변하고 성담이 밭담으로 변한 그 과정은 사실 스터디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한 사실이었습니다. 제주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런 사연이 바로 이 밭담이 제주 여성의 표상으로 여겨지게 하는 겁니다. 알고 보면 풍경은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타이틀백에 나오는 안개 자욱한 ‘잃어버린 마을’도 그런 곳이에요. 제주에서는 4·3 때 폐허가 된 후에 복구되지 못하고 버려진 마을을 ‘잃어버린 마을’이라고 하는데 중산간 지역에 꽤 있어요. 4·3의 슬픈 운명을 이곳만큼 오롯이 전하는 곳도 없을 겁니다.

Q : 포스터에도 이미지가 있는데, 할머니들이 겪은 당시의 기억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부분도 눈에 띄었어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악 할머니와 ‘미투’ 여성들을 담은 박문칠 감독의 영화 <보드랍게>가 연상되기도 했고요.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 김옥영 : 다큐는 현장을 다루는 것이 기본인데 역사 다큐는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라서 현장이 없다보니 늘 그림이 부족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약화 형식의 그림체를 쓰기가 싫었어요. 4.3이라는 비극적인 사건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러다가 독일 화가 케테 콜비츠의 목탄 드로잉을 보게 되었는데 딱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드로잉 화법으로 애니메이션을 하는 분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러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미술 작가 한 분을 찾게 되었습니다. 황선숙 작가신데요. 저는 그분에게 애니메이션을 단순히 상황 설명용으로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 할머니들의 말 속에 담긴 정서를 확장해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 구체적 상황 묘사보다 ‘반추상적 표현’을 요청했습니다. 황작가님은 다큐 삽화가 처음이라 어려워하는 지점도 있었지만 머리를 맞대고 같이 고민하면서 작업한 결과,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 5] 김옥영 PD  ⓒpopcon

 

 

4월 3일, 동시에 전국 132개 극장에서 수천 명 관객과 만나다

Q : 이전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연결된 작업을 한 적은 없으셨어요?

🧶 김옥영 : 2008년인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있을 때 김동원 감독의 <끝나지 않은 전쟁>에 작가로 참여했어요. 한국을 비롯해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에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인터뷰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일본이 점령하면서 ‘위안부’ 피해를 입은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를 발굴해 소개했어요. 당시 오스트리아에 거주 중이셨죠.

Q : 할머니, 가족들도 영화를 보셨을 텐데, 반응은 어떠셨을까요?

🧶 김옥영 : 전주국제영화제 월드프리미어 상영 때 김용열 할머니를 따님이 모시고 왔어요. 이분은 어릴 때 야학이라도 다녀서 공부를 하고 싶었던 건 ‘판사라도 되어서 4.3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던, 결기있는 할머니셨어요. 그런데 이분이 GV를 하면서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우시는 겁니다. "어머니가 아무한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해서 평생 4.3 이야기를 못하고 살았는데 영화하는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다 하고 나니 그렇게 속이 시원하다"면서 말이죠. 관객 모두가 함께 울었습니다. 

11월에 있었던 제주4.3영화제 때는 외지와는 달리 4.3 당사자 분들이라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독과 저는 좀 긴장했어요. 그런데 상영이 끝나고 장내 불이 켜졌을 때 그렇게 까칠했던 김은순 할머니의 아드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우리에게 씩 웃어주시는 거예요. 그 순간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김은순 할머니와 홍순공 할머니는 너무 편찮으셔서 못 오셨고 가족분들이 오셨는데, 다들 ‘고맙다’고 해주셔서 감동했습니다. 영화 중 ‘4·3 토산실상기’를 쓰셨던 김양학 할아버지는 영화가 나오기 전에 언제 볼 수 있냐고 계속 전화로 물어보셔서 난감했는데 이때 오셔서 마침내 영화를 보셨죠. 그런데 바로 며칠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   

Q : <목소리들>은 지난 4월 3일 전국 132개 극장, 165개 스크린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기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김옥영 : ‘100개의 극장’ 프로젝트라는 좀 특별한 방식으로 개봉했습니다. 극장에 의존하는 기존 배급 방식이 아니라 관객들이 직접 티켓을 공동구매해서 극장을 여는 방식인데요. <수라>(감독 황윤), <괜찮아, 앨리스>(감독 양지혜) 같은 영화들이 이미 같은 방식으로 개봉해 성과를 올리고 있었지만, 사실 이 영화들은 몇 달 전부터 천천히 상영회를 누적해오다가 관객수가 4,000~5,000명이 되었을 때 개봉한 것이라 저희들과 조건이 달랐어요. <목소리들> 영화의 의미를 살리자면 4월 3일 개봉을 해야 하는데 그걸 결정할 당시가 겨우 두 달 전이었어요. 그럼에도 관객추진단을 모집해 4월 3일 전국에서 한꺼번에 100개의 극장을 열겠다고 선언했는데, 마음 속으로는 안 되면 어떡하나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개봉 지원을 받지 못해 포스터, 웹자보, 보도자료 등도 배급사와 제가 직접 만들어야 했고, 관객추진단 모집하고 홍보하고 지원도 해야 하고, 정말 정신없던 두 달이었어요. 그런데 3월 14일 103개 극장이 확보돼 목표를 돌파했고, 4월 3일 당일은 자체 개봉 극장까지 합쳐 132개 극장 165스크린을 달성하게 된 거죠. 하루 사이 8,084명이 함께 영화를 보는 경험은 짜릿했습니다. 정말 관객이 이룬 ‘기적’이었습니다.

 

 

우리의 현재가 다가올 미래를 도울 수 있도록 

Q : 앞으로의 기대와 함께 다큐 <목소리들>은 피디님께 어떤 의미인지, 마지막 질문으로 여쭙습니다.

🧶 김옥영 : 지난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에서 말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 우리 사회에 거대한 공명을 일으켰잖아요.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우리가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만’ 비로소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짚고 싶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목소리들>을 보고 비로소 4.3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젊은 관객들이 많아 이 영화를 만들기 참 잘했다 싶습니다. 

외형적으로는 개봉이라는 걸 처음 경험하게 해준 작품이고, 내용적으로는 여성을 통해 4·3사건을 조명한 첫 번째 영화를 저희가 만들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 번 밖으로 드러난 목소리는 어떤 외압이 있지 않는 한 쉬이 지워지지 않아요. 저희 영화가 뒤를 잇는 작품들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극장 개봉은 마무리됐지만 공동체 상영은 계속 열려 있으니까 더 많이 봐주세요. 우리의 현재가 미래에는 과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현재도 미래를 도울 수 있도록 함께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사진 6] 김옥영 PD  ⓒpopcon 

 

 

Credit 

인터뷰어 : 손정미
인터뷰이 : 김옥영 
글/정리: 손정미 
사진 : 팝콘(popcon) 
인터뷰 일시: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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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옥영

1982년부터 30년 넘게 KBS, MBC, EBS, YTN 등에서 <광주를 말한다> <다큐멘터리극장> <인물 현대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백수십여 편을 집필한 한국 현대사 전문 다큐멘터리 작가이다. 2010년부터 다큐 전문 제작사 ‘스토리온’을 설립해 <길 위의 피아노> <부드러운 혁명> 등과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영화 <크로싱 비욘드>를 제작했다. 한국방송작가상(1992)을 비롯해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작가상(2014),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2018),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2023) 등을 수훈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겸임교수,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등을 거쳐 현재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이사를 맡고 있으며, 2020년 다큐멘터리 이론서 <다큐의 기술>을 펴냈다.

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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