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림의 날 특집 : 일본군‘위안부’ 역사, 우리 모두의 삶
오키나와의 할머니, 배봉기 님이 돌아가시고 7년이 흐른 뒤, 그 반평생을 취재하여 기사로 엮어낸 일본인 기자가 있습니다. 매 학기 대학 강의실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다양한 논점을 학생들과 토론하는 서울의 교수님들이 있습니다. 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역사를 알리고 소수자 혐오범죄 및 성폭력 방지 교육활동을 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군‘위안부’ 역사의 교훈은 저마다의 공동체와 시민적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변화를 촉구합니다. 2023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그 작지만 큰 실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1. 배봉기 씨가 오키나와에서 걸어온 전후(戦後)
2. 샌프란시스코 시민운동과 미국에서 일본군‘위안부’ 역사교육이 가지는 의미
3. 일본군‘위안부’ 역사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듣다 I
4. 일본군‘위안부’ 역사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듣다 II
Q.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칠 때 넓은 의미에서의 민족주의 담론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휘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학생의 생애사로부터 온 코스모폴리탄적인 생각이 강의실에서 더 많이 공유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회가 식민지 피해자 의식과 결합되어 민족주의가 강고한 나라인 건 사실이죠. 분단도 한몫을 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아직 강의실에서 이런 얘기를 열어놓고 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학생들이 대중화된 역사 이슈에 대해서는 정밀한 지식을 가지지 않으려 하는 특징이 있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해 가르쳐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김신현경
독일에서 한국학 공부하는 친구들을 가르칠 때가 생각납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은 그전부터 있었지만,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 싶었던 건 그 친구들을 만나면서부터예요. 그들은 굉장히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간호사인 어머니가 한국에서 오셔서 독일 남성과 결혼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위안부’ 이슈에 대해 굉장히 집요하게 실증적 태도를 요구하더라고요. 가령 위안소가 구체적으로 몇 개였냐는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 당시 저는 입장적 지식을 갖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돌아오니 당황스러웠어요.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게 숙제였습니다. 나중에 그 맥락을 이해했는데, 그 친구는 한국과 독일의 관계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었어요. 독일에서 한국학은 상대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학, 중국학과 비교해 볼 때 역사가 짧습니다. 이제야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대학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추세죠. 그래서 한국학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있는, 즉 ‘우리가 이 문제를 잘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저도 아시아 여성의 입장에서 ‘위안부’가 한일 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지식으로 펼쳐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특히 서구가 어떻게 개입돼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민주의와 냉전체제의 착종이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복잡하게 꼬이게 했는가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습니다.
장휘
학생들에게 민족주의적으로 쓰이지 않은 글만 읽히는데도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아직도 ‘한 떨기 소녀’, ‘꺾인 소녀들’이라는 표현을 써요. 온라인상에서는 그런 이미지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현재 ‘위안부’에 관한 논의는 굉장히 확장되어 있고 다른 상황들도 펼쳐지고 있지만, 여전히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관성이 강해 그것을 벗어난 논의를 강의실에서 전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고, 이것을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운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신현경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와 정치외교 이전에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라는 말은 물론 맞지만, 그렇다고 그 프레임 하나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식민주의와 냉전체제, 여성에 대한 폭력과 동원 등이 복잡하게 펼쳐진 장이라는 논의로 끌고 가려고 할 때 다른 맥락의 저항이 있어요. ‘한일 민족주의가 아니고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봐야 한다’는 수준에서 멈추고 싶거나, 그 정도로 이해하는 것만도 학생들로서는 충분히 고통스러운 거죠. ‘이것이 과거에 일어난 여성 폭력인데 피해는 아직도 제대로 된 인정을 못 받고 있고, 그럼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일은 언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지금 제가 가르치고 있는 교실에선 이런 식의 역동을 관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이 이슈가 가진 특수성과 주목성 때문에 종종 다른 반인권적 전쟁범죄 피해(강제동원, 원폭 피해자 등)와는 고립되어 다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불어 한일 양자관계에서의 민족주의적 대결로 반복해서 이슈화됐고요. 그러다 보니, 전쟁과 군사주의가 양산해 내는 성 정치경제에 대한 제도 비판이 비교사적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문 것 같은데요, 이러한 여성 인권 이슈로서의 특수성, 민족주의 이슈로서의 대중적 호소력, 전쟁의 피해에 대한 구조적 성찰보다는 개개 여성 피해자들을 반복해서 호명하는 문제 등등에 대한 선생님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김성운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하나의 역사로 남게 되겠죠. 역사 교수로서 그것을 가르칠 의무가 있는데, 결국 기억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 같습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가 여성을 강제 동원했다는 문서적 증거가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저는 강의실에서 문서의 가치와 구술 증언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쟁 당시의 문서가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전후에 일본군이 다 태웠기 때문이에요. 자신들의 범죄가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이란 걸 알았던 거죠.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직접적인 증언은 매우 중요합니다. 문서자료라는 것도 결국 처음에는 사람의 말에서 시작된 것이에요. 조선왕조실록도 ‘왕이 이런 말을 했다’라고 받아 적은 거잖아요. 따라서 문서화된 피해자분들의 구술 증언도 하나의 사료로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이죠.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후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연구를 하게 될 겁니다. 결국 기억이라는 것은 문서화, 역사화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도 발견할 수 있죠.
일본군‘위안부’ 피해가 과거의 일이라고 하지만, 피해자분들은 현재 살아 계시고, 또 전시 성폭력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1990년대의 세르비아 전쟁도 그랬고, 나이지리아 보코하람의 여학생 집단 납치 사건, 그리고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조직적인 강간이 있었던 것을 보면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성폭력 문제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어요. 따라서 이건 보편적인 문제이고, 그런 측면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Q. 정책 환경적으로는 올해나 내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들은 앞으로 강단에서 ‘위안부’ 이슈를 어떻게 가르치고자 하시는지요.
장휘
큰 맥락 안에서 민족주의와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려 해도 여전히 ‘힘없이 꺾인 꽃들’이라는 식의 이미지를 가지고 와서 받아들여요. 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위안부’가 어떻게 재현됐는지를 보면, 요즘에는 운동가로서의 면모도 부각되고 있지만 이전에는 그들이 겪은 피해와 고통이 주로 극화되어 재현됐죠. 그 기억들이 주변 환경이나 상황이 변화한다고 해서 한 번에 바뀔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미 국민 정체성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이 됐기 때문에 정치적인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없었던 일처럼 되진 않을 거예요. 따라서 그것을 어떻게 좀 더 수용 가능한 기억,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억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신현경
여성학적 관점에서 ‘위안부’ 이슈에 대한 해석을 더욱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의 몸과 성에 가해진 폭력이라는 것을 넘어서는 여성주의적인 분석과 연구가 많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지점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아요. 로라 현이 강 선생님의 책 『Traffic in Asian Women』(2020)을 보면, 1970년대 미국에서 강력한 페미니즘 제2물결 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전반적으로 제기됐을 때, 일본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온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와 기생 관광에 대해 글을 썼다고 해요. 그런데 그 당시 미국의 상황 안에서 그 글들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죠. 백인 여성의 성폭력 피해에 비해 아시아 여성의 피해는 문제 되지 않았던 겁니다. 아시아 여성의 성폭력 피해를 말할 때 ‘위안부’ 문제가 대표격이 된 것에 미국 중심의 아카데미 담론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미루어볼 때, 어떤 면에선 아시아 여성을 본질화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따라서 성폭력이 피해자의 정체성으로 환원되는 힘에 대한 비판은 계속 이어가되, ‘위안부’ 문제를 훨씬 더 보편적 지식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이 이것을 자신의 기억 또는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는 언어의 발명이 필요해요. 그런 점에서 연구하고 교육해야 할 지점은 무궁무진합니다. 이런 시도를 하고, 또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의 경험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장이 많이 열리면 좋겠습니다.
김성운
지금도 여전히 할머니들의 말을 부정하는 수사가 있잖아요. ‘그들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 매춘하러 갔는데 변명하는 거다’라는 식으로 매도하는데, 역사 자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기억이 어떻게 역사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메커니즘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을 들어보면 각자의 경험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요. 그런데 여전히 수정주의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그것이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외교 담론으로 재생산되고 있죠. 일본 정치가들은 끊임없이 망언을 하고, 일본의 사회/역사 교과서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여전히 교실에서는 ‘위안부’ 문제는 실존했고, 심각했고, 피해자들이 있었다는 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연구자들은 민족주의를 넘어 그다음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대학 강단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Q. 장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문제가 한국 민족주의의 중핵이기도 하지만, 일본 민족주의의 중핵이기도 하다는 게 중요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관점을 갖고 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정서적인 측면, 즉 대중화된 민족주의적인 감정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따라서 그에 대한 교육적 대안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김현경 선생님의 말씀처럼 ‘위안부’ 이슈 자체가 이미 국제화되었기 때문에 국민국가의 안과 밖이라는, 혹은 한일 관계나 아시아라는 지리적 경계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장휘
‘위안부’ 문제는 외국 학생들도 쉽게 이해하고 빨리 받아들여요. 다만 그들이 의아해하는 지점은 ‘이 문제에 반대할 것이 뭐가 있지?’라는 겁니다. 영화 〈주전장〉(미키 데자키, 2019)에 나오는 일본 극우들은 ‘국익을 위해 ‘위안부’ 문제에 반대하겠다’라는 어떤 전략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몸을 던진단 말이죠. 그들을 단순히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보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그들의 서사의 핵심과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극우 민족주의 담론 안에서 ‘위안부’ 문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왜 중요해졌는지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 글쓴이 김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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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대학교 역사학부에서 일본 TV 방송의 성립 과정을 냉전의 맥락에서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덕성여대 사학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논저로 「3.11 이후 일본의 원폭 영화: 「어머니와 산다면(母と暮せば)」, 「태양의 아이(太陽の子)」를 중심으로」(2022), 「Japan’s Got Talent: The Rise of Tarento in Japanese Television Culture」, 『Reconsidering Postwar Japanese History: A Handbook』(2023, 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현대 일본의 미디어, 핵에너지, 젠더, 퀴어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 글쓴이 김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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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 산업의 변동과 젠더화된 이미지 상품으로서의 배우에 대한 박사논문으로 이화여대 여성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디어 산업과 젠더화된 노동 주체성, 포스트 식민 냉전 체제하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 동원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베를린자유대 동아시아대학원 박사후연구원, 동 대학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서울여대 교양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 「냉전과 일본군 ‘위안부’ - 배봉기의 잊혀진 삶 그리고 주검을 둘러싼 경합」으로 2022년 한국여성학회 학술논문상을 수상했고, 최근 「일본군 ‘위안부’ 영화의 냉전 체제 재현 방식 - ‘아이캔스피크’와 ‘허스토리’」가 2023년 Seoul Journal of Japanese Studies 우수 게재논문으로 선정되었다.
- 글쓴이 장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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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글로벌 ‘위안부’ 운동이 한국 사회 민족주의 담론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문으로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동아시아 기억의 정치 관련한 수업을 연세대 언더우드학부/정치학과에서 강의하고 있고,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전북대 국제사회인문학부 등에서도 한국근대사, 한국학, 기억의 정치 등의 주제로 동아시아 정치, 민족주의, 사회운동, 포퓰리즘 등과 관련한 강의를 하고 있다.
- 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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