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환X박노자 온라인 대담 - 탈분단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위안부’ 문제 DAY 2

정영환메이지학원대 교수 박노자오슬로국립대학 교수

  • 게시일2019.03.21
  • 최종수정일2024.09.02

정영환X박노자 온라인 대담
탈분단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위안부' 문제 DAY 2

 

첫 번째 날 두 분의 답변을 들어보니 '탈분단적 시각'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남한의 '분단적 시각'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총련을 포함한 해외동포단체 등에서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운동 혹은 연구 방면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음에도, 남한의 주류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위안부' 문제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 내에서 출판되는 혐한서적에서 '위안부'는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의 단골 소재입니다. 일본과 맥락은 다르지만, 남한 역시도 마찬가지로 '위안부' 문제를 이용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남한의 언론에서는 누군가의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거나 책임을 물을 때, 주로 ''위안부' 문제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예시로 들곤 합니다. 헤이트스피치와는 상당히 다른 결이지만, 어떤 논리를 만들기 위해 '위안부' 문제를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선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으로 '위안부'문제를 다루는 운동 혹은 연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한에서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적 차원에서 '한-일 프리즘'을 벗어나 다양한 측면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기란 요원하기만 합니다.

Q1. 그렇다면, 두 분께서 생각하시기에 '한-일 프리즘'을 벗어나 다양한 측면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 운동적 측면에서 어떤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수요집회나, 소녀상 프로젝트 등으로 대표되는 남한의 대중적 캠페인이 보다 더 폭넓은 시각을 담기 위해선 어떤 부분이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Q2. 서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입니다. 본 대담 주제와 관련하여 정영환 선생님께서 박노자 선생님께 묻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박노자 선생님께서 정영환 선생님께 묻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박노자

A1.
네, 정영환 선생님께서 훌륭하게 지적하신 대로 사실 굳이 운동 진영에는 이렇다 할만한 '주문'을 할 것은 그다지 없습니다. 초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는 운동가들은 이미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인 전시 성폭력 문제의 일환으로 인식하여 그렇게 연대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보기에 귀중한 것은, 최근에 별세하신 김복동 할머니처럼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베트남에서의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들과 손을 잡고 연대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콩고 등지에서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도 - 위에서 정영환 선생님께서 지작하셨듯이 - 참 귀중한 성과죠.

문제는, 정영환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무엇보다 매체와 교육체계, 그리고 나아가서는 정치권입니다. 매체들은 예컨대 중국이나 필리핀, 아니면 파푸아뉴기니 여성들이 납치, 감금당하고 성노예화 당한 이야기를, 한국 독자들에게 과연 얼마나 자주 합니까? 아마도 다수의 한국인들은, '위안부' 피해자들 중에 네덜란드와 인도, 파푸아뉴기니 출신의 여성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과서에서도 '위안부' 전쟁 범죄의 국제적 성격이나 세계적 규모 등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돼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와 동시에 한국 정치권은 베트남 전쟁 시절의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적어도 대통령, 국회 차원에서 사과와 배상을 하고, 교과서에 한국 전쟁 시절의 한국군 범죄상을 정확히 기술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하는 등 일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성해야 할 것인가를 나서서 행동적으로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정영환

A1.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연구나 활동을 하는 저에게는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입니다. 한국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획일적이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인식은 일본 리버럴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혐한과 반일, 특히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등가로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못합니다. 한국 사회가 그간 '위안부'문제에 대해 지속적이며 대중적인 관심을 가져왔던 것은 사실이고 그 자체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역할을 다해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점을 유보하면서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남한에서의 대중적 캠페인이 국내용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애초에 증언을 하셨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일본문제입니다. 피해자의 출신지역은 다양하고 피해의 양상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공통된 것은 모든 피해자들이 일본군, 정확히 말하면 천황의 군대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성노예제 피해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들의 치유와 경험의 공유나 다양한 문화적 재현 등, 남한의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도는 귀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동시에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지는가, 이후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일본사람들이 자신들 나라의 과거의 만행을 직시하여 기억하는가, 이것이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쟁점이 됩니다.

아울러 Q1의 전제가 된 부분에 관해 보충 설명을 드리자면 총련을 포함한 재일동포단체에서도 여전히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주된 운동과제가 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총련 내부의 문화도 젠더 평등, 젠더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많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재일조선인 운동 내부의 젠더 불평등을 극복하려고 하는-주로 여성의-활동가들이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자진해서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에 입각한 실천을 시작하고 있다는 설명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최근 매해 4월 23일에는 배봉기 할머니의 증언을 기념하여 젊은 재일동포들이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한 다양한 액션을 벌이고 있는데 이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날은 1977년에 배봉기 할머니 증언을 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가 처음으로 보도한 날입니다. 남한에 국한된 시각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970년대 분단과 대립이 격렬했던 시기에는 남한에서 이런 증언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공유할 것은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이런 분단과 반공주의적 시각으로 인해 남한 사회가 외면해왔던 해방후의 역사를 다시 묻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Q. 박노자가 정영환에게 묻다

정영환 선생님께 여쭈어보고 싶은 것은, 일본 사회에서의 전쟁 범죄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지금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차적으로, 일반인들이 식민주의와 전쟁의 사실을 과연 어디까지 인식을 하고 있습니까? 젊은 일본인들의 상당수가 아예 조선과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조차도 배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었는데, 대체로 이 부분에 대한 대중적 '앎'의 형태와 지형에 대해서 한 번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A. 정영환이 박노자에게 답하다  

박노자 선생님, 중요한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이고 또 매우 우려하고 있는 점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젊은 일본인들이 일본의 식민주의와 침략전쟁의 관해 제대로 된 지식을 배울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원래 수험의 관계상 비중이 높지 않는 근현대사는 수업에서 안배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과서의 내용도 19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서 가해의 사실을 학교교육에서 가르쳐야한다는 기운이 한때 있기는 했는데 1997년이후 극우파의 역공의 결과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포함한 가해사실의 서술은 대폭 줄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근현대사에 대해 거의 백지 상태로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저는 대학에서 주로 1, 2학년 학생들을 접할 기회가 많은데 역시 식민지배나 침략전쟁의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지식이 거의 없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서점이나 인터넷 상에는 '혐한', '혐중' 서적들이 넘쳐 청년들이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도 처음 접하는 정보가 이런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진 대중역사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학생들이 애초부터 '혐한'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일본의 가해 사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기는 한데 그런 관심을 품은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할 통로가 너무나 좁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젊은 층을 포함한 일본 대중들의 '앎'의 형태를 생각할 때,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중요합니다만, 그와 더불어 사실을 인식하는 틀이나 프레임을 매체들이 어떤 형식으로 제공하는지에 더욱 주목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TV 등의 대중매체는 기본적으로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대외관계를 해석하는 메시지를 거듭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본문화, 혹은 일본인이 외국에서 얼마나 환영을 받고 있는지 일본을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주로 구미권출신자)이 일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등등, 소위 일본 '스고이(대단하다)'의 대합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침략이나 가해사실을 적시하는 비판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일본을 '혐오'하는 '반일'로 표상이 됩니다. 작년 2018년 10월의 강제징용문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응에도 나타나듯이 일본 사회의 전쟁 범죄 문제에 관한 인식은 반성은커녕 오히려 비판에 대한 반발이 우세합니다. 대법원판결 직후 아베총리는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결이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는데 주류 언론들은 기본적으로 이 주장에 동조하였습니다. 1965년의 한일협정에서 최종적으로 '해결'이 되었는데 한국이 이 약속을 어겼고, 이 판결은 한일관계의 악화를 초래한다는 분석이 TV나 신문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반일' 한국 때문에 외교관계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 '친일/반일'프레임은 상당히 강력합니다. 주류언론의 인식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도 그래서 '일부 매체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반일'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반론을 하게 됩니다. 즉 이 프레임 자체를 의심하고 일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제 관점에서 볼 때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게 지금 일본의 현실입니다.


 

Q. 정영환이 박노자에게 묻다

이번 대담에서는 주로 '분단/탈분단'이 주제가 되었는데 저는 박노자 선생님께 좀더 다른 각도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즉 한국자본주의와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한 질문입니다. 남한의 주류사회의 '위안부'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계급적 관점의 부재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족' 담론의 틀 내에서 '위안부'문제를 재현할 때 젠더적 관점과 함께 계급적 관점이 결여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자본주의하의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성착취 구조나 성매매'문화'와 일본군'위안부'의 재현방식에는 연관성이 있을 것인데 박노자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분석을 하십니까?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A. 박노자가 정영환에게 답하다

정영환 선생님, 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자주 생각해왔습니다. 상당수 한국 지식인들이 '민족주의가 문제'라고 재단하지만, 사실 '민족주의'라는 관념은 하도 다의적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할 때에 정확히 "어떤" 민족주의가 "어떻게" 문제되는지를 명기하는 게 중요합니다. 식민지라는 트라우마를 지니는 것도 '민족주의'와 이렇게저렇게 엮일 수 있는 부분인데, 식민지에 대한 집단적 트라우마를 '문제'로 삼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식민 모국이 과거에 대한 '책임'을 전혀 제대로 지지 않은데다가 한국의 지배층이 오랫동안 식민지적 습성들을 그대로 간직해온 부분들이 커서, 그런 트라우마가 크다는 건 그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일 뿐입니다. 진짜 문제, 그것도 아주 큰 문제가 되는 민족주의의 종류는 바로 자국 우월주의적인 태도와 국가주의적 태도, 소위 '국익주의'나 '대한민국주의' 같은 현상들입니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런 현상들이 또 한국 자본이 침투하고 있는 지역들, 특히 동남아에 대한 불량하고 우월주의적 태도와도 불가분의 연관을 가집니다.

세계체제라는 먹이사슬에서 한국 자본들은 이미 준핵심부와 같은 위치에 올라 있습니다. 구미권 자본들이 한국의 금융권 등을 좌우하는 동시에 한국 자본들이 동남아 등지에서 저임금 노동 착취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한국 언론들이 '국익'을 위한 베트남,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를 정당화하고 당연시합니다. '진보언론'들마저도 미얀마 등지에서의 한국 토건 자본들의 이권 챙기기 등을 반기고 있죠. 한국 자본과 함께 각종의 섹스관광 등의 국내의 가부장적 추태들이 대량 수출되고, 한국 언론매체에서 한국인 가족의 '며느리' 역할과 한국 남성들의 성적 욕구들을 '해결'해주는 동남아 여성상이 계속 등장됩니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와 같은 현수막들을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아류 제국주의라고 할만한 분위기 속에서는 동남아나 파푸아뉴기니 등지의 성노예들의 비극은 자연스럽게 대중의 눈과 귀로부터 멀어지죠. 쉽게 이야기하면 한국 자본이 구미권과 일본 자본의 뒤를 열심히 쫓아가는 상황에서는 국내인들의 "제3세계"와의 연대 의식 등이 계속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부단히 국내 여론 공간에서 문제 제기해야 할 중요한 부분입니다.

 

<DAY 3>에서 계속됩니다.

연결되는 글

글쓴이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양교육센터 교수. 역사학 특히 조선근현대사 및 재일조선인사 전공. 저서에 『朝鮮独立への隘路:在日朝鮮人の解放五年史』(法政大学出版局, 2013年), 『忘却のための「和解」:『帝国の慰安婦』と日本の責任』(世織書房,2016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임경화역, 푸른역사, 2016년)등이 있다. 

chong@gen.meijigakuin.ac.jp
글쓴이 박노자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오슬로대학교 인문학부 동방언어 및 문화연구 학과 교수, 한국학 및 동아시아학 전공. 현재로서 한국 민족주의 역사, 사회주의 운동 역사, 근현대 불교사, 사학사 등 연구 집중. 근작으로 <주식회사 대한민국>, <전환의 시대>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금년에  발표된 논문으로  "Sin Ŏnjun (1904–1938) and Lu Xun’s Image in Korea: Colonial Korea’s Nationalist Transnationalism", "The Rise and Fall of the New Right Movement and the Historical Wars in 2000s South Korea" 등이 있다.

vladimir.tikhonov@ikos.ui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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