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여성역사관’ 기탁 자료 아카이빙 과정과 고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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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여성역사관 김문숙 기탁 자료 아카이빙 과정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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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여성역사관’ 기탁 자료 아카이빙 과정과 고민들
‘김문숙 아카이브(가칭)’ 필드노트

 

1998년 일본 야마구치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에서 열린 ‘관부재판’은 특별하다. 비록 2심에 해당하는 고등재판소와 최종심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중 원고의 청구가 유일하게 인용된 판결이기 때문이다. 영화 <허스토리>는 이 관부재판 실화를 작품화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이 <허스토리>의 한 가운데에 배우 김희애가 분한 ‘김문숙’이 있다. 관부재판 당시 원고 단장이었던 김문숙은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부산여성의전화 등과 함께 한 여성인권 운동가였고, 2004년부터는 온전히 사재만으로 ‘민족과여성역사관’을 세우고 운영하며 역사적 정의를 회복하는 일에 매진한 사회교육가였다. 생애 마지막까지 활동과 배움을 멈추지 않다가 2021년 세상을 떠나며 김문숙은 ‘위안부’ 문제 관련 자료부터 여성인권, 역사 교육을 담은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높은 사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 때문에 한동안 갈 곳을 찾지 못했던 그의 기록물과 자료는 2022년 기탁 협약을 통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로 이관됐다. 그리고 2024년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에 정식 기탁된 기록은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작업에 한창이다. ‘연구팀’을 꾸려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앵커랩 전미영 대표가 관련 소식을 전해 왔다.

 


영화 <허스토리(Herstory)>는 1990년대 일본을 상대로 한 ‘관부재판’의 실화를 바탕으로 일본군‘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 여성들의 증언과 투쟁을 생생히 그려낸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진실을 역사 앞에 세우고자 분투한 한 인물이 있다. 바로 김문숙이 그 주인공이다. 김문숙은 1991년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를 결성하고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1992년부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과 (사)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으로서 관부재판을 이끈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에서 2022년부터 진행한 아카이브 및 자료 연구나 관련 자료들을 활용해 창원대학교박물관,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개최한 전시들은 김문숙의 활동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김문숙은 1962년 일본어 통역 안내원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뒤 ㈜아리랑관광여행사를 성공적으로 창업·운영한 1세대 여성 기업인이었으며,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기업가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던 사회적 기업인이기도 했다. 또한 1986년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 부설 기관으로 개통한 〈부산여성의전화〉는 2000년까지 총 1만5,390여 건의 상담을 진행하며 부산 지역의 여성·가족·청소년 문제를 지원하고 의제화하였다. 특히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가 전무하던 시기, 김문숙은 자택을 개방해 숙식 공간을 제공할 만큼 헌신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김문숙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재를 들여 2003년 건립하고 운영해 온 민족과여성역사관에 머물며 청소년들을 맞이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여성 인권 의제는 때로 사회적 관심을 모으며 논의되었으나, 오랜 시간 동안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외면받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역사관은 여러 차례 존폐의 위기를 겪었지만, 김문숙의 차녀 김주현을 비롯한 가족과 지역사회가 그 뜻을 이어받아 역사관 유지와 운영을 위해 힘을 써왔다. 그렇게 20년의 시간을 버티고 견디면서, 역사관은 점차 김문숙이라는 한 명의 인물이 아닌, 부산 지역사회와 한국 사회가 함께 만들고 구성해온 사회적 기억의 공간이자 공공역사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필자와 연구팀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의 위탁 연구진으로서, 민족과여성역사관이 기탁한 자료를 정리하고 디지털아카이브로 구축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소멸 위기의 자료들을 구제하다

본 연구팀이 민족과여성역사관의 자료를 이관해 온 시점은 2023년으로, 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개최한 전시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Herstory>가 막 마무리되던 무렵이었다. 2022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일본군‘위안부’문제 관련 민간기록물 조사·전시 사업-경상도 지역-> 사업으로 예산을 편성해 ‘역사관’의 자료가 창원대학교박물관 유휴 공간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포장도 뜯지 못한 상태의 상자들은 입주해 있던 건물의 재건축으로 인해 긴급히 이사를 감행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었다. 

초창기 작업은 어떤 유형의 자료가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있는지를 파악하고, 향후 자료 단위의 목록화가 가능하도록 묶음 단위로 자료 목록을 작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유형은 (공)문서, 사진, 재판자료, 신문스크랩, 개인소장 유품, 전시자료(액자, 전시판넬 등), 팜플렛, 수필원고, 출판도서, 학술자료(학술지, 학위논문 등), 포스터, 잡지와 같은 간행물, 서한, 비디오테이프, 필름, 상담일지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이 했던 작업의 대부분은 장갑과 마스크를 쓰고 자료가 가득 찬 박스를 2인 1조로 옮기며 말 그대로 ‘코를 박고’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료 가치 판단에 참고가 될 만한 내용들을 꼼꼼히 자료 목록에 기록해두었다. 이와 함께 살펴본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동안 정리된 바 없었던 김문숙의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였고, ‘김문숙 아카이브’의 자료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을 발굴하여 제시하였다.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와 함께 자료 목록을 바탕으로 향후 디지털아카이브 작업의 방향과 체계화가 가능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디지털화의 방향과 프로세스, 아카이브814 시스템과의 연계 방안을 고민하였다.

 

[사진 1] 종이상자로부터 자료를 빼서 정리하는 2023년도 연구진 모습 (제공 : 전미영)

 

2022년 '민족과여성역사관' 철거와 자료 이관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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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디지털 전환 작업의 시작과 자료 해제화

이듬해 2024년부터 본격적인 디지털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필름과 비디오테이프 등 보존 작업이 시급한 자료를 우선 스캔하여 보관하는 조치를 진행해 사진 자료 약 2,682컷, 영상 자료 29건을 디지털로 전환했다. 또 2022년 창원대학교 연구팀에서 별도로 선별해둔 자료 452건(약 1만7,465면)에 대한 세부 목록화 및 디지털 스캔을 진행하였다.(당시에는 452건이었지만, 추후 자료를 검토하면서 목록은 자료를 열람하는 이용자들이 원활하게 자료를 찾고 살펴볼 수 있도록 600여 건으로 더욱 세분화하였다.) 자료의 세부 목록에는 아카이브814의 메타데이터 항목을 포함해 29개 항목의 메타데이터가 기술되었으며, 해당 작업은 1,260여 쪽의 보고서로 정리되었다.

민족과여성역사관의 자료 대부분은 두께, 형태, 재질이 일정하지 않은 비정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높은 수준으로 발전된 최근의 자동화 스캔 방식을 도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편지봉투 안에 접혀서 동봉된 편지지, 서류 사이에 끼워져 있는 메모지와 명함 등의 부속 자료들, 이면지에 작성된 수기 메모 등 다양한 기록들을 꼼꼼히 살피고 목록 기술에 포함해야 하는 실무적 요구사항이 있었다. 작성자를 알 수 없거나 생산 시기가 확인되지 않는 자료의 경우 기존 문헌 연구와 다른 연계 자료를 검토해 추정하거나, 자료 속에 언급된 사회적 사건을 1차 사료와 교차 검토해 파악해야 하는 연구자의 역량이 요구되었다.

[사진 2] 부산·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상담과 지원 활동. 
좌 : 할머니 지원활동 사진 (자료번호 I0040, 2000년대, 구체적인 장소는 미상), 
우 : 이막달 할머니 방문일지 (자료번호 D0336, 2006.6.19.)

 

[사진 3] 부산지역 성폭력 피해자 구제 지원 관련 기록
좌 : 이형자 사건 경향신문 기사 (자료번호 D0074, 1993.6.24.)
우 : 의붓딸 성폭행 사건 관련 박인호 부장판사에게 보내는 항의문 (자료번호 D0079, 1995.10.21.)

 

[사진 4] 민족과여성역사관 설립 관련 자료 1
좌 : 역사관 개관 당시 사진 (자료번호 I0032, 2004)
우 : 학생들 방문 사진 (자료번호 I0032, 2015.1.8.)

 

[사진 5] 민족과여성역사관 설립 관련 자료 2
좌 : 수요시위 사진(자료번호 I0035)
우 : 아시아국제연대 사진 (자료번호 I0049, 1991.11.26)

 

 

유기적 협력과 다원적 노력을 통한 아카이브 성과 창출

연구에 참여하는 모두가 어려움보다는 더욱 큰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자료가 직접 말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수행하는 일의 대부분이 김문숙 선생께서 생전에 요청하고 기대하셨던 바의 일부임을 인식하면서, 이번 연구가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눈물이 모여 이루어진 귀중한 기회임을 다시금 실감하였다. 그래서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내실 있는 성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았던 곳은 자료들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보고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본 연구 사업의 주체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와 함께, 현재 (사)정신대문제부산대책협의회의에서 김문숙 선생의 뜻을 이어가고 있는 자료 기탁자 김주현 현 이사장과 설성두 유족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두 분은 유품이라고 할 수 있는 자료들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데 있어 전적으로 연구팀을 신뢰했을 뿐 아니라, 복본 자료나 일반도서 등 일부 자료에 대해서는 과감한 제척(除斥) 결정을 내릴 만큼 일관되고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민족과여성역사관의 자료가 사랑하는 가족의 유품이면서도 기탁 이후에는 ‘공적 기록’으로서 관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에 부응해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도 기탁자의 의도와 이해가 연구 사업의 방향과 속도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소통하였다. 노력의 결과, 2022년 창원대학교박물관 전시에 이어 2025년 부산대학교박물관 특별전과 같은 의미 있는 협력의 성과가 나타났다. 디지털 아카이브 콘텐츠 생산과 관련해서도, 2025년 현재까지 4,000여 건이 넘는 자료 목록과 1,000여 건의 메타데이터와 자료 해제가 작성되었다. 이는 아카이브814에서 현재까지 공개하고 있는 기록물 규모를 상회하는 분량이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수집 단계에서부터 메타데이터 기술과 컬렉션 기획까지 직접 생산해낸 1차 문헌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현재까지 정리하고 있는 메타데이터와 자료 해제는 오탈자와 오류 검증, 윤문 작업을 비롯해 자료 기술의 일관성과 정확성을 확인하는 정합성 검토, 필수 항목의 누락 여부와 충실성을 점검하는 완결성 검토, 그리고 민감정보 확인 등의 절차를 거쳐 향후 아카이브814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 6] 좌 : 자료 기탁과 관련해 회의 중인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 연구진과 김주현 이사장·설성두 유족 대표
우 : 자료와 관련한 구술 조사에 참여하는 김주현 이사장

 

[사진 7] 좌 : 창원대학교박물관 ‘관부재판 끝나지 않은 Herstory’展 (2022)
우 : 부산대학교박물관 ‘어둠에서 빛으로’展 (2025)

 

 

 

민족과여성역사관 아카이브 자료의 분류와 선별

지난 2023년 연구팀이 제시한 자료 분류체계는 민족과여성역사관 기탁 자료의 성격과 활용 목적을 기준으로 네 가지 대분류와 여러 세부 중분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자료의 맥락적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첫째, ‘여성운동가 김문숙의 생애’ 범주는 출생과 가정환경, 학업과 정치적 각성, 한국전쟁 및 전후 혼인과 가정생활, 통역안내원 면허 취득과 ㈜아리랑관광여행사 창업 등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로 구성된다.

둘째, ‘부산지역 여성인권운동’ 범주는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 설립, ‘여성의전화’와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 경남지역 여성 노동·인권운동 지원, ‘부산여성상’ 제정과 한국수미다전기 노조 활동가 지원, 부산정대협 설립과 정신대 신고 전화 개통, 여자근로정신대 및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활동 등 지역사회 기반 여성운동의 실천을 담고 있다.

셋째, ‘관부재판과 국제연대’ 범주는 1세대 일본군‘위안부’ 시민 활동과 관부재판, 부산 정대협 설립, 근로정신대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국제연대활동, 관부재판 1심 준비와 실행(1993~1998년) 등 국제적 연대와 법적 대응 과정을 포괄한다.

넷째, ‘민족과여성역사관’ 범주는 역사관 설립 과정, 지역사회 문인 활동, 청소년 성교육 운동, 신문 스크랩 자료 등 기관의 정체성과 사회적 확장을 보여주는 자료들로 구성된다.

 

 

 

민족과여성역사관에는 관부재판을 포함, 한국 여성인권운동사를 보여주는 1차 사료가 다수 보존되어 있다. 예컨대 1996년 7월 25일 제15회 구두변론에서 양금덕이 증언한 속기록 등은 재판 경과와 피해자 증언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아울러 강제동원 관련 소송 문건으로 「후지코시 강제연행 재판 항소장」 등이 있으며, 1991년 11월 23일 ‘조선인종군위안부를생각하는모임(朝鮮人従軍慰安婦問題を考える会)’에서 발간한 정신대문제자료집 등은 1990년대 활발히 진행된 일본군‘위안부’ 관련 국내, 국제 시민활동의 전개를 보여준다. 재일교포 2세 박수남 감독의 포스터, 1993년 아내폭력정당방위 사건 구명운동 자료 모음,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호적 문서 및 세대별 주민등록표 등 민감 자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온라인 공개가 어려운 자료 중에도 여성인권운동사 연구 가치를 지닌 자료가 다수 있다.

민족과여성역사관 기탁 자료 가운데 가장 민감하게 다뤄야 할 것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생산된 ‘성폭력피해상담소(부산여성의전화)’ 상담일지이다. 이 자료에는 피해자의 신상정보와 구체적 피해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직접적인 공개 결정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당시 새롭게 도입된 ‘전화상담’ 제도의 운영과정, 제도화 과정에서의 내부 고민과 실천 기록을 집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는 크다. 따라서 개인정보 보호를 전제로 한 부분공개(익명화, 비식별화) 또는 연구자 제한 열람 방안이 병행 검토될 것이다. 

또 김문숙이 수십만 장 단위로 남긴 방대한 신문스크랩 역시 활용에 고민이 필요한 자료다. 스크랩은 자료량이 방대하고 체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당장 공개·활용에는 한계가 있지만, 특정 시기와 주제에 대한 여론 동향과 여성운동 관련 보도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원천 자료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두 자료 유형을 제외하고 문서·도서·보고서·리플렛 등 비교적 정리가 용이한 자료를 우선적으로 정리해 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신문스크랩에 대해서는 기사 자료 인식(OCR), 자동 분류, 메타데이터 작성에 최적화된 디지털화 시스템을 개발 중이며, 장기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반 기술을 반영해 체계적 활용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

 

 


여성인권 운동사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로서의 가치

민족과여성역사관의 자료 가운데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의 1세대 여성운동가 김문숙의 생애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김문숙은 1927년 1월 12일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의 2남 4녀 중 장녀로 성장하였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미곡창고(현 CJ대한통운)의 상무로 재직하였고, 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차별 없이 교육해 김문숙은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교원 시험에 응시해 교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1944년 모교인 영천남부공립초등학교(현 영천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했으나 정치적 혼란으로 학업이 원활하지 못했고, 대신 정치인들의 연설을 듣고 당대 문인들과 교류하며 정치적 각성을 경험하였다. 이 시기 그는 시인 정운 이영도, 아동문학가 향파 이주홍 등과 교류하며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화동문회, 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 등과 함께 문학·사회 활동을 이어갔으며, 부산정대협 활동과 관부재판을 통해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문숙의 생애 자료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은 한 여성이 학생·교사·주부·기업가의 삶을 거쳐 중년 이후 여성운동가로 나아간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현재까지 확인된 김문숙의 개인 서신은 약 500건이며, 그중 절반 이상은 1990~2000년대에 작성되었다. 초청장과 연하장이 대부분이지만, 당대 여성운동가들의 교류 흔적과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김문숙에게 감사와 당부를 전하는 편지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서신 자료는 단순한 개인 기록을 넘어, 지역 여성운동의 관계망과 그 확산 과정을 밝히는 단초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향후 과업에서는 김문숙이 활동했던 부산이라는 공간적 무대, 그리고 관부재판이나 여성의전화 같이 구체적인 주제와 여성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피는 동시에 그 안에 담겨있는 보편적 가치와 시대적 정서에 대해서도 이해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김문숙을 통해, 민족과여성역사관을 통해 그때와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것이다.

 

기탁자 : 김주현 
(사)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현 이사장으로, 부산 민족과여성역사관을 설립한 수향(樹鄕) 김문숙 선생의 차녀이다. 2022년과 2024년, 민족과여성역사관의 기록물과 자료를 국가로 이관하는 절차를 이행하기 위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자료 기탁을 추진하였다. 이로써 여성인권 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자료들을 디지털아카이브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 글쓴이 전미영
    사회학과 인류학을 전공하였으며, ‘유산가치의 전환과 확장’을 지향하는 사회적기업 앵커랩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발주한 「민족과여성역사관 소장자료 1차 재분류 및 2차 목록화」와 「민족과여성역사관 소장자료 세부 목록화」를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