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 나는 학생들에게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실제 경험을 수업에 반영하려 노력한다.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학생들이 깊이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케어(CARE)가 진행하는 2026 역사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을 때 기간(5월 27~30일)이 짧아 전문성을 높이기는 어렵겠지만 반드시 가르쳐야 할 역사적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지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미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 다섯 명과 함께 연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연수 기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인권, 민주화, 그리고 진실과 정의를 향한 한국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을 엿볼 수 있는 현대사의 주요 역사·교육 현장을 방문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이 ‘나눔의 집’이었다.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나눔의 집은 낮은 언덕과 작은 농경지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곳이었다. 분주한 서울 도심과 달리 고요했고, 파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더해져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담고 있는 비극적인 역사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묘한 이질감을 안겨주었다. 역사관 안에는 일본군 위안소가 실제 크기로 재현돼 있었다. 간이 침대와 작은 세면대만 놓인 비좁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오랜 세월 수많은 여성들이 겪었을 고통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게 짓눌렸다. 그들이 견뎌야 했을 두려움과 절망, 분노를 ‘감히’ 헤아려 보았다.
역사관에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사연 많은 생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절망을 넘어 희망까지 함께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더욱이 많은 피해 생존자들이 평생 모은 재산을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 지원, 캄보디아 식수시설 건립, 학생 장학금, 나눔의 집 역사관 운영 기금 등으로 기부했다는 사실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역사관 밖 언덕의 추모공원에서 인상적인 작품을 만났다. 일본 국기에 휘감긴 채 거대한 손에 끌려가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담은 ‘그날(That Day)’이라는 조형물이었다. 몸을 뒤로 젖히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을 소녀의 얼굴에 어린 수치심과 체념… 이 평범한 소녀가 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 채 성노예가 되어도 되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사실이 참담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떻게 그곳에 끌려갔을까, 살아 돌아왔을까. 그런 물음들이 꼬리를 물었다.
교사인 나는 국가나 집단의 정체성 혹은 이해관계와 깊이 연결된 사건처럼 다루기 불편하거나 충돌하는 ‘어려운 역사(difficult history)’를 다룰 때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워왔다. 하지만 이번 방문은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소 하트마운틴, 리틀빅혼 전적지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찾을 때마다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나요?”라는 학생들의 물음에 스스로 납득할 답을 찾지 못한 적이 많다. 이번에도 나는 답보다 훨씬 많은 질문을 안고 나눔의 집을 나섰다. 역사적 현장이 지닌 힘은 교실에서 그대로 재현하기 어렵고, 모든 학생을 현장으로 데려갈 수도 없다. 그럼에도 왜곡 없이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그 의미를 전하는 것이 교사로서 내게 주어진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역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인 나도 감정적으로 지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눔의 집을 방문하기 하루 전, 우리 역사교사 연수단은 서울 도심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마주할 현장에 함께 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수요시위였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강하게 촉구하는 엄숙한 집회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오히려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가 살아 있는 자리였다. 그날 집회를 주관한 단체는 지역 학교의 학생들이었는데, 젊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집회를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에 특히 놀랐다. 학생들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와 표정만으로도 이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교육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한 프랑스 출신 학생의 발언도 인상 깊었다. 피해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현한 그는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와 책임 있는 배상을 촉구하는 데 세계 각국의 젊은 세대가 함께해야 하며,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인신매매와 성착취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는 가톨릭 수녀들도 함께했고, 점심시간에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학생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무엇보다 그날 집회를 이끌던 학생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수요시위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여전히 현재의 역사로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 역시 여러 집회와 시위 현장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하루로 끝나는 일회성 행사이거나, 일정한 주기 없이 필요할 때마다 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온 시위라니! 수요시위는 ‘위안부’ 문제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함께 기억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켜주는 특별한 현장,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행사가 아니라 매주 새로운 참여자들과 함께 현재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실천이자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이어가는 과정이었다.
수요시위를 마치고 들른 민주화운동기념관 전시에서는 “민주주의에는 결승선이 없다(Democracy Has No Finish Line)”는 문구에 시선이 오래 멈췄다. 실제로 민주주의는 어느 한 시점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의 참여와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만들어가야 하는 지난한 과정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민주화운동에서 여성들이 수행한 역할도 눈에 띄었다. 한국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동시에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들의 기여가 역사 교과서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떠올랐다. 보다 온전한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애쓴 모든 사람들의 주체적인 역할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한 우리의 시각과 마주하고 그것을 성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수 마지막 날에는 ‘2026 한·미 역사교사 컨퍼런스’가 열렸다.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각 두 명의 교사가 발표했다. 첫 발표를 맡은 풍덕고등학교 김지현 선생님은 한국의 역사 교과서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사실에 근거해 어떻게 다루는지 소개했다. 그 중에 “일본은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와 점령지의 여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강제 동원하였다. 피해자들은 구타와 고문, 성폭력 등 극심한 인권침해 속에서 참혹한 삶을 강요당했다”고 서술한 교과서 사례도 있었다. 나는 원주민을 ‘야만적’이라 표현하거나 노예제를 완곡하게 서술하곤 하는 미국 교과서를 떠올렸고, 한국 교과서가 역사를 더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다.
두 번째 발표자인 하안북중학교 문순창 선생님의 “패배를 강요하지 않는 대화: 교실 속 혐중 논쟁을 넘어서”라는 주제도 흥미로웠다. 특히 학생과 토론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기고 싶었던’ 마음과 동시에 느꼈던 부끄러움 등 논쟁적인 주제를 가르치는 역사 교사의 고민을 솔직하게 고백한 문 선생님은 감정과 정치적 입장이 얽힌 문제는 객관적 사실만으로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나 역시 비슷한 주제로 지역사회로부터 ‘논쟁적인 문제를 수업에 끌어들인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어 깊이 공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학생들과 신뢰를 쌓고,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두고 의견을 나누는’ 토론 문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데 우리는 뜻을 같이했다.
컨퍼런스의 마지막 순서는 발표자들과 미국 교사들이 함께한 패널 토론이었다. 사우스다코타대학교 징 윌리엄스 교수의 부드러운 진행과 동시통역 덕분에 한국과 미국 교사들이 언어 장벽 없이 활발히 의견을 나눌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두 나라 교사들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뺏긴 학생들의 집중력과 낮아지는 학습 동기, 학교와 가정 간 소통의 어려움은 양국 교사 모두의 과제였다. 청중으로 참석한 한국 교사들은 특히 내가 미국의 농촌 지역 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도시 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신들과 비교한 여러 질문을 해주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미국 사회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 그리고 다양성이 미국의 중요한 강점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규모가 작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농촌 지역사회에서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잘못된 정보나 편견이 쉽게 확산되는 만큼, 이를 바로잡는 일도 쉽지 않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함께 온 미국 교사들의 교육환경과 수업 경험은 물론 각 교사가 처한 학교의 상황과 학생들의 특성에 맞춘 구체적인 교육 사례와 질문 등이 다채롭게 오갔다. 서로의 교육 현장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이 경험을 수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학생들의 특성과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같은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교실에 있는 학생들에 따라 전달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전에도 홀로코스트, 대서양 노예무역과 동산 노예제(動産 奴隷制, chattel slavery)의 참상, 미국 원주민 학살과 같은 아픈 역사를 가르쳐 왔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연결된 주제를 다룰 때에도 그동안 활용해 온 수업 전략을 바탕으로 접근할 계획이다. 그중 하나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피해자와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먼저 들려주면, 학생들은 그들을 단순한 역사 속의 숫자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한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방대한 통계와 희생자 수에 압도되어 인간적인 고통과 삶의 이야기가 가려지지 않도록 충분한 맥락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평소 학생들과 충분한 신뢰 관계를 쌓아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용기 있는 배움, 즉 학생들이 어려운 질문을 안심하고 던지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어려운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명확한 답이 없는 역사적 문제와 그로 인해 생기는 불확실성을 학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추가적인 준비도 필요할 것이다. 나 역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역사와 마주하며 느꼈던 혼란과 불편함을 학생들과 솔직하게 나누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인 나 또한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배우는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여줄 때 학생들 또한 혼란과 불편함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내가 담당하는 여성학 선택과목에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룰 예정이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이 주제를 역사 속 개별 사건으로만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다양한 인권침해와 집단적 폭력,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와 가까운 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신매매 문제와 연결해 생각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또한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 일본군과 일본 정부의 관련 기록, 유물 사진 등 가능한 한 객관적인 사실을 담고 있는 1차 사료를 활용해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삶과 내가 수요시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경험도 학생들과 함께 나눌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군 성노예라는 참혹한 역사 속에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한 용기와 연대, 그리고 희망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학생들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학생들이 어려운 역사적 주제를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마주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이끌고, 수업을 마친 뒤에는 충분한 대화와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 각자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그것이 ‘어려운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임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