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메모리 시대 역사학자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황병주 편사연구관 인터뷰

황병주 이헌미

  • 게시일2022.10.24
  • 최종수정일2022.11.25

영화 〈코코순이〉(이석재, 2022)는 이제까지 나온 일본군‘위안부’ 다큐멘터리와는 상당히 다른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말 연합군 포로심문보고서 49호에 ‘KOKO SUNYI’로 기록된 한국인 ‘위안부’ 여성의 삶을 추적하면서, 영화는 무엇보다 매우 트랜스내셔널한 시야를 보여준다.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로드무비이자 탐정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코코순이〉의 ‘주연배우’이다. 그는 미얀마 미치나 지역 포로심문보고서에 등장한 20인의 조선인 ‘위안부’ 명단, 그 가운데 ‘코코순이’라는 이름의 ‘코코’가 한국 성씨 ‘박(朴)’의 일본식 발음인 ‘보쿠’일 수 있다는 중요한 직관을 제공하고, 경남 함양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호적등본을 뒤지고,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을 심문한 일본계 미군 생존자를 만나려고 미국까지 감독과 동행한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전문가적 자문과 해석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포스트메모리 시대에, 역사학자로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고민하며 분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서,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이헌미 학술기획팀장이 황병주 편사연구관을 만나 보았다. 

 

이헌미 팀장(왼쪽)과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오늘의 나

 

이헌미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황병주

당시 일본군‘위안부’ 및 전쟁범죄 자료 수집 사업의 일원이었습니다. 김득중 선생의 아이디어로 2017년에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그분이 관심을 두었던 것이 버마(미얀마)에서 포로로 잡힌, 코코순이가 포함된 20명의 조선인 ‘위안부’였어요. 사안이 워낙 독특해서 이를 주제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KBS PD와 접촉했습니다. 그 결과 〈시사기획 창〉에서 8.15 특집으로 2부작이 제작되었죠. 1부를 이석재 기자가, 2부를 류호성 기자가 맡았어요. 이석재 기자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영화로까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펀딩을 받게 되면서 제작 여건이 마련되어 영화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헌미

국사편찬위원회의 ‘위안부-전쟁범죄 조사팀’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지금은 종결된 사업인가요?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오늘의 나

 

황병주

종결된 것은 아닙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시대 불문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되는 문제죠. 사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기초 토대를 튼튼히 하고 확대하는 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대 일본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가 군사력이고, 일본 내외부적으로 군사주의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일본 군부의 행위 중 가장 문제가 되는 전쟁범죄까지 포함해 자료를 축적하게 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새로 재편되지 않았습니까.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하며 보편주의를 지향하고 그 실물적 틀거리로 UN을 만들었죠. UN의 이념적 근거로서 보편적 휴머니즘, 자유주의, 민주주의, 인권 등의 체제를 만들어냈고 그 체제하에서 한국이라는 근대 국민국가가 세워졌어요. 그러면서 미국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서 2차 세계대전의 전범재판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재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어요. 전후 세계 질서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식민지로 전쟁에 동원되면서 가해와 피해가 뒤얽힌 경험을 하게 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했고 또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자료를 축적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범재판을 우리의 시각으로 어떻게 해석, 설명,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역사학적 판단 또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국내 최고의 자료집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헌미

한국에서 ‘위안부’ 다큐멘터리나 극영화가 일종의 장르화가 되면서 민족적 피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되어 온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갖는 차별성이 눈에 띄었어요. 기존의 다른 일본군‘위안부’ 다큐멘터리는 국내 피해생존자의 삶이나 일본, 미국에서의 활동가와 피해자 간의 관계를 조명한 것이 많은데, 〈코코순이〉는 경남 함양, 제주, 미국, 호주 브리즈번, 파키스탄, 몽골 등 전혀 다른 시야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코코순이’라는 이름에서 ‘박순이’를 추정해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트랜스내셔널했고요. 영화에 참여하면서 이 부분을 의식하셨는지요?

황병주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전쟁을 통해 사건들이 어떻게 뒤섞이게 되는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코코순이는 미얀마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고 미군 포로가 되었다는 것까지 대략의 행로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후 귀국까지의 과정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이 인도의 포로수용소였죠. 저희가 취재 막판에 함양에 가서 주민등록번호를 하나 확인했는데, KBS 방송 당시에는 시간이 없어 추적 조사를 못했어요. 이석재 기자가 영화 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 부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제적부상에는 박순이 씨가 10대 후반에 중국을 갔다가 2004년도에 귀국한 것으로 기록돼있어요. 고향은 전라도 남원이고, 함양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다 여차저차해서 ‘위안부’로 가게 된 것이라고 추정돼요. 박순이 씨 조카분들을 통해 박순이 씨가 중국 내몽고 지역의 고려촌이라는 마을에서 살았다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얀마,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갔던 거예요. ‘위안부’ 20명 중 상당수가 집단 이주를 한 것 같은데, 아마 몇 분이 중국 경험이 있거나 했겠죠. 박순이 씨의 그러한 삶을 통해 트랜스내셔널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코코순이 포스터 ⓒ커넥트픽쳐스(주)

 

이헌미

〈코코순이〉의 시놉시스와 홍보물을 처음 보았을 때, 다소 선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모티브인 버마 미치나 지역에서 생포된 조선인 ‘위안부’ 20명이 모두 나온 포로 사진이 굉장히 주목성이 강하고 흥미를 돋우는 동시에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한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선생님은 이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황병주

충격적이었죠. ‘위안부’가 집단으로 찍힌 사진이 거의 없어요. 제가 본 것 중에는 영국에서 찍은 것이 하나 있네요. 지역은 태국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의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었어요. 여성 대여섯 명에 남성 2~30명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죠. 여성들은 옷을 양식으로 잘 차려입었고, 남성들은 체육대회였는지 스포티한 옷을 입고 있었어요. 여자들은 ‘위안부’였고 남자들은 B·C급 전범이라고 불리는 조선인 포로 감시원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제외하고는 단체 사진이 정말 드물어요. 

제가 처음 본 ‘위안부’ 사진은 증언집에 실려있던 것이었는데, 현재의 모습이 찍힌 것만 있었기에 과거 모습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머릿속에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갖고 있다가 직접 마주하니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미군 통역병이었던 니세이(Nisei. 일본계 미국 이민자 2세)들의 표정이랄까, 심지어 웃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찍혔고 무엇을 이야기해주는 것인지 호기심을 갖게 됐죠.

 

이헌미

선생님께서는 이 영화에서 다채로운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는 다큐멘터리 속 역사학자의 관습적 이미지(양복을 입고 연구실이나 서재를 배경으로 한 자문)로 출연하신 분량도 있고, 함양에서 버마 미치나, 미국까지 동행하면서 위안소의 위치를 비정하거나, 가장 위험하고 험한 최전선에 조선인 ‘위안부’를 배치했다고 해석하는 등 현장에서 전문가로서의 시각 또한 보여주고 계신데요.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다큐 제작에 관여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황병주

저희는 사료를 통해 이야기해야 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간혹 무미건조하게 진행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특히 김득중 선생이 원 로이 챈이라는 중국인 장교에 많은 관심을 두었는데요. 그는 관리자급인 엘리트 장교였고, 1차 심문관이었던 니세이들과는 차이를 보였어요. 니세이는 ‘위안부’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좋아야 객관적이고 드라이하게 사실을 기술하는 정도고, 나쁜 경우 알렉스 요리치처럼 윤색과 주관적 판단이 가미된 보고서를 작성했어요. 반면에 원 로이 챈은 ‘위안부’에 상당히 동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를 추적해보면 미얀마의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다른 무언가를, 예컨대 공식 기록이나 사진이 아닌 개인의 일기 등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추가 조사를 해보고 싶었어요. 사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거나,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늘 느꼈고 욕망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득중 선생이 방송까지 제안했던 것이죠. 

 

이헌미

많은 이들이 이미지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흡수하는 시대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나 태평양 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가 소멸해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전쟁이란 무엇인지를 재현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죠. 그런 때인 만큼 역사가가 이런 종류의 다큐 영화에서 가지는 역할이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역사 연구자는 자료에 대한 전문가적 해석 등 제한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이 영화는 심문보고서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역사학자가 지배적인 서사를 더 줄 수도 있고 관여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병주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는 이석재 감독의 것입니다. 저는 인터뷰를 해주고 참고 자료를 제공하며 보조적인 역할을 한 것이고요. 다만, 각자의 전문분야가 다른 만큼 공동작업을 통해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사례가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개인에게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보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헌미

요즘의 역사부정론자들은 사료나 이미지를 생산, 유통시키는 권력이나 맥락에 대한 비판 없이 한 부분만을 절취하여 실증인 것처럼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위안부’의 사진을 앞에 내세우지만 프레임 밖의 이야기들에 접근해요. 그런 접근이 역사부정론자가 역사를 사용하는 방식과 대적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오늘의 나

 

황병주

사료가 중립적·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문서도 어찌 됐든 사람이 쓴 것이에요. 포로심문보고서만 놓고 보더라도 국가의 제도와 이데올로기 등이 큰 틀에서 작동하죠. 군대는 명령 차원뿐만 아니라 주체 스스로가 구조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압력을 내재하고 있어요. 특히 니세이는 가족들이 대부분 수용소에 들어가 있고, 자신은 모국과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아시아 쪽에서는 니세이들을 심리전이나 포로 심문에 활용했는데 자신들이 왜 그런 역할로 쓰였는지 알았겠죠. 새로운 조국인 미국의 시민권자로서 본인을 확인시켜줘야 했던 거예요. 구조적 압력과 개인의 역사적·사회적 맥락, 가족사적인 배경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면서 그런 보고서가 나온 것일 텐데, 그것들의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엮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요리치 보고서는 다른 보고서와 비교해도 많이 튀어요. 원래 보고서라는 것이 간단하고 드라이하게 핵심을 적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요리치 보고서는 여러 명을 대상으로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여 분석한 보고서이기에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군 보고서라고 보기에는 수식어도 많고 화려해요. 사실 너머에 화자의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내면과 심리 상태를 갖고 있었기에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을까 호기심이 들었죠. 컨텍스트를 대입해보니 그는 니세이였고, 하층민 출신 사병에서 소령까지 진급한 사람이었어요. 그만큼 군대의 구조적 압력을 잘 소화하는 인물이었겠다는 결론까지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헌미

전시 성폭력을 피해자의 수치로 돌리는 문화 속에서는 피해의 규모나 피해자들의 신원을 입증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남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증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증인의 신빙성을 공격하는 역사부정론이 기승을 부리기도 하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위안부’ 이슈를 중심으로 한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갖는 남다른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병주

추가적인 자료 발굴도 물론 중요하겠죠. 하지만 문제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규정하고 있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거예요. 

코코순이의 행적은 많은 걸 보여줍니다. 그는 친척 집에 얹혀사는 상황이었고,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상황에서 ‘위안부’로 가게 되었죠. 큰집에서 제대로 보호하지 않은/못한 것이라고 봐요. 일제강점기 때는 그런 상황이 워낙 많았어요. 사회 밑바닥에 있던 사람들이 온몸으로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거죠. 박순이 씨를 구성하고 있었던 다양한 압력들이 무엇이었는지 복잡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전복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좋은 다큐가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오늘의 나

 

Credit 

인터뷰어: 이헌미
인터뷰이: 황병주
정리: 퍼플레이 강푸름
사진: 오늘의 나 
일시: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장소: 국사편찬위원회(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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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한국의 근대적 변화과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본군‘위안부’ 전쟁범죄 관련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aviantibj@gmail.com
글쓴이 이헌미

국제정치학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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