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구덩이’의 응시와 ‘위안부’ 피해 기억의 재현

김한상

  • 게시일2022.01.17
  • 최종수정일2022.08.05

훼손된 몸의 (비)재현

얼마 전 제27회 제네바국제영화제에서 가상현실(VR)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소요산>(김진아, 2021)은 이른바 ‘미군 위안부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한국 정부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성병 치료를 명분으로 강제 수용했던 장소를 배경으로 이 작품을 만든 김진아 감독은 전작 <동두천>(2017)을 통해서 1992년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에게 살해당한 여성 윤금이 씨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영화의 촬영과 형식이 가상현실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과 다루고 있는 주제가 미군 ‘위안부’ 문제라는 점뿐 아니라 바로 그 두 공통점이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감독의 고민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1992년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에 의해 벌어진 윤금이 씨 살인사건은 피해 기억의 재현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악명이 높은 사례를 만들어 놓은 사건이기도 하다. 피의자 마클의 신병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성이 부각되면서 SOFA의 개정과 주한미군 범죄 근절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 문제에 대중의 주목을 원한 운동단체들이 피해자의 시신 사진을 그대로 일반에 공개했던 것이다. 훼손된 시신과 참혹한 사건 현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이 이미지는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하며 운동의 확산에 기여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와 같은 재현이 갖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운동 내부에서 큰 논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 때 이 운동을 접했던 김진아 감독은 그와 같은 “폭력의 재현은 보는 사람에게도 그 피사체에게도 굉장한 폭력”[1]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피해자(의 이미지)를 착취하지 않고” 이 사건을 재현하는 문제를 25년 가까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2] 그 오랜 고민 끝에 만든 <동두천>은 1992년의 사진과는 달리 폭력의 피해를 손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360° 가상현실 카메라로 촬영된 동두천 거리에서 관객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보아야 할지 쉽사리 판단 내리지 못한다. 셔터가 내려간 클럽 뒤편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누군가의 하이힐 소리가 들리고, 그 발소리를 따라 혹은 스치듯 마주치고 지나간 어느 여성이 사라진 쪽을 따라 들어가면 비좁은 단칸방에 도달한다. 방금까지 누군가 있었을 듯한 그 좁은 방바닥에는 널브러진 옷가지 사이로 흥건한 피가 고여 있다. 김진아 감독은 이 작품에서 자신이 취한 전략을 “몸의 부재(absence of the body)”라고, 다시 말해 가상현실로 관객이 도달한 사건의 현장에 “사체는 없지만 대신 살해의 흔적이 남아”있도록 하는 ‘보여주지 않음’의 전략이라고 말한다.[3]

시체구덩이 사진(death pit photograph)

일본군 ‘위안부’ 추정 피해자 학살 기록 영상 추천목록 ©유튜브 영상 섬네일 캡처


윤금이 씨의 시신 사진 공개가 제기하는 재현 윤리의 문제와 이에 대한 <동두천>의 대답은 김진아 감독의 표현처럼 “후기식민지 사회에 사는 여성”[4]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후기식민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피해는 어떻게 재현되며 여기에는 어떤 응시가 작동하는가의 문제, 그 응시가 궁극적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제국주의적 폭력에 저항하는 명분으로 피해자의 훼손된 신체를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자 한 이들은 그 사진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믿었)으며 또 대중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인가의 문제. 비슷한 재현의 문제는 그 이후에도 반복되었는데, 2002년 주한미군이 모는 장갑차에 두 명의 중학생이 치어 숨진 사건 당시에는 SOFA 개정 운동과 함께 두 피해자의 훼손된 신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고 현장 사진이 시위 장소에서 피켓이나 리플릿에 인쇄되어 배포되었다. 그리고 국내 연구자들에 의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되어 2018년 일반에 공개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로 추정되는 시신들이 구덩이에 쌓여있는 사진과 영상기록물은 그처럼 훼손된 신체의 사진적 재현이 인터넷2.0이라는 플랫폼을 만남으로써 제국주의 피해에 대한 문제적 응시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 편재하는 것으로 자리 잡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연구팀에 의해 디지털로 배포된 영상은 언론사의 채널들을 통해 즉각적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노출되었고, 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개개인의 일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다([사진 1] 참조. 문제가 되는 사진 이미지를 흐리게 처리하였다). 

이른바 ‘시체구덩이 사진(death pit photograph)’으로 불리는 이러한 유형의 피해기록들은 서구 사회의 홀로코스트 피해 기억 재현에 있어서도 박물관과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자주 활용됐으며, 가해자 집단의 잔혹성을 강조하는 데에 효과적이라고 믿어져 왔다. 그러나 훼손된 신체들이 사물처럼 쌓여있는 사진적 기록들은 이미지 자체의 충격적인 도상적 표현과는 무관하게 실상 그 피해를 낳은 폭력과 피해당사자가 당한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해도 제공하지 않는다. 사진사학자 야니나 스트럭은 이와 같은 이미지들이 과거의 파편(fragment)이기 때문에 그 파편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제공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진적 이미지가 과거의 진실을 반영한다는 순진한 믿음은 오히려 그 이미지를 현재에 공개하고 전시하는 이들에 의해 언제든지 이미지의 서사가 새롭게 가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고 비판한다.[5] 중국 윈난성에서 30명의 조선인 ‘위안부’가 학살당한 사건은 연구팀이 영상자료와 함께 공개한 미군 작전일지 문서자료에서 확인되지만, 공개된 시체 구덩이 영상자료가 이 문서자료 속 사건의 결과를 찍은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영상 공개는 오히려 이 영상자료에 대한 NARA 메타데이터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일본 극우 역사 부정론자들과의 불필요한 논란을 낳았다. 즉, 이 사건에서도 영상자료는 그 자체만으로는 과거의 파편일 뿐, ‘위안부’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증거 역할을 하거나 그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후기식민지 여성과 시체 구덩이의 응시

미디어학자 바비 질라이저는 한발 더 나아가 잔혹한 피해의 사진적 재현이 잔혹 이미지를 도상적으로 친숙하게 만듦으로써 “잔혹행위의 정상상태화(normalization)”를 초래할 수 있음을, 따라서 현재에도 존재하거나 언제든 발생 가능한 고통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음을 지적한다.[6] 윤금이 씨의 시신 사진도, 일본군‘위안부’ 추정 피해자들의 시신이 쌓인 구덩이를 찍은 영상도 그들이 그와 같은 폭력에 노출되기까지 삶의 구조적, 문화적 맥락에 대해서는 조금도 말해줄 수 없고, 단지 발생한 폭력을 도상적으로 스펙터클화하여 관람자들이 관음적으로 소비하게 만들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론적인 비판에 그칠 것이 아니라 김진아 감독이 말한 “후기식민지 사회에 사는 여성”의 문제라는 측면에서도 이러한 전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홀로코스트의 시체 구덩이와 달리 후기식민지 한국에서 바라보는 2차대전 당시의 시체 구덩이는 잔혹함의 구덩이일 뿐 아니라 어떤 실패의 상징이기도 하다. 식민 상태에 있었기에 존재할 수 없었던, 그래서 피해자들을 구출할 수 없었던 민족국가의 실패, 그리고 민족국가의 수립 이후에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7]한 가부장의 실패. 사진학자 존 택은 다큐멘터리적인 사진적 이미지가 관람하는 자와 관람되는 자(피사체) 사이를 특정한 지배와 종속의 온정주의적 관계로 봉인하는 것은 그것이 ‘과학적 증거’라는 밋밋한 레토릭보다는 ‘경험에 관한 감정에 호소하는 드라마’적 요소가 작동하기 때문이라 말한다.[8] 파괴되기 쉬운, 구출되어야 할 존재로서의 여성, 그리고 그러한 구출의 참혹한 실패라는 감정의 드라마가 동두천 셋방과 중국 윈난성 마을의 시체 구덩이 이미지를 향한 응시로 완성되는 것이다.

<동두천>에서 사람이 없는 빈 단칸방을 VR로 보여준 김진아 감독의 ‘보여주지 않음’의 전략은 달리 말하면 빈 구덩이만 보여주는 전략, 아니 그보다는 그 빈 구덩이 속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실패한 ‘구출’의 대상으로 타자화, 사물화된 시체 더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 구덩이 밖에서 구출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누군가로 자신을 동일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덩이 안으로 밀어 넣는 재현, 그 구덩이 속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재현. 이것은 어쩌면 일본군‘위안부’ 피해 기억의 재현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각주

  1. ^ 씨네21, 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PIFAN Daily, “‘소요산’ ‘동두천’ 김진아 감독, VR을 통해 여성 재현의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했다”, 2021.7.14.
  2.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ixi media, “‘동두천’, ‘소요산’의 김진아 감독 인터뷰”, 2021.7.17. https://medium.com/ixi-media/case-study-동두천-소요산-의-김진아-감독-인터뷰-af0277d1a246 (2021.12.17. 검색완료)
  3.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ixi media, 위의 글.
  4.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ixi media, 위의 글.
  5. ^ Janina Struk, Photographing the Holocaust: Interpretations of the Evidence, New York: Routledge, 2004, pp.212-213.
  6. ^ Barbie Zelizer, Remembering to Forget: Holocaust Memory through the Camera’s Ey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p.212.
  7. ^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 사건 당시 슬로건.
  8. ^ John Tagg, The Burden of Representation: Essays on Photographies and Historie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3, pp.8-12.
글쓴이 김한상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연구분야는 시각문화, 아카이브, 인종주의, 이동성, 영상사회학 방법론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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