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작가 특집: 역사, 증언, 그리고 문학
1991년 김학순의 증언 이후 30년. 일본군’위안부’ 피해 증언을 ‘듣는’ 우리는 어디까지 와있을까. 낯선 땅으로 ‘끌려간 소녀’, 고통의 기억을 몸에 새긴 ‘할머니’, 문제해결을 위해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여성인권 운동가’에 이르기까지, 그저 ‘피해생존자’로 한정하고 손쉬운 프레임 안에 가둬온 것은 아닌지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6년 이후 또렷해진 페미니즘 담론과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질문은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복수의 구술증언을 토대로 쓰여진 김숨의 장편소설 『한 명』(2016,현대문학)은 발표 이후 꾸준히 이 ‘재현’의 문제를 논하기 위한 재료로 이야기되어 왔으나, 이 의제가 갖는 중요성과 무게에 비해 충분히 논의되었는지 의문이다.
2021년 9월, 동명의 소설이 연극으로 재탄생하여 무대에 올랐고, 이 소설이 전제하고 있는 극중 상황과 마찬가지로 정부 등록 일본군’위안부’ 생존자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가고 있다. 웹진 <결>은 피해 당사자이자 목격자, 증언자이자 기록자로서의 ‘한 명’들의 기억이 현재 한국 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떤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할지 진지한 논의의 장을 제안하고자 한다. 소설 『한 명』을 포함한 김숨 작가의 글을 중심으로 네 명의 필진이 ‘위안부’ 문제의 재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 줄 것이다. 이 각각의 질문이 앞으로 더 발전적인 논의를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01. 소설 『한 명』이 연극 <한 명>이 되기까지 | 국민성
02. 묻기에서 듣기로 단수에서 복수로, ‘위안부’ 서사 규범의 변화가능성 - 증언소설로서의 김숨의 『한 명』 | 권김현영
03. ‘한 명’이 마지막이 되지 않으려면 | 강희정
04. 저문 증언의 시대에서 | 박혜진
구술사는 약자로서의 소수자가 권력이 된 주류 역사에 대항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보편을 점거한 주체의 관점으로 쓰이는 역사에 균열을 내고 주변화된 잔여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역사의 이면을 그리는 동시에 불완전한 역사의 빈틈을 메운다. 그러나 몇몇 개인의 이야기에서 역사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의미를 도출해 내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표성의 부재와 재현의 불완전성이 장벽처럼 가로막혀 있는 탓이다.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가 개인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시대를 반영하는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는 근거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착각하고 합리화하는 존재인 인간이 기억하는 불완전한 이야기가 어떻게 사료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을까. 기시 마사히코의 『망고와 수류탄: 생활사 이론』(정세경 옮김, 두번째테제, 2021)은 개인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생활사 이론이 가지는 보편적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질적 조사에서 그려지는 디테일이란 ‘리얼리티의 복수성’을 부르짖기 위한 것이 아닌 우리들의 기억이나 경험, 이야기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무엇이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구술자로서 바로 지금 내 눈 앞에서 존재하며 천천히 인생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이러한 몇 겹으로 포개어진 ‘사실’을 최후의 독자에게 건네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디테일이라는 것은 실재에 도달하는 길이기도 하다.” -기시 마사히코, 『망고와 수류탄』, 29~30쪽.
실재에 도달하게 만드는 생활사 이론은 ‘선택’이 아니라 ‘증식’의 세계관을 지향한다. 모순의 상황 속에서 각자의 구술은 모순을 정돈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설을 최대한 늘려 나감으로써 인간이 구술하는 상황에 대한 상상력의 경계, 혹은 진실의 경계를 넓혀 나가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인간과 시대에 대한 전면적 이해는 “그 상황의 가혹함을 축소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이해’” 위에서 가까스로 가능해진다. 우리는 구술사 혹은 생활사가 전해 주는 “인생 이야기”의 무게를 통해 그들이 살았던 역사의 실재에 도달한다. 전쟁이 끝나고 76년이 지났다. 전후를 기준으로 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전쟁의 상처가 몸에 새겨진 이들과 함께 이 세상을 살고 있다. 전쟁을 체험했고, 무엇보다 전쟁의 피해를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살아 있으며, 이들의 증언은 전쟁의 성격에 대한 진실을 한층 실재적으로 구성한다.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의 표현처럼 우리는 ‘증언의 시대’를 살아 온 것이다.
서경식의 증언은 이야기를 통한 증언이며, 무엇보다 증언하는 주체와 전달자, 그리고 증언이 도달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증언이다. 일본군‘위안부’ 송신도 님의 증언을 이야기로 전달하기 위해 서경식은 자신의 어머니를 감정 이입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문장이 탄생했다. “어머니를 모욕하지 말라.” 이때 서경식이 대상화와 소비의 문제를 깊게 고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단서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와의 대담을 묶은 책 『책임에 대하여』(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한승동 옮김, 돌베개, 2019)에서 그는 다시 한번 “어머니를 모욕하지 말라”에 대해 언급하며 이러한 방식이 야기할 수 있는 한계 지점에 대한 우려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위안부 출신 송신도 씨와 같은 해에 태어난 어머니를 ‘자료’로 제공한다는 것은, 내가 어머니를 소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식과 늘 대면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인데,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내 어머니가 송신도 씨의 운명을 좇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일이 ‘위안부’가 이른바 추상적 언설의 대상이 아니라 살이 붙고 피가 통하는 존재임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각오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시 마사히코와 서경식의 말에서 공통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주류 역사에 균열을 내는 증언의 말하기에서 중요한 것이 ‘추상적’인 것과 구분되는 ‘실재’적 감각이라는 점이다. 추상적 언설의 역사에서 구체적 감각의 역사로 전환되는 사이, ‘증언의 시대’가 있다.
2016년에 출간된 김숨의 장편소설 『한 명』(현대문학)은 증언의 시대가 맞은 새로운 전환점을 ‘호명’한 소설이다. 『한 명』은 그때까지 자신도 ‘위안부’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채 살아온 어느 화자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증언자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다. 상상된 마지막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증언의 시대가 도달한 어느 지점을 상상한다. 증언의 시대가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이 소설은 ‘저문 증언의 시대’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 일몰의 시간을 빌려 증언의 시대가 서 있는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증식의 세계관을 형상화한다. 마지막 시간을 목전에 두고 그리는 증식의 세계관이 어떤 의미를 형성하고, 또 문학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실재적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마흔일곱 명에 아홉 명을 더하면…… 가게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계산할 때에는 그럭저럭 돌아가는 덧셈과 뺄셈이 그녀는 잘 안 된다.” -김숨, 『한 명』 부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계산할 때에는 문제없이 돌아가는 연산이 ‘위안부’의 수를 헤아릴 때에는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들의 수를 헤아리는 것이 정량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산의 법칙으로 바라보면 이들의 세계에는 마이너스만 존재하는 필패의 세계에 가깝다. 증언하는 자들의 존재가 소멸을 향해 간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이상 증언의 시대는 저물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수가 발생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줄어들기만 하는 세계에서 증언의 힘이란 한계가 분명한 일시적 진실에 불과한 것이다. 사라지고 말 진실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한계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상상력이 무엇일까. 김숨에게 증언이 증식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면, 그때의 증식은 한 세대에서만 일어나는 옆으로의 증식이 아니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아래로의 증식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마지막 증언자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은 경험자이지만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그를 만나러 올 사람은 체험자가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증인이 있는데, 세상에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니까. 눈물이 나고 기가 막히고 감감해서…….” 김학순 여사는 그래서 자신이 당한 일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중략)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가 238명이라고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한 명밖에 안 남았을까 싶어,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귀에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벽에 덩그러니 걸린 시계를 바라본다. 테두리가 둥글고 검은 바늘시계다. 시간이 없다…….” -김숨, 『한 명』 부분
부재의 증거가 증거의 부재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이 순간에도 적용된다. 증언의 시대가 ‘실재적 감각’을 통해 기존의 역사에 균열을 냈다면 실재하는 증언자가 사라지고 없을 저문 증언의 시대는 실재를 대체하는 다른 감각의 출현이 필요하다. 증언자가 없다고 해서 증언의 시대가 끝나는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끝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숨의 소설이야말로 그 자체로 포스트 증언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생존자의 목소리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 명』에 등장한 ‘위안부’의 증언은 ‘증언록’이 아니다. 그렇다고 ‘구성’된 이야기 속에 증언록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기록을 배치한 이 소설을 ‘픽션’이라고만 부를 수도 없다. 증언록과 픽션 사이에 위치한 『한 명』을 편의상 ‘증언소설’이라 부른다면, 이때 이 증언소설은 증언할 수 있는 피해자이자 생존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다. 문학은 한 사람의 기억을 한 시대의 기억으로, 한 시대의 기억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추상화할 수 있다. 이때의 추상화는 증언의 시대 이전의 추상화와 전혀 다르다. 전자의 욕망이 하나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라면 후자의 욕망은 복수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한 명』을 다 읽었을 때 기분이 생각난다. 경기 종료가 가까워져 오는 시간에 아직 체력이 바닥나지 않은 교체 선수가 가벼운 몸짓으로 그라운드를 향해 뛰어오는 걸 보는 것 같았다. 벤치에는 더 많은 선수들이 앉아 있고, 따라서 연장전으로 가는 것이 조금도 두렵지 않은 상황. 선수에서 다른 선수로 이어지는 사이 증언의 현장성과 일관성은 변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증언이 생존자들의 증언이 지닌 가치를 반감시킨다고는 볼 수 없다. 가혹함을 축소하는 역사에 반해 가혹함의 가능성을 증식함으로써 그들이 거기 있었다는 존재감을 부여하는 ‘이야기’들이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은유와 상징의 힘으로 거듭 태어나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살아 있는 현재적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소설이 고전이 된다. 『한 명』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연결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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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한 명』이 연극 〈한 명〉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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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결>은 피해 당사자이자 목격자, 증언자이자 기록자로서의 ‘한 명’들의 기억이 현재 한국 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떤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할지 진지한 논의의 장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소설 『한 명』을 연극 <한 명>으로 각색한 국민성 작가의 글을 전한다. 그가 연극 무대를 통해 보여주고 또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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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기에서 듣기로 / 단수에서 복수로, ‘위안부’ 서사 규범의 변화가능성 - 증언소설로서의 김숨의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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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로든 증언문학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자기만의 답이 있어야 한다. 김숨의 소설 『한 명』(현대문학, 2016)이 찾은 답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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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명’이 마지막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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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명』의 가상적 배경으로 제시되었던, 생존자가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더 이상 ‘가정’이 아니게 되었으며, 이제는 한 명 ‘이후’를 각오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즉 이들의 ‘말’을 잊지 않고 기록하는 일과 더불어 이 말들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를 모색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 글쓴이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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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문학편집자. 문학평론가.
저서로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공저, 난다, 2018)가 있다. 2018년 젊은 평론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