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기에서 듣기로 단수에서 복수로, ‘위안부’ 서사 규범의 변화가능성 - 증언소설로서의 김숨의 『한 명』

권김현영

  • 게시일2021.11.08
  • 최종수정일2021.11.26
김숨 작가 특집: 역사, 증언, 그리고 문학

1991년 김학순의 증언 이후 30년. 일본군’위안부’ 피해 증언을 ‘듣는’ 우리는 어디까지 와있을까. 낯선 땅으로 ‘끌려간 소녀’, 고통의 기억을 몸에 새긴 ‘할머니’, 문제해결을 위해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여성인권 운동가’에 이르기까지, 그저 ‘피해생존자’로 한정하고 손쉬운 프레임 안에 가둬온 것은 아닌지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6년 이후 또렷해진 페미니즘 담론과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질문은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복수의 구술증언을 토대로 쓰여진 김숨의 장편소설 『한 명』(2016,현대문학)은 발표 이후 꾸준히 이 ‘재현’의 문제를 논하기 위한 재료로 이야기되어 왔으나, 이 의제가 갖는 중요성과 무게에 비해 충분히 논의되었는지 의문이다.

2021년 9월, 동명의 소설이 연극으로 재탄생하여 무대에 올랐고, 이 소설이 전제하고 있는 극중 상황과 마찬가지로 정부 등록 일본군’위안부’ 생존자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가고 있다. 웹진 <결>은 피해 당사자이자 목격자, 증언자이자 기록자로서의 ‘한 명’들의 기억이 현재 한국 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떤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할지 진지한 논의의 장을 제안하고자 한다. 소설 『한 명』을 포함한 김숨 작가의 글을 중심으로 네 명의 필진이 ‘위안부’ 문제의 재현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 줄 것이다. 이 각각의 질문이 앞으로 더 발전적인 논의를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01. 소설 『한 명』이 연극 <한 명>이 되기까지 | 국민성
02. 묻기에서 듣기로 단수에서 복수로, ‘위안부’ 서사 규범의 변화가능성 - 증언소설로서의 김숨의 『한 명』 | 권김현영
03. ‘한 명’이 마지막이 되지 않으려면 | 강희정
04. 저문 증언의 시대에서 | 박혜진


* 이 글은 2019년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콜로키움에서 발표한 소영현 선생님의 글에 대한 토론문 [피해자-되기 주체-서사의 곤경과 재현의 문제]를 바탕으로 수정 및 개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문학이 증언이 될 수 있을까 

문학은 증언이 될 수 있을까. 아니, 문학이 증언이 되어야 한다면 왜 그래야 할까. 문학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증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는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말해질 수 없는가이다. 나는 몇 년 동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의 여성인권 문제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취재하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모두 인터뷰를 연구목적으로 이용하는 걸 거부했다. 인터뷰 내용은 드라마나 소설과 같은 픽션으로 만드는 것만 가능했고 그것 역시 사전에 충분히 익명처리가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각서를 썼다. 성과 관련된 폭력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가 좀처럼 되기 어려운 이유는 피해자가 이렇게 나서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성폭력 범죄의 별칭은 한때 ‘피해자 없는 범죄’였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는 다르다. 당사자의 증언은 증언집과 인터뷰, 국제법정에서의 발언 등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말해지지 않은 게 아니라 들려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따라서 두 번째 전제는 이미 말해진 이야기를 다시 문학을 통해서 전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가장 게으른 답변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이 문제를 알리고 싶었어요” 같은 대중성을 핑계 대는 것일 것이고, 가장 무책임한 답은 역사적으로 실재한 폭력의 재현 불/가능성을 고민하며 답을 끊임없이 미루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증언문학은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자기만의 답이 있어야 한다. 김숨의 소설 『한 명』(현대문학, 2016)이 찾은 답은 무엇이었을까.
 

김숨의 소설 『한 명』과 ‘위안부’ 증언문학의 위치

김숨의 소설 『한 명』은 생존해 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 남은 날이라는 시점을 가장 중요한 서사 장치로 가져와 구체적 기억과 대화들을 ‘위안부’ 증언집에서 직접 인용하고 있다. 왜 이런 장치가 필요했을까. 작가는 독자가 이 소설을 단지 허구로 생각할까봐 각주를 넣었고 상상력을 더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허윤은 이런 태도는 실화에 기반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진정성을 내세움으로써 일본군‘위안부’ 재현을 둘러싼 쟁점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1] 한국문학에서 태평양전쟁에서 귀환한 학병들이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는 소위 ‘학병 서사’를 만들어낸 것과는 달리, ‘위안부’ 문제는 증언 이후 30여 년 동안 서사적 내용과 형식을 모두 만들어내는데 실패했고 그 빈자리를 증언문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특유의 형식이 차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증언문학이라고 해서 실화라는 점에 기대어 폭력의 재현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증언문학으로 알려진  『이것이 인간인가』(프리모레비, 돌베개, 2007)에서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당사자로서의 자기 경험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 관찰자의 시선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했고, 이런 점이 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문학적 성취일지는 몰라도 스스로를 해방시켰는지는 의문이다. 스스로 목숨을 거둔 프리모 레비나 빅터 프랭클 등을 보면 트라우마화된 경험을 계속 활성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정신건강의 위기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에 국한되지 않은 조건이라는 점, 그리고 실화 여부에 대한 강박적 증명에 답하지 않으면서도 규범화된 서사의 결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참조할만한 작품은 역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 2015)이다. 이 작품은 증언문학이 아니라 ‘목소리 소설’이라고도 불리는데, 작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여성들의 경험이 어디에도 제대로 기록되어있지 않다는 데에서 출발해 이 적극적인 망각은 여자의 몸으로 전쟁에 참전한 경험은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의 자장 속에서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데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이를 보면 증언문학의 형식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증언될 수 없는 혹은 증언되어도 기억될 수 없는,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만 재현 가능하게 하도록 규범화된 서사에 대해 증언문학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단일한 서사규범과 타자화의 문제

소영현[2]은 실제 증언을 소설 속으로 가져오는 것은 ‘진정성’의 알리바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증언자이자 기록자의 위치를 드러내는 ‘사회적 맥락화 작업’의 일부라고 분석한다. 김숨의 소설은 증언이라는 발화행위가 주는 대체불가능성을 환기하고, 개별 피해서사의 반복이 아니라 증언에 나서지 않았던 ‘위안부’ 피해자를 구심으로 삼아 복수의 기억을 소환하며, 일부 생존자들에게 집중된 방식이라는 오해를 넘어 현재의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문제와 연동된다는 것이다. 허윤과 소영현 모두가 공히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일본군‘위안부’를 둘러싼 서사규범이 지나치게 단일하다는 데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담론이 교착된 이유는 우리 사회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가 “식민지에 사는 미성년의 조선 소녀들이 일본 제국의 군대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갔다”는 단일한 서사규범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의 문화적 재현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은 사실상 <귀향>(조정래, 2016)부터였다. 영화 <귀향>은 피해 재현의 윤리에 대한 저간의 진척된 고민들을 뒤로 한 채, “이것이 (증언을 통해 확보된)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에 기대어 위안소를 부감 숏으로 찍고 성폭력 피해 장면을 성애적인 앵글로 찍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IP TV로 출시된 <귀향>이 사용자의 검색에 따라 실시간 자동완성 검색어가 만들어지는 환경에서 (성폭력을 조금 거친 에로물의 성애적 재현 장면으로 소비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만들어져,  개봉되지 않고 IP TV로 유통되는 19금 영화로 목록이 가득 차 있는 곳에서) ‘성폭력 영화’라는 장르로 분류되었던 바를 비추어보면, 이러한 비판은 조금도 과도하지 않다. 다시 강조하자면 문학이 증언이 되려면 그것이 사실에 기반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는 오히려 당사자의 말하기를 다시 착취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이 증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껏 말해졌던 이야기가 왜 들리지 않았는지, 한국에서 ‘위안부’에 대한 재현이 어떤 서사규범으로 통용되어 왔는지라는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외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피해사실을 확증하기 위한 증거로서의 증언이 아니라, 증언 서사의 ‘문학적’인 전회일 것이다.


묻기에서 듣기로, 단수에서 복수로

과연 김숨의 『한 명』을 통해 몇몇 피해자의 경험에 한정되어있는 기존의 ‘위안부’ 서사규범이 증언집과 공식기록에서 채취한 300여개의 각주를 통해 단수에서 복수로 바뀌는 맥락이 구성되었을까. 316개의 숫자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가가 어떤 증언을 왜 선택했느냐에 있다. 이 각주가 피해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에게 피해사실의 진정성을 증명하게 하는 용도에 집중되어 있다면, 다시 말해 증언 문학이 생존자의 증언에 기대어 ‘위안부’의 피해서사에만 집중한다면, 그리고 그 몸에서 일어난 흘러내리는 몸의 기억을 묘사하는 데에만 몰두해 있다면,  공감을 위해 순도 높은 피해자성을 요청하는 상상적 동일시에 기반한 (타자 배제적) 재현 이상이 되기는 어렵다. 과거가 아니라 보다 현재적인 차원의 사회적 맥락을 구성해내는 점에 재현이 가진 힘이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증언 문학은 사회적인 맥락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그에 의존하는 형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위안부’ 증언을 재현할 때는 반드시 말할 수 없었음이라는 사회적 맥락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말해왔음, 반복해서 말했지만 들을 수 없었다는 맥락의 역사가 재현되어야 한다. 김숨의 소설 『한 명』이 가진 문학적인 성취는 당사자의 증언으로 채워진 각주 316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등록되지 못하고 아직 말하지 못한 당사자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상상력으로 시작했다는 데 있다. 당사자가 직접 나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기존 ‘위안부’ 운동은 당사자의 소멸이라는 시간을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단 한 명이 남았을 때라는 가정 자체가 이 소설이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사회적 맥락이다. 한 명이 남은 것이 아니다. “나도 피해자요..”라는 물결에 들어갈 수 없었을지언정, 당사자의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미투운동’의 핵심은 나도 피해자라는 피해자임을 증명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도’라는 ‘위드 유’의 응답에 있었다. 이 운동에서 피해자는 ‘당한’ 존재가 아니라, 미투를 ‘하는’ 능동태의 존재로 주체성의 형식이 변했다.[3] 나‘도’라는 조사에 붙여진 스타카토가 이 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 피해자를 타자화시키거나 문제를 개별화시키지 않으면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일본군‘위안부’의 서사규범은 어떠했는가. 원래 처음부터 “강제로 끌려간”, “소녀”라는 점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었다. 김학순이 “내가 피해자요”라고 말하고, 그 뒤로 이어진 “나도 피해자요”의 연쇄가 있었고,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각각의 경험들이 따로 또 같이 귀에 ‘들려지는 순간’이 있었다.

미투운동은 서로의 경험에 대해 묻지 않는 대신에 자신의 경험을 종으로 횡으로 이어간다. 그리하여 미투운동이 드러낸 사회적 맥락은,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의 시간성과 공간성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위안부’ 서사규범은 국가주의적 대결과 국제법적 접근을 통해 부인주의자들의 선동에 맞서기 위해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데 집중되어왔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증언의 반복을 통한 사실의 증명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된 경험을 끌어안고 생존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서사적 상상력 그 자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위안부’ 서사규범의 사회적 맥락은 재구성될 수 있다. 

 

각주

  1. ^ 허윤, 「일본군 ‘위안부’ 재현과 진정성의 곤경– 소녀와 할머니 표상을 중심으로」 , 『여성과 역사』 29호, 2018.
  2. ^ 소영현, 「목격-증언의 자리와 공진하는 ‘위안부’의 몸」 , 『구보학보』 22호, 2019.
  3. ^ 권김현영, “4장. 미투운동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 능동태의 페미니즘이 해낸 윤리적 정치적 전환”,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휴머니스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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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영현 (연세대 젠더연구소 전문연구원)

    소영현 201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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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정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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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진 2021.11.26

글쓴이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언니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재단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으로 재직중이기도 하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교양인, 2017),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교양인, 2018) 등의 편저, 『대한민국 넷페미사』(나무연필, 2017),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휴머니스트, 2018),  『미투의 정치학』(교양인, 2019),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휴머니스트, 2020) 등의 공저와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휴머니스트, 2020) 등의 단독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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