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기 위해 연합군이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전범재판.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28명이 '평화에 반한 죄'(A급 전쟁 범죄)와 '통례의 전쟁범죄'(B급 전쟁범죄)로 처벌받았다. 그러나 식민지였거나 직접적인 전쟁 피해를 입었던 피해국 다수가 재판 과정에서 소외되었고, 미국 등 연합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본의 가해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증거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에서는 이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극동국제군사재판의 한계를 지적하고 시민들의 힘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단체들이 2000년 12월 도쿄에서 일본군성노예 전범여성국제법정(Women’s 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 on the Trial of Japan’s Military Sexual Slavery in 2000)을 개최하였다.
재일한국인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송신도가 199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 사죄 및 법적 배상을 제기한 소송. 일본재판부는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군주는 그 행위에 관하여 어떤 정치적·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원칙인 국가무답책, 공시시효 만료 등의 이유를 들어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을 부인하였고, 2003년 3월 28일 최종판결에서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송신도의 재판 과정을 담은 영화로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감독 안해룡)가 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타결된 '위안부' 관련 합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총리대신 자격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하고,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며,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을 확인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는 이후 합의 과정에서의 피해 당사자 배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회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 소장 정유진먼저 이틀에 걸친 국제회의를 준비해주시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유튜브를 통해 1,000여명이 동시 접속하며 서로 배우며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많은 분들의 협력 덕분에 소중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발표를 들으면서, 영화 «더 스토닝, The Stoning of Soraya M»이 떠올랐습니다. 이란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남편이 위자료를 지불하지 않고 이혼하기 위해, 아내를 부정한 여인으로 몰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돌팔매질하여 살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여성이 두려움에 떨면서 우연히 마을에 들른 외부 기자에게 이 사건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녀는 “제발, 내 목소리를 가져가 달라”고 울부짖으며 고통을 목격한 사람의 태도, 즉 말을 들은 자의 책임을 촉구합니다.어제 요란다 아귈라르 선생님은, 성폭력 피해자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인식의 조건, 즉 사회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누가 누구를 대신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를 “가져간다”는 이 동사(動詞)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질문하게 됩니다. 고인이 되신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은, 생전에 “몸이 너무 아파 죽고 싶다, 그렇지만 여자니까 고운 옷도 입어보고싶다” 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 말을 어떻게 들었는가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오늘 도미야마 이치로 선생님은, 경험은 공유해야 할 소재, 즉 대상이 아니라 다른 관계가 만들어지는 “시작”이라는 요지의 논고를 발표하셨습니다. 고통 속에 살았지만, “고운 옷도 입어보고싶다” 는 삶의 경험을 어떠한 관계의 시작점으로 삼을 것인가, 이틀 간의 토론은 이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합니다.논점은, 들은 자가 그 말을 ‘가져갈’ 때의 위치, 즉 ‘어떻게’ 라는 성찰적 물음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피해의 차이, 혹은 상처의 경중(輕重)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어떠한 논의를 이어갈 것인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 과제로서 제기되었다고 생각합니다.끝으로, 이 행사를 후원해주신 여성가족부, 그리고 이 순간까지 통역, 수어 통역으로 수고해주시는 분들께 특별히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컨퍼런스»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2021년10월14일)
일명 WAM(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주도했던 일본의 여성운동가 고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유산과 자료를 바탕으로 2005년 8월 건립된 일본 최초 전시 성폭력 자료관.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조사와 기록의 보존, 전시 및 심포지엄 개최 등의 활동을 해 왔으며, 일본 국내와 국제 연대 활동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제도의 실태를 알리고 일본 정부가 가해 책임을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해 왔다. (홈페이지: https://wam-peace.org/)
일본군의 업무일지 「적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군당국의 위안소 설치 과정과 관여 정황
일본 공창제의 역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국가 차원의 책임
일본 군인들이 남긴 수많은 회고록을 통해 확인하는 '위안소'의 역할과 기능
40대 일본군 위안계장이 중국 우한 '한커우특수위안소'와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의 모습을 기록한 『우한병참』 비판적 읽기
전범 자필진술서는 전쟁 범죄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 사죄의 의미나 용서 등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면에서 여러 화두를 던지고 있다.
한·일 전쟁 피해자를 함께 기리는 오키나와 위령제 동행기
이미지 작가가 직접 전하는 ‘위안부’ 역사 리서치 트립
전후 일본 사회에서 가해 책임을 실천한 ‘중귀련’의 전시 성폭력과 ‘위안부’ 증언 및 출판 활동
외부 세계와 상호 작용 속에서 고유한 피해자 운동과 관점으로 발전해 온 북한의 일본군‘위안부’ 담론 추적기
조선 여성들이 ‘위안부’ 생활을 했던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성 위안소를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