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rivate fund initia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in 1995 to address the “Comfort Women” issue, on the 5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WWII. It was dissolved in 2007. Commonly referred to as the “National Fund,” it collected donations from Japanese citizens and delivered this money to victims of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system, along with medical and welfare support. The fund, however, acknowledged only the Japanese government’s moral responsibility, not its legal responsibility, and effectively shifted the burden of compensation onto the private sector. In South Korea, 60 survivors accepted payments from the fund, while many others refused, insisting that Japan must issue a full legal apology and state compensation.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1995년 설립한 민간기금이다 전후 50주년이 되던 해인 1995년 설립되어 2007년 해산하였으며, 흔히 '국민기금'으로 불린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민감모금 형식으로 기금을 모집하여 이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전달하고, 의료와 복지 사업 등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만 인정하고, 보상 책임을 민간에 떠넘긴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의 받았다. 한국 피해자 중 60명이 이 기금을 수령하였고, 다른 많은 피해자들은 일본이 국가 차원의 법적 사죄와 배상을 해야한다고 촉구하며 그 수령을 거부하였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배상 문제를 둘러싼 복잡하고 씁쓸한 인도네시아 정치 현실과 사회적 관심
‘송신도 재판’ 후 22년만에 한국어 번역본 출간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에 대한 안해룡 감독의 리뷰
일본의 남성 중심 사회야말로 ‘위안부’ 문제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다. 결국 이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일본 국회가 자력으로 입법 해결을 하지 못했다고 확신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은 국가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운동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입법 해결을 목표로 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1996년 12월에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가와타는 그저 보도하기 위해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다가가 그 마음을 대변하려고 했다. 공감하려는 자세가 있었기에 당사자들이 마음을 열고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