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갈로그어 ‘비하이 나 풀라(Bahay na Pula)’는 ‘붉은 집’ 혹은 ‘핏빛 집’이라는 뜻의 나무로 지은 집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여성들을 감금해 성폭행을 하고, 남성들을 살해하는 현장으로 이용된 붉은 집을 보존해 추모 기념관을 만들자는 주장이 있다.
<!--StartFragment -->대전화집(大战画集)은 1943년 6월 중국 충칭의 대전화집사에서 창간한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시사 잡지이다. 당시 주요 전쟁 보도, 정치인들의 활동상, 연합군의 전쟁 준비와 전투 기록, 시사 만화, 각국 국민들의 전쟁 생활 소개 등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다양한 기사들을 실었다. 1945년 6월 폐간되었다.<!--EndFragment -->
제국-식민지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분석을 표방하며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가 2013년 발간한 책. 조선인‘위안부’를 “제국의 위안부”라고 표현하고, 이들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는 해석을 내놓아 논란을 빚었다. 2014년 6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거주 시설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피해자 9명이 법원에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필자인 박유하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며, 2015년 2월 법원은 책 내용 가운데 34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판매·배포·광고를 할 수 없다며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 결정했다. 이에 따라 34곳이 삭제된 제2판이 발간되었다. 한편, 법원은 2016년 1월 피해자 9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에게 1천만원씩 총 9천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으며, 형사소송은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벌금형이 나와 2020년 9월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신대연구회가 발간한 세번째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 증언집 1, 2권과는 다르게 사투리, 구어체 등 피해자들의 말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표기하여 피해자들의 정서와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또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함께 강제로 동원되어 남양군도 파라오에서 군생활을 했던 홍종태 씨가 경험하고 목격한 위안소 및 '위안부'에 대한 증언도 담았다.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관방장관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제2차 조사결과와 함께 발표한 담화. 일본군과 정부가 위안소 설치 및 운영, ‘위안부’ 모집 및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과 피해자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와 반성을 표명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이 충분치 않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은 한계가 있다.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침묵 '당했던' 싱가포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성찰
전쟁 후 네덜란드는 전범재판을 위한 바타비아 임시군사재판(Temporaire Krijgsraad in Batavia)을 실시하였는데, 이 재판은 전쟁 중 행해진 성폭력과 일본군‘위안부’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일본군은 왜 '위안부' 명부의 작성과 관리를 중시했을까. 일본군이 만든 '위안부' 관련 명부 종류와 연구의 의미를 살펴본다.
법적 문서로서 진술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자필진술서를 다시 보면 법적인 절차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죄로 자백한 것과 윤리적인 반성, 사죄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타이완척식이 작성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문서로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동원의 문제를 살펴본다.
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
일본군‘위안부’ 역사 현장을 방문한 한 미국 역사교사의 소회와 ‘어려운 역사’를 가르치는 이의 태도와 책임
2000년 여성법정은 시민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글은 2000년 여성법정의 영향을 받아 2015년에 열린 인도네시아 집단 학살에 관한 국제민중법정에 관한 이야기다.
에밀리 정민 윤의 시에서 행갈이와 긴 휴지는 증언자들의 지속되는 고통과 오랜 침묵, 떠듬거림과 머뭇거림에 대한 시적 일탈을 통한 미메시스일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