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많은 일본계 미국인 교민사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었고, 미국에 있는 자산이 동결됐다. 당시 미국은 증거가 부족하고, 일본계 미국인들 중 상당수가 시민권을 가진 2세였음에도 사보타주범이나 간첩으로 활동할 가능성을 의심해 1942년부터 강제 이주를 실행, 1945년 말 폐쇄되기까지 일본계 미국인 약 12만 명이 최대 3년 동안 강제 수용돼 고통을 겪었다. 2011년 수용소 부지에 당시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는 박물관인 ‘하트마운틴해석센터’가 개관했으며, 1988년 레이건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배상에 이어 2022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 9066호를 통한 강제 구금에 대해 사죄한 바 있다.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의 고유 이름. 아르메니아어로 '용기'를 뜻한다. 평화의 소녀상이 해외에 처음 설치된 곳은 주민의 약 40%가 아르메니아계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튀르키예에 의한 집단학살의 기억을 공유한 아르메니아인들의 연대가 이곳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동력이 되었다. 한편 '아리' 이전부터 코리아협의회가 보유해온 플라스틱 모형 소녀상의 이름은 '용이'로, 역시 '용기'에서 따온 것이다. 용이는 현재 코리아협의회가 운영하는 베를린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 '무언다언(無言多言)'에 놓여 있다.
1990년 11월, 37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단체가 연합하여 결성한 조직으로, 생존피해자 복지사업, 조사연구활동, 평화비 건립, 수요시위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제기구와 각국 여성단체 및 인권단체와의 연대활동이다. 유엔인권위원회 등 국제기구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각국 시민단체와의 연대활동을 통해 '위안부' 문제의 공론화에 기여했다.
과거사 청산과 화해에서 독일은 일본의 대립 모델로 여겨진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글은 나치 정부로부터 피해입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국이 수행한 역할과 일본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최근 관련 문서와 증언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자료 등을 소개한다.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침묵 '당했던' 싱가포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성찰
전범 자필진술서는 전쟁 범죄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 사죄의 의미나 용서 등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면에서 여러 화두를 던지고 있다.
법적 문서로서 진술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자필진술서를 다시 보면 법적인 절차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죄로 자백한 것과 윤리적인 반성, 사죄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여행에세이 [2021, 평화로드]는 일제 침탈과 일본군‘위안부’관련 흔적이 남아있는 지역을 살펴보고 그 안에 담겨있는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그 첫 번째 글 ‘서울편’을 전합니다.
‘위안부’ 피해 기억과 트라우마를 재현해온 매체로서 다큐멘터리가 이룬 성과와 한계, 그리고 나아갈 방향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을 강렬한 색깔로 담아낸 그림책 『할머니, 우리 할머니』의 한성원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 글은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첫 번째 '위안부'로 기억하지 못했던 배봉기를 기억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전하려 했을까.
이제라도 국가간 대결 구조를 넘어 배봉기의 삶을 기억하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