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운동은 제국과 식민지, 남성과 여성, 국가와 인민 사이의 차별적 권력 구조에 맞서 소수자와 인간, 여성의 몫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와 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청년좌담에서는 젊은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이은진, 이재임, 최성용과 만나 이들의 삶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어떤 의미와 동인이 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동세대 신진 연구자들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원들과의 문답을 통해, 기지촌 여성들의 생애 구술 채록, ‘피해’와 ‘피해자’를 둘러싼 법적 담론 분석, 한국 사회의 ‘위안부’운동과 담론에 대한 탈식민적 비판 작업 등을 만나 보시죠.
-좌담 일시: 2022년 9월 6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 이헌미, 황진경, 장소정, 이안
-대담: 이은진(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이재임(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최성용(성공회대학교 국제문화연구학과)
-정리: 퍼플레이컴퍼니
Q. 증언을 비롯한 사료들이 현재도 (재)해석/발굴되고 있는데요. 수집과 해석 과정에서 연구자로서 무엇을 고민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은진
평택 기지촌 여성 구술집 작업을 할 때 의식적으로 ‘증언’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어요. 일부러 ‘구술사’라는 말도 쓰지 않고, ‘구술집’이라는 말로 책을 소개했어요. 여기에 실린 말들을 증거처럼 뭔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지 말고, 역사적 의미가 있어서 들을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였죠. 일본군‘위안부’ 피해 증언집 4권(2000)의 전환이라고 한다면, 피해자들의 말을 어떤 정보값으로 다루기를 거부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인식체계 자체를 전복하고 재구성하게 만드는 힘을 가짐으로써 그들의 말을 재위치시키고 전달하고자 한 작업물이었던 거죠. 기지촌 여성 구술집은 한 발 더 나아가, 사실과도 완전히 결별한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영미 지니 윤선: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이경빈·이은진·전민주, 서해문집, 2020)에는 피해자들이 완전히 상반된 사실을 진술하는 것도 그대로 실었어요. 사실을 밝히는 건 피해자가 아니라 연구자의 몫이자 공통의 과제라고 생각했거든요. 피해자에게 부정확한 말도, 틀린 말도 할 수 있는 발화 공간을 허락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상황들과 당시의 대화 분위기 등을 서술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그리고 연구자의 위치와 윤리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듣고 말하는 행위의 정치적 의미를 어떻게 하면 잘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했죠. 연구 윤리와 관련해서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는데요. 가령, 피해자가 중요한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지금 당장은 도움이 안 된다고 가정해보죠. 사회가 승인해줄 법한 피해 서사와 맞지 않을 경우 그것을 공개했을 때 피해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겠죠.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그 발언에서 어디까지 가릴 것인가 고민하게 돼요. 듣는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는데 ‘듣는 태도는 결국 바꾸지 못할 거야. 그렇다면 피해자의 말을 어디까지 편집해야 하지?’라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거죠. 이 작업은 그러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텨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언을 편집해서 없애버리는 대신, 독자가 스스로의 듣는 태도를 거듭 질문하게 하는 데에 집중했어요.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상황적인 요인도 있었어요. 이미 기지촌 여성들의 사법운동이 상당히 진척된 상태에서 저희가 구술작업을 시작했거든요. 법정 싸움은 당시의 법령들, 여러 공문서가 오간 정황 등 문서 자료들을 활용해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피해자는 직접 법정에서 증언할 필요가 없었죠. 그래서 저희의 구술집은 사법운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웠고,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고 당사자 말하기를 둘러싼 고민을 전진시킬 수 있었어요.
이재임
서울대 정진성 연구팀에 있을 때 ‘기록 기억: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이라는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됐고, 그중 하나가 태평양 트럭섬에 다녀오신 이복순 할머니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할머니가 93년도에 정부에 신고할 때부터 “나는 도라쿠도에 다녀왔다”고 말씀하셨대요. ‘위안부’로 도라쿠도에 끌려갔었다고요. 그런데 그때는 도라쿠도를 지명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따뜻하고 바나나를 먹는 곳이었다니까 인도네시아였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연합군이 트럭섬을 점령했을 때 귀환을 위해 짐을 챙기고 있는 이들을 찍은 사진에서 이복순 할머니와 닮은 얼굴을 연구팀이 발견했죠. 그때는 이미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라 대구에 있는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의 이인순 관장님께 확인을 부탁드렸고, 이복순 할머니라는 걸 확인했어요.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돼있던 트럭섬 귀환선 승선 명부에서 히토가와 후쿠준이라는 이름을 발견했죠. 할머니의 아버지 호적을 통해 이복순이라는 이름을 히토가와 후쿠준이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했다는 것까지 알게 됐습니다. 그제서야 할머니가 계속해서 말씀하셨던 ‘도라쿠’가 트럭의 일본식 발음이었구나, 할머니는 트럭섬에 다녀왔다는 말을 계속하셨던 거구나 알게 됐어요. 그걸 알아내기까지는 아주 많은 자료의 교차가 필요했습니다.
전시 포스터를 보면 ‘기록’과 ‘기억’ 사이에 글자들이 부서지고 있어요. 기억과 기록이 교차되면서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우리가 아직 다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듣고자 하는 시도들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자료의 위계를 없애고 모든 자료를 함께 볼 때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증언이든 연합군 자료든 ‘생산 맥락’을 보는 것이 연구자의 기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최성용
증언과 관련하여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위치성에 대한 얘기예요. 예컨대 나이 든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가 훈련된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죠. 저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라 연구팀과 함께 어르신들을 인터뷰할 때면 뒤에서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는데, 그 경험을 하며 위치성이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이것은 생산 맥락에 대한 강조와도 연결되는 것이에요. 최근에 어떤 활동가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죄송했던 기억이 있어요. 더 좋은 질문들을 던지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더 두껍게 들어야 했는데 그분들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어 괴로웠습니다.
정동이나 침묵, 감각, 미묘한 기류 등으로 증언을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일종의 맥락을 두텁게 읽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증언도 그렇지만 사료도 굉장히 구성적이잖아요. 예를 들어 포로심문보고서의 경우, 누가 포로심문을 하고 자료를 작성했느냐, 일본계 2세냐 혹은 조선인 광복군이냐 등 여러 상황에 따라 내용도 완전히 달라지고, 그렇게 생산된 자료가 어떻게 쓰이고 유통됐는지 등 맥락도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아주 구조적인 차원의 힘부터 개별 행위자들 수준의 목적과 욕망이 뒤얽히면서 사료라는 것이 만들어지죠. 공부하면서 이처럼 두터운 맥락들을 읽어낼 역량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시대적인 성격 전환과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안부’문제에 대한 세대교체는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는지, 또 연구하며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은진
‘미래 세대’는 어느 분야에서든 비판하고 있는 용어예요. 문제를 현재의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청소년 등의 주체를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내포돼있기 때문이죠. 이것은 신진 연구자들을 호명할 때도 사용되는데, 미래 세대를 초청하는 동시에 타자화한다고 생각해요.
최성용
연구보다는 운동 차원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한국의 진보적인 시민사회 운동의 상당수가 문재인 정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거치면서 제도 속으로 포섭되어 갔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운동이라는 게 제도화될 수밖에 없는데, 제도화된다는 건 일정한 기득권을 갖게 되는 것이죠. 마이너리티에서 특권을 가진 집단으로 위치가 변해가면서 ‘위안부’ 운동도 진영 담론의 논리 속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게 된 것 같아요. ‘위안부’ 운동과 문제를 어떻게 진영 담론으로부터 구출해낼 것이냐, 혹은 재맥락화와 재의미화를 할 것이냐, 이것은 연구 차원뿐만 아니라 운동 차원과도 겹쳐 있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 지점에서는 세대교체라는 말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 세대 등과 관련하여 민주노총 내에서 작년부터 연구를 하고 있어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받아들여 노조 집행부 자리의 일정 부분을 청년에게 내줬는데, 정작 의사결정 권한은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에 의견이 대립되고, 세대 갈등이 작동하는 맥락들이 있었죠. 기성세대는 ‘요즘 청년 노동자 조합원들은 집회 나오라고 하면 안 나온다. 이기적이다’라고 말하고, 청년세대는 ‘우리가 얘기를 하면 안 듣는다. 그러니까 안 나가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런 구도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보이고, ‘위안부’ 연구에서도 어느 정도 유사한 결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후속 세대가 등장해야 하는데 잘 나타나지 않고, 그렇게 되니 오기만 해도 고마워하며 소위 말해 ‘우쭈쭈’하게 되는 것이죠. 기존의 ‘위안부’ 연구 혹은 운동에 대해 비판했을 때 기성세대들이 어떤 태도를 보여줄까 싶고, 노동조합의 예시처럼 청년들이 튕겨 나가거나 없는 사람처럼 무시되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는데요. 그러한 권력관계 지형 속에 이 문제도 놓여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은진
저는 엄밀히 말하면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에요. 논문도 낙태죄 관련으로 썼고, 스스로를 재생산정의 활동가로 정체화하기도 하고요. 이런 입장에서는 일본군‘위안부’ 의제와 다른 의제의 연결성 차원으로 세대 전환이나 교체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운동이나 의제도 일종의 생애 주기가 있으니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하는 건 한계가 있겠죠. 하지만 여성, 인권 운동의 계보 속에서 다른 의제들과 연결되며 현재화되는 방식으로 현재성을 얻게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일본군‘위안부’ 운동이나 문제가 게토화되면서 그런 방식의 현재성을 얻는 일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현재화하기 위한 몇 안 되는 시도들이 있지만, 그마저도 단선적인 상상에서 그치는 것 같아요. 가령 일본군‘위안부’에서 미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성매매 여성으로 이어진다는 식으로요. 저는 좀 더 복잡한 연결망 속에 일본군‘위안부’ 이슈를 놓아보고 싶어요. 셰어에서 ‘몸이 선언이 될 때’라는 전시에 참여해 저도 함께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 연표를 만들었어요. 임신중지 관련 사건이나 개념들을 비롯해 몸과 재생산에 대한 수많은 억압들을 연표로 정리하면서 장애인 등 시설화된 삶과 이것이 어떻게 교차되고 얽혀있는지 드러내고, 존재가 곧 범죄였던 트랜스젠더 등의 삶과도 연결했습니다. 그러면서 ‘위안부’ 이슈도 이런 연결망 위에 놓을 수 있지 않을까, 꼭 성매매와 연결되는 의제로만 상상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최성용
민주화 운동 서사를 볼 때 느끼는 불편함이 있어요. 정형화된 서사들을 보면 교과서나 박물관에 박제된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내가 들어갈 틈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 봐도 현재와 연결시킬 수 있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고, 기존의 정형화된 서사는 담아낼 수 없는 개인 및 집단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있는데, 그런 것들은 계속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과거사 운동이 제도화되고 국가의 공식 기억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들이 사장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의 역사적 자원으로 삼고 새로운 질문이 나오게끔 하는 촉매제로 삼으려면 국가의 공식 기억과는 별개로 사회적 기억이 두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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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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