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투쟁 영역의 확장 〈1부〉 - 부딪치는 차이들

웹진 <결> 편집팀

  • 게시일2022.10.14
  • 최종수정일2022.11.27

일본군‘위안부’ 운동은 제국과 식민지, 남성과 여성, 국가와 인민 사이의 차별적 권력 구조에 맞서 소수자와 인간, 여성의 몫을 확보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의 역사와 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청년좌담에서는 젊은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이은진, 이재임, 최성용과 만나 이들의 삶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어떤 의미와 동인이 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동세대 신진 연구자들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원들과의 문답을 통해, 기지촌 여성들의 생애 구술 채록, ‘피해’와 ‘피해자’를 둘러싼 법적 담론 분석, 한국 사회의 일본군‘위안부’운동과 담론에 대한 탈식민적 비판 작업 등을 만나 보시죠.

-좌담 일시: 2022년 9월 6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 이헌미, 황진경, 장소정, 이안
-대담: 이은진(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이재임(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최성용(성공회대학교 국제문화연구학과)
-정리: 퍼플레이컴퍼니

 

Q. 선생님들의 전공이 다양하고, 일본군‘위안부’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분도 계십니다. 본인 소개를 비롯해 각자의 관심 분야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며, 동시에 다양한 맥락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만나고 글로 풀어내는 과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은진 ©오늘의 나

 

이은진

저는 현재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기획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셰어는 ‘재생산 정의(reproductive justice)’라는 개념을 주요하게 가져가고 있는데요, 현재의 불평등이나 부정의를 페미니스트로서 바라볼 때 성과 재생산을 둘러싼 힘의 작동 방식을 주의 깊게 살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위안부’ 이슈가 성과 재생산에 관한 한국 사회의 지형을 살피는 데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요. 

인권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있던 상태에서 2017년에 법대 석사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2014년에 미군 기지촌 여성분들이 국가 대상으로 진행한 손해배상 소송을 접하게 됐죠. 소송 과정에서 승소를 위해 피해자의 증언이나 구호가 정형화되는 면이 있잖아요. 그런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차에 친구에게 미군 기지촌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구술집을 펴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와 인류학 전공자, 영상 전공자 셋이서 팀을 이뤄 평택의 ‘이모들’을 만나는 구술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기획, 채록, 편집, 출간 전 과정이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인류학의 민족지 이론, 미학의 재현 이론, 페미니즘의 피해자 중심주의 등 여러 갈래의 흐름들이 작업의 기반이 되었는데요, 일본군‘위안부’ 증언 연구도 중요한 참고 지점이었습니다. 그때 제 지도교수님이 일본군‘위안부’ 피해 증언집 4권의 저자인 양현아 선생님이셨어요. 그래서 때로는 교수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하면서, 이제는 20년이 된 증언집의 의미를 어떤 부분에서 계승하고 어떻게 더욱 새롭게 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미군 기지촌 여성 구술집을 출간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일본군‘위안부’ 이슈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1년 정도 일본군‘위안부’연구회의 간사로 지냈고, 석사 졸업 후 셰어에서 일하게 되고 나서도 ‘국제법X위안부 세미나’에 참여하는 등 ‘위안부’ 이슈와의 느슨한 연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성용 ©오늘의 나

 

최성용

저는 활동가와 연구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고, 비평이나 칼럼을 쓰는 일도 하고 있어요. 관심 분야는 청년, 노동, 젠더 등입니다. 박사논문의 문제의식은 ‘위안부’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동떨어져 있기도 한데요, ‘폭력은 어떻게 사회를 만들어내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중심에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국가(폭력)이란 무엇이고 그게 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혹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심성들을 만들어냈는지 질문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제주 4‧3 사건 등 전쟁과 학살의 경험, 국가폭력에 대한 역사들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 것 같아요. 지난번 오키나와로 필드워크를 갔다가 배봉기 할머니를 도왔던 김현옥, 김수섭 부부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위안부’ 문제를 조우하게 됐습니다. 일본에 계시는 이영채 선생님, 우쓰미 아이코 선생님 등 B·C급 조선인 전범을 연구하신 선생님들을 만나며 영향을 받았고요. 그러면서 식민주의 문제, ‘위안부’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위안부’ 관련해서는 정의연 사태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지난 정부의 일종의 ‘3대 사태’라고 하면 조국 사태, 정의연 사태, 박원순 사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정의연 사태는 당시 지형이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있었죠. 조국 사태 이후 이른바 친조국과 반조국이 갈라진 상태에서 정의연 사태가 터진 후 진영 논리의 자장 안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미향 의원이 총선에 출마했을 때 좌파라는 사람들조차도 여성혐오적 뉘앙스로 ‘위안부 팔아서 국회의원 해먹는다’는 말을 했는데,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윤미향 의원, 정의연, ‘위안부’ 운동 등이 여전히 대상화된 ‘여성’으로서 재현되고 이야기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요. 너무 많은 지형이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세세하게 뜯어서 얘기하지 않고 친/반으로만 이야기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컸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이재임 ©오늘의 나

 

이재임

석사와 박사 모두 여성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박사과정 중이에요. 현재는 법과 사회가 폭력이나 범죄를 다루는 방식을 연구 관심사로 삼고 있습니다. 2017년에 학부 논문을 썼는데 당시 『 제국의 위안부』가 학부 내내 이슈였어요. 역사를 전공하고 있었고,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시기였기 때문에 『 제국의 위안부』를 주제로 논문을 쓰겠다는 결정을 자연스럽게 했어요. 『 제국의 위안부』를 어떻게 비판할까 고민하면서 정영환 선생님의 책과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논문을 읽고, 소녀상에 대한 글도 읽으면서 역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운동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논문을 쓰면서 막연한 책임감과 정의감을 갖게 됐고, ‘위안부’를 석사 연구 주제로 삼고 싶어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Q. 박유하 교수의 『 제국의 위안부』, 2020년의 ‘정의연 사태’ 등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일본군‘위안부’운동 관련 다양한 이슈가 있었습니다. 또한 페미니즘 리부트,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운동과 일본군‘위안부’운동이 만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여러 이슈가 신진 연구자에게 시사하는 쟁점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이슈들을 결합하고 혹은 해체할지 궁금합니다. 

이은진

페미니즘 리부트, 미투 운동을 계기로 ‘위안부’ 운동이 여성운동과 만났다는 서술에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에요. ‘위안부’ 운동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에도 여성운동이었어요. 2000년 법정의 이름도 여성국제법정이었고, 피해자들 또한 다른 나라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 계속 연대해왔는데 이것을 페미니즘, 여성운동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마치 민족주의 운동이기만 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데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 아니고요. 그렇다고 ‘위안부’ 운동은 나름대로 페미니즘 운동을 했다는 식으로 방어적인 대응을 하는 게 능사는 아니고, 지금은 내부를 돌아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위안부’ 운동이 페미니즘 운동이었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위안부’ 운동이 어떤 페미니즘 운동이었고 앞으로는 어떤 페미니즘 운동이고자 하는가를 돌아봐야 할 때죠.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 노선이 다변화됐고, 내부에 갈등도 많은 상황이잖아요. ‘생물학적 여성’의 안녕만을 도모하는 것이 곧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주장하면서 트랜스젠더 등 다른 소수자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는 흐름도 존재하고요. 이제 90년대의 프레이즈인 ‘민족에서 여성으로’ 이후 한 단계 더 나갈 필요가 있어요. ‘여성으로’가 무슨 뜻인지, 어떤 페미니즘이어야 하는지, 젠더를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 다른 억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거기서 ‘위안부’ 운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건 셰어에서 활동하면서 구체화되고 날카로워진 문제의식이기도 해요. 셰어는 이전부터 장애계와도 소통하면서 낙태죄 문제를 고민했던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있고, 낙태죄 폐지 운동을 거치면서 단체를 설립하게 되었어요. 상호 교차성을 활동의 중심에 두고 있고, 낙태죄 폐지 운동을 여성 신체에 대한 자율성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던 인구 통제, 이를 위해 계속해서 이뤄졌던 재생산 억압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만들려고 했던 단체입니다. 그때 주요했던 구호가 ‘낙태가 범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낙태죄 폐지는 비정상인 승리의 역사가 될 것이다’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여러 억압을 포괄적으로 함께 보고 있어요.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지금의 페미니즘 지형과 연결되고, 젠더화된 힘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진전시킬 수 있기를 바라요. 

지금의 페미니즘 지형에선 ‘국가’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도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이든 성소수자든 소수자의 권리가 국가에 의해서 담보될 때의 한계가 있거든요. 경찰, 군대, 감옥 역시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일조하고 있는데, 페미니즘 운동의 목표가 오로지 국가의 더 많은 개입을 촉구하는 것이어선 안 됩니다. 일본군‘위안부’ 운동 역사가 30년이나 된 만큼 물론 어느 정도는 제도화되어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운동과 국가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계속해서 급진적인 운동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좌담 전경. (왼쪽부터) 최성용, 이은진, 황진경, 이안, 이헌미, 장소정, 이재임 ©오늘의 나

 

최성용

셰어에서 재생산과 관련하여 개념을 확장시켜 나간 게 놀랍습니다. ‘위안부’ 운동도 그러한 잠재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민족에서 여성으로’라는 구호와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퍼져나갔고, 저도 그 자장 속에 있는 사람인데요. 이제는 그것을 되풀이하는 것을 넘어 다른 이야기들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성공회대 조경희 선생님이 쓴 글[1]을 보면 90년대 재일조선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수용하고 이해해갔는가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어요. ‘여기’에서의 교차성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재일 조선인으로서 전후 일본 사회에서 지속되는 식민주의 문제를 온몸으로 겪어온 집단이기도 하고, 동시에 여성이기도 하고, 한쪽만 이야기하는 운동이나 논의에 대해선 스스로 온전히 대변할 수 없었던 불편함들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김학순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를 마주하게 되면서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서게 됐는지 자각해갔다는 이야기였어요. 교차성이라는 게 ‘여기’의 맥락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한국 사회에서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페미니즘 리부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면 ‘우리에겐 (페미니즘) 계보가 없다’고 했다가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방향으로 논의가 바뀌어간 것을 기억하는데요. 지난 8월 한 달 정도 출장 목적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흑인운동 관련 전시와 서점을 방문하고 공연도 봤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폭동(riot)’의 역사를 계속해서 상기하더라고요. 역사와 계보를 스스로 만들어나가고, 과오를 되짚어가며 토론하고 있었어요. 운동에 참여했거나 관심 있게 지켜봤던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집합 기억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었죠. 그것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운동들은 그러한 노력을 얼마나 해왔나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제게 ‘우리에겐 계보가 없다’라는 말로부터 이어지는 고민인 것 같아요. 페미니즘 리부트를 거치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청년 세대 여성들이 ‘위안부’ 운동을 조우했을 때 ‘최초의 미투 운동’이라는 수사를 사용한 것은 그들 나름대로 자기 맥락 속에서 계보를 찾고 역사를 구성해나가려는 시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미투 운동이든 ‘위안부’ 운동이든 최초로 증언을 하게 될 때의 용기와, 증언이 부정되는 경험들, 수많은 사람들이 연대해나가는 경험들이 다르면서도 유사한 패턴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 과정들 속에서 과거를 통해 용기와 교훈, 위로를 얻기도 하고 동시에 ‘위안부’ 운동도 현재의 페미니즘 리부트와 만나면서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며 상호 참조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재임

요즘 ‘위안부’에 대한 석사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하기 위해 고민 중인데,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스트가 된 사람들이 일본군‘위안부’ 운동을 얼마나 여성운동으로 여기고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석사 논문을 쓸 때도 ‘위안부’ 운동이 페미니스트 정치학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역으로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제가 주목했던 것 중 하나는 피해와 피해자를 보는 시각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지금 페미니스트 운동이 놓여있는 지형이기도 하죠. ‘위안부’ 피해자를 둘러싼 담론들이 그 지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피해를 개인의 고통이자 불운한 사건으로 보고, 피해자에게 보호나 지원 등 인도주의적 조치를 해주면 끝이라는 문제적인 인식 말이에요. 이러한 지적이 페미니스트 연구자들, 페미니스트가 된 사람들에게 ‘위안부’ 운동을 내 문제라고 여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석사논문을 썼습니다. 

 

각주

  1. ^ 조경희, 2020, 「포스트 식민 페미니즘의 (재)소환: 1990년대 재일여성들의 ‘위안부’ 운동과 정체성 정치」, 『문화과학』, 2020년 겨울호 (통권 제104호), 문화과학사.

 

‧이은진 발언 참고
https://www.ildaro.com/8525  
https://view.pong.pub/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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