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성찰”의 연속에서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컨퍼런스>후기

권향숙

  • 게시일2021.12.23
  • 최종수정일2022.02.14

COVID-19와 온라인 개최 덕분에 얻은 특혜 

지난 10월 중순, 아시아연구 가을학기 대학수업의 일환으로 학부생들 20여명과 함께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COVID-19로 국제 컨퍼런스가 온라인으로 개최된 덕분에 학부생들과 함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최근 연구와 토론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영상으로 개최된 덕분에 컨퍼런스가 끝난 지금도 생각날 때 마다 유튜브 영상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자료를 공유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컨퍼런스에 함께 참가한 학생들은 K-POP을 즐기고 열광하는 학생들이다. 코로나 이전 까지만 해도 석 달에 한번, 심지어는 한달에 한번씩 서울을 오가며 팬 미팅에 참가하는 이들도 있다. 주말에 친구들과 혹은 엄마와 함께 여행삼아 한국을 오가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일관계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세대 프레임”이 일종의 설득력을 가질 만큼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했다.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컨퍼런스_현장사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제공


한편 이들은 대학에 와서야 ‘“위안부’”문제를 알게 되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구동성으로 다들 공교육을 통해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아쉬움의 감정은 회의 둘째 날 세션4의 “전쟁의 성별성과 평화의 문제”에서 던져진 질문에 대한 학생들 나름의 반응이었다. 즉,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같은 또래 여학생이 ‘만약 나였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나와 결부시켜 보면 어떨까?라는 히라이 미쓰코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들은 정곡을 찔렀던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걷잡을 수 없고 치가 떨린다고 했다.

관부재판”을 지원한 일본시민들 

실은 학생들과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봄학기 대학수업에서 막 출판된 “ 관부재판”이란 신간도서(花房俊雄・花房恵美子,『関釜裁判が めざしたもの: 韓国の おばあさんさちに寄り添って』,白澤社/現代書館、2021年)를 함께 읽으면서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5월에 번역서로 출판되었다.[1]

(왼쪽부터) 도서 『관부재판』의 일본어판, 한국어판 표지


이 책의 저자 하나후사 도시오씨와 하나후사 에미코씨는 “전후 책임을 묻는다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하는 모임)”을 조직하여, 관부재판의 원고를 돕고 입법 활동을 펼친 일본인 부부이다. 이 책은 관부재판을 지원하면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고, 어떻게 소송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1998년 판결 이후 일본 사회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 28년간의 활동과 원고들과의 교류를 담은 기록이다. “지원하는 모임”은 2013년에 해산했다. 책에서는 이들이 그동안 할머니들과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고, 할머니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진정한 화해와 바람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활동과 원고로 참여한 할머니들의 증언 내용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바람직한 “지원”과 성찰

역사적 사실과 증언에 대한 참고자료와 함께 이 책을 과제도서로 정한 이유는 오직 하나다. ‘위안부’와 ‘정신대 피해자’와 함께 지내온 28년간을 돌이키며 “지원운동을 하면서 느낀 의문과 고통”을 함께 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람직한 ‘지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독자 스스로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저자인 하나후사씨 부부가 할머니들을 존중하고 진정으로 위하는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지원하는 모임”에 참여한 멤버들의 소박하고도 인간적인 면면들이 마지막 장에 고스란히 기술되어 있다. 일본의 보통 시민들이 재판을 지원하고 할머니들의 삶을 내면화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시민 활동은 차세대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고 인식하고 실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책의 행간을 통해 “나의 문제”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에 이 “성찰”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한 단어와 만났다. 그 단어는 바로 '마이크로어그레션 (microaggression)'이다. 일본어로 잘 옮겨지지 않아 카타카나로 번역서가 출판되어 있다. '아주 작은(micro)'과 '공격(aggression)'이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해석하면 미세하지만 공격적인 차별을 일컫는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차별의 대상은 인종, 젠더, 신체 등으로 겹겹이 얽히고설켜 있으며, 이러한 차별은 경계 사이 마이너리티에 대한 머조리티(majority)의 몰이해가 근원이다. 한국어로는 “먼지차별”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전시 성폭력 피해가 역사적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일어났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제국의 국가 책임은 물론 “텐노우세이(천황제)”에 대한 제도적 폭력을 쟁점화하고, 진정한 사죄를 받기 위한 목소리를 낮추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자로서의 삶을 “나의 문제”로 생각할 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방식의 접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무지했던 나”, “행동하지 않는 나”,  “방관하는 나”, 이런 내가 할머니들을 먼지 차별 속으로 몰아가는 구조적 폭력의 가담자이지는 않았을까? 그 어딘가에서 아픈 경험을 털어 놓지 못한 채 숨죽이고 계실 그리고 돌아가신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리며 이런 성찰을 해 본다.

새로운 관계를 위한 시작으로

“질문”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컨퍼런스 프로그램을 통해 제기된 여러 물음에 대한 사색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의식의 밑바닥을 맴돌고 있다. “너무 몸이 아파서 죽고 싶다. 그렇지만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고운 옷도 입어 보고 싶다.” 고인이 되신 피해자 할머님의 역설적인 말씀이 소개되면서 던져진 폐회사 물음과 맺음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과연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과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어떤 자세로 무엇을 들을 것인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위한 시작점.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사람(human being). 부단한 성찰과 실천을 통해 나 자신이 수많은 관계 개선을 만들어나가는 시작이고 싶다 . 

함께 읽기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컨퍼런스> 폐회사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 소장 정유진)

 

각주

  1. ^ 하나후사 도시오, 하나후사 에미코 지음, 고향옥 옮김, 『 관부재판 소송과 한국의 원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한 28년의 기록』, 도토리숲,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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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문제이면서 민족 문제인 ‘위안부’ 이슈는 외교 관계를 통해 ‘해결’되어야할 사안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숙의(熟議) 과정을 통해 “집단의 노력”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진행형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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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며, 해설의 대상도 아니다. 경험이 움직임이자 상황 혹은 관계성의 생성이라는 의미는, 그것을 말로 하려는 ‘나’ 자신이 그 움직임 안에서 새로운 관계성의 일단을 감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도미야마 이치로(冨山一郎) 2021.10.06

글쓴이 권향숙

일본죠치대학총합글로벌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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