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만난 일본군 '위안부'
- '위안부' 수업의 성찰적 진화
일본군'위안부' 문제(이하 '위안부' 문제)는 역사 교사들이 남달리 생각하는 수업 주제 중 하나다. 전쟁 범죄를 통해 인간성이 말살된 참혹한 사례라는 점은 '이 역사적 진실을 아이들과 꼭 나누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역사 교사들이 가지는 일종의 책무감이다. '위안부' 문제가 단지 참혹하고 비극적 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아이들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피해자들이 용기 있게 증언에 나섰고 보편적 인권을 위해 싸우는 감동적인 과정이 있었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현재,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위안부' 문제는 국가교육과정에 공식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특별 수업의 형태로 교육이 이뤄진 과거와 달리 지금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만 해도 필수 과목인 『한국사』와 선택 과목인 『동아시아사』를 통해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를 배운다. 교과 활동을 넘어 동아리 활동이나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다양하게 교육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국가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자체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교육이 충실하게 이행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위안부' 문제 교육을 둘러싼 성찰과, 그를 통한 교육의 진화에 있다. 역사 교사들과 교육 연구자들은 '위안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과 함께 나눌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해왔다. 이는 오늘날 다양한 방식으로 현장에서 실천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 문제는 지금까지도 '역사화'의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많은 역사 교사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종의 당사자성을 스스로 부여하는 것은 아마도 그 '역사화'에 나름의 실천을 담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현장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위안부' 교육을 둘러싼 고민 지점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교육 현장에서 성찰한 지점을 '감수성', '삶과 만난 실천', '보편과 인권의 이름'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소개하려고 한다.
감수성
:수업에서 고통을 전시하기만 할 수는 없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상을 도저히 끝까지 보기 힘들었어요. 속이 울렁거리고 힘드네요. 이전에 봤던 '위안부' 영화도 다 못 보고 나오고 말았어요”
-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공개 수업을 다 보지 못하고 뛰쳐나간 필자의 동료 교사
진실은 그 자체로 실천의 도구가 되고 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위안부' 문제는 공론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투쟁이었다. 피해 당사자들의 입에서 역사적 진실이 확인되었고 '할머니'들의 실천을 통해 진실이 역사화 되었다.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과 같은 시민단체의 활동가와 학계에서 성실하게 채록해온 당사자들의 구술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역사 텍스트다. 이를 기반으로 한 영화 등의 영상 텍스트도 최근에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애써, 일본 정부가 힘써 외면하던 진실을 가르치고 나누는 것 자체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많은 역사 교사들은 자칫하면 '위안부' 문제 수업이 그들의 고통을 전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닐지 우려한다. “'위안부' 문제와 같이 끔찍한 사안은 초등학생이나 저학년을 대상으로 다룰만한 주제가 아니”라며 방어적으로 수업하는 경우도 많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제작된 6학년 사회 교과서(국정)에서는 피해자들에 대해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고 서술하여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1]. 논란에 대해 당시 교육부는 '어린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서술을 할 순 없다'고 응수했다. 역사적 사건 서술에 대한 최소한의 구체성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최근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가 많이 제작되어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거나 수업 자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영화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한' 폭력을 묘사하는 것 자체가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심지어 그 묘사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수준에 머무는 경우도 많다. 이는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성찰적 태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수업 자료로도 부적절하다. 앞서 제시한 나의 동료 교사의 거부감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단순한 피해 전시에서 더 나아간 수업은 어떻게 가능할까? 일제강점기 이후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실천과 행위를 충실히 역사화하고 수업에 반영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 이후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이어졌고,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현 정의기억연대)'과 같은 시민단체와 학계가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연대했다. 이 문제가 한국 사회를 넘어 세계적인 보편의 문제로 다루어진 것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역사 교사들은 1990년대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이 인간의 존엄을 위해 싸워온 역사를 수업에서 다루려고 노력한다. 역사 교과서에 짤막하고 피상적으로 서술된 것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말이다.
할머니들은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마냥 전시하지 않았다. 이를 직면하고 나아가 용기를 내어 실천하는 삶을 택했다. 놀라운 실천이었던 수요시위, 베트남 전쟁 피해자와의 연대, '나비기금' 등도 충분히 역사 수업의 내용이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할머니들을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부정적 경험만을 수업에서 다룰 필요는 없다. 이는 할머니들이 거대한 역사적 폭력에 수동적으로 당한 존재로 여겨지게 할뿐더러 그들의 비극을 단지 자극적으로 소비하게 만든다. 고통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역사의 주체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루기 위해 오늘도 많은 역사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개편해나가고 있다.
삶과 만난 실천
: '위안부'를 주제로 '역사하기'
민주시민교육[2]은 최근 교육 현장에서 주목받는 화두 중 하나다. 민주시민교육의 강조와 더불어 학교 현장에서는 비교과 활동을 통해 사회 문제를 실천적인 교육으로 다뤄보고자 하는 교사와 학생들의 시도가 이어졌다. 초기 단계부터 지금까지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 '인권동아리'나 '역사실천동아리' 등이다. 시민사회, 사회 이슈와 직접적으로 만나는 동아리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동아리들은 수요시위에 함께 참여하고 학내에 소녀상을 세우거나 관련 기념품을 판매하여 단체에 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초창기만 해도 학생들을 데리고 '시위'에 나가거나 민감한(?) 이슈와 관련해 직접 실천하는 동아리 활동은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활동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고등학생들이 주도하는 수요시위나 문화 공연도 많다. 역사 교사와 학생들의 의지와 실천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는 매우 실천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학생들을 아픈 역사와 직접 만나게 하고 나아가 스스로 역사적 주체로 서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역사 교사들이 프로젝트 수업, 학생자치 프로그램, 동아리 등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의 원형으로는 최종순(전 누원초 교사, 퇴직)의 수업[3]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해당 교사는 90년대 후반부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교실로 초대하고 그들의 증언을 학생들이 직접 듣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업을 해왔다. 사회 이슈 자체를 모두 '민감한 것'으로 치부했던 당시 분위기에서 이러한 시도는 무척 파격적이었다. 이러한 수업 방식은 학생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에 주목하고 그들 개개인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하였다. 교실에서의 강렬한 경험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나아가 다양한 교과와 융합하여 '위안부' 문제를 다룬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시도들이 마중물이 되어 오늘날 실천적인 '위안부' 문제 수업의 기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초임 시절 첫 제자들과 함께 방학 때 서울로 올라와 수요시위에 참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중 한 학생의 대표 연대 발언 장면은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퍽 인상 깊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학생은 고등학교에서 스스로 역사 동아리를 조직하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했다. 나아가 지금은 대학에 진학해 역사 교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렇게 '위안부' 문제를 통해 '역사하기'를 체험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분명 흐뭇한 일이다.
'경기도교육청 꿈의 학교'인 의정부 평화나비학교의 사례[4]는 이러한 실천형 '위안부' 문제 교육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 대학생, 학부모, 중·고등학생 100여 명으로 구성된 '평화나비학교'는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실천하는 다양한 활동을 2년여간 이어왔다. 피해자 할머니를 모시고 증언을 듣는 자리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관련 영화 상영회를 개최하였으며, 의정부 시내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해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2015.11.07. 건립). 이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를 함께 공부하고, 실천 방안을 고민하며, 활동을 조직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각 학교의 학생자치회와 연계하여 작은 소녀상을 세우는 사업도 전국적으로 성행했다[5]. 학생자치회 학생들이 직접 캠페인을 벌여 기금을 모금하고 학교 내 공간에 작은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여 공공역사를 체험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활동들은 모두 역사를 삶의 문제로 가져오는 실천적 배움이 어떤 교육적 효용이 있는지 몸소 보여준 사례다.
보편과 인권의 이름
-보편지향의 '위안부' 문제 수업을 향하여
학생 K : 와, 일본놈들. 우리도 나중에 일본 여자들한테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학생 B : (피식 웃으며)'야동' 보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일동 웃음)
- '위안부' 문제 수업을 마친 후 학생들의 대화(2018)
특성화고에 근무하던 시절, '위안부' 문제 수업을 마치고 나가면서 들은 대화다. 스치는 대화였지만 찰나의 순간에 느낀 충격을 잊지 못한다. 대화를 들으면서 '내 수업은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 경력이 많지 않던 시절, 진실을 알린다는 명목하에 할머니들의 고통을 전시하기만 한 수업의 처참한 결과였다. 학생들이 소속된 '남초 집단'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어디서부터가 문제였던 걸까? 당시 나의 수업 내용과 디자인에 문제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우선, '위안부'라는 소재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젠더 이슈라는 점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증오라는 감정이 곧잘 남에게 전이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교실에서 교사의 분노는 학생들에게 쉽게 전파된다. 그 분노의 진원지는 어떤 것이었나. 민족과 국가라는 시각에서만 수치심과 분노를 드러냈던 것이 잘못이었다. '위안부 교육'은 보편적 인권에 입각해 젠더적 접근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더욱 다층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교육적 효과와 함의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2017년 1월, 일본 삿포로를 방문하여 일교조(일본 교직원노동조합)의 교사들과 만났다. 동아시아 평화교육과 관련된 수업 사례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에서 '히라이 아스코' 선생님의 수업 사례를 들었다. 히라이 선생님의 발표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가슴 깊이 남았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상품화 문제일 뿐 아니라 남성의 인권도 침해하는 문제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해요.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국가에서) 남자라는 존재는 국가가 보낸 빨간 봉투(입영통지서)를 받으면 무조건 전쟁터로 가야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죽을 수도 있고, 여성과 동침시켜주면 그렇게 해야 하는 존재로 취급되었던 것 아닌가요? 그것 자체가 남성이란 존재에 대한 비하이며 인권침해에요. '위안부' 문제는 여성만이 분노할 문제가 아닌 거죠.
- 히라이 아스코(삿포로 마코마니아 중학교 교사)
히라이 아스코 선생님은 '위안부' 문제가 단지 여성 인권에만 국한된 주제가 아니라 남성들 역시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라는 점을 짚었다. 아이들과도 그 점에 관해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보편인권의 문제로 확장해서 접근하여 큰 교육적 영감을 남긴 사례였다.
아무리 좋은 수업과 교육적 실천이라도 계속 고민의 수준을 확장하지 않는다면 생명력을 잃고 낡은 것이 되고 만다. '위안부' 문제 수업의 생명력도 마찬가지다. 그 생명력은 성찰에서 나온다. '위안부' 문제 수업의 정신을 살려 세계사 속의 한국사를 성찰적으로 수업한 사례들도 있다. 맹수용(경기 의정부고) 선생님의 수업 사례[6]가 대표적인 경우다. 냉전과 전쟁에 대한 세계사 수업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당시 지역 사회의 이슈였던 기지촌 여성 문제를 연계한 것이다. 한국 정부의 관리와 통제 하에 미군을 상대해야 했던 기지촌 여성에 대한 고민은 강제동원의 고통에 시달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연계하여 인권 감수성을 벼를 수 있는 사안이다.
'기지촌 여성'을 국가폭력의 관점에서 성찰하고 여성의 존엄과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게 했다는 것에서 맹 선생님의 수업은 또 다른 '위안부' 문제 수업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이 원해서 했다면 괜찮은 거 아닐까요?'라고 무심하게 말을 던졌던 일부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이 일본 극우의 논리를 대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성찰하고 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국가폭력과 여성 인권 그리고 개인의 삶이 역사 수업을 통해 교차한 순간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 간의 역사문제에 그치지 않는 전시 여성 성폭력의 문제, 인류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입니다.” 2018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은 대통령의 발언이다. 역사 교사들의 '위안부' 문제 수업이 한일 갈등과 반일주의의 좁은 폭에 갇힌다면 할머니들의 실천을 제대로 학생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 교사들은 스스로의 수업에 물음을 던지며 '위안부' 문제 수업을 고민하고 있다. 보편적 인권을 아이들과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 수업을 위해서.
'용감한 할머니들'의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용감한 할머니 이야기'. 전국역사교사모임이 30주년을 맞이하여 출간한 역사 수업 책에서 김선옥(현 호치민한국국제학교 교감, 역사교사)이 '위안부' 문제 수업 관련 원고[7]를 쓰며 붙인 제목이다. 여기에서 어떤 의지 같은 것을 느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민족 서사에 가두거나 여성의 순결주의와 같은 헛된 관념의 포로로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용감한 할머니'라는 호명은 그들 자신과 연대자들의 삶을 그 자체로 존중하겠다는 생각일 테다.
'윤회'라는 것이 물리적 신체의 재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업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이어지는 개념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역사는 많은 사람의 삶에 '윤회' 되기에 충분하다. 그 길에 역사 수업이 공헌할 바는 없을까.
'정의연' 논란으로 많은 이들이 참담함을 느낀다. 해당 논란 자체를 가슴 아파하는 사람, 논란이 확대되고 오인되는 과정에 고통을 느꼈던 사람, '위안부' 문제가 역사화되는 치열한 과정을 알기에 더욱 상처받은 사람 등…. 많은 역사 교사들은 “아이들을 수요시위에 마음 편히 데려갈 수 없게 될까?”, “할머니들과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오욕과 상처를 받게 될까” 우려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역사 교사들은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한 당사자로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역할을 자임할 것이다. 주체적 의식 속에 만들어가는 '위안부' 문제 수업을 기대해보자. 더불어 이러한 수업을 통해 동료 시민으로 성장할 아이들을 함께 떠올려보자.
각주
- ^ 2015년 당시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져 격론이 일어났던 때다. 공교롭게도 2016년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사회 6-1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가 제외되어 크게 논란이 되었다. 교육부는 '초등 학생의 발달수준을 고려해 위안부라는 표현을 뺐다'고 해명했다. 2018년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진과 설명이 다시 추가되었다. (남지원 기자, 「초등 사회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설명 되살아났다」, 경향신문, 2018)
- ^ 민주주의 가치를 존중하고 상생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다. 민주주의, 인권, 평등, 평화, 환경, 미디어 리터러시 등 다양한 주제가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주제별 교육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적 가치와 태도, 역량을 높이고 참여와 실천으로 확장하는 포괄적인 교육을 뜻한다.
- ^ 최종순, 「나는 아이들과 무엇을 했는가?」, <역사와 교육 18호>, 2019.
- ^ 우현주 외, 「평화나비학교: '평화나비학교'가 꿈꾸는 마을 학교」, <역사교육> 110호, 전국역사 교사모임.
- ^ 이화여고 학생 동아리 '주먹도끼'와 지도교사 성환철 교사로부터 시작된 운동이다. '작은 소녀상 건립운동'이라고도 부른다. 2015년 졸속적으로 진행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반대하고 아픈 역사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학내에 가로30cm 세로 30cm 크기의 '평화의 소녀상'의 축소판 구조물을 건립하는 운동이다. 2017년 기준 전국 100곳 이상의 학교에 건립되어 화제를 모았다.
- ^ 맹수용, 「지역사를 활용한 세계사 수업-냉전과 미군기지, 그리고 기지촌 문제를 중심으로」, <역사교육> 126호, 2019.
- ^ 김선옥, 「용감한 내 이웃 할머니의 이야기」, <역사교실:역사에서 배우고 삶으로 가르치는>, 비아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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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문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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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인 운산고등학교(경기 광명)에서 아이들과 역사 공부를 함께 하고 있는 교사다. 아이들이 좋아지는 만큼 세상이 좀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역사과 교사 교육과정 만들기(교육과정 재구성)과 민주시민교육 등에 관심이 많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의 회원으로 편집부장의 일을 맡아 모임 회보인 계간 <역사교육>을 만들고 있다. <역사교실 : 역사에서 배우고 삶으로 가르치는>(공저, 비아북), <동아시아, 평화로 다시 읽다>(공저, 서울시교육청)을 역사 선생님들과 함께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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