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5번지가 있다. 이곳엔 여러 사람들이 산다. 낮은 다세대주택이라고 불러도 좋다. 방음이 잘 된 아파트는 아니지만, 낯익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낯모르는 사람들도 모여살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층간 소음이 워낙 익숙해서 인지 주민들끼리 우글우글 왁자지껄하지만, 울고 웃고 외치고 하소연해도 이웃들이 시끄럽다고 신고하거나 악다구니로 다투지는 않는다. 아니, 이들 이웃들은 옆집이나 위 아랫집의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같이 울거나 등을 쓸어주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어떤 경우엔 거리로 함께 나서주거나 응어리를 풀기 위해 한 손을 보태기도 한다.
2.
그러나 15번지에서 새어 나오는 말은 좀체 잘 들리지 않고 잡음과 뒤섞여 말꼬리를 놓쳐 버리기 일쑤다. 김숨은 『한 명』(현대문학, 2016)에서 이런 상황을 정직하게 포착한 바 있다.
그렇잖아도 엊그제 그녀는 옷수선 가게 여자로부터 이상한 소문을 전해 들었다. 15번지 일대 재개발 방식을 두고 시와 구가 합의를 보지 못해 개발 사업이 취소되었다고 했다. 7년을 넘게 끌어온 개발 사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자 토지주들이 자체적으로 조합을 설립해 민영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평택 조카가 노리고 있던 임대 아파트 입주권은 그럼 어떻게 되는 것인가 싶어 그녀는 잠을 설쳤다.
양옥집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던 사내가 묻는다.
“이 집에 할머니 혼자 사세요?”
“아니오……조카가 살아요.”
그녀는 평택 조카가 단단히 이른 대로 말한다.
“조카요?”
“조카 부부가……나는 이 집에 안 살아요.”
―김숨, 『한 명』, 현대문학, 2016. 194쪽
이 소설은 공식적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여성이 '한 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을 가정한 미래적 시간을 다룬다. 소설의 화자는 공식적인 '등록'을 하지 않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고 공식적으로 마지막 피해자 여성이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만나러 가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이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예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곁에 두는 방식이며 동시에 생존과 지속을 위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오지 않았지만, 도래할 시간은 이미 현재에 '잠재'하고 있는 시간이다. 물론 그 시간을 현실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뿐더러 외려 그 시간이 현실화될 수 없도록 치밀하게 차단해온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용문에 확인할 수 있듯, “15번지”는 어떤 장소이자 시간으로 '8월 15일'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이 시공간은 국가의 재개발 대상지이지만, 여전히 '합의'되지 않는 시공간으로 나타난다. 역사적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해방은 실현된 것이 아니라 잠재하는 것, 발명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국가기구(간)[역사적 피해에 대한 국가 사이]의 합의가 불가능한 것일 때, 가능한 방식은 그것을 소유한 “토지주”에 의해서만 가능하겠지만, 토지주(시민)가 이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15번지로서 8월 15일은 이미 있었던 시간이지만, 여전히 찾아와야 할 얼마 남지 않은 '긴급한 시간', '상실될 시간'으로 던져져 있을 뿐이다. 이 소설에서 8월 15일에 대한 탐색의 촛점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여성으로 두는 것이 절실한 것은 그녀들의 목소리가 지워질 수도 있다는 위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관공서 공무원이 거주자 실태 파악을 하러 와서 묻는 “혼자 사”냐는 질문에 “나는 이 집에 안 살아요”라고 대답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었다면,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새기는 일만큼, 요컨대 거주지=그녀들로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겠는가. 달리 말해 소설에서 보이듯이, 관공서 문서의 기록이 그녀를 또 다시 부재하도록 만드는 일에 불과한 것이라면, 또 그 과정을 통해서만 재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또 15번지와 연관된 숱한 일들이 그래왔다면, 15번지와 관련 없어 보이는 15번지에 해당하는 헤아리기 힘든 존재와 세계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부재처리 되었다면, 15번지는 발명되어야만 하는 과제로 주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3.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집결지와 비장소>라는 섹션을 기획하면서 처음 떠올린 것도 이 15번지였다. 즉, (비록 일시적이지만) 15번지를 구성할 수 있을 때, 그 속에서 관람객들이 일으킬 일정한 정동적 변화가 내게는 훨씬 중요했으니, 그러한 존재와 세계와 함께 머물 수 있는 일시적인 조건들을 구성하는 일이 필요했다. 15번지를 어떻게 조형할 것인가. 전시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전시공간의 연출에 대해 물어보면, '카타콤'이나 '돔', '무덤'으로 말하기도 했지만, 그저 상실된 대상들을 기리거나 애도하기 위해 혹은 안치소에 박제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또 특정한 사안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동시대 내에서 주어진 숱한 15번지들이 함께 거주하도록 하는 일이 고려되어야 했다(한편으로는 '전시'라는 형식 자체가 대체로 화이트큐브 속에서 변주와 변형을 이루어내는 것이어서 항상 발명을 거듭해야만 하는 속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럼에도 내게 15번지에 대한 감각은 '광주'로부터 먼저 왔다.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광주에 대한 혐오담론이나 은밀하게 이야기되는 광주나 광주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광주에서 그저 살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 정도로는 안 되고 공부하는 일이 필요했다. '광주학'에 관련된 저작들을 모으고 읽어야 했고 광주 미술 전시의 역사에 관련된 리서치와 정리는 물론이고 계림동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해야만 했다. 광주의 문화, 예술 기관에 대한 이해와 지역을 살뜰하게 가꾸어나가는 작가들이나 연구자들, 원로들께 귀동냥을 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2018년 은 전전긍긍하며 광주를 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기획자들이 외지에서 와서 지역을 수탈하고 떠나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주요하게 작용한 것이었다.
이렇게 진행된 연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1관에서 2관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관객들이 이동하는 과정부터 관객들의 느낌을 전시장에서 전시장으로가 아니라,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디자인하게끔 이끌었다. 즉, 광주에서도 광주에 있다는 것이 특이한 경험이 되기 위해선, 관객들의 이동 과정이 경계의 부대낌이나 넘나듦이라는 느낌을 부여할 수 있어야 했다. 박세희 작가는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적임자였다. 원래대로라면, 1관에서 2관으로 올라오도록 만들어진 에스컬레이터에 스텐레스를 이용해 반 돔 형식으로 제작하고 관객들이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할 때 공항의 트랜짓라운지나 검색대를 통과하는 느낌을 주도록 기획했지만 여러 사정 탓에 2관 입구로 축소해 제작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박세희 작가에 따르면 15번지는 이 세계에 있거나 저 세계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들어가는 입구이자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접촉지대를 구성했던 것이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 2관에 진입하는 관객들이 작업과 호흡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한편, 계림동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자료들 가운데, <안티 광주비엔날레-통일미술제> 도록은 비엔날레의 역사와 당시 분위기 그리고 망월동에 설치되었던 작업들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 실제로 1995년 당시에 걸렸던 1,000여장에 가까운 '만장'을 하나하나 펼쳐 읽어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만장에 기록되고 그려진 이미지들 가운데 여전히 의미있는 메시지들은 동시대 내에서도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는 영역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5.18에 관련된 진술과 이미지는 물론이고 핵폐기장,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통일담론과 문화정책, 세계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만장들을 전시장 내로 가져오는데 무리가 없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보낸 만장이었는데, '민간모금( 아시아여성기금)'에 반대한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이는 한일합의를 통해 일본정부의 기금을 받아들인 박근혜 정부의 행보와 겹쳐 읽게 만들었다. 요컨대 지난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일본정부로부터 받아온 기금은 1991년 이후 이루어진 새로운 역사에 대한 무지이거나 무관심이 초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1991년 이후 이루어진 역사는 다시 15번지가 되었다고나 할까.
광주 충장로 일대를 답사하면서 '광주미문화원' 자리에 들어선 '황금주차빌딩'(이곳은 황금동으로 불렸고 금은방 상점들이 많이 들어선 곳이기도 했다. 지금도 몇몇 가게가 남아 있다)은 광주의 역사 내에서 보듬어야 할 대목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원래 이 일대는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100여 년간 유지되었던 이른 바 '황금동 콜박스'가 있던 곳이었다. 상무대의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집결지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상무대가 옮겨가면서 사라진 곳이었다. 정유승 작가에 따르면 5. 18 당시 기록을 검토하면서 황금동 콜박스의 여성들 역시 당시에 헌혈을 하거나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음식을 나누었다고 쓰인 저작들이 있지만, 그 속에서조차 그녀들은 언제나 3인칭으로만 서술되어 있다고 말해주었다(정유승 작가는 5.18 상징을 네온으로 만들어 유리관에 전시함으로써, 황금동 콜박스 여성들을 기억/기념하고자 했다). 또 정유승 작가는 광주 <언니네>와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만난 성매매 여성들 자신의 이야기를 『시선의 반납』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공동구매영수증
공동구매를 하면 공동구매영수증이 생긴다. 예를 들어, 업주가 방 꾸밈비로 캐노피를 구매하도록 지시한다. 성매매여성에게 주어진 방 자체가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방이자 손님의 방이다. 개인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손님의 욕구에 맞게끔 꾸미도록 하는데 이를 공동으로 구매하게 하며 색깔정도만 고를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방을 꾸미는 물건들이 색깔만 다를 뿐 형태는 일률적으로 동일하다. 방을 꾸미는 물건들 말고도 젤, 물티슈, 음료수, 가글, 매트, 봉투, 방석, 신발 등을 공동 구매한다. 광주 대인동의 경우 성매매여성들이 한 명 씩 돌아가면서 단체주문을 하거나 한 달에 50만원씩 업소에 돈을 내고 그 돈으로 공동구매를 한다.
―정유승, 「공동구매영수증」, <2003년 3월 23일>
이 뿐만 아니라 전시장 내에 성매매집결지에서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착취되고 수탈되는지를 실제로 그곳에서 사용된 물건들을 배치하고 그 물건들의 내력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을 가져와서 그런지 처음 설치를 진행했을 때는 멀리까지 냄새가 퍼져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설치 기간 중에 정유승 작가는 탈성매매 여성 한 분을 초대해 전시장 한 자리에 시를 한 편 남기주기를 요청했다. (이 시는 전시장에 기록된 상태로 경험하는 것이 좋지만 이제 더 이상 그것 자체로 만날 길이 없어, 기록해 둔다. 이 시를 처음 봤을 때, 외람되지만 나는 이연주의 시 「마지막 페이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시에서도 “가슴을 탕탕”친다는 표현이 나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 시집은 공교롭게도 김학순의 증언 이후에 출간된 시집이기도 하다.)
김이 팍 새는 하루를 보낸 후에 항상 찾아오는 허무함이
비집고 나오는 목의 긴장감을 풀면
서론도 본론도 없는 욕이 튀어나온다.
가슴을 탕탕 치며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냐 악다구니도 써보고...
그리움에 사무쳤던 그녀를 탓해보아도
얼굴 한가득 눈물범벅인 채―
까만 내 앞날은 밝아지지 않는다.
―까막벌레, 「술 취한 밤엔」 전문
4.
15번지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키라 츠보이 작가가 이를 확인하게 해 주었다. 작가는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지만, 직장을 노인들을 돌보는 복지사로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국가의 타자라고 할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할머니'와의 관계를 통해서 공동체 내에 편재하고 있는 집단화의 문제와 폭력들에 충격을 받는다. 이 경험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는 한편, 국가의 억압과 폭력에 대한 대응을 하도록 촉발한 사건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홀로 꾸준히 해오던 드로잉은 인간의 먹거리로만 존재하게 된 '동물'에 대한 회화적 표현으로, 그리고 비판적 '기록'으로 이어진다. 이 작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진재로부터 촉발된 이른 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문제였다. 일본의 대중미디어가 극도로 통제하고 있는 '후쿠시마'에 대한 정보와 주민들에 대한 차별, 그리고 후쿠시마 지역을 '처리'하기 위해 투입되는 노동자의 문제의 은폐 등에 관한 문제를 베니어 합판에 그려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 이 시리즈가 '무주물'(주인이 없는 물건) 연작이다.
무주물이라는 표현은 2011년 8월 후쿠시마현 니혼마쓰 시에 있는 '썬필드 골프장'이 도쿄 전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가처분 신청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도쿄 전력 측 변호사의 반론에 등장한 것이다.
“방사능 물질은 이미 골프 코스 잔디밭과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상태로 존재한다. 불가분한 상태로 일체화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다. 골프장의 방사능은 소유자가 없는 물건, 즉 '무주물' 이다.”
―아키라 츠보이, 「포트폴리오」에서 인용
아키라 츠보이는 '무주물 연작'을 갤러리에 전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알리기보다 거리 위에서 자신의 작업을 시민들에게 직접 소개하고 알리는 방식을 취했다. 이런 방식은 일본의 동시대 예술의 경향에서는 낯선 것이었는데, 오히려 한국의 민중미술의 흐름에 그의 작업이 더 마침맞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일본의 동시대 미술보다는 한국의 민중미술이 가졌던 '서사적 성격'과 더 가까운 자리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그가 미술 엘리트 교육으로부터 그리기를 시작한 게 아니어서 가능한 항의의 방식이자, 작업일지도 모른다. 광주의 <지구발전 오라>(당시 디렉터 김영희, 큐레이터 김탁현)의 후의로 레지던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작가는 한국의 원전 문제를 동시에 사고하면서도 한국의 역사적 문제를 작업으로 조성하기 시작한다. <일본군 성노예 연작>은 이런 조건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요컨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원전 문제에 대한 부인은 아키라 츠보이 작가로 하여금 역사적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작업의 영역으로 가져오게 한 동력이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에 자행된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성적 폭력의 문제를 베니어 합판 위에 아크릴 작업을 통해서 제시하고자 하는데, 앞선 연작과 달리 베니어 합판을 세로로 세워 작업을 한다. 즉 이 연작은 파노라마의 형식이 아니라, 각 베니어 합판에 그려진 인물들이 독립되어 있되 서로가 기대어 있는 육면체 형식으로 제시된다. 작가는 아시아 각 지역에서 자행된 일본군에 의해 이루어진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과 착취에 관련된 증언들을 수집하고 이를 통해 '아직 얼굴을 갖지 않은' 피해자 여성들의 형상을 부여해, 증언과 형상 사이를 복합적으로 연결한다. 달리 말해, 어떤 증언이 그려진 형상에 부착해 있다고 하더라도 증언과 형상은 1:1 대응의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부착된 증언들과 그려진 형상들은 서로 뒤섞인다. 여러 개의 증언과 여러 개의 형상은 각각 하나로 주어지지만 서로를 지탱하고 지지하도록 엮여 있다는 것이다(권명아, 「홀로-여럿의 몸을 서로-여럿의 몸이 되도록 하는, 시적인 것의 자리」.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현대문학, 2018).
작가가 배치한 서로의 등을 지지하고 버티는 육면체 설치 방식이 동시대와 연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육면체 가운데 보이지 않는 형상의 자리에는 관객의 자리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작업은 역사적 문제가 동시대의 문제와 겹쳐져 있다는 것을 시사함으로써 이 문제가 여전히 애도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형상들이 불에 그을린 증언들과 함께 배치되어 있어, 이들이 겪은 고통은 여전히 희석될 수 없음에도, 증언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전쟁에 불탄 삶과 그 삶에 대한 증언조차도 불에 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역사적 기억이 유실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아키라 츠보이가 힘겹게 조성한 15번지가 재로 화하기 전에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작업을 만날 수 있게 해야 하는 몫이 남겨져 있는 것이겠다.
5.
나는 <집결지와 비장소> 섹션에 모셔온 작가와 작품들이 '2관=15번지 광주'에서 각기 독립적이되 동시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관람객과 조우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방정아 작가의 <12개의 돔>과 손몽주 작가의 <광광타령>이 겹쳐지고, <광광타령>과 아키라 츠보이 작가의 <일본군 성노예 연작>이, <일본군 성노예 연작>과 여상희 작가의 <검은 대지>가, <검은 대지>와 박세희 작가의 <Passenger>가, <Passenger>와 아키라 츠보이의 <무주물 연작>이, <무주물 연작>과 이응로의 <군상 연작>이, <군상 연작>과 방정아의 <뒷모습> 연작이 섞이고 결속되도록 했다. 또 여상희, 아키라 츠보이의 작업들이 조형섭 작가의 <Exitopia>와 일련의 연작들, 변재규 작가의 <에폭시 필름>, <Somewhere over the rainbow>와 접속하되 각자로 존립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뿐만 아니라 정유승 작가의 <랜드마크, 랜드마켓>, <집결지의 낮과 밤> 외 작업들과 박화연 작가의 <실마리를 찾아서>, <당신의 할머니 김정복>,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여상희 작가의 <Ground of POW> 아카이브 연작과 결속될 수 있다고 보았고 안옥현 작가의 <사랑에는 이름이 없다>가 저류에서 만날 수 있다고 여겼다. 3층에 설치된 김경화의 <숨은 노동>은 이러한 구도 위에서 이들 모두와 만나고 맞은편에 설치된 만장과 마주보도록 했다.
물론 이 작업들 사이의 긴장이 헐겁거나 너무 긴밀해 작업들 사이의 분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기획자의 역량이 모자란 탓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2관 전체의 조도를 낮추고 천장에 일렁이는 그림자나 또 설치 작업들의 그림자들이(혹은 빛) 다른 작업들 사이로 들어가도록 함으로써 이들 전체가 하나의 작업으로, 15번지로 감각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작업들이 한 몸이되 여럿으로, 여럿이되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조성한다면, 작업들이 품어내는 메시지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관객들과 상호적으로 호응할 수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폐막 하루 전, 두 달의 빠듯한 기간 동안 협의를 진행한 안태은 작가의 <A Pot> 퍼포먼스가 정유승 작가의 <황금동 여성들>과 <광주 미술전시의 역사 1980>이 전시되는 영역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한 것은 2관에 설치된 작업들이 전시라는 폐쇄된 맥락 안에 고착되지 않고 외부에 의해 증식되고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안태은 작가의 작업 역시 이 분위기 속에서 변용되고 전환되었던 것도 분명했다. 아니, 더 이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관에 살 수 없게 된 작업들은 이제 막 15번지를 구축하고, 해방의 기획을 다시 구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관객들과 더불어 말이다.
- 글쓴이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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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