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하는 김복동은 인권활동가이자 투쟁가였다.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담담하게 증언을 하고 일본을 향해 거침없이 반성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는 당당한 모습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 내려오면 그에게도 여느 사람처럼 일상이 찾아온다. 김복동은 담배를 즐겨 피우고, 종종 유쾌한 농담을 즐겼다. 실명된 왼쪽 눈을 선글라스로 가리면서도, 사진에 찍힐 땐 밝게 웃는 사람이었다.
[기림의 날 특집] ‘김복동을 기억하다’를 준비하면서 ‘위안부’ 문제 활동가, 연구자에 국한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김복동에 관한 글을 받았다.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저마다의 시각으로 바라본 김복동의 이야기를 모으고 싶었다.
'김복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모은 글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전시 성범죄를 이 땅에서 뿌리 뽑기 위해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던 김복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김복동은 많은 사람에게 인권활동가, 평화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단상에서 내려온 일상 속의 김복동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때마침 나눔의 집 내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연구원 마리오 씨(본명 야지마 츠카사, 失嶋 宰)로부터 김복동이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던 당시 찍은 일상 사진들을 받았다. 사진이 찍힌 정확한 일시와 당시의 상황을 모두 알 수는 없으나 김복동이 <나눔의 집>에 기거하던 시절에 찍힌 이 사진들을 통해 단상 아래로 내려온 김복동의 일상을 웹진 결의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이번 포토스토리를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