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받을 권리, 조혼 폐지 위해 싸우는 로힝야 여성들

  • 비평
  • 이유경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한 슬럼가에서 만난 로힝야 어린이들
01
02

교육 받을 권리, 조혼 폐지 위해 싸우는 로힝야 여성들


 

‘지구상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인 로힝야. 지난해 11월에는 로힝야 200만 명이 아사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공포스러운 유엔의 경고까지 나왔다. 국제분쟁 전문 이유경 기자가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되는 로힝야 상황을 전해왔다. 이 기자는 세계가 로힝야 난민들의 제3국 재정착 프로그램을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할 필요를 강조하는 동시에 인도주의적 지원과 한국을 포함해 보다 많은 나라들이 제노사이드 범죄자들에 대해 보편적 사법권을 발동할 것을 촉구했다.

 

 


미얀마 서부 라까인주는 ‘지구상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 로힝야들의 본향이다. 미얀마의 국가폭력이 목전까지 차오를 때면 로힝야들은 삶의 도구들을 이고지고 고향을 등진 채 서쪽으로 향했다. 여러 날 쉼 없는 ‘정글 트레킹’ 끝에 닿는 국경, 나프강(Naf river)은 방글라데시 땅에 발딛기 전 마지막 관문이다. 국경수비대 눈을 피해 약 45분간 가느다란 뗏목 하나에 의지해 숨죽여 건너야 하는 공포의 강이자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져주는 고마운 강이다. 지난 반세기 수많은 로힝야들은 그렇게 위태로운 나프강을 건너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캠프로 모여 들었다. 
 

콕스바자르 로힝야 캠프가 ‘세계 최대 난민촌’이라는 별칭을 얻은 건 8년 전이다. 2017년 8월 25일 새벽, 1년 전 존재감을 드러냈던 로힝야 무장단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이하 ARSA)’이 또 다시 군경 초소 30여 곳을 공격하자 미얀마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 대대적인 ‘청소작전(Clearance Operation)’을 단행했다. 로힝야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적대적인 이웃인 라까인족 내 불교 극단주의자들도 군부의 청소작전에 적극 가담했다. 다시 나프강은 인파로 북적였다. 수많은 이들이 대나무와 플라스틱, 빈 석유통까지, 물에 뜰만 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밧줄로 묶고 이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배’를 만들어 강을 건넜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이어졌다. 그제서야 ‘전례 없던’ 일이 일어났다. 세상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던 ‘로힝야 이슈’가 소셜미디어, 주류 언론 등으로부터 대대적인 주목을 받은 것이다. 
 

2017년 ‘로힝야 대학살’은 소셜미디어 시대 최초의 ‘제노사이드(Genocide. 인종, 민족, 종족,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 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여 절멸시키는 행위)’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17년 로힝야 난민 물결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올해도 어김없이 ‘로힝야 제노사이드’ 추모일이 돌아왔다. 추모행사가 열린 콕스바자르 캠프의 한 청년이 움켜진 피켓에는 “난민 살이 이제 그만(No More Refugee Life)”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1]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한 슬럼가에서 만난 로힝야 어린이들. 이슬람 종교학교 마드라사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는 하교길이다. 로힝야 난민들의 캠프 생활이 대를 이어 지속되면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아동, 청소년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될 우려가 높다. (사진 제공 : 이유경)

 

 

 

난민 살이에 지친 난민들   

콕스바자르가 세계 최대 난민캠프가 되는 과정은 로힝야 제노사이드 역사이기도 하다. 1962년 쿠데타로 의회민주주의를 무너뜨린 버마(현 미얀마의 옛 국호)의 옛 독재자 네윈은 1974년 도입한 신헌법에 ‘따잉 인따(Taing Yin Thar)[1]라는 극우민족주의 기반 배타적 정체성 개념을 도입했다. 네윈 군부는 그들이 임의적으로 정한 '국가인종'의 구분에 따라 ‘국가인종에 속하지 않는’ 로힝야에 대한  종족말살 프로젝트, 즉 제노사이드의 밑그림을 그려냈다. 

4년 후인 1978년, 네윈 군부는 ‘불법 이민자’, ‘벵갈리(로힝야를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민자로 간주하는 비하 호칭)’ 단속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했고, 이때 로힝야 약 25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나가민 작전’으로 불리는 1차 대축출이다. 1982년 네윈 군부는 다시 시민권법을 개정해 로힝야들의 시민권을 박탈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 ‘135개 공식 종족’을 명시하고 주민증 교체 작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영국으로부터 1984년 독립한 ‘버마 연방’의 첫 시민권법에 따라 시민권을 부여받았던 로힝야는 더 이상 ‘국가인종’도 아니고 ‘135개 공식 인종’에도 속하지 않는, 그리하여 제도와 문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룹’이 되었다. 

얼마 후 네윈 군부는 ‘아름답고 깨끗한 나라를 위하여’라는 역설적인 이름의 ‘쀠 타야 작전’, 곧 2차 대축출을 실시했다. 다시 20만 명의 로힝야들이 콕스바자르로 쫓겨났다. 일상적 차별과 강제 노동, 토지 수탈, 이동의 자유 제한 등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정책들이 로힝야들을 쉼없이 나프강으로 내몰았다. 2017년 대학살 이전에 이미 30만 명에서 최대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난민들이 콕스바자르 캠프에 있었던 건 이런 연유다. 여기에 더해 2016~2017년 약 80만 명이 더 탈출하면서 콕스바자르는 백만 명이 훌쩍 넘는 난민이 사는, 문자 그대로 ‘세계 최대 난민캠프’가 되었다.

 

[사진 2] 『파 이스탄 이코노믹 리뷰』 1978년 7월호에 게재된 로힝야 1차 축출 작전(나가민 작전)’ 기사이다. 이때 이미 외신은 로힝야가 직면한 상황을 ‘아파르트 헤이트(인종분리정책)’로 묘사했다.

 

 

 

지구상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과 세계 최대 난민촌 

‘분쟁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이라는 말이 있다.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이 문구가 매우 적확하게 들어맞는 사례다. 2017년 대학살 당시 탈출 난민의 52%가 여성이었다. 연령으로 보면 미성년 아동이 절반을 차지했다. 당시 여성을 겨냥한 성폭력 수치는 오싹하다. 캐나다의 NGO 온타리오 국제개발기구(OIDA. Ontario International Development Agency)는 군경과 폭도들에 의해 강간 당한 여성을 약 1만8,000명으로 추산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정치학자로 군사주의와 젠더 이슈를 연구해 온 신시아 인로(Enloe Cynthia)는 분쟁과 연계된 성폭력을 세 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첫째는 ‘쾌락 추구형 강간’이다. 전시 상황 군인들에 의해 여성의 몸이 성적으로 학대 받고 침투 당하는 유형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국가안보를 위한 강간’이다. 세 번째는 ‘체계적인 집단 강간’이다.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세 유형 모두 해당되지만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혼합형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미얀마 군정은 물론 미얀마의 주류사회는 오랫동안 로힝야를 국가안보에 위협적 존재로 간주해왔다. 특히 2016년 10월 9일 ARSA의 1차 공격 때부터 군부는 ‘청소작전’의 성격을 ‘대테러 전쟁’으로 규정했다. 이 시기 벌어진 로힝야 여성을 겨냥한 성폭력과  집단강간은 적군의 여성을 강간함으로써 승자가 되겠다는 논리를 직접 실현한 전쟁 범죄 행위였다. 

미얀마가 1990년대부터 로힝야만을 특정해 적용해 온 산아제한정책 역시 국가안보와 제노사이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로힝야 산아제한은 1993년 1월 31일 ‘인구억제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되었다. 이 정책은 ‘국경지역이민통제부(Border Region Immigration Control HQ. 일명 ‘나사카’)’ 전담 업무로 시작됐다. 당시 군정 통치기구였던 ‘국가평화발전평의회(SPDC)'의 표현을 빌자면 나사카는 '벵갈리 업무를 위해’ 군과 경찰, 이민국이 결합된 하이브리드형 국가기구였다. 악명 높은 인권 침해 기구였기에 로힝야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2]

군부의 로힝야 산아제한정책은 90년대 초 감행된 2차 축출과 관련이 깊다. 1991년부터 이듬해까지 20만 명 가까이 축출됐던 로힝야들은 이듬해 9월부터 다시 미얀마 라까인주로 강제 송환되기 시작했다. 당시 로힝야 송환은 군부에게 전략적 변화를 꾀하게 했다. 군사 작전 같은 직접적 절멸뿐 아니라 법과 제도를 동원한 ‘제노사이드 인프라’까지 구축하기로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산아제한정책과 결혼 허가제는 모두 그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산아제한정책은 공식 발표만 해도 최소 4-5번 반복됐다. 첫 시행 후 12년이 지난 2005년 4월에는 ‘지역령(regional order)’ 형식으로 재공표됐고, 이때까지만 해도 3명까지 출산이 허용됐다. 그러나 ‘3명 초과 금지’는 2007년 ‘2명 초과 금지’로 강화됐다. 물론 미얀마 군이 소수민족 여성을 향해 저질러온 전시 강간과 젠더 기반 폭력 이슈가 로힝야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로힝야 여성들을 겨냥한 미얀마 군부의 폭력은 다른 소수민족 여성들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군부는 전시 강간이라는 전쟁 범죄의 유형을 넘어 로힝야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종족 생산성을 제약하는 제노사이드의 도구로 삼았다는 점이다.

 

 

 

로힝야 산아제한 = 종족말살 프로젝트  

그런데 로힝야 여성들을 억압하는 군사주의 주체가 미얀마 군부만은 아니다. 현재 라까인주의 실질적 통치자로 급부상 중인 라까인족 군대 ‘아라칸 군(Arakan Army. 이하 AA)’은 반군부 전선에서 싸우는 ‘혁명적’ ‘저항세력’ 대우를 받고 있지만 로힝야 이슈에 관한 한 군부와 다를 바 없는 극우 성향 짙은 소수민족 무장 단체다. 미얀마 군부가 ‘버마족+불교+민족주의’로 무장했다면 AA는 ‘라까인족+불교+민족주의’로 무장했다. 이 AA가 최근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새로운 가해자’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강제 노동 캠프에 로힝야들을 가두는가 하면 지난해 최소 2개의 로힝야 학살 사건에 가해자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리고 AA역시 로힝야 여성들 집단 강간에 연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로힝야 여성들은 미얀마 군부와 AA라는 두 군사 집단 외에도 소속 커뮤니티 내 가부장적 관행과 성차별 인식과도 끊임없이 분투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몇 곱절 더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매년 8월 25일 모두가 한 마음으로 슬퍼하고 기억하는 제노사이드 추모일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 소재 로힝야 인권단체인 ‘버마 인권 네트워크’가 지난 7월 발행한 보고서 ‘여성은 어딜 가든 제약에 시달린다(Everywhere Women are being restricted)’에 담긴 사례는 제노사이드로 누구보다 고통 받아온 로힝야 여성들이 추모와 기억의 역사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2023년 8월 25일 로힝야 제노사이드 6주년 추모행사 사례를 담고 있는 보고서는 로힝야 남성들이 대규모 추모 집회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캠프 총괄책임자들이 여성들의 추모 집회 참가는 허락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성들은 추모행사에 참석하지 말라며 전날 마이크 안내방송까지 했을 정도다.

 

[사진 3] 미얀마 88항쟁 25주년 기념식 행사장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 아웅산 수치, 그리고 88항쟁 당시 학생운동 지도자였던 민 코 나잉. 두 사람은 각각 2004년, 2009년 광주인권상 수상자이다. 그러나 아웅산 수치는 그가 ‘국가자문역(State Councilor)’을 맡으면서 사실상 민간 정부의 수장으로 역할했던 2016~2017년 사이 군부의 로힝야 대학살을 대테러 군사 작전으로 정당화하는 입장을 취했고, 이에 따라 2018년 인권상이 취소되었다. (사진 제공 : 이유경)

 

 

 

로힝야 난민캠프를 흔드는 로힝야 여성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콕스바자르캠프에서 가장 큰 변화와 과도기를 겪는 그룹이 있다면 그 또한 여성들일 것이다.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이동하고 활보하며 여러 이벤트에 참여하는 모습 자체가 라까인주에서 방글라데시로 탈출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장면이다. 또 매우 제한적이나마 난민캠프에서 가능한 교육을 최대치로 기회 삼아 폭풍 성장을 보인 로힝야 여성들의 사례도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2017년 14살의 나이로 7일 간의 행군 끝에 가족들과 방글라데시로 탈출한 로힝야 여성 럭키 카림(Lucky Karim)은 좋은 예다. 그는 2019년 로힝야 난민 최초로 방글라데시 아시아여성대학에 등록했고, 이후에는 난민 캠프 가정들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딸들을 학교에 보내도록 독려하는 활동을 했다. 2022년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 시카고에 정착한 그는 ‘평화와 정의를 위한 난민 여성(RUP)’이라는 여성단체를 만들어 로힝야 여아들의 조혼 금지와 젠더 기반 폭력 방지 캠페인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8월 제노사이드 8주년 추모일을 맞아 카림은 콕스바자르로 잠시 돌아왔다. 그는 ‘로힝야 위기에 대한 당사자들의 대화(Stakeholders Dialogue on Rohingya Crisis)’ 컨퍼런스에 패널로 나와 로힝야들의 실상을 읊었다.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2017년 시작된 게 아닙니다. 수십 년 전에 시작됐지요. 그 수십 년간 우리는 탈출하고 또 탈출했어요. 아라칸(라까인주)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고문 당하고 실종되고 구금 당하고… 매일 매일 잔학상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진 4] 2013년 미얀마 시트웨 로힝야 거주 구역인 ‘아웅 밍갈라’ 내부를 촬영한 모습이다. (사진 제공 : 이유경)

 

 

 

제노사이드 생존자들이 아사 위기에 처한 현실에 관심을! 

1974년 네윈 군정의 신헌법이 ‘국가인종’을 명시할 때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로힝야 제노사이드가 현실화되리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제노사이드는 과정의 총합으로서 범죄다. 관련 국제 규범인 「제노사이드 방지협약(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에 ‘방지’라는 단어가 포함된 것도 범죄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경고를 알아차리고 방지하라는 의미이다. 이같은 반복적 경고에도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제노사이드 ‘방지’에 실패한 국제사회의 위선과 무관심, 무능이다.  

로힝야 제노사이드 8주년을 맞아 학살된 넋들을 추모하는 오늘, 미얀마를 둘러싼 동남아와 남아시아 정세는 대단히 복잡해졌다. 2021년 쿠테타 이후 미얀마 내전 상황은 악화됐고, 특히 라까인주는 내전의 두 주체인 군부와 AA 모두 로힝야를 강제 징집하고, 억압하고, 집단 살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실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 절실하다. 이에 대한 고민을 세 가지 ‘권고’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로힝야 난민들의 제3국 재정착 프로그램을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럭키 카림의 사례에서 보듯 교육이 변화시킨 난민 아동의 성장은 로힝야 커뮤니티의 미래이자 잠재력이기에 이 사례들을 축적해야 한다. 방글라데시 당국이 2022년 이래 난민캠프의 교육 시설을 폐쇄하고 국제사회 지원 부족으로 유니세프 학교가 문을 닫는 작금의 현실은 로힝야 난민 세대 전체가 어떠한 교육도 없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는 블랙홀에 빠질 우려를 낳는다. 이 지점에서 ‘K-민주주의’ 회복력과 자부심을 국제무대에서 공유해 온 한국 정부도 로힝야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가족 단위의 온전한 재정착이 당장 어렵다면 적절한 선발 과정을 거쳐 로힝야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한국 유학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선제적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둘째, 한국을 포함해 보다 많은 나라들이 제노사이드 범죄자들에 대한 보편적 사법권을 발동해야 한다.  국내 규정에서는 대한민국 헌법 제6조 1항이 국제 법규와 국내 법률의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며 보편적 사법권 행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2월 로힝야 제노사이드와 관련해 군부 수장인 민 아웅 라잉과 군 장성 그리고 민간 정부 고위 인사 등 25여 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아르헨티나 연방법원의 사례가 참고가 될 것이다. 

셋째, 인도주의적 지원을 늘리고 지속하되 국제기구들의 행정 비용 축소 등 근본적인 대안 마련도 시급해 보인다. 현재 콕스바자르 캠프는 물론 미얀마 라까인주는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세계 식량기구(WFP)’는 콕스바자르 난민들에게 1인당 월 12달러 상당의 배급을 실시해 왔다. 그러나 지난 3월 유엔은 지원금 감소를 호소하며 1인당 배급액을 월 6달러로 줄이겠다고 예고했다. 영국 기반 인도주의 단체인 ‘이슬람 구호(Islamic Relief)’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부터 난민캠프에서는 심각한 단계의 영양실조(acute malnutrition) 인구가 최소 27%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라까인주는 상황이 더 심각해, 군부가 인도주의 물자를 봉쇄 중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1월에는 로힝야 200만 명이 아사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유엔의 경고도 나왔다. 오늘도 로힝야는 세계시민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각주

  1. ^ ‘국가인종(national race)’ 이라는 뜻의 미얀마어
  2. ^ 이유경, 2024, 로힝야 제노사이드  P.190, 정한책방. 
  • 글쓴이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 기자로, 르포와 분쟁의 이면을 탐사하는 보도에 천착해 왔다. 언론의 독립성과 저널리즘이 훼손된 환경을 탐사보도 기반 정론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겨레21〉, 〈시사인〉, 〈Neues Deutschland〉에 기고하였고, 한국일보 기획 ‘세계의 분쟁지역’에 다양한 국제분쟁 현안을 연재했다. 저서 및 역서로 『로힝야 제노사이드』,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춤을 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공저), 『봄의 혁명 : 새로운 미얀마를 향한 담대한 행보』(공저), 『누가 무장단체를 만드는가』(역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