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 자필진술서 속 범죄 고백과 '위안부'의 자리를 찾아서

국제법 × 위안부 세미나 팀

  • 게시일2024.06.10
  • 최종수정일2024.07.11

가해자의 진술을 통해 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1부>


일러스트 ⓒ이사각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개최 20주년인 2020년,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국제법 관련 자료를 함께 읽으며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젠더 기반 폭력을 새로운 시각으로 공부하는 모임인 '국제법×일본군'위안부'세미나팀'이 출발했다. 그동안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여러 보고서와 판결문, 의견서, 포로 심문서 등을 읽으며 무력 충돌 하 젠더 기반 폭력, 국제 전범 재판에서 보이는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불처벌 문제, 범죄 행위로서 식민 지배와 이에 대한 불처벌 문제 등을 예민하게 들여다보며 논의를 발전시켜 왔다. 세미나팀이 최근 함께 읽고 토론한 자료는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일본군 전범이 말하는 '위안부' 문제 Ⅱ: 중국 침략 일본군 전범 자필진술서 선집』(2023. 이하 선집)이다. 웹진 <결>은 이를 좌담으로 정리, '가해자의 진술을 통해 보는 일본군'위안부'문제'라는 주제로 소개한다. 시리즈는 전범 자필진술서의 등장 배경과 사료적 가치, 겹겹의 함의 등을 조목조목 들여다보는 토론으로 3회에 걸쳐 구성했다.
<1부> 가해자의 진술을 통해 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1) 전범 자필진술서 속 범죄 고백과 '위안부'의 자리를 찾아서
<2부>가해자의 진술을 통해 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2) '중국귀환자연락회' 활동이 던지는 질문들
<3부> 가해자의 진술을 통해 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3) 국제법적 맥락에서 보는 전범 재판과 전쟁 책임



🧶 장원아: 이번에 세미나팀이 읽은 책은 『일본군 전범이 말하는 '위안부' 문제 Ⅱ: 중국 침략 일본군 전범 자필진술서 선집』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책이 나온 배경과 맥락이 궁금했어요.  

🧶 김수용: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이 붙잡거나 소련에서 인계 받은 일본군 포로, 만주국 관료 등을 전범관리소에 수용하고 '인죄탄백(認罪坦白. 숨김없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다)'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일본군 포로들이 자신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죠. 이 기록이 전범 재판에서 기소를 위한 증거자료, 즉 자필진술서로 정리돼요. 오늘 읽는 선집에는 그중 푸순 전범관리소에 수감되었던 일본군 전범 6명이 작성한 진술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자필진술서 중 일본군'위안부'와 관련된 것들을 선별해 번역한 것이 이 자료집입니다. 사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중국 침략 일본군 전범 자필진술서」가 주목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중국이 전범 재판을 하고 오랜 세월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일본의 역사 왜곡이 심해지자 이에 대한 반발로 자필진술서를 공개했죠. 2015년과 2017년에 출간된 『중앙당안관 소장 중국 침략 일본 전범의 자필진술서 선편(中央欓案館藏 日本侵華戰犯筆供選編)』(이하 『선편』)이 그거예요. 중국 당국이 일본이 '위안소'를 운영했던 증거가 중국에 있다면서 관련 내용을 발표한 거죠.

 

일본군 전범 자필진술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장원아: 『선편』은 842명 진술서를 120권으로 발간했는데, 자필진술서는 계속 자신의 범죄행위를 쭉 열거하는 방식으로 써져 있잖아요. 이 책에는 그중 6명의 진술서가 실려 있고요. 저는 읽으면서 120권 모두 이런 내용의 반복이라면 얼마나 기괴한 군상의 나열인가 싶었어요. 

🧶 심아정: 예전에 김수용 선생님과 시베리아 억류 조선인 포로와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전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김효순의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일본인 전범을 개조한 푸순의 기적』(서해문집, 2020)과 김원이 쓴 『기구한 인연: 무순전범 관리소장 김원의 회고록』(한울, 1995)을 읽고 나서도 문제의식이 생겼는데, 막상 자필진술서를 꼼꼼하게 읽고 나니까 장원아 선생님 말씀대로 '기괴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성찰이나 가해자성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뭐랄까… 약간 소름 끼쳤어요. 일본 군인들 스스로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의 '팩트'를 나열하고 있는 것이요. 이 자료는 전범 재판을 앞두고 쓰인 자필진술서잖아요. 저는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가해 병사 2명이 증언할 때 무참한 강간 장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듣고 너무 속상했거든요. 피해자들과 한 자리에서 가해 증언을 지켜봐야 하는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증언하던 가해 병사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읽은 진술서에 겹쳐져 보여요. 

🧶 조시현: 자필진술서라는 형식은 가해자인 일본군이 피해자인 일본군'위안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드러내기 때문에 여러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해요. 전범 스스로 자신이 행한 범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그다지 논의되지 않았던 주제잖아요? 자필진술서를 '문학적 글쓰기'라고 한다면 일종의 독백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군'위안부'와 병사의 접촉(encounter) 측면에서 가해자 입장인 병사가 '위안부'를 직접적인 수신인으로 상정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필진술서라는 형식을 통해 '위안부'와 관련된 일을 말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 진술서를 읽는 주체는 중국 당국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수신인이 부재하는 독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한편으로 병사들의 진술서를 놓고 가해자의 시각과 피해자의 시각을 나란히 놓으면 일종의 대화 효과가 발생하는 것 같고요. 물론 전범의 입장에서 서술된 일본군'위안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요. 현재로서는 생존한 피해자, 가해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일본군과 일본군'위안부'의 만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물론 생존해 있다 해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자리에 있게 하는 조건을 만들기도 어렵죠. 2000년 법정에서 '가해자 증언'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 일본군 병사 두 명이 피해자 입장에 선 이들을 만났는데, 그때를 제외하고 서로 대면한 경우는 거의 없었죠.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이 모두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랬을 때 자필진술서를 통한 병사들의 발화가 '말을 거는 행위'이자 '대화의 가능성'이라고 한다면, 그런 측면에 주목해 논의를 전개할 수도 있겠지요.

🧶 심아정: 저는 자필진술서가 '가해자성'과 관련해 분석의 토대가 되는 문건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이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돼요. 중국에서의 전시 상황을 더 자세히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 김수용: 전범들이 본격적으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시기가 주로 '삼광작전(三光作戰. 일본군이 행한 조직적인 전쟁 범죄를 중국에서 일컫는 말)' 이후라는 점과 포로로 포획된 지역이 동북지역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동북지역에서 소련의 포로가 된 후 5년 정도 억류되어 있다가 1950년에 중국으로 이송되죠. 이들은 주로 산둥성을 비롯해 화베이에서 전쟁을 치른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공산군과 게릴라전을 치렀던 사람들인 거지요.

🧶 심아정: 병사들의 태도도 눈에 띕니다. 원문을 전부 번역한 진술서에서 다른 가해 경험은 소상히 이야기하는데, 일본군'위안부' 관련 진술은 꺼리는 듯해요. 저만의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병사들이 그저 한마디씩만 언급하고 넘어가는구나 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양적으로 적다기보다는 뭔가 '꺼림칙한 마음'이 있어서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왜일까'에 대해 자꾸 짚어보게 돼요. 그런데 일본 전범들이 인죄를 할 때 상정하고 있는 '중국 인민'에 여성의 자리는 있었을까요? 


[사진1] 1956년 선양(瀋陽)시에 설치된 특별군사법정(출처: 2008/11/30 NHK BS에서 방영된 특집 다큐 <認罪 -中国 撫順戦犯管理所の6年> 캡처 화면)

 

 

상세한 범죄 고백, 회피하는 듯한 '위안부' 진술 사이

🧶 장원아: 심아정 선생님의 질문과 관련해 저는 이 사람들이 '강간하면 안 된다'라는 인식은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간은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니까요. 강간하면 안 되고 죽이면 안 되고 때리면 안 되고… 이렇게 '불법'으로 지목된 행위인 강간의 피해 대상으로서 중국인이든 조선인이든 여성의 자리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여성의 자리가 생겨난 거지 그 이상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자료를 읽을 때 법정에 제출하기 위한 용도의 진술서라는 점을 고려해야 될 것 같아요.

🧶 심아정: 죄를 열심히 기억해내서 말 몇 마리, 보리 몇 단까지 자세하게 서술하고, 다 함께 머리를 모아 궁리해서 세부적인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가해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곧 죄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진술서를 통해 알게 됐어요. 이 자료를 보기 전에 읽은 2차 자료들, 그러니까 김효순의 책이나 김원의 회고록 등에서는 감동을 받기도 했는데, 막상 이렇게 날것으로 된 진술서를 직접 두 눈으로 보니 굉장히 느낌이 달랐어요.

🧶 김수용: 심아정 선생님은 진술서를 읽고 여성의 자리에 대해 고민하는데요, 부끄럽게도 저는 그런 문제를 잘 포착하지는 못했어요. 반면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진술서를 작성한 시점이 1950년대 초반이잖아요. 당시에 과연 이들에게 성폭력에 대한 의식이나 관련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고민, 반성이 있었는지 물을 수 있을까라는 부분이요.

🧶 심아정: 1950년대에 여자를 대상으로 저지른 폭력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그들에게 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꺼림칙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범 개개인한테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관해 물을 수 있느냐 없느냐와는 별개로 우리는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야만 한다는 거예요. 

🧶 조시현: 저 또한 일본군'위안부'와 관련된 어떤 침묵, 부작위를 파헤쳐야 된다고 생각해요. 침묵의 원인은 아마도 구조와 관련 있을 텐데, 현재의 논의 수준에서는 가부장제 때문이야라고 하고 말아버리는 것 같아요.

🧶 김수용: 『침화일군폭행총록(侵华日军暴行总录)』이라는 자료가 있어요. 산둥성을 침략한 일본군의 범죄 내역을 기록하고 있는데, 중국 측에서 조사한 것으로 보이는 이 자료에 '부녀자를 납치, 감금해서 20일간 능욕한 후 살해' 했다거나 신체의 어느 부분을 훼손했는지 등 상세한 서술이 나와요. 마을 사람들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된 것 같은데, 일본군'위안부'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이 없어요. 대개 마을에서 성폭행을 한 다음에 '위안소'로 끌고 가서 '위안부'를 시키는 수순이었잖아요.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성폭행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언급하면서 '위안부'에 관한 내용은 없다는 게 특이해요. 이 대목을 읽고 두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기록에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내용은 제외되었을 가능성과 당시에 강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요. 

🧶 심아정: 전장에서 일본 군인들은 여성 강간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군인 수기를 보면 대개가 오히려 자랑거리로 여기죠. 전범 진술서에서도 전범의 65%가 강간 경험을 밝히고 있어요. 물론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강간'과 당시 감각이 완전히 다를 수 있을 거예요. 현시점에서는 우리의 언어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이 지점에서 고민이 많아요. 

🧶 김수용: 전범들은 자필진술서를 쓰기 전에 선행 학습을 했다고 해요. 『자본론』, 『공산주의사』, 『제국주의 이론』 같은 책들을 공부하고 나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거죠. 생애를 돌아보고 침략 전쟁에 이용된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이 전쟁에 참가하게 됐는지 학습한 다음에 자필진술서를 서술했고, 죄에 대한 인지 과정은 한참 뒤에 이뤄져요. 

 

진술서가 기계적이고 비인간적 느낌이 드는 이유

🧶 장수희: 죄행이 너무 자세히 적혀 있어 업무 일지를 옆에 두고 보면서 썼나 싶을 정도였어요. 

🧶 김수용: 전범 중에 한 사람이 기억력이 엄청 좋았나 봐요. 그 사람이 '언제는 뭘 했고, 언제는 뭘 했고…'라는 식으로 일지처럼 사실 위주로 서술해서 제출했더니 “네가 뭘 잘못했는지, 그 일이 왜 잘못인지를 써”라면서 진술서를 반려했대요.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반나절만에 '내가 언제 누구를 어디서 죽였고', '어느 집을 불태웠고'라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했나 봐요. 그것도 반려를 당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지금 전쟁 일지, 업무 일지를 쓰라는 게 아니다. 지금 너의 글에는 네가 그런 행위를 했을 때 피해자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빠져 있다'라고 했대요. 이 글은 선생님들 지적처럼 진술서, 요컨대 법적인 문서잖아요. 진술서라는 형식 때문에 사실에 대한 기술이 두드러진 것 같아요. 그런데 전범 증언을 읽다보면 어떤 병사가 자필진술서를 쓰면서 오열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자필진술서와 확실한 차이가 있어요. 지금 우리가 읽은 자필진술서는 기술이 엄청 건조하잖아요. 법적 문서의 성격이 강한 자필진술서는 형식상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자필진술서를 작성하기까지 병사들이 매일 밤마다 토론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한 글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인죄 후에는 참관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발전상을 견학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전쟁을 치른 지역을 방문해 피해자나 그 유족과 대면하는 과정도 진행되었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전범들이 자신이 저지른 가해의 실체를 목격했던 것이죠. 그래서 이 참관 학습을 '인죄의 여행'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 장은애: 이 진술서에서 뭔가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게 수용된 전범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진술서가 작성된 과정을 알아야 된다고 하신 말씀과도 맥이 닿아 있는데, 진술서가 이러한 방식으로 작성될 수밖에 없도록 이끈 어떤 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전범들이 진술서를 작성하고 사상 교화 과정을 거친 후에 교화 프로세스의 일환으로 자신들이 전쟁 범죄를 저지른 마을에 찾아갔다고 해요. 그때 중국 정부 측에서 일본군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한 여자(전쟁 당시 7살)에게 마을 안내를 하도록 시켜요. 그랬더니 여자가 '내가 저 사람들한테 마을 안내를 해야 하느냐,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다'라고 호소했다고 해요. 이 대목을 읽고 고민이나 성찰이 부재한 상태로 기계적 진술을 하게 만든 다른 쪽의 힘, 그러니까 중국 쪽의 '듣는 귀'에 대해서도 의식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어요. 진술서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묵음 처리'된 원인에 대해 생각할 때 진술이 일본군 전범과 중국 사이의 양자 구도 속에서 생산된 거라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구도, 공산주의 체제 하 중국의 변화 그리고 이러한 국내외적 변화와 맞물린 중국의 정치적 선택들까지 폭넓게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텍스트 외적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진술서에서 드러나는 한계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전범 개인에게 돌리면 안 될 것 같다는 거죠. 

🧶 김수용: 자필진술서에서는 다른 전쟁 범죄에 비해 위안소나 일본군'위안부' 관련 증언이 적은데, 1997년 중귀련에서 발행한 소식지는 '위안부'나 전시 성폭력 관련 내용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어요. 자필진술서가 1950년대 초에 작성된 것이라 '위안부'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다면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사회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와 증언 이후, 전범들의 인식이나 증언 내용이 바뀐 것은 아닌지 궁금해요.

🧶 심아정: 그런데 좀 꺼림직스러운 부분은 위안소나 '위안부' 관련 진술 비중이 적은 것보다 어쩐지 무언가 켕겨 그 이야기를 회피하는 것 같다는 거예요. 후지이 다케시 선생님이 2000년 법정 때 증언한 두 가해 병사를 언급하면서 법정이 열리기 전에 중귀련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다른 설문에는 답신율이 굉장히 높았던 반면, 일본군'위안부' 관련 답신율은 15%밖에 안 됐다고 지적했어요. 그때 왜 그랬을까, 저도 궁금했던 기억이 나요.

🧶 김수용: 전범들이 진술서를 쓸 때도 말 한 마리 죽인 거, 보리 불태운 거까지 말하면서 강간이나 성폭행 관련 얘기는 가장 뒤늦게 나와요. 전쟁 상황이라도 성폭행이나 강간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그들에게도 있었는지 끝까지 숨겨요. 나머지 죄는 명령 때문이라는 변명이 통하는데 전시 성폭력 문제는 그러기 어렵거든요. 꺼리는 거겠죠. 꺼려졌을 거예요. 심지어 중귀련에서도 일본군'위안부' 얘기는 많이 나오지 않아요.

🧶 조시현: 선행 논문이나 자료집을 보면 전범들은 강간과 위안소에서의 행위를 범죄로 자백하고 있어요. 흔히 위안소를 '이용'했다는 말을 썼지만, 이를 강간이라고 인식하고 범죄라고 진술한 거죠. 저는 이게 굉장히 흥미로운데, 그런 인식이 일부에서 나타난 건지 전반적인 것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위안소에 간 행위를 강간 행위로 파악하는 케이스가 있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사진2] 푸순 전범관리소 정문(출처: 위키디피아)

 

 

용어 사용에서 발견되는 특이점과 번역 문제

🧶 조시현: 언어(용어) 문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자료집은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싣고 있어요. 번역문과 원문의 용어 차이를 살펴보는 건 번역하는 한국의 입장, 전범 재판을 한 중국의 입장, 일본인 전범의 입장을 교차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교화 과정에서 전범들은 여러 언어를 학습했어요. 가령, 만주국의 괴뢰적 성격을 강조하는 '위(僞) 만주국'이라는 표현을 비롯해 '항일', '애국', '인민' 같은 용어들 말이에요. 전범들은 중국의 입장에서 항일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된 용어들을 수용, 차용해서 자필진술서를 작성했는데, 그것이 굉장히 흥미로운 결과를 낳은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전범들이 타자의 시선과 언어를 자신의 입이나 손으로 기입(register)하게 된 거죠. 그때 자신과 타자간의 충돌이나 심리적 갈등이 발생했고, 나아가 이것이 반성의 계기로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자필진술서는 두 개의 시선과 인식이 교차되는 현장이었을 수도 있는 거죠. 또 연합군의 포로 심문 문서랑 비교해 봐도 자필진술서는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포로 심문서는 포로가 한 말을 다른 누군가가 기록한 것이잖아요. 그 포로 심문서를 읽을 때는 화자의 '퍼스널리티'를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었어요. 반면에 자신의 살인 행위를 덤덤하게 기술한 '자필' 진술서를 읽을 때는 어떤 사람인지가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런 면에서 중국에서 작성된 자필진술서와 연합군 포로 심문 문서의 차이는 극명한 것 같아요.

🧶 김수용: 그렇긴 한데, 전범이 기술한 범죄 목록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조시현 선생님이 말씀하신 퍼스널리티를 파악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계속해서 향응을 받았다고 서술한 진술에 대해서는 '이 사람은 무슨 뇌물을 이렇게 많이 받았어?'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드러나는 측면이 있죠.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확실히 자필진술서는 연합군 포로 심문 문서와 달라요. 자필진술서의 경우 서술자가 중국과 일체화하는 경향이 크잖아요? 중국 인민의 입장에 서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중국이 일본을 물리친 것을 '정의로운 반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일반적인 피의자 조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낯선 장면이에요.

🧶 조시현: 자료집을 번역할 때 굉장히 수고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핵심 단어들이 원문의 뉘앙스 차이를 감안하며 번역됐는지 궁금했어요. 매번 일본군'위안부'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원자료에 사용된 용어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여성들을 '위안소'로 데리고 가서 노역을 시켰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원어를 확인해보니 노예의 노(奴)자를 쓰고 있어요. 노역(奴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통해 어떤 일본군의 경우에는 피해당한 여성을 '노예'로 인식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해 볼 수 있는 거죠. 그야말로 '성노예'라는 표현을 선취할 수 있었다는 거죠. 이런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고, 해제와 번역과 더불어 원래 표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원문까지 수록되어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어요.

 

인죄(認罪)와 탄백(坦白)의 법적 의미

🧶 조시현: 중국에서 전범은 '탄백'과 '인죄'의 과정을 거쳤어요. 이 두 개념은 곧 있을 전범 재판에 대한, 즉 법적 절차를 전제하고 나온 것이죠. 법적인 측면에서 인죄는 죄가 있음, 곧 유죄를 인정한다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영미식이죠.(기소에 대한 인정 여부 절차. 이른바 arraignment 절차)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적으로 피고의 유죄 인정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아요. 형을 계산하는 양형 때 고려하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영미권에서는 죄를 인정하면 그 인정을 바탕으로 재판 처리를 해요.(유죄협상제. plea bargaining) 그 인죄 개념을 중국 공산당도 사용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어요. 또한 형사재판의 경우 자백만으로는 유죄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 보편적 원칙이에요. 그러니까 중국이 어떻게 판결을 내렸는지는 전범 재판 기록을 대조해 봐야 명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추가 증거가 필요한 경우는 어떤 때이고, 또 특정 범행을 인정할 때 필요한 입증 증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특히 일본군'위안부' 관련 증언의 경우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됐을 문제였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굳이' 얘기한 셈인데 왜 했을까, 증거가 있었던 걸까, 혹시 보강 증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등 수사관의 입장에서 추론을 확대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필진술서는 수사, 기소, 처벌, 재판을 포함한 법적 절차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문서라는 점을 충분히 질문해봐야 해요. 

다음으로 이 문서의 특징 중 하나가 개인의 생각이나 감상, 양심의 가책 등과 관련된 표현이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거예요. 여기서 형법상 범죄행위의 주체 이외에 무슨 주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돼요. 그런 의미에서 일본군 전범들의 주체성에 관해 얘기하려면 다른 맥락들을 시야에 둘 필요가 있어 보여요. 구체적으로 중귀련 활동과 진술서를 교차해 볼 필요도 있고요. 관련해서 자필진술서와 전쟁 수기는 확실히 성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본질적으로 진술서의 성격 내지 형식은 작성자 본인의 인적 사항과 범죄행위가 기술된 수사 문서잖아요. 이처럼 진술서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료에 다시 접근하면, 가해자측 증언을 통해서 일본군'위안부'와 관련된 어떤 증거를 얻기 위한 하나의 루트로서 이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실제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기보다는 이미 알려진 사실에 대한 보강 증거일 경우가 많기는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일본군의 인식을 드러내는 여러 표현들을 통해 생각할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자료의 유용성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이 자료를 제대로 독해하려면 진술의 형식이나 체계 같은 것을 알고 가야할 것 같아요. 법적 문서로서의 진술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이 자료를 다시 보면, 법적인 절차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죄로 자백한 것과 윤리적인 반성과 사죄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어요. 윤리적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회개하고 반성하고 사죄하고 범행 사실을 인정했다고 해서, 즉 '인죄, 탄백'이 바로 법적 의미의 사죄는 아닌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중귀련 방식의 사죄 말고도 추가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귀환 이후 중귀련의 활동은 분명 사죄의 과정인 것 같아요. 이 자료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사죄는 일회성이어서는 안 된다, 계속돼야 하는 행위이자 과정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비로소 진정성이 드러나고, 그게 진짜 화해로 가는 길이니까요. 사실 법학 용어에는 '용서'라는 개념이 없어요. 기소를 안하고 풀어주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형을 면제해서 석방을 한다든지 하죠. 다 용서와 무관한 일이에요. 용서는 보다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료를 읽고 사죄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심도있게 고민해보고, 중귀련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 주목하는 것이 의미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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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국제법 × 위안부 세미나 팀

김수용(성균관대학교) / 심아정(독립연구활동가) / 이슬기(서울대학교) / 장수희(동아대학교) / 장원아(역사문제연구소) / 장은애(국민대학교) / 조시현(전 건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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