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
이경희 대표
“중등학교 역사 선생님 그룹과 친해요. 제대로 가르치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교사들인데,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돼 함께 해온 시간이 꽤 쌓였어요. '위안부' 수업 지도안을 만들어 활용하고, 저희 단체 청소년교육프로그램 활동에도 적극적입니다. 몇 년 전부터 이분들이 놀라운 얘기를 해요. 일제 강점기 역사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위안부'나 강제동원을 주제로 자료 조사 과제를 내곤 하는데, 완전히 왜곡된 사실을 발표하는 학생이 많다는 거예요. 역사 부정 세력들이 유포해온 오염된 정보가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현실이 정말 심각합니다.”
왜곡 정보 발표하는 학생들, 역사 부정 대응 국제토론회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 활동을 시작한 때가 2004년, 햇수로 20년 넘게 현장의 여성인권활동가로 활동해온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산창원진해 시민모임(이하 마창진시민모임) 대표의 얼굴 가득 걱정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교사들의 '고발'처럼 '위안부'의 피해 자체를 거짓이나 조작으로 몰고가는 잘못된 정보가 일상에 넘쳐나는데 반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대응은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바뀐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사태로 교류는 줄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서 온 시민사회계에 대한 의혹과 갈등이 불거지고 '마녀사냥식' 언론 보도가 쏟아지다보니 '위안부' 해결 운동이 뿌리부터 흔들렸어요.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와 그 해결 운동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세력들의 움직임은 점점 노골적으로 바뀌고 있고요. 수요맞불집회는 멈출 기미가 없고, 토론회 며칠 전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한일 극우 인사들이 '위안부는 사기극'이라며 심포지엄까지 열었잖아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함께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절실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구체화된 자리가 지난해 9월 20일 마창진시민모임이 개최한 '일본군'위안부' 역사의 부정 현상에 대한 대응방안 모색' 국제토론회였다. 기획부터 섭외, 실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른 이 대표는 토론회에서 접한 역사 부정 행태가 '세계적'이고 매우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어 놀랐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방해로 '망명 신청자' 상태인 소녀상
“일본의 집요한 방해는 상상 이상이에요. 기시다 총리, 나고야 시장 등 일본 고위 관료들의 항의부터 지역 영사관이나 대사의 직접적인 로비, 여기에 대학 교수와 학자들, 각국 현지에 나가 있는 일본 기업과 시민단체까지 개입해 다각도로 압력을 행사해요. 국경을 초월해 전시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인권의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한 독일 베를린 미테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초기에도 일본의 항의로 철거 위기에 내몰렸다가 베를린코리아협의회 등 재독 시민단체와 지역사회, 전문가들이 반발하고 철거 명령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하는 등 강한 대응으로 존치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오는 9월 다시 철거 압박이 예상돼요. 줌(zoom)을 통해 독일 상황을 전해주신 한정화 베를린코리아협의회 대표이사는 소녀상이 체류 허가가 발급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관용되는 '망명 신청자' 상태라 표현하며 서글퍼하셨어요.”
일본 내 역사 부정 분위기는 1991년 당시 김학순 할머니의 역사적인 증언을 아사히 신문에 특종 보도했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에 대한 우익의 공격에서 잘 드러난다. 현재 '주간금요일' 발행인인 우에무라 씨는 아베 신조 정권 시절인 2014년 1월 역사수정주의자들로부터 날조라는 공격을 받았고, 이후 딸을 해치겠다는 협박까지 받는 등 곤욕을 치러왔다.
글렌데일시 소녀상 영구 설치, 필라델피아엔 새 소녀상
토론회에서는 인권과 존엄성을 믿으며 연대해온 글로벌 시민들이 값진 결실을 맺고 있는 사례도 소개됐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쪽에 위치한 글렌데일시. 2012년 '미국 연방회의 일본군'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통과된 날을 기념해 7월 30일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제정한 글렌데일시는 2013년에는 글레데일 중앙도서관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도 세웠다. 이듬해 철수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글렌데일시가 3년 동안 적극적으로 대응해 소녀상을 영구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글렌데일 소녀상은 여러 차례 훼손을 당했으나 2020년 12월 보수작업을 마쳤고, '소녀상 지킴이' 시민 모임도 만들어져 잘 보호되고 있다.
필라델피아에는 8년여 노력 끝에 새로운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질 예정이다. 필라델피아 평화플라자위원회가 주축이 돼 추진한 소녀상 건립 계획은 2021년 필라델피아 예술위원회로부터 승인받은 데 이어 2022년에는 두 차례 타운홀 공청회를 거쳐 확정됐다. 이어 2023년 7월에는 필라델피아 예술위원회가 기림비 문구까지 정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남부 도시인 텍사스 달라스에서 일본군'위안부' 역사 알리기 활동을 펴고 있는 박신민 '잊혀지지 않는 나비들' 대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달라스에서 박 대표는 2015년부터 일상적으로 '귀향', '주전장' 등의 영화 상영회를 개최하고 소녀상을 재현하거나 나비팔찌 등을 만들어 나누는가 하면 2019년부터는 '세계 위안부 기념일' 행사도 이끌고 있다.
기록과 기억, 교육이 어우러지는 '위안부 역사관'
이후 토론회는 자연스레 대안 찾기로 연결됐고, 이경희 대표가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제기해온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건립은 공감의 폭이 가장 컸던 주제였다.
“경상국립대 김명희 교수님도 기조 강연에서 강조하셨는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담론이 일본 정부와 우파의 외교 전략을 통해 전세계로 확장되는 양상이잖아요. 그래서 피해자들의 피해와 상처를 오롯이 기록하는 일, 인권과 역사적 교훈을 계속 기억하고 교육하는 작업은 문제 해결 노력의 출발점이자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답답한 건 이를 제대로 가르치고 소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체계가 없는 현실이에요.”
경남 지역 시민사회계가 위안부 역사관을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추진해온 배경이다. 물론 이 대표는 지난 4~5년 동안 누구보다 격렬한 부침의 중심에 있었기에 역사관 건립사업이 녹록치 않은 목표임을 잘 안다. 애초 경남도 차원에서 추진 계획이 마련됐다가 타당성 조사가 다시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미뤄지더니 조사 결과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현재 역사관 건립 계획은 좌초된 상태. 그런데 이 대표는 의외의 대상으로부터 '힘'을 얻었다. 토론회에 참여한 일본 참가자들이 보낸 연대의 목소리였다.
“2005년 일본 시민들의 지원과 참여로 개관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이하 WAM)'은 '위안부' 문제에 집중하는 일본의 유일한 박물관이에요. 와타나베 미나 사무국장이 토론회에 참석해 특별 전시를 비롯해 위안소 지도 등의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꾸준히 업로드하고, 1990년대 중·고등학교 역사 및 사회과학 수업에서 사용된 500여 종의 교과서를 대상으로 한 연구 등을 공개하는 등 활동 반경을 넓혀온 WAM의 경험을 전했습니다. 일제 치하 '위안부'와 관련된 기억과 기록을 보존하고 알리는 공동의 목표를 언급한 와타나베 사무국장은 또 고개를 드는 역사 수정주의와 부정주의에 대해 정보 공유와 연대를 통해 맞설 때라고 강조하면서 어떻게 하면 '마창진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진지하게 물어 왔어요. 우에무라 전 기자께서도 모금운동을 해주겠다고 하시고요. '위안부' 해결 운동이 더 어려운 지역사회에 정말 기운 나는 말씀이었습니다.”
'위안부' 역사 교육 조례 제정도 과제
국제토론회 이후 마창진시민모임과 경남 지역 시민사회계는 곤경에 처한 일본군'위안부' 역사관의 미래를 다시 차근차근 살펴보고 현실적인 추진 방향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가 비중 있게 고민하는 대안으로는 체계적인 일본군'위안부' 역사 교육도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평등 사회와 안전한 근로 환경 조성을 위해 연 1회 이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성희롱 예방교육'처럼 공교육 영역에서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자치단체 차원의 조례를 제정하는 일이다. 또 지역의 시민단체가 감당하기엔 적잖이 버거운 행사지만 특별한 경험을 선물했던 '국제청소년캠프'를 재개하는 일도 과제 중 하나이다. 필리핀,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온 청소년들과 경남 지역의 교사와 학생이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어우러진 캠프는 코로나사태로 오도가도 못한 2021년과 2022년에 온라인 캠페인으로만 진행돼 아쉬움이 컸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요즘도 언제 다시 캠프를 여느냐 문의를 해온다. 요즘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난 경남 지역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기록화할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는 이 대표는 현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소리 내는 일'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피해 할머니 대부분이 돌아가신 '포스트 할머니 시대', 역사 주체로서 우리는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피해의 연장선상에 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위안부' 문제를 발화하는 것, 후속 세대가 계속 기억할 수 있는 기반이라도 만들어놓는 게 저의 소명입니다.”
Credit
인터뷰어: 손정미
인터뷰이: 이경희 마창진시민모임 대표
글/정리: 손정미
사진 : 팝콘(popcon)
인터뷰 일시: 2024년 5월 3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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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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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 창원, 진해 지역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지원사업과 함께 인권자주평화다짐비 건립, 일본군'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캠페인 등을 추진해온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 상임대표이다. 1980년대부터 경남 지역에서 여성운동을 했고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 등을 지냈으며,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활동을 20여 년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