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위안부'문제 대응 TF 단장 이상희 변호사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는 2023년 11월 23일 '위안부' 피해 생존자와 유족 포함 원고 16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본국의 불법성과 책임을 인정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그대로 인용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소송단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일본군'위안부'문제 대응 TF' 단장을 맡았던 이상희 변호사를 만나 세기의 재판이 일군 성취와 고군분투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주문. 1심판결을 취소한다. 피고(일본국)는 원고에게 '청구금액(항소금액)'란 기재 각 돈 및 이에 대한 2023년 9월 21일부터 2023년 11월 23일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023년 11월 23일 서울고등법원 제33민사부(부장판사 구회근)가 '위안부' 피해 생존자와 유족 포함 원고 16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2016년 12월 28일 김복동, 이용수 등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11명과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의 승계 유족 10명, 총 21명이 1인당 2억 원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한 1차 소송 이후 8년 만에, 1차 소송이 각하된 2021년 4월 21일로부터는 약 2년 7개월 뒤 대한민국 법원이 원고 측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기념비적' 선고였다.
이 소식은 항소심 소송 원고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뻐하는 모습과 함께 주요 뉴스로 보도됐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등 소송 경과를 예의주시해 온 시민사회는 일제히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성심껏 귀 기울여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책무를 다한 판결'이라며 서울고등법원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민변 일본군'위안부'문제 대응 TF 단장을 맡아 1, 2차 소송의 한가운데 자리했던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를 만나 이번 판결의 국내외적 의미와 함께 역사적인 판결이 있기까지 소송인단이 '수명이 닳는 듯한' 느낌으로 헤쳐 온 크고작은 고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 그리고 온전한 시민권자로 인정받은 피해자들
서울고법 판결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일차적으로 피해자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온전한 시민권자라는 확인을 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희 변호사의 일성은 판결문 초반부에 명시된 내용과 또렷하게 조응한다. 서울고법이 일본 육군의 물품판매 규정 「야전주보규정(野戰酒保規程. 1937.9.29. 육달陸達)」과 「영외시설규정(1943.7.18.)」, 「전시복무제요(1938.5.)」 등의 기록을 채택, '일본국이 중일전쟁 내지 태평양 전쟁을 하면서 군인들의 사기 진작 및 민원 발생 저감 등을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운영'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 불법성과 책임을 분명하게 인정한 것이다. 판결문은 또 개인별 '위안부' 동원 과정과 '위안부' 생활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면서 피해자들이 이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이는 당시 일본국이 비준한 국제조약이나 국내 형법에도 위배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다음으로 1차 소송의 한계를 극복한 2차 소송의 가장 빛나는 성취, 곧 '국가면제'에 대한 판단이다. 생소한 법률 용어로 '주권면제'라는 용어로도 혼용되는 국가면제는 국제관습법으로, '국가 평등 원칙에 입각해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되는 법적인 면책'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주권 국가의 국가기관이나 그의 행위는 타국의 재판관할권 적용에서 면제될 수 있다. 쉽게 풀어서 주권 국가는 타국의 국내 재판에서 강제로 피고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인데, 이는 대소나 강약 같은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개별 주권국을 중심으로 '대등하게' 국제 질서와 평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는 법리이기도 하다.
인권 침해, 불법 행위는 '국가면제' 불가
쟁점은 그동안 국가면제가 보편적 인권 침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명분으로 작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무력 분쟁 중에 법정지국 영토 내에서 이뤄진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하고 있으며, 강행규범 위반으로 인한 중대한 인권 침해 여부가 재판권 존부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본 1차 소송 재판부의 소극적이고 사대주의적인 판단이 닿아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2차 소송에서 서울고법은 전향적인 판단을 내렸다. '법정지국 영토에서 그 국민에게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를 묻지 않고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관습법이 현재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한 것이다. 서울고법은,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다수 국가가 국내법의 입법을 통해 영토 내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점, 이탈리아를 비롯해 최근 브라질 최고재판소, 우크라이나 대법원 등에서 가해국에 대해 국가면제의 적용을 부정하는 판결을 하는 점, 국가면제와 관련된 국제법 체계가 이미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관련해 이 변호사의 설명은 변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도 국가면제를 극복한 몇 안 되는 사건입니다. 그만큼 국가 중심의 국제법 질서, 국제관습법이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도도한 시대적 흐름을 드러낸 세기적 선언이고요.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개개인에게 부수적인 피해라는 건 있을 수 없잖아요. 국가는 인권을 보호하고 보장하며 실현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피해를 입었는데 국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법률상 구제절차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판결이 인권의 관점을 넓고 깊게 확장시키는 측면에서 조금 과장하면 국제관습법의 '마그나카르타'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입니다.
번역 또 번역, 거액의 자문료… 고비고비 과정은 험난했더라
당연히 여기까지 오는 동안은 한순간도 순조롭지 않았다. 불법행위를 객관적으로 밝히고 책임을 묻는 주장, 그에 따른 손해 규모를 입증하는 것 하나하나가 원고 측 일이었다. 재판을 위해 '피고' 일본정부에 소장을 전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공시 송달을 하면서 반복적인 기피와 거부 사실을 법원에 설득한 끝에 재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재판 때마다 보도자료도 발표했다. 기사를 통해서라도 일본 정부에 재판 소식이 전해질 수 있도록, 동시에 절차적으로도 발뺌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대응이었다. '국가면제'를 둘러싼 법리 공방은 더욱 지난하고 복잡했다.
영어 외 여러 언어로 된 해외 자료와 국제 판례를 발굴하고 번역하는 일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어요. 국제적인 인권법 전문가, 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메일을 수도 없이 보냈고요. 인권 보호의 폭을 넓히고 국가면제 예외를 지지하는 국제적인 변화를 재판부에 확인시키기 위해 국내 198명을 포함, 전 세계 법률가 410명이 참여한 '세계 법률가 선언'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피해 할머니 살아계실 때 결론 나와야 한다!
당황스러운 기억도 있다. 거액의 자문료를 요구받았을 때였다. 국제적인 법률 전문성과 경륜을 가진 변호사였기에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했다가 거액의 자문료를 원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항소심 법정에서 영상으로 지지 의견을 전해준 영국 버밍엄대 법학대학원 알렉산더 오라케라쉬빌리 교수를 비롯해 연대의 목소리를 내준 세계 법률가들이 그래서 더욱 고맙다.
가장 힘든 시기는 재판이 막바지로 향할 때였다.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며 준비 서면을 마련하는데 에너지도, 시간도 역부족이었다. 재판은 공전됐다. 그렇다고 변론 기일을 늦출 수도 없었다.
밤을 새고 다들 엄청 고생을 하는데도 재판 일정까지 서면이 나오기 힘들 것 같아 연기를 해야 하나 고민이 깊었어요. 그런데 고비 때마다 다른 걱정이 훨씬 앞서는 거예요. 원고 중에 살아계신 분이 이용수 할머니 한 분이잖아요. 행여 연기했다가 슬픈 소식이 들려오면 그 죄책감을 어떻게 감당하나, 안 계신 상태에서 선고가 나면 어쩌나, 다들 부담이 어마어마했어요. 온몸이 떨릴 정도로 에너지를 쏟았던 터라 서면을 접수할 때마다 수명이 닳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를 넘어 '기승전-전쟁은 안된다'는 지구적 메시지를 호소해 온 인권활동가 할머니들 생전에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브라질 판결이 우리 항소심에 영향, 이는 다시 중국에 참고
한편으로 이 변호사는 세계 각국의 법원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권의 역사를 진전시켜 가는 현장을 현재진행형으로 경험 중이기도 하다.
2013년 8월에 고 배춘희 할머니 등 피해자 12명이 일본정부에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는 소송에 대해 2021년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일본측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어요. 당시 전 세계에 이슈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판례가 이듬해인 2022년 브라질 최고재판소에 영향을 미쳐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폭격으로 침몰한 선박에 탔던 피해자의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1, 2심에서 각하됐는데, 최고재판소에서 우리 판결을 근거로 뒤집는 결정을 내린 거예요. 우리 재판 덕분에 가능했던 결과라 자부심을 느꼈죠. 그런데 다시 브라질 최고재판소 판결이 저희 항소심에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지난 4월 21일에는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18명의 후손이 한국의 최근 판결을 참고해 산시성 고급인민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제 인권 수준을 도약시키고 진일보한 국제관습법 관행을 만드는 사례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일 정부에 가시적 이행 촉구하며 '강제집행'도 검토
다만 역사적인 판결에도 한·일 두 나라 정부의 반응은 냉랭하다. 우리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실 차원에서 '2015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서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고, 일본 정부 또한 항소하지 않고 기존 '무대응 원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29일 민변, 정의기억연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시민모임 독립 등 시민사회는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2심 승소 판결 의미와 과제'를 공유했다. 승소 판결 이후 호흡을 고르고 있는 이 변호사는 향후 계획에 대해 일본군'위안부'문제 대응을 통해 일본 정부에 가시적인 이행을 촉구하는 한편 '강제집행' 절차를 구체적으로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 전했다.
이번 소송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 또는 사기를 당해 일본군'위안부'로 동원된 피해 사건인 동시에 전시를 포함해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 폭력이나 인권 침해는 책임이 면제될 수 없다는 강력한 제도적 유산을 이끌어냈어요. 이는 결국 일본 사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 압력으로 연결되고 우리나라의 인권감수성 확장에도 기여하리라 믿습니다.
※ 일본국을 상대로 한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문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 확인 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링크 : 2차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문
Credit
인터뷰어: 손정미
인터뷰이: 이상희
글/정리: 손정미
인터뷰 일시: 2024년 4월 11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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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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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지향 소속 변호사이다. 과거사, 여성, 언론, 공익제보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참여연대 공익제보자지원센터 소장, 법무부 자체규제심사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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