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2년 9월 29일 10시, 대법원 1호 법정에서 대법관이 판결문을 낭독했다.
“원고 이○○ 외 95명, 피고 대한민국, 사건 2018다224408 손해배상(국), 상고와 부대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과 부대상고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짧은 판결이 끝나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곧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소송 원고인 기지촌 여성들, 소송을 지원한 활동가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판결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애썼다. 너무나 순식간에 끝난 판결에 처음엔 나도 당황했지만, 곧 상고 기각이 2심을 확정한다는 의미임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재판 참여자들은 법정을 나서자마자 원고대리인 중 한 사람인 하주희 변호사를 둥그렇게 둘러쌌다. 하주희 변호사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큰 목소리로 승리를 자축했다. 그때야 비로소 안도와 환희의 물결이 퍼져나갔다. 2014년 6월 25일 122명의 원고를 대리하여 변호인단이 소장을 접수한 지 8년 3개월 만에 결국 원고가 승소한 것이다.
2.
변호인단이 국가 배상 소송을 청구한 원인은 네 가지다. ①한국 정부는 성매매가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지촌을 조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 유지했다. ②정부는 기지촌을 ‘특정지역’으로 지정하고, 그 종사 여성을 ‘위안부’라고 부르면서 성매매에 대한 단속은 물론 관련 불법행위를 방치했다. ③정부는 조직적이고 폭력적으로 성병을 관리했다. ④정부는 ‘애국교육’을 수시로 실시하고 ‘자치조직’을 관리하면서 미군 상대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
2017년 1월 20일 내려진 1심 판결에서 재판부가 유일하게 인정한 것은 ③조직적, 폭력적 성병관리였다. 1963년 개정된 「전염병예방법」은 성병을 포함한 “제3종 전염병 환자 중 주무부령으로 정하는 자는 격리수용되어 치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규정했지만(제29조 제2항), 격리수용 대상자를 명시한 보건사회부령, 곧 「전염병예방법시행규칙」은 1977년 8월 19일에야 비로소 제정되었다. 따라서 그 이전의 격리수용은 법적 근거를 결여했다는 점에서 위법행위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전염병예방법시행규칙」 이전에 격리 수용된 경험이 있는 원고 57명에게만 손해배상액 50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이러한 판결에 불복하여 원고와 피고 모두 항소했고, 2018년 2월 8일 항소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2심 판결은 국가의 책임을 더욱 폭넓게 인정했다. 첫째, 2심 판결은 1심 판결이 일부 인정한 ③조직적‧폭력적 성병 관리의 범위를 확장했다. 재판부는 「전염병예방법시행규칙」이 제정된 이후에도 “성병의심자에 불과한 위안부들을 곧바로 낙검자수용소 등에 격리수용한 경우”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의료 진단 없는 ‘성병의심자’의 강제 격리수용은 신체의 자유에 관한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또한 ‘성병의심자’의 강제 격리수용 조치가 공무원의 인권 존중 의무에 위반되고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했다는 점에서도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둘째, 2심 판결은 1심에서 부정되었던 ①기지촌의 조성‧관리‧운영과 ④성매매 정당화‧조장에 대한 국가 책임 역시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원고들에게 외국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이를 통해 외국군의 사기 진작이나 외화 획득을 적극적으로 추구했다는 점에서, 기지촌의 운영, 관리 전반에 걸쳐 성매매의 조장‧정당화 행위가 이루어졌다고 인정했다. 또한 담당 공무원들이 애국 교육을 실시하고, 아파트 건립이나 노후 보장 등 거짓 약속을 통해 원고들을 기만함으로써,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조장‧정당화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②국가의 불법행위 단속 면제 및 방치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했고,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 측 주장 역시 배척했다. 이상의 판단에 근거하여 재판부는 ①, ③, ④가 모두 인정되는 원고 74인에게는 700만원을, ①, ④에 해당되는 나머지 원고 43인에게는 300만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그 후 약 4년 8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확정되었다. 그 8년 3개월 동안 최초 원고 중 24명이 타계했고, 연락이 닿지 않는 3명 역시 타계한 것으로 추정된다.
3.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 관리,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정당화하고 조장한 책임이 있음을 사법부가 최초로 인정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용기와 헌신이 필요했다. 기지촌 여성 인권 운동 단체들이 소송을 주도했다. 두레방, 햇살사회복지회,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한소리회, 여성인권센터 쉬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그리고 경기여성연대가 결성한 기지촌여성인권연대는 2014년 3월부터 원고들을 모집하고 증언을 채록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현장단체인 새움터는 2014년 3월 기지촌 관련 정부 문서와 언론 보도를 수집한 『미군 위안부 역사』를 출간했고, 원고들의 증언을 수합했다.
또한 원고를 대리하여 법정에서 싸운 변호사들이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들은 기지촌여성인권연대와 새움터의 요청으로 2012년부터 소송 법리를 구성하기 위해 관련 연구와 문헌을 검토했다. 변호인들은 2013년 3월 최초로 법리검토의견서를 작성하고, 20명이 넘는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소송을 제기했다. 변호사들은 활동가들과 함께 원고 진술서를 작성하고, 547개에 이르는 광범위한 증거자료를 수집하여 법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변호사들이 법리 구성에 활용한 연구와 법정에서 증언한 전문가들이 있었다. 캐서린 문의 『동맹 속의 섹스』(이정주 옮김, 삼인, 2002/원본출판 1997)를 필두로 기지촌의 형성과 관리,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 침해에 한국 정부가 책임이 있음을 입증하는 연구들이 생산되었다. 그중 캐서린 문, 이나영, 박정미의 연구가 증거자료로 제출되었고, 이나영과 박정미가 각각 1심과 2심에서 전문가로서 증언했다. 또한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의정부 보건소의 의무사무관으로 일한 의사 문정주, 파주 기지촌을 촬영하고 성병 관리 공무원을 면접한 사진작가 조영애가 1심에서 증언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소송의 가장 큰 의의는 원고들, 곧 미군 ‘위안부’ 당사자들이 투쟁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해방 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수만 명에 이르렀을 미군 ‘위안부’들을 대표하여 122명이 원고로 나섰다.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소송 역시 피해자들이 자신이 입은 피해를 직접 증언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원고의 진술서와 면접보고서는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되었고, 법원은 사실관계 인정에 이 증거들을 인용했다. 또한 미군 ‘위안부’ 당사자 4명이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렇듯 재판부는 여성들의 증언을 경청했고,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하여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원고 중 한 사람은 2심 재판에서 다음과 같이 최후 진술했다.
우리에게 국가는 없었습니다. 도망가고 싶어서 도움을 요청한 파출소는 다시 우리를 포주에게 도로 돌려보냈습니다. 보건소에서는 고통스럽고 치욕스럽던 성병검진을 일주일에 두 번이나 해야 했고 성병이 없음에도 토벌, 컨텍으로 보건소에서 페니실린 주사를 맞으며 감옥 같은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아파도 보건소에서는 주사 한 번 약 한 번 처방해 주지 않았습니다. (…) 안에서는 달러벌이 애국자로 밖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그런 삶을 살아 온 우리의 삶이 너무나 억울합니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핍박받은 여성들이자 “국가 없는 애국자”라는 역설적 존재들이 마침내 국가를 상대로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 승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300~700만 원에 불과한 배상액은 원고들이 겪은 고통에 견주어 터무니없이 적다. 여성들이 국가에 의해, 그리고 국가를 위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여성들의 피해를 온전히 배상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또한 2020년 제정되었으나 유명무실한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판결은 국가가 미군 ‘위안부’들에게 자행한 불의 중 일부만 인정했을 뿐이다. 일례로 미군 ‘위안부’를 수용한 또 다른 시설인 부녀보호지도소나 직업보도시설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은 소송 청구 원인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 많은 생존자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한국 사회가 그들의 경험에 공감하고 과거의 폭력과 불의를 성찰하여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 글쓴이 박정미
-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기지촌 여성을 비롯한 서발턴과 국가에 관해 연구해왔다. 미군 ‘위안부’ 국가 배상 청구 소송에 증거자료를 제공하고 2심에서 전문가로서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