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해방이 곧 사회의 해방이다: 2022 이란 시위와 글로벌 연대의 목소리

구기연

  • 게시일2022.11.28
  • 최종수정일2022.12.05

머리카락을 자르며 자유를 외치는 이란 여성들 ⓒ백정미

1. Jin, Jiyan, Azadi(여성, 생명, 자유)

“여성, 생명, 자유”. 2022년 9월 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란과 유럽, 캐나다, 미국 그리고 튀르키예(터키)와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연대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이게 한 구호이다. 히잡 단속에 걸려 한 젊은 쿠르드(편집자 주: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시리아, 아르메니아 등에서 살고 있는 세계 최대의 유랑민족)계 여성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사건에 대해 수천, 수만 명의 이란인들이 분노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쿠르드어로 생명이라는 뜻의 지나(Jina)라는 이름을 가진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의 죽음은 이란뿐 아니라 튀르키예와 이라크의 쿠르드족,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튀르키예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2022년 이란 시위는 근대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여성 인권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글로벌 연대 시위는 여성의 신체 자율권에 대한 저항을 넘어, 이란 인권과 자유를 위한 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로벌 시위의 대표 슬로건이 된 “여성, 생명, 자유”라는 혁명적 구호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 보자. “진, 지얀, 아자디”라는 세 단어의 쿠르드어로 이뤄진 이 구호는 2006년 3월 8일 튀르키예의 세계 여성의 날 행진에서 처음으로 쓰여 대중화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슬로건은 1980년대 튀르키예에 저항하는 무장 단체인 쿠르드 노동자당(PKK)이 이끄는 쿠르드 자유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이 구호는 “여성이 자유롭지 않으면, 그 사회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쿠르드 노동자당 공동창립자인 압둘라 오칼란(Abdullah Ocalan)의 글에서 따왔다.[1]

쿠르드 독립운동을 이끈 오칼란은 쿠르드 독립운동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곧 자율적인 여성 투쟁과 연결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여성, 생명, 자유”라는 이 세 단어를 통해 식민주의와 가부장적인 자본주의에 맞선 여성들의 공동 투쟁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번 시위 때마다 울려 퍼지는 “여성, 삶, 자유!”라는 이 마법의 구호는 ISIS(이슬람 국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이슬람 공화국이 설립된 직후, 히잡의 강제화와 여성들에 대한 샤리아법 적용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바 있다. 1981년 법제화된 이후 지난 40년 넘게 히잡 문제는 언제나 개혁적인 여성들과 이슬람 정권 사이의 ‘문화적 전쟁터’였다. 하지만 한 번도 히잡을 불에 태우거나, 이토록 많은 여성들이 연대하여 거리에서 히잡을 벗고 여성의 인권을 외친 적은 없었다. 

물론 이번 시위는 단순히 히잡 강제 착용이나 단속에 대한 저항은 아니다. 그동안 억눌려온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총체적 문제가 이번 시위를 계기로 그야말로 폭발한 것이다. 2018년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이란 핵 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이란 경제는 심각한 침체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물가는 40% 이상 올랐고, 청년 실업률은 2020년 최고 28%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폭력적인 유혈 진압 앞에서도 계속되는 이번 시위를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를 묻는 나에게 이란의 40대 지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의식주가 달린 문제이다. 우리의 아들, 딸들을 더 이상 이 정권의 노예로 살게 할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오늘날 이란 시위의 원동력은 이미 1997년 하타미 정권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이란의 젊은 세대들은 늘 이란의 변혁과 개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특히 젊은 이란 여성들은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저항의 목소리를 잃지 않아 왔다. 2006년 시작된 이란 여성들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 2009년 녹색운동, 2014년부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작된 강제 히잡 착용법에 대한 해시태그 운동(#MyStealthyFreedom, #WhiteWednesday,  #LetWomenGoToStadium 등)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여성들은 언제나 ‘용감한 사자들’이었다. 이란의 여성들과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을 향한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저항해 왔고,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그토록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2. 경계 없는 연대의 목소리: 튀르키예,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세계

standwithwomenofiran_turkey 인스타그램 게시물 ⓒstandwithwomenofiran_turkey

 

2022년 9월 이란에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가 가장 격렬히 끓어 올랐을 때, 인스타그램에는 “standwithwomenofiran_turkey”라는 페이지가 개설되었다. 이 페이지 소개 글에는 이란 여성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계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해당 페이지를 통해 튀르키예의 여성들은 “나는_마흐사 아미니이다”라는 연대의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영상을 올렸다. 또한 “우리, 튀르키예의 영화를 만드는 여성들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이란의 여성 및 사람들과의 연대를 선언하며 이란 여성들을 지지합니다”라는 영상물을 연속적으로 올리기도 하고, 성소수자 여성들 역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연대했다. 

튀르키예, 레바논, 그리고 중동 각 지역의 쿠르드인들부터 미국 할리우드와 프랑스 배우들의 연대를 통해, 이 시위가 단순히 이란 무슬림 여성에 국한된 국내적 이슈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글로벌 연대의 흐름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보여준 연대 시위의 모습이었다. 2022년 9월 30일에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는, 총부리를 들이대는 남성들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이란 대사관 앞에서 이란 여성들에 대한 연대 구호를 외치는 용감한 아프간 여성들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장면은 2021년 8월 탈레반 정권의 등장으로 여권신장의 퇴보를 우려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지지하기 위해 이란의 온오프라인에서 일어났던 연대 운동을 떠올리게 했다. 2021년에는 이란의 여성들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위해 연대 시위를 벌였던 것처럼, 이슬람을 내세워 신체 자율권이 박탈당할 위험을 겪었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역시 용감한 동조 시위에 나선 것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무슬림 여성들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이 이슬람 여성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반영하고, 무슬림 여성들에 관한 연구 속에 내재한 이슬람으로의 환원주의”를 문제 삼았던 모한티(2005: 51)[2]의 논의는 2022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각 이슬람권의 사안들과 무슬림 여성에 대한 문제를 여전히 이슬람 틀 안으로 환원시켜 버리고 있지 않은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을 비롯해 차별적인 상황에 놓인 이슬람권 여성에 대한 경계 없는 페미니즘적인 연대와 지지가 필요한 때다. 


3. 이것은 시위가 아니다. 이미 혁명이다: 이란 여성 혁명

43년 만에 역사상 가장 큰 시민불복종 시위에 나선 이란 국민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것은 시위가 아니다, 이미 혁명이다.” 현대 이란 여성들을 비롯한 이란 민중의 자유와 변화에 대한 열망은 지금까지처럼 은밀하게 자유를 즐기는 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란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아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거나, 자신의 색을 희석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반격에 나서고 있으며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해시태그를 통한 온라인 운동은 이란 내 여성 인권과 강제 히잡 문제, 미투 운동뿐 아니라 남성들을 포함한 국내 인권 문제와 나아가 탈레반 정권의 등장으로 극명해진 여권과 인권의 퇴보를 우려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 운동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을 향한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저항하고 있으며, 사회적 혁명을 꿈꾸며 그토록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소셜 미디어는 이란 여성 운동의 새로운 장을 펼쳐낼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으며, 나아가 이란의 시민들과 다른 문화권의 무슬림 여성들이 보다 주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2022년 이란의 시위는 3달 가까이 전국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2022년 10월 1일에는 151개국에서 이란인 디아스포라들을 비롯한 글로벌 연대 시위가 열렸으며, 2020년 이란에 의한 우크라이나항공 737여객기 격추 사고로 82명의 이란인들과 63명의 이란계 캐나다인들을 잃었던 토론토에서만 5만 명의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이란 내에서도 10월 8일을 기준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전국적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연일 발송되는 이란 내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 처참할 정도이다. 11월 17일 기준 10~18세 이하의 청소년 43명을 비롯해 326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시위대에 대한 가혹한 폭행과 발포는 계속되고 있다. 

2022년 이란은 위태롭고, 시민들의 삶은 불안정하기만 하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40년 넘게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최대로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이란은 2017년 말부터 지금까지 이란 리알화 가치 하락과 경제난으로 인해 전통적인 이슬람 정부의 지지 세력인 시장 상인들과 노동자 계층, 교사들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파업에 돌입하고 있다. 특히 ‘젊은 이란’을 이루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심각한 실업률과 인권 문제 등은 이란의 평화와 민주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다. “시리아는 잊어라! ‘우리’부터 생각해!”, “가자도, 레바논도 아닌 우릴 위해 희생하리라!”는 새로운 정치구호들에서 알 수 있듯,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이스라엘에 맞서 무슬림 형제들을 구하겠다’는 포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2019년 11월에 유가 인상과 경제난 때문에 일어나 최악의 유혈사태를 부른 대규모 시위와 ‘여성의 죽음’으로 촉발된 현재의 시위까지 앞으로 이란의 정세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그토록 원하고 기대하던 이란 핵 협상 역시 교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번 시위로 이란 신정 체제가 쉽게 무너지리라 예측하는 이는 없다. 시위가 지속될수록 소수민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발루치스탄이나 쿠르디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강경 진압이 예상되며, 정부의 강도 높은 공포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무력으로 시민들을 제압한다고 해서 결코 이슬람 정권이 원하는 ‘정권의 안정’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19년 11월과 2022년 시위에서 보여준 이슬람 정권의 잔혹한 탄압에 대한 반발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갑작스러운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미 이란의 역사는 혁명으로 그 과정을 증명한 바 있다. 현재 중고등학생, 대학생, 바자르 상인, 석유화학 노동자 등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시민들은 두려움 앞에서도 ‘자유’를 외친다. 보안군의 총부리와 강력 진압 앞에서도 “이란을 다시 되찾을 때까지, 우리는 싸울 것이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마음은 결코 이 시위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각주

  1. ^ ‘Jin, Jîyan, Azadî’ in the words of their creators: Öcalan and Kurdish women – Medya News 2022년 7월 10일, Medya News.
  2. ^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저, 문현아 역, 『경계 없는 페미니즘: 이론의 탈식민화와 연대를 위한 실천』 도서출판 여이연, 2005.
글쓴이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란 청년 세대에 대한 심리인류학 연구로 박사논문을 작성했다. 주로 이란의 청년세대와 여성 문제, 이란 내 한류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시민사회운동 등에 대해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한국 내 이슬람혐오 이슈와 한국 무슬림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2017)가 있으며, “국제 사회의 여성 인권 규범과 이슬람권 내 페미니즘의 흐름과 동향: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사례를 중심으로”(2022)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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