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함께 열리는 새로운 정치 지평 - <2022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 참관기

김은하

  • 게시일2022.11.28
  • 최종수정일2022.12.02

 

지난 10월 26-27일 이틀에 걸쳐서 <2022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주관으로 개최되었다.[1]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이 행사의 주제는 ‘전쟁, 식민주의와 여성폭력’으로, 러시아의 여성인권운동가 나스차 크라실니코바의 특별 기조연설 「우크라이나 전쟁과 여성폭력」으로 시작되었다. 나스차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에서 자행되고 있는 여성 강간을 이야기하며, 전시 성폭력은 민간인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군사 기술이라는 점을 일깨우고 전쟁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후 세계 각국의 인권운동가, 연구자,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전시 성폭력과 여성인권 침해에 대항하는 다양한 논의를 펼쳤다. 행사를 지켜보면서 일본군‘위안부’운동은 더 이상 한일관계에 국한된 민족주의적 의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일본군‘위안부’는 전쟁의 가부장성을 비판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트랜스내셔널 페미니즘의 주제이자, 여전히 종식되지 않는 여성 성폭력 문제와 닿아있는 표상이었다. 이렇듯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흥미롭고 문제적인 기획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이 글에서는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수치심으로부터 피해자를 해방시키기

개인적으로는 행사 이튿날에 이루어진 방글라데시의 여성작가 샤힌 아크타르와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인 전승희의 대담에 관심이 컸다. 샤힌은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시기에 파킨스탄 군에 납치당해 성노예가 되었던 여성의 수난과 성장을 탁월하게 그린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The Search)』의 작가로 초대되었다. 샤힌은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던 중, 사라예보 전쟁 아동 박물관(War Childhood Museum)에서 자신을 사로잡은, 전쟁 성폭력으로 태어난 어린이의 증언을 들려주었다. 샤힌의 목소리로 듣는 “내 전체 인생은 가해자 한 사람의 이름으로 점철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수치심은 내 몫이 되었다”는 어린이의 발언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자기 존재에 대한 수치심을 겪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부조리한 사태임이 다시금 환기되었다. 자신을 짓밟은 이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사랑으로 길러야 하는 여성과, 자기 존재를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들 속에서 살아갈 피해자의 삶이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최근에 읽은 책 『여성의 수치심』(에리카 L. 존슨·퍼트리샤 모런 엮음, 손희정·김하현 옮김, 글항아리, 2022)이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들은 수치심은 언어로 표현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수치심이란 개인적인 경험이 되기 쉬운, 완전히 혼자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수치스러운 생각, 행동, 감정에 대해 온전히 홀로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스스로를 결함 있고 부적절한 사람으로 느끼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데 적어도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간과되기 쉽다. 가령 성폭력이 성적 수치심을 강요함으로써 피해자의 입을 막는 과정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수치심은 그 어떤 감정들보다 개인이 타인과 맺는 관계의 문제다. 일본군‘위안부’야말로 강요된 수치심의 폭력성을 증거하는 존재다. 일본군‘위안부’는 당사자의 증언이 있기 전까지 소문 속에서 떠돌던 흐릿한 존재였다. 피해자가 수치심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침묵을 깨야 하지만, 수치를 드러내고 표현할수록 더 많은 치욕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증언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비로소 어렵게 증언이 이루어졌지만,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피해자는 수치심의 폭력 속에 여전히 갇혀 있다.

연구자로서 학술 발표들이 다소 특별하게 다가왔는데, 그 이유는 전시 성폭력은 단지 학문적 주제가 아니라 연구자가 온몸으로 상처 입으며 사건의 당사자와 관계 맺고 이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지평을 여는 의미심장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혼자만의 굴욕 속에 내던져지지 않도록 연구자, 활동가 그리고 양심적 시민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피해자가 수치심의 굴레로부터 해방되려면 전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정동정치로서 수치심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수치심’은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내밀한 테크놀로지와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인간의 인간됨을 심문하는, 즉 가장 인간다운 자가 인간 혹은 인간성에 대한 이상의 불가능성과 마주할 때 느끼는 윤리 감정일 것이다. 

 

1부 ‘폭력의 세계, 공존의 존재론’에서 이루어진 도미야마 이치로의 발표 「폭력, 이후」는 사건 바깥의 사람들이 피해자의 증언을 나누어 갖는 일의 가치와 그 방안을 모색하게 해주는  글이었다. 도미야마는 증언이나 애도 논의에서 그간 자주 거론되었던 피해자가 “말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피해 사건의 당사자들은 자주 “결코 폭력에 대한 기억을 말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이 말은 폭력에 의한 경험이 당사자에게 남긴 트라우마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도미야마는 “말할 수 없다”는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이 같은 세계에 존재하고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이나 제도가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자료집, 30쪽)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폭력은 폭력적 행위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 이후 우리들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비단 과거의 피해자에게만 연관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는 폭력에 노출된 모든 사람과 관련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말할 수 없다”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면 새로운 정치적 지평이 열린다. 이러한 발견은 현재에 대한 환상을 박살냄으로써 우리를 상처 입히는 파상적 경험이지만, 사건의 당사자와 사건 바깥의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지나쳐 온 것을 부끄러움과 함께 아는 것”(자료집, 36쪽)으로 표현된 상처입기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여는 정동적 자원이 될 수 있다. 

일본군‘위안부’는 단지 오욕된 역사가 남긴 특수한 사건이 아니고, 현재에도 여전히 발생하는 젠더폭력의 한 양상임을 깨닫는 것은, 폭력 이후를 피해자와 사건 바깥의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열 수 있다. 이번 행사와 연계된 온라인영화제에서 상영되고, 또 2부 ‘침묵과 몸짓: 증언의 영화적 번역’에서도 논의된 박문칠 감독의 〈보드랍게〉(2022)는 제국/식민의 기억 속에 갇혀 있던 일본군‘위안부’를 오늘날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지평 속에서 재의미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김순악이 열여섯의 나이로 만주로 끌려가 일본군‘위안부’가 되고,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한 기지촌에서 “양공주”로, 집창촌 포주로, 때로 식모를 전전해온 생애사를 이야기한다. 동시에 오늘날 미투 운동의 고발 주체들에게 김순악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내레이터 역할을 맡김으로써 여성 성폭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일본군‘위안부’ - 전쟁과 폭력의 세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폴리스의 창설자

앞서도 말했듯이 이번 국제 컨퍼런스를 통해 일본군‘위안부’는 한국의 성공한 시민사회 운동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전시 성폭력과 여성인권 침해를 상징하는 글로벌한 참조점”(자료집, 4쪽)으로서 트랜스내셔널 페미니즘 운동을 열어가는 주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군‘위안부’운동은 그간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필리핀, 중국 등 아시아 각 지역의 피해자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 아시아 페미니즘 운동으로서의 가능성마저 보여주었다. 한국의 일본군‘위안부’운동은 그간 탈식민 민족주의 운동으로서 그 역할을 다 했으므로, 이제는 여성혐오와 백래시로 나타나는 전 세계의 보수화 흐름에 맞서 페미니즘 운동의 새로운 어젠다로 도약해 갈 필요가 있다. 

 

일본군‘위안부’가 트랜스내셔널 페미니즘의 맥락 속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4부 ‘(포스트)냉전과 ‘피해자다움’’에서 발표된 김현경의 「냉전과 일본군‘위안부’: 배봉기의 잊혀진 삶 그리고 주검을 둘러싼 경합」이 포착한 장면은 지극히 문제적이다. 1914년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944년 오키나와의 ‘위안부’가 된 배봉기는 1975년 재류특별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혔다. 그러나 “식민주의와 냉전, 국가 및 남성에 의해 여성폭력을 응집한 하나의 육체”(자료집, 147)라고 할 수 있는 배봉기의 증언은 국가 간 틈바구니에서 유령화되었다. 전후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형성 과정에서 공산주의의 방파제로 자리잡은 일본은 전쟁 범죄 책임을 부정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 안착했고, 박정희 정권 역시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파트너를 자처하며 배봉기의 존재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1991년 사망한 후에도 배봉기는 한동안 귀국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오키나와 민단과 조총련이 상이한 이념을 내세워 자신들이 배봉기의 삶과 경험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며 유골을 두고 소유권 분쟁을 벌인 것이다. 

배봉기의 비극적 사례는 일본군‘위안부’가 더 이상 국경이나 문화에 갇히지 않는 트랜스내셔널한 전쟁 기억의 일부가 되어야 하며, 민족의 수치를 환기시키는 표상이 아니라 사회진화론과 약육강식의 논리에 기초해 온 남성 중심적인 근대문명 담론에 균열을 내는 주체여야 함을  보여준다. 이혜령의 「페허, 바다의 기억 – 일본군‘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는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 개념과 독일 작가 제발트의 논의를 빌어, 일본군‘위안부’를 “모든 전쟁의 중지와 폭력적 팽창을 추구하는 남근 중심적 세계질서의 파국”(자료집, 54쪽)을 요청하는 존재로 재위치화한다. 이혜령은 김학순에게 증언은 전쟁과 전장을 떠올리며 다시금 죽음의 공포에 노출되는 정동적 체험의 반복이었다고 일깨운다. 그리고 김학순이 본 폐허, 즉 죽음에 대한 당사자의 공포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이 유령처럼 배회하는 심연을 상상하라고 말한다. 또한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전에 없던 새로운 공동체 내지 폴리스의 창설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한다. 

 

3부 ‘[라운드테이블] 지금-여기, 일본군‘위안부’운동’과 6부 ‘[아시아 청년포럼] 여성과 폭력, 아시아 청년의 눈으로 묻고 답하다’는, 국경을 넘어 전쟁과 성차별에 반대하는 새로운 폴리스 만들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단초다. 3부 도로테아 믈라데노바의 「평화의 소녀상과 ‘위안부’ 문제의 독일 현지화」는 독일에서 소녀상 설치를 위한 시민운동이 비교적 성공하게 된 이유를 소개하고 있는 흥미로운 글이다. 발표자에 의하면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위안부’ 워킹 그룹”은 “종족 간 연합을 통해 국경을 초월하는 탈국가적 또는 초국적 활동”(자료집, 109쪽)을 함으로써 보편주의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폭력을 은폐하는 메커니즘과 성폭력을 조장하는 구조를 폭로하고 독일인들이 성폭력에 대해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급진적 현지화’를 시도했다. 민족이나 국적이 상이한 구성원들은 종족 간 만행의 역사를 수치스러워하며, 페미니즘에서 역사의 실타래를 풀 자원을 발견하고자 했다. 성폭력을 아시아의 야만으로 치부하고 서구인에게 은밀한 우월감을 안겨주는 식으로 소녀상이 전유되지 않고, 현존하는 젠더 폭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일본군‘위안부’를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전쟁과 폭력의 세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폴리스의 창설자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1960-1970년대 군산, 송탄 등 미군 기지촌에서 “양공주”였던 김연자의 자기 서사인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 분 전까지 악을 쓰다』(삼인, 2005)를 읽고 있었던 탓인지 자주 일본군‘위안부’와 “양공주”라는 조롱 섞인 이름으로 불리는 외국군 성매매 여성들이 겹쳐졌다. 김연자가 날마다 죽음을 꿈꾸던 절망의 땅이 바로 나의 고향이었고, 강렬한 기억 하나가 있었던 탓일 듯하다. 오래전 고향에서 관광호텔과 버스터미널 사이에서 미군과 함께 있는 고3 짝꿍과 마주친 적이 있다. 저개발의 공간이 감추지 못한 옹색함과 무질서 속에서 미군과 한국 여성의 조합은 강렬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사라진 탓에 소식이 궁금한 친구였지만 인사조차 건넬 수 없었다. 친구가 나를 외면하게 만든 것은 수치심이었을 것이다. 내가 느낀 것도 종류는 다르지만 약간의 수치심이었다. 이번 국제포럼은 역사 속 여성 피해자들이 강요된 수치심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방의 조건이 무엇이며, 어떤 활동들이 필요한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일본군‘위안부’만이 아니라 “양공주”까지로 상상이 미치면, 식민과 냉전에 대한 여성주의 연구는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뗀 것처럼 보인다. 할 일이 많다는 것은 다행일까? 슬픔일까? 앞으로도 ‘여성인권과 평화’에 대해 이처럼 큰 질문을 던지는 뜻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각주

  1. ^ 한국어, 영어, 일어로 제작된 <2022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컨퍼런스> 자료집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발간자료 게시판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https://www.stop.or.kr/multicms/multiCmsUsrList.do?category=pd&srch_menu_nix=nFog4NJ7
글쓴이 김은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부교수. 여성 글쓰기의 정치성과 한국여성문학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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