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양경언 대담] 여성의 글쓰기, 위로와 치유가 되다

최은영 양경언

  • 게시일2022.11.11
  • 최종수정일2022.11.14

최은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 2021)은 ‘증조모-할머니-어머니-나’에 이르는 여성 4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현재를 배경으로 장대한 서사를 엮어낸 이 작품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시간을 불러내 기억하고 공유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물들은 다치고 깨지기도 하지만, 끝내 일어나 서로의 손을 잡고, 일상을 살고, 삶을 일궈나간다. 소설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그것과도 맞닿아 있어 여러 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처럼 여성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읽기를 넘어 공감, 위로,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자료센터가 지난 9월 <문학은 기억한다: 여성의 시간과 (불)가능한 치유>를 주제로 개최한 『밝은 밤』 북토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최은영 작가와 양경언 문학평론가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밝은 밤』을 중심으로 나눈 둘의 깊은 사유를 전한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오늘의 나

 

양경언

『밝은 밤』은 여성 4대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성씨가 다르지만 누구보다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여성들이 주인공인데, 그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최은영

처음부터 여성 4대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첫 시작은 증조모 ‘삼천’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말하는 형식으로 썼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삼천과 연결돼있는 사람일 테고, 그렇다면 가족일 것이고, 딸이겠다는 결론을 냈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 손녀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되면서 여성 4대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양경언

『밝은 밤』을 읽은 독자들은 대체로 이런 감상을 먼저 꺼내는 것 같아요. 새비와 삼천, 영옥과 희자와 명숙, 미선과 명희, 정연과 지연, 그리고 지우와 같은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같다고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나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 고모, 언니, 여자친구들이 떠오른다는 얘기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을 쓸 때 작가님에게 특히 영감을 주었던 여성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그리고 작가님에게 영감을 준 인물을 소설로 형상화할 때 고민했던 점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최은영 작가 ©오늘의 나

 

최은영

저는 소설을 쓸 때 저의 캐릭터를 쪼개 넣어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모든 인물 안에 제가 들어가 있어요. 이번 작품에는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의 성격도 많이 반영됐고요. 한국전쟁 당시 대구로 피난을 갔다는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지연의 엄마인 미선은 저희 엄마와 정말 다른 캐릭터의 인물이지만 엄마와 갈등을 겪었을 때 엄마가 저에게 바랐던 것들, 엄마의 가치관 등이 미선의 캐릭터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있었고, 엄마에게 제 고민을 이야기하니 무엇이든 제가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하셔서 감사했습니다. 

 

양경언

결국 나의 삶을 바탕으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힘든 지점이 있겠고요. 나의 삶을 떼어다가 새로운 것을 만들다 보니 생채기가 날 수도 있고, 그것을 보기 싫어도 봐야만 하잖아요. 인물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 나의 모습들이 반영되는 것이 괴롭진 않았나요? 

 

최은영

저는 오히려 글을 쓸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머릿속의 어지러운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화하면 덜 고통스러워지더라고요. 특히 소설을 쓰면서 제 일부를 떼어 인물을 만들 때는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아요. 

 

양경언

『밝은 밤』에는 역사적 사건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들이 나옵니다. 가령 증조모가 어머니와 헤어지고 증조부와 개성으로 떠날 수밖에 없게 된 배경으로 일본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로부터 “힘없는 집 여자애들”이 “끌려”갔던 일이 등장한다거나, 피폭된 이들의 사연이 히로시마에서 돌아온 새비 아저씨를 돌보던 새비 아주머니를 통해 전해지기도 하고요. 피난길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한국전쟁 이후 남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부장제를 이어가고자 했는지에 대해서도 그려지는데요. 이런 장면들을 그릴 때 작가님이 특별히 유념했던 바가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들을 토대로 공부하셨는지, 그 과정 중에 이전에는 몰랐다가 새삼 알게 된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작가로서 이때 들었던 고민과 생각들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최은영

제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써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어요. 가짜를 쓰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죠. 어렸을 때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남성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요. 그 작품들에서 남성 인물은 철학적이고 생각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여성 인물은 항상 현실에 희생당하는 대상으로 그려졌어요. 우리 역사가 여성의 몸을 통해 은유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이었죠. 굉장히 거북하고 기분이 나빴어요. 그래서 한국전쟁을 그릴 때 그런 식으로는 그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소설 안에서 인물들이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그들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한 기능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작품이 교조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사람을 폭력적으로 다루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전쟁은 제가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에 할머니에게 피난 당시의 상황을 물어봤어요. 아군이고 적군이고 구분 없이 여자는 강간하려 했고, 할머니 자신도 두려웠다고 말씀해주셨죠. 박경리, 박완서 선생님이 쓰신 작품들, 전쟁 이후 민간인들의 삶에 관한 연구 자료들, 피폭 관련 도서들도 읽어봤고요. 사실이 아닌 것을 임의로 추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 공부를 하며 썼습니다. 

 

양경언

소설은 결국 사실적인 기율을 존중하며 형성되는 허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관념적으로 다루고자 하지 않았다’, ‘가짜로 쓰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위안부’, ‘피폭’, ‘피난길 풍경’ 등 고통을 서사로 재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재현의 방법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셨을 텐데, 그 과정에서 작가님이 세운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최은영 작가(왼쪽)와 양경언 문학평론가 ©오늘의 나

 

최은영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저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인물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인물들을 도구적으로 전시하듯 써서는 안 된다고도 생각했어요. 인물의 고통이나 슬픔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실현하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며 글을 썼습니다. 인물은 작가의 마리오네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물 위에서 내려다보며 쓰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인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인물의 마음에 최대한 집중해서 그 마음을 함께 느끼고자 노력했습니다. 

 

양경언

작가의 덕목은 삶에 대한 존중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한편, 이런 얘기도 이어서 해보면 어떨까요? 소설을 통해 고통을 직면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요. 증조모가 자신의 출신 조건 때문에 마을 공동체에서 차별당하고, 새비 아저씨가 통증을 겪으며 인간이 벌이는 전쟁의 끔찍함을 전할 때, 이러한 이야기가 고통스럽더라도 독자들이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최은영

읽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공감해요. 그런데 인간 자체가 가만히 있으면, 그러니까 노력하거나 성찰하지 않으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인간은 쉽게 잊어버리는 속성을 갖고 있잖아요. 인류 공동체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모르면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반복하고, 그로 인해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저항하는 시민들이 절대다수라면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자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픽션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었어요.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생각도 하지만 인물 안에서 실제로 그들의 고통을 감각해요. 이야기가 다 사라지고 나서도, 감정은 남아 있어요. 타인의 고통을 순간이나마 내 것으로 느낀 경험이 개개인의 인간을 공감하는 주체로 깨워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순간적인 자극이나 즐거움만 좇는 사회일수록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무뎌지고, 상대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감 능력은 말 그대로 능력이기에, 그런 능력을 잃을 때 자기 자신에게도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읽을 때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스러운 독서의 경험은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경언

이야기를 읽으면서 너무 고통스럽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이 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네요. 그런 반응 자체가 능동적인 독자가 되는 출발점일 수도 있겠고요. 

 

최은영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걸 죄악시하고 낭비라고 교육받으며 살아왔잖아요. 그것이야말로 만병의 근원인 것 같아요. 문학작품을 읽으면 감정적으로 동요되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내가 느끼지 못했던, 느끼지 않으려고 억압했던 감정이 올라오며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줘요. 소설을 읽는 것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오늘의 나

 

양경언

증조모인 삼천은 천성이 “고개를 숙이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무리 지어 날아가는 하늘의 새들을 쳐다보느라 넋을 놓”을 줄 아는 사람(35쪽)으로 그려집니다. 할머니 영옥은 “할머니도 케이크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없어 못 먹죠”라고 장난스레 답하는(28쪽) 장면 등에서 사랑스럽게 그려지고요. 증조모와 할머니를 그릴 때 이런 성품의 사람들로 그리고 싶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최은영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쓴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쓸 때 제 삶의 주도권을 갖고 싶었거든요. 저는 그때 제게 고통을 준 인간들에 대한 분노로 하루하루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정작 그들은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데, 왜 잘못하지도 않은 내가 고통받아야 하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삶을 온전히 살지 못했어요. 그로부터 1년 정도 흐르니 그들을 탓했던 시간 동안 제 삶의 주도권을 그들에게 줘버리는 행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에게 미안해지더라고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저 자신에게 집중해서 살아가고 싶었어요. 그런 지향 안에서 저를 돌아보는 과정이 있었고요. 큰 고통을 겪고도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을 관찰했어요. 그런 분들은 유머감각이 있어요. 실제로 저희 할머니가 게임도 좋아하시고 농담도 좋아하세요. 험한 일들을 겪으셨지만 정말 즐겁게 살고 계셔서 할머니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소설 쓸 때 녹아든 것 같아요. 

 

양경언

새비와 삼천이 나누는 감정적 교류나 편지를 보면, 이들은 웬만해선 시대를 탓하거나 서로를 원망하지 않아요. 이들이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힘을 북돋고, 그 힘으로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최은영

삼천과 새비는 자기 인생에 책임감을 갖고 있는 강한 사람들이에요.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나는 나에게 일어난 어떤 일들에도 나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게 떠오르는데, 그건 제가 이야기한 것과도 연결돼요. 자기 삶에서 일어난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말은 ‘다 내 잘못이야’라는 식으로 자기를 내모는 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과정에서 나는 주체였어, 어떤 일이 있든지 나는 내 삶에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라는 결의가 담긴 강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양경언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말 자체가 ‘응답하다(respond)’와도 연결되는데, 자기가 겪은 삶에 대해 응답할 수 있는 주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최근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단절’하고 보자는 얘기들도 나오는데,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관계를 단절적으로만 다루지 않는 것 같아요. 지연과 미선, 미선과 영옥, 이들 모녀 관계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방향으로 소설이 나아가는데요. 상처를 주고받은 관계를 그릴 때 작가님은 인물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최은영 작가 ©오늘의 나

 

최은영

모든 관계에는 인연에 따라 기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근데 저희 할머니를 보면 오래 가는 관계도 드물지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아무것도 못 드셨을 때 옆집에 사시던 분이 음식을 만들어다 주시면서 먹고 살아나라고 해주신 적이 있었대요. 그런 돌봄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할머니가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시고, 80대까지도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그 분을 만나러 다니셨어요. 삼천에게는 새비가 그런 존재였을 것 같아요. 

 

양경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작가님이 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일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혹시 이 작품을 쓰면서 포기할까 싶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집필 중에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어떤 장면을 그릴 때였나요. 그때 작가님이 갖고 있었던 ‘질문’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답을 어떻게 마련하셨는지요.

 

최은영

2화가 끝난 뒤 인물들이 대구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그 후의 그림이 구체적으로 안 그려져서 정말 막막했어요. 결국 명숙 할머니가 어느 정도 알아서 해주셨지만, 전쟁이 끝난 뒤 희령으로 가게 되면서 또 막혔어요. 그래서 3화는 초고를 버리고 완전히 다시 썼어요. 최대한 그 세계 안에 있으면서 인물들과 함께 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처음에 3화를 쓸 때는 인물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거의 다 살려뒀었는데요. 친구가 보더니 ‘언제까지 이들을 다 살려둘 거냐’고 묻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3화를 다시 쓰면서 하나씩 보내기 시작했어요. 새비 아주머니가 가실 때는 정말 이별하는 느낌이 들어 많이 울었어요. 그게 소설 쓰기인가 봐요. 3화를 쓰면서 ‘내가 과연 끝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인물들이 알아서 해주더라고요. 고비를 넘겼더니 4화는 자연스럽게 마무리됐어요. 

 

양경언

『밝은 밤』을 읽다 보면, 공적인 역사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고 떠돌았던 여성의 시간을 ‘문학’으로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에 이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것은 태양과의 연결 속에서 빛을 만들어내는 달이 어둠 한가운데서 길을 내는 듯한 ‘밝은 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요. 작가님 역시 문학작품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를 접하고 치유에 이른 경험을 갖고 계신지요. 

 

최은영

치유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책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험을 했어요. 최근에 샬롯 브론테가 쓴 『빌레트』라는 책을 읽었는데 19세기 당시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 학교 교사를 하며 혼자 사는 여성의 이야기예요. 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책이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느낌이 들었고 인물에 공감이 됐어요. 그래서 슬프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면서 혼자가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작가는 몇백 년 전에 죽었고, 책 속의 이야기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도 관계가 없지만 위로를 받은 거예요. 굉장히 신기한 일이었어요. 

 

양경언

독자가 작품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이 독자를 읽어주는 것이란 말은 마지막 질문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고 읽는 일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은영 작가(왼쪽)와 양경언 문학평론가 ©오늘의 나

 

최은영

소설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깊이 있게 묘사할 수 있는 예술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오랜 시간 동안 살아볼 수 있는 경험도 할 수 있고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 세상과 단절되고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럴 때 소외감을 느끼고, 그런 소외감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발생하곤 해요. 저는 살면서 계속해서 무언가와 끊어지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좋은 소설을 읽으면 ‘이토록 다른데도 본질적인 것은 닮아있구나’ ‘우리가 겪는 고통은 비슷하구나’라는 점에서 인간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곤 해요. 

 

양경언

『밝은 밤』을 통해 작품과 독자들이 공동체의 기억을 새로이 형성해나가는 과정과도 연결되는 말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 여쭈면서 오늘의 대화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은영

내년 여름에 세 번째 단편집을 낼 것 같아요. 단편집은 5년 만이에요. 올해 겨울에 마지막 한 편을 쓸 예정인데, 그간 써온 단편들을 잘 묶어서 내고 싶습니다.  

 

Credit 

인터뷰어: 양경언
인터뷰이: 최은영
정리: 퍼플레이 강푸름
사진: 오늘의 나 
일시: 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장소: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42-22 카페스페이스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 최은영 작가_03 ©오늘의 나
  • 양경언 문학평론가_03 ©오늘의 나
  • 『밝은 밤』 ©오늘의 나
  • 최은영 작가_04 ©오늘의 나
  • 양경언 문학평론가_04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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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경언 문학평론가_03 ©오늘의 나
  • 『밝은 밤』 ©오늘의 나
  • 최은영 작가_04 ©오늘의 나
  • 양경언 문학평론가_04 ©오늘의 나
글쓴이 최은영

소설가. 주요 저서로 『밝은 밤』,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이 있다. 

글쓴이 양경언

문학평론가. 지은 책으로 비평집 『안녕을 묻는 방식』(창비,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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