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삶에 대한 축복의 이야기 - 일인극 〈캐러멜〉 제작기

김기강

  • 게시일2022.09.29
  • 최종수정일2022.11.25

연극 〈캐러멜〉 리허설 ⓒ극단 돌

 

일인극 〈캐러멜〉은 2018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다. 처음에는 2인극으로 시작해 그해 4월 23일 도쿄에서 열린 시민집회 ‘지금 일본군성노예문제를 마주한다 - 피해자의 목소리X아트(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성차별철폐부회 주최)’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그 후 우리 극단은 이 작품을 일인극으로 재편하여 2019년부터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 본격적으로 순회공연을 시작했고, 일본 각 지방을 비롯해 한국에서는 서울·부산·광주·청주·제주도에서 공연해왔다. 현재 진행중인 일인극 〈캐러멜〉은 벌써 25번째를 맞는다.

이 작품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에서 살아남아 일본으로 건너온 재일 동포 1세의 존엄을 그린 일인극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창조한 픽션이지만, 할머니의 혁명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관객들과 함께하는 ‘귀향’ 이야기로 삼고자 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시는 가운데, 이 억울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짓밟힌 존엄에 어떻게 빛을 비출 수 있을지, 무엇에 희망을 갖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당시 강제로 ‘위안부’가 된 조선 소녀들은 10만~2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그 가운데 정부에 등록하신 분은 고작 240명이라 한다. 피해자는 그 수를 여전히 헤아릴 수 없으며, 그중에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서 숨죽여 살아온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도 남몰래 울고 계시던 분이 존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아프고 외롭고 억울하셨을까. 얼마나 고향으로 가고 싶으셨을까. 그분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셨을까. 그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 질문들을 기반으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에서는 과거를 숨긴 채 세상 한 귀퉁이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갈등을 비롯해 할머니와 더불어 살아온 재일 동포들의 유머와 인정을 그려내고자 했다. 동네 사람들은 삶의 힘이 넘쳐났고, 할머니와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특히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조선학교 고등학생과 할머니의 만남에는 편견과 차별에 굴하지 않고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다짐과 희망을 담았다. 그리고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의 구석 그늘에서 살아가시던 할머니를 세상 가운데에 두고 빛을 비춰드리고자 했다. 연극이라는 행위로 웃음과 눈물이 넘치는 무대에서 할머니들의 통한을 관객들과 함께 풀어드리고 싶었다. 그러한 고민 끝에 작품을 감히 희극으로 만들게 되었다.

연극 〈캐러멜〉 리허설 ⓒ극단 돌

 

오사카조선고급학교 3학년인 강령미의 등굣길에는 김숙기 할머니와 홍옥순 할머니의 집이 있다. 두 할머니는 전쟁 때 캐러멜 하나에 속아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당했다. 하지만 그 과거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 옥순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령미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자 옥순은 숨을 거둬버린다. 남은 숙기는 옥순이 타던 자전거를 상여 삼아 장례식을 치른다. 그 곁에서 령미가 할머니들을 도와준다.

숙기는 옥순의 마지막 길인 만큼 원하는 대로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죽은 옥순이 어린 시절에 입었던 치마저고리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선물을 가지고 고향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 이대로는 죽을 수가 없어. 우리 그때처럼 웃으면서 선물을 갖고 돌아가자.” 살아서 가지 못했던 고향을 죽어서야 가게 되는 것이다.

배울 기회 한번 없이 애오라지 과거를 숨기며 악착같이 살아온 옥순은 자신의 죽음을 직면하고, 애써 외면해왔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잔혹한 고통에 시달리며 고독함을 견뎌온 할머니에게 삶의 존엄이란 무엇이었는지 곱씹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의 큰 테마다.

령미는 학교 선배에게 얻은 교복을 할머니들에게 드린다. 령미가 다니는 조선학교 교복이 마침 옥순과 숙기가 어린 시절에 입었던 치마저고리 옷차림과 비슷하게 보여서 그걸 입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령미가 옥순에게는 아주 눈부시게 비쳤던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일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옛날 조선에서는 여자가 자전거를 타면 상스럽다고 해서 남자들만 자전거를 탈 수 있었고, 할머니들도 그런 줄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가 묻은 오랜 관념을 깨고 싶었다. 매일같이 치마저고리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는 맑은 령미의 모습을 보면서 힘겨운 삶을 버텨낸 두 할머니의 마음이 소녀처럼 신나게 뛰었다.

옥순이 비로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날 얼마나 시원했을까. 숙기가 상여로 삼은 옥순의 자전거에는 수많은 흰 꽃과 함께 ‘실버 드림’이라고 쓰인 깃발이 휘날렸다. 둘은 함께 큰 소리로 “우리는 여기 살아 있다”고 외친다. 령미는 그것이 할머니의 레볼루션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외친다. 그 외침이 바로 무대에서 전하고자 하는 할머니의 삶에 대한 축복이다.

연극 〈캐러멜〉 리허설 ⓒ극단 돌

 

한국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연극이 여러 작품 있다. 그 가운데서도 내 작품은 장례식을 치르며 인간의 존엄과 삶에 대한 축복을 곱씹게 한다. 피해자의 아픈 혼을 보러 와주시는 관객들과 함께 위로하고 한을 풀어드리려는 뜻을 담았다. 매번 공연장에 모여주시는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나비를 날리고 그 역사를 기억하면서 다음 세대에 바통을 이어 가고자 했다. 앞으로 언젠가, 어딘가에서 봐주실 분들이 함께 웃고 울면서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롭게 살다 돌아가신 분들의 한을 같이 풀어주셨으면 한다. 나는 그저 영혼들의 아픔과 기쁨을 안고 춤을 춘다.

극단 돌은 2004년에 창립해 일본 시가현을 거점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전국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은 거의 일인극이고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재일 동포의 100년 역사를 그린 〈자이니치 바이탈 체크〉가 있다. 이번에 〈캐러멜〉을 만들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연극 활동을 한 지 이제 거의 30년 가까이 되지만, 연극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언젠가는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제작 제안을 받았을 때 적당한 시기에 나에게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은 너무 어려도, 너무 늙어도 못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작품은 아주 어려운 작품이다. 그러나 그만큼 깨닫는 것도 많고 공부가 되는 것도 많았다. 순회공연을 진행하면서 문제가 생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작품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하기 전부터 언젠가 사람들은 나를 희극 배우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희극 배우인 것이 참 좋았다. 아픔이나 슬픔을 무대에 올릴 때 그만큼 웃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극단 활동이 앞으로 계속 새로운 만남을 만들고, 서로를 편하게 만드는 맛있는 밥이 되면 좋겠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맛있게 밥 먹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위로가 된다며 할머니가 하늘나라에서 웃으시는 듯하다. 나에게 들리는 말 “밥 먹었나.”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들이 자주 하시던 인사말이었다. 조국에서도 아마 그러했으리라.

연극 〈캐러멜〉 리허설 ⓒ극단 돌
글쓴이 김기강

재일조선인 3세. 극단 ‘돌’ 대표. 극단 ‘돌’은 일본 시가현 히코네시를 근거지로 두고 있다. 2004에 결성되어 현재까지 연극 워크숍 등 일본 전국 각지에서 활동 중이다. 호탕한 웃음 속에서도 항상 사회적 약자 편에 서는 작품을 다루고 있다. 대표작으로 재일 코리안의 100년을 다룬 〈자이니치 바이탈체크〉, 모든 생물의 존엄을 다룬 〈강아지 똥〉,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인생을 다룬 〈캐러멜〉, 부락차별의 역사와 현상을 다룬 〈사람의 가치-다마짱과 하루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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