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는 <여성 재현의 윤리와 난제들>이라는 주제로 김진아 감독과 김한상 교수의 온라인 대담을 마련했다. 김진아 감독의 미군 ‘위안부’[1] 3부작 제작기를 시작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매체적 재현, 뉴미디어를 통한 대안적 재현 방식, 피해자를 착취하지 않는 재현에 대한 고민을 거쳐 AR을 통한 젠더 헤게모니 균열까지 ‘매체를 통한 재현’에서 교차하는 두 대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진아는 UCLA 영화과 종신교수로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이다. 주요 필모그래피로는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2002), <그 집 앞>(2003), <두번째 사랑>(2007), <서울의 얼굴>(2009), <파이널 레시피>(2014) 등이 있다. 최근작 <동두천>(2017)과 <소요산>(2021)은 몰입형 매체를 활용한 미군 ‘위안부’ 3부작의 첫 두 편이다.
김한상은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주요 연구 분야는 시각문화, 아카이브, 인종주의, 이동성, 영상사회학 방법론 등이다. 그는 최근 웹진 <결>을 통해 <동두천> 등에 나타난 ‘보여주지 않음’이라는 재현의 윤리를 논하며, 일본군‘위안부’ 피해 기억 재현에 있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식에 대해서도 함께 짚은 바 있다. (>>관련 글: ‘시체 구덩이’의 응시와 ‘위안부’ 피해 기억의 재현)
목소리를 갖지 못한 자들에 대한 윤리적 재현
김한상
김진아 감독님과 ‘여성 재현의 윤리와 난제들’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누게 되어 반갑게 생각합니다. 감독님께서 미군 ‘위안부’ 3부작 중 두 작품을 제작하셨고 최근 영화제를 통해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이셨죠. 그 과정에서 작품에 대해 논의하며 대담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결과 오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진아
‘여성 재현의 윤리와 난제들’이라는 주제를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미군 ‘위안부’ 3부작은 여성과 관련된 여러 폭력과 그것을 감내하는 여성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난제를 고민하면서 나온 작품들이에요. 현재 세 번째 작품을 제작 중인데, 이 모든 것은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인 1992년에 있었던 윤금이 씨 살해사건에서 비롯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건이 예술가로서의 제 정체성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같은 해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김보은·김진관 사건 등 여성인권과 관련해 굵직한 사건이 많이 발생했는데 그중에서도 윤금이 씨 살해사건으로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건 이전에도 미군 ‘위안부’가 한국에 존재하고 기지촌에서 어떤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문제가 그토록 크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그 사건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군 ‘위안부’는 한국에도 미국에도 속하지 못하고, 보호받지도 못하고, 우리 사회의 멸시까지도 감내해야 했던 분들이죠. 그분들의 아이들 또한 기존의 인종과 국가 등의 개념을 교란시키는, 정형화될 수 없는 불편한 존재들로 여겨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윤금이 씨 사건을 완전히 체화해서 제 일처럼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관련 시위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학생회에서 시위를 위해 대량으로 준비한 조악한 찌라시에는 윤금이 씨 사체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어요. 사진을 봤을 때 제가 후기식민지 사회에 사는 여성이라는 처절한 자각이 심장에 낙인으로 찍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학생들은 시위하는 내내 그 이미지가 끝없이 유포되는 것에 괴로워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진이 유통되지 않게 막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때의 죄책감과 부채감을 절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기지촌 범죄의 미군 가해자를 한국 법정에 세우는 승리를 이끌어냈다고는 하지만, 그 이미지를 재생산해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입혔다는 것, 역사의 전진을 위해 피해자를 또다시 희생하게 만든 이 부채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타인의 고통, 특히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약자들을 재현할 때의 윤리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영화에 등장하는 재현의 관습에 불만을 갖게 됐습니다. 그 후 미술, 비디오 아트, 다큐멘터리, 극영화 등 여러 장르와 형식의 작업을 관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재현 윤리’에 대한 고민이 언제나 제 작품의 미학적 기조가 되었습니다.
몸의 부재: absence of body
김한상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홀로코스트나 과거 잔혹한 행위의 이미지 재현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학자 수잔 크레인 같은 경우 재현 문제에 있어 ‘보지 않기를 선택하기’라는 문제도 제시했고요.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어떻게 하면 여성의 몸을 통한 재현이 가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간도 있었고, 도시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후기식민지를 바라보는 재현이 가능한지를 탐구하는 시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경로를 거치면서 어떻게 VR(가상현실)이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재현 전략에 당도하게 됐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진아
제 필모그래피를 훑고 나면 ‘이 사람은 여기에 당도할 수밖에 없었겠구나’라고 명백히 알게 되는 지점이 있어요. 영화인으로서 첫 작품인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2002)를 찍을 때부터 여성의 몸이 영화라는 영상 언어 안에서 재현되는 방식에 굉장한 저항심을 갖고 있었어요. 대안적 시각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초기 페미니스트 아티스트들과 미디어 액티비스트들의 작품을 공부하고 제 몸을 촬영하며 치열하게 실험했고, 여성의 몸이 프레임 안에서 어떤 식으로 재현되는지 고민했습니다. 그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남성 화자들과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보고, 시간을 거슬러 존재할 수 있도록 기록-촬영한다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피사체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데, 이 신념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죠. 저는 제가 촬영하는 피사체를 모두 저의 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5년간 <비디오 일기>를 찍으며 훈련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 분류(어머니 혹은 창녀)를 뒤집고 싶어 만든 작품이 <그 집 앞>(2003)이에요. 임신한 여자가 낯선 남자하고도 관계를 갖고, 6분간 자위행위를 하기도 하고, 유부남과 바람피우는 여자가 오히려 금욕적으로 스스로의 몸을 가학적으로 대하는 등 가부장제 사회에서 만들어진 관념에 부합하는 허구적 캐릭터가 아닌 몸의 욕망을 가진 진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두번째 사랑>(2007) 같은 경우에는 백인 사회에서 아시아 남성과 백인 여성,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재현되는 방식을 전복해보고 싶었고요.
<서울의 얼굴>(2009)은 미군 ‘위안부’ 3부작을 만들게 된 사고의 기초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부터 2006년까지 제가 한국에 갈 때마다 촬영했던 랜덤한 영상들이 편집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어요.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재현의 의미인데, “서울이라는 도시를 보고 싶다”는 선언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도시를 ‘본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물리적으로도 자신보다 큰, 한 개인의 이해를 넘어서는 시간과 공간의 유기적 집합체인 도시를 어떻게 하면 ‘본다’고 감히 말할 수 있나요? 그래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재현한다’(타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기록하여 표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고민했습니다. 후기식민지 사회의 특이점인 지리적 기표와 기의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노력했고요.
결국 공간을 본다는 것은 시간을 보는 것이고, 풍경이나 광경을 본다는 건 실은 그곳에 없는 걸 보는 것이란 것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무언가의 재현은 무언가의 부재의 재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언제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는데 제 기억 속의 무언가를 촬영하러 가면 그것은 없고 다른 것이 있었어요.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재현하려 하지만, 정작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기호학적 딜레마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렇게 후기식민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리적으로 풀어낸 게 <서울의 얼굴>이었다면, 미군 ‘위안부’ 3부작에서는 여성 몸에 가해지는 초국가적 폭력과 그것의 재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죠.
이전에는 VR 매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는데,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상현실 영화에 대한 컨퍼런스 모더레이터를 맡게 되면서 좋은 논문들을 많이 접하게 됐어요. 그러다 머릿속에 불이 켜지듯 떠오른 단어가 ‘absence of body’였습니다. 몸(사체)의 부재를 통해 윤금이 씨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어요. 이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언어의 영역을 넘어서는, 감히 형언하기 어려운(ineffable) 타인의 고통을 이야기해야 하는 딜레마가 있는데 그걸 역설적으로 ‘보여주지 않음, 설명하지 않음’으로 극복하려는 것이죠. 하지만 일반 상업영화 틀 안에서는 그런 방식이 받아들여질 수 없었고, 그러다 몰입형 매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것은 미술, 영화, 사진, 시, 연극 등 다른 모든 예술의 형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 매체라는 걸 확신했죠.
재현의 대안적 경로와 확장 가능성, VR과 AR, XR
김한상
<동두천>(2017)은 관객이 VR 기어를 쓰면 동두천의 한 장소로 들어가게 되고, 주변의 소리와 풍경을 통해 어떤 곳인지를 파악하면서 사건이 일어난 장소까지 가게 됩니다. 윤금이 씨 살해사건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문제적인 재현의 역사를 지닌 사건을 다루려는 새로우면서도 대안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관객 참여가 가능하려면 장소와 기술적인 도구뿐만 아니라 VR의 세계로 들어가겠다는 참여 의사나 용기 또한 필요할 텐데요. 재현의 대안적 경로로서 VR을 더욱 확장시키고 보다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진아
저도 고민이 많은데 참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아요. VR 영화가 2D 영화에 비해 굉장히 제한적인 접근 경로를 갖고 있고, VR계에서 와이드 릴리즈(wide release)라고 하면 오큘러스(VR 하드웨어 기업) 앱에 올리는 정도일 텐데, 그조차 오큘러스가 있는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고민의 결론은 이것이었어요. 그래도 이게 맞다. 제가 VR로 영화를 만들게 된 초심을 돌아보자면 ‘부채감’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거든요. 공론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피해자의 사진이 활용되었다는 엄청난 오류를 되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파장을 덜 일으키고, 사람들이 덜 보게 된다 하더라도 좀 더 윤리적인 재현의 방법을 택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AR(증강현실)이라는 몰입형 매체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매체가 유통과 배급 면에서 민주적인 측면이 있거든요.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가 무료이기 때문에 기술만 있으면 그것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 앱스토어에 올릴 수 있어요. 무료 배급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만든 작품들이 AR <증강현실 소요산>(2022)[2]과 XR <확장현실 소요산>(2022)입니다. XR <확장현실 소요산> 앱을 활용하면 성병 관리를 위해 국가가 설립하고 미군 ‘위안부’들을 감금 치료했던 소요산 낙검자 수용소(일명 몽키 하우스) 복도 안을 직접 걸어다닐 수 있어요. AR 앱을 다운로드한 후 실행시키면 카메라가 자동으로 실행되고, 그 카메라로 보면 내 방이 소요산 수용소 복도가 되어 그곳을 걸어다니며 체험할 수 있죠. AR <증강현실 소요산>을 통해서는 3D 모델링된 수용소 외경도 볼 수 있는데, 이제 곧 없어질 장소를 사람들이 반영구적으로 볼 수 있도록 아카이브(보존) 해놓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사용하는 몰입형 매체의 형식을 다층화, 다면화해 이슈 전달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김한상
공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 제도 등을 통해 VR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진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VR을 상영하는 건 물론 환영입니다. 영화처럼 상영의 개념보다는 공공 전시의 개념으로 더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를 해도 좋을 것 같고요.
관객의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VR 체험의 감각
김한상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통해서 윤금이 씨 사건과 같은 비윤리적 재현에 대한 반성, 역사에 대한 성찰적인 재현이 가능하다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상설 전시를 모색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소요산> 같은 경우 아카이빙을 말씀하셨는데, 기본적으로 어떤 장소에 들어가 그곳을 보고 느끼며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장소가 대단히 참혹한 폭력이 자행된 곳이라는 점에서 관객의 성차에 따라 그것을 체험하는 감각이 다를 것 같은데요, 관객에게 직접적인 공포 혹은 두려움을 체험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을지요.
김진아
관객의 반응에 대해서는 많은 국가에서 상영이 이뤄졌던 <동두천>이 중요한 사례 연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간이 함의하고 있는 폭력의 잠재성에 대한 공포를 사전 지식 없이도 관객들이 느낀다는 게 놀라웠었어요. 그런데 그게 명확하게 젠더화, 인종화, 국가화되어있습니다. 일단 한국 여성들이 가장 무서워하세요. 그다음으로 공포를 강렬하게 느끼는 관객층은 동아시아 여성들이었어요. 식민지 사회를 거쳐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에 사는 여성들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요. 동양인 다음으로 공포를 느끼는 관객층이 동양인을 제외한 유색인종인데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훨씬 더 무서워하고요. 백인 여성들도 예민한 분들은 무서워하지만 공포를 가장 느끼지 못하는 건 백인 남성들이에요.
<동두천>을 국제 프리미어로 상영했던 베니스영화제에서 제가 만난 관객은 모두 백인이었는데, 특히 남성들의 경우 영화의 정서를 공포와 결부시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혹시 무섭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무섭진 않고 “disturbing(충격적인)하다” 정도로 답하더라고요. 심지어 많은 백인 남성들은 그 공간에서 자신이 폭력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굉장히 적극적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그 공간을 살펴봤거든요. 신기해하는 거죠. 물론 끝에 가선 숙연해지긴 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시발점이 달라요. 대부분의 한국 여성 관객들은 동두천 입구가 보이고 밤 신이 시작되면서부터 무서워하세요. 후기식민지 사회의 트라우마라는 게, 그걸 직접 겪지 않은 젊은 여성들에게도 이렇게까지 대물림되는구나 싶어 굉장히 착잡하고 슬펐어요.
김한상
체험을 통해 과거 역사를 알고 문제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체험 자체가 가져올 수 있는 트라우마가 우려된다는 점에서, 윤리적 미디어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께서도 AR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신 것 같은데요, 그러한 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AR 작업을 확대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김진아
젠더 폭력이 일어났던 공간에 간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무서운 일이죠. 실제로 내 몸을 이용해 그 공간 안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현실 세계를 방문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몰입형 매체를 경험할 때 느껴지는, 매체 자체가 제공하는 불안과 공포감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제 특강에 참석하신 에린 정 교수님(존스 홉킨스 대학 정치학과)이 가투(가두 투쟁·길거리에서 행하는 투쟁)를 통해 윤금이 씨 사건이 제 안으로 들어와 체화된 것과 VR의 평행점을 짚어주셨어요.
요즘에는 피켓을 들고 농성을 하지만, 과거 90년대 초반까지는 폭력적인 공권력에 저항할 때 최전방에 자신의 몸을 집어넣었단 말이죠. 최루탄을 맞고 경찰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머리 깨져가면서 말이에요. 단식투쟁 등 몸으로 하는 모든 투쟁이 그런 맥락인데, 굉장히 비극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식의 투쟁이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라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대변하고 싶은 약자를 위해 신체에 가해지는 위험을 무릅쓴 것이죠. 저 또한 그러한 시기를 겪고 25년이 지난 후 VR을 만나게 됐는데, 제일 인상적인 것이 VR 기계를 쓰는 순간 나 자신 또한 가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몸의 부재)을 자각하는 순간 누구나 공포감을 느끼죠. 나는 시선을 갖고 있고, 소리도 들리고, 가상의 존재들도 보이지만 상황과 환경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몸은 없는 거잖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관객 자신이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예요. 신체적 주체성을 포기하고 가상현실 안으로 들어가 다른 존재를 만나면서 사건이 매번 새롭게 일어나는 거죠. 그런 점에서 VR이 굉장히 혁명적이라고 생각했어요.
AR에서는 여성의 주체성과 관련해 다른 차원에서 유의미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여성들이 구조적 젠더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던 역사적 공간을, 관객인 또 다른 젊은 여성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관찰하며 탐사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임파워링하다고 생각해요. 수동적 관객이 아닌 능동적 탐색자라는 위치가 여성 체험자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그것이 VR과 정반대되는, 증강현실이라는 매체가 가진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관계를 뒤집는 민주적 매체
여성의 몸을 여성에게 돌려주기
김한상
가투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참여적이고 초월적 영매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VR은 굿이나 마당극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진아
제가 VR을 처음으로 경험한 게 해저 탐험이었어요. 다큐멘터리에서 숱하게 본 이미지들이 펼쳐질 뿐인데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내 몸이 없어서 느끼게 되는 공포감이란 걸 그때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죠. VR을 경험할 때 관객은 심리적으로 수동적 관찰자/피해자의 입장에 가깝다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이 매체가 연극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어요.
VR을 처음 보고 즉각적으로 느낀 건 VR이 영화보다는 연극, 특히 관객들이 객석이 아니라 툭 터진 공간의 한가운데 모여 앉아있고, 배우들은 사방팔방에서 뛰어나와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는 그런 실험극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가운데 모여있는 관객은 360도로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동시다발적인 사건들을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고, 주의를 기울이는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대사를 들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 거죠. 관계를 맺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내러티브가 달라지는 실험극과 비슷하다는 걸 깨닫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관객과 연출자의 권력관계가 완전히 뒤집히는,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민주적인 매체인 거예요. 주체로서의 ‘나’는 그 안에서는 신체를 잃게 되니까 Spectral Figure(유령의 형태)가 되는 것이고, 그와 관련하여 관객에게 일어나는 VR만의 특이한 심리 기제가 있을 것 같아요.
김한상
여성의 몸을 재현하는 문제는 재현적 미디어가 만들어지면서부터 계속된 문제고, 지금 이 시대에도 난제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를 얘기할 때 성차에 따른 윤리를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감독님이 작품으로써 해오신 것 같습니다. 오늘 대담을 통해 그 문제의식에 대한 화두를 다시금 던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몰입적 미디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공공기관이나 교육적 환경을 통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될 수 있기를 바라고,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진아
여성 재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여러 매체를 섭렵하며 꾸준히 영상작업을 해왔는데 혹자는 ‘그래서 네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에 답을 한다면, 저는 여성의 몸을 여성 자신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영상 매체 안에서 여성의 몸이 은유나 알레고리, 상징이 되는 순간 그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삭제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건 여성의 몸을 다른 무엇의 은유나 상징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존으로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에게 자신의 몸과 목소리를, 힘과 생명을 돌려주는 것이죠. 그런 방식이 기존의 남성중심적 영화 문법과 서사에 익숙한 분들에겐 어렵고 불편하겠지만요.
각주
- 글쓴이 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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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A 영화과 종신교수. 영화감독. 주요 필모그래피로는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2002), <그 집 앞>(2003), <두번째 사랑>(2007), <서울의 얼굴>(2009), 파이널 레시피(2014) 등이 있다. 최근작 <동두천>(2017)과 소요산(2021)은 몰입형 매체를 활용한 미군 ‘위안부’ 3부작의 첫 두 편이다.
- 글쓴이 김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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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영상사회학과 질적연구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냉전기에 구축된 시청각 아카이브의 지식 체계와 아카이브 영화 읽기의 방법론, 피해 기억의 시각화와 재현의 윤리 등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