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시절인 만큼 서면을 통해 독자 의견을 받았지만, 덕분에 지역에 구애받지 않고 해외에 거주하는 독자의 의견까지 폭넓게 청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짧은 글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무엇을 기대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였음을 고백하며, 소중한 의견을 나눠주신 모든 독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참여 독자(가나다순)
권지명(충북대학교 사회학 전공 /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펠로우 참여)
김현정(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CARE) 대표)
정용숙(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생각’에 ‘잠기’며, ‘웃음’을 ‘터뜨린다’. 말에는 언중(言衆)의 인식이 담겨있는데, 일례로 ‘생각’이라는 명사에 ‘잠기다’라는 서술어를 쓰는 이유는 생각에 몰입한 상태와 물에 잠긴 상태 사이에 유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엔 또 어떤 참신한 서술어를 연결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서술어는 ‘뻗다’이다. ‘마인드맵’ 덕분에 생각이 나무와 같이 가지를 치고 뻗어 나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알다시피, 마인드맵의 필수 조건은 ‘연상(聯想)’이다. 처음 ‘결’을 보았던 날부터, ‘결’은 쭉 내게 생각을 잇고, 뻗기 위한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누군가 ‘결’의 특이점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나는 각주를 떠올릴 것이다. 각주에 짤막하게 적힌 사건과 책, 영상을 찾아보며 생각은 가지를 뻗었고 이는 분명 일반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답을 내리고 떠난 다른 글들과 달리, ‘결’의 글이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느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더 알고 싶다면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각주를 무시하지 못한 독자들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아이들처럼 호기심을 따라갔고, 덕분에 ‘위안부’문제를 동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 ‘결’의 콘텐츠 중 가장 좋았던 기획은 2021 기림의 날 특집으로 나온 <박필근을 만나다>이다. ‘위안부’ 전체가 아닌 한 명의 이야기를, ‘위안부’ 피해 이후의 삶을 소개하는 기획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위안부’를 교과서에서 꺼냈기 때문이다. 교과서나 책을 통해 ‘위안부’를 접하다 보면 ‘위안부’를 “일제강점기 시절,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로 기억하기 쉽다. ‘위안부’를 교과서로 기억하던 독자는 포토스토리, 논평, 에세이 등 다양한 형식으로 쓰인 박필근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부’ 문제를 현실로 끌고 올 수 있다. 포토스토리에 담긴 박필근 님의 주름에서, 눈물 나는 밤에 우황청심환을 드신다는 에세이 속 진술에서 ‘위안부’는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피해자 개개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떻게 사건을 극복하고, 왜 오늘날에도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밝히기 어려워하는지(생애사를 듣는 과정에서 박필근 님이 “그 말 모하니더(못합니다)”라고 말씀하셔서 인터뷰가 중단되는 상황이 잦았다고 한다) 등은 모두 현재의 문제와 연결된다. 독자는 <박필근을 만나다>를 통해 가부장제적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고, 피해자가 겪는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며, 정형적인 피해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뭉뚱그려졌던 ‘위안부’ 피해자 각각의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화투를 치며 행복을 찾는 박필근 님의 삶을 통해 누구는 위안을 얻고 또 다른 누구는 피해자의 정형성을 깬다. <박필근을 만나다>를 가장 좋았던 기획으로 뽑은 이유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독자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획을 보고 소감을 남기거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소통의 장을 열어놓았다면 더욱 깊이 있는 사유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행위가 ‘위안부’ 문제를 보다 ‘나’의 이야기로 끌어당기는 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결’을 읽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학생이나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 연구원이 아닐까 싶다. ‘결’이 ‘소개’란의 바람대로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위안부’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독자에게 소통의 기회를 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음모론이나 2차 가해와 같은 문제로 인해 다시 피해자가 상처받고 거짓 정보가 퍼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플랫폼을 통해 의견을 모아 일부를 소개하는 등 소통의 방식을 고민하고, 이를 통해 아무개들의 경험이 공유된다면 기존의 독자는 단순히 콘텐츠를 향유하는 소비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참여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결’은 다리로서 나의 곁에 존재해왔다. 다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독자는 그 위에서 사색을 이어갈 것이다. 다리는 공간의 경계를 지우는 속성이 있다. 시간과 사람, 사건 사이의 경계를 지우고 끊임없이 현재로, 내게로 ‘위안부’를 끌어오는 ‘결’에 감사를 전한다. 앞으로 ‘결’의 논의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독자는 풍성한 논의 위에서 촘촘히 자신만의 결을 짜낼 것이다. 덕분에 오늘, 나는 ‘결’ 위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결을 이야기할 미래를 그린다.
권지명
충북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환경에 관심이 깊다. 전공 수업과 <2021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에서 펠로우 활동을 통해 ‘위안부’문제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3년 전, 8월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라는 전문기관이 처음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만들어졌을 때, 멀리 미국에서 그 소식을 들으며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피해 생존자 분들이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을 위해 줄기차게 싸워 오신 근 30년이라는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 산하에 아직 그런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그동안은 매년 갱신해야 하는 1년짜리 프로젝트로서 장기적 사업구상을 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으나, 이제 연구소는 실력 있는 인재들을 영입해서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여 반가운 마음이 크다.
연구소가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과 활동이 있겠으나 외부인들이 그것을 피부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웹진 ‘결’은 연구소의 활동 성과를 보여주고, 국내외에서 필요로 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자료와 생각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이기 때문에 ‘결’이 훌륭한 웹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본다.
구성 :
웹진이기 때문에 온라인 잡지의 구성을 띠고 있고, 그 안에 좋은 글들이 많이 있으나, 연구소의 취지대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각종 연구사업의 결과를 집대성한 허브 역할이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30년간 이어져 온 명예회복과 법적 해결 운동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일본정부의 역사 부정과 수정주의가 판치는 작금의 상황에서, 피해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어떤 군 문서나 사료보다 중요한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증언을 문서, 비디오, 오디오, 시각자료 등으로 잘 정리하여 각 언어로 제공하는 것은 연구소와 ‘결’의 시대적 사명이라 생각한다.
정치적, 사회적 논란으로서만 ‘위안부’ 문제를 접하는 대중이 이 사이트에 들어왔을 때 간결하게 정리된 언어로 독자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소개 글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영어판 <결>과 같이 ‘연구소 소개’, ‘웹진 결 소개’ 메뉴를 상단 메뉴로 디자인 수정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제공 언어 :
우선 한글과 영어 두가지 버전으로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작 가해자 일본과 일본 국민들은 엄청난 역사수정주의와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결’을 일본어판으로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된다.
분류 :
현재 인터뷰, 에세이, 논평, 좌담, 자료해제, 전체보기로 나누어져 있는 분류 방식은 좋으나, 각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는 글들의 제목들이 모두 나열되어 있는 페이지가 없어 아쉽다. 각 카테고리에 어떤 글들이 있는지를 보려면 일일이 페이지를 넘겨가며 검색을 하거나 키워드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카테고리에 들어 있는 글들을 모두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결’을 활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와 교육에 있어 연구소와 ‘결’의 맹활약을 기대한다.
김현정
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 CARE 대표
안녕하세요. 저는 웹진 <결>의 독자이지만, 창간과 제작에 참여한 초기 편집위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기억의 일부가 웹진 <결> 좌담 코너에 ‘편집회의’로 남았네요. 재작년 초의 일이었을 뿐인데 까마득한 옛날로 느껴지는 건, 그동안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해서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 교육홍보팀장으로 웹진 <결> 창간과 초기 발간을 담당했던 소현숙 선생님을 비롯해 우리가 고심했던 것은 학술적 엄밀성과 대중적 친화성을 함께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위안부’문제는 넘어서지 못한 과거를 대표하는 주제입니다.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범죄 ‘과거청산’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소환되는 주제이죠. 그런 만큼 학계와 예술·문화계의 많은 분이 노력해온 결과가 쌓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위안부’문제를 여전히 모른다 생각하고 그래서 알려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런 온도 차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걸 좁히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즉 ‘위안부’ 지식의 공공화가 웹진 <결>에 주어진 과제였습니다. 전문 연구 결과를 전하는 <자료해제>, <좌담>, <논평>, 그리고 이 주제에 관여하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에세이>와 <인터뷰> 모두 다섯 개의 코너가 기획된 배경입니다. 웹진 <결>은 학생이나 일반인이 ‘위안부’문제에 관하여 궁금한 게 생겼을 때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식창고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매 호 차곡차곡 쌓이는 글을 기술적으로 연결해 독자들이 웹진 <결>의 바다에서 파도타기 하듯 연관 지식을 탐색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라서, 저를 포함해 전문 연구자가 쓰는 글은 아무리 쉽게 쓴다고 해도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글을 쉽게 쓰는 문제가 아니라, 지식 자체를 완전히 다른 목적과 독자에 맞게 구성하는 일이었고, 별도의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연구자인 저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가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특히 나눔의 집 김대월 실장 인터뷰(2019년 10월 8일자)나, 원래 연재 글로 기획한 <할머니의 방>을 흥미롭게 봤죠. 연구자나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활동가의 세계와 김대월 실장님의 표현을 빌린 “퇴근 후” 할머니들의 일상이 손에 잡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허윤 선생님의 글 「지구는 평평하지 않습니다 – 영화 <나는 부정한다> 다시보기」(2021년 11월 22일자)도 유익했습니다. 피해자들이 한 분도 안 남게 되는 날이 오면 ‘증언’과 ‘기억’도 사라질 거라는 많은 이들의 걱정에 훌륭한 답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료해제>는 독자에게 가장 인기 없는 코너이겠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기획으로 이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웹진 <결>의 운영 주체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소속된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입니다. 이 기관들은 여성가족부의 지원과 감독을 받고 있지요. 박물관과 기념관의 나라인 독일에서는 그것을 유지하는 일을 해당 주 정부가 맡아서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입니다. 돈을 준다는 이유로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박물관과 전시관이 정부 지원으로 운영됩니다. 나랏돈이 들어가는 만큼 국가가 원하는 방향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 돈은 ‘나랏돈’이 아니라 ‘공공자금’이므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합니다. 이것은 나라가 원하는 방향을 따르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죠. 그럼 ‘공공의 이익’은 누가 정하느냐, ‘위안부’문제에 관한 ‘공공의 이익’은 뭐냐는 질문이 나오겠지요. 이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시민’인 우리가 의논하고 합의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웹진 <결>이 이런 논의가 펼쳐질 수 있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정용숙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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