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만난 조선인 피해자들 04. 박우득 이야기 - 평생을 위안소에 갇힌 삶

안세홍

  • 게시일2021.10.22
  • 최종수정일2021.11.12

사진작가 안세홍(비영리 단체 ‘겹겹프로젝트’ 대표)은 25년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고통을 사진으로 기록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과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뿐만 아니라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중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140여명의 피해자들을 만났고, 사진에는 그들의 가슴 속 깊은 한이 담겼지요. ‘이것은 과거의 것이 아닌 우리가 풀어야 할 미래의 메시지’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를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예술작품이자 또 하나의 증언으로서 우리에게 당도한 사진 속 이야기들을 이곳에서 풀어보고자 합니다. 안세홍 작가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에서 만난 이들의 목소리를 포토에세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만난 조선인 피해자들]에서 전합니다.

[포토에세이] 역사의 뒤안길에서 만난 조선인 피해자들
(1) 이수단 이야기 – 중국에 남겨진 70년 세월
(2) 배삼엽 이야기 – 홀로 눈물 흘린 한 많은 세월
(3) 백넙데기 이야기 – 쓴 웃음에서 전해진 역경의 세월
(4) 박우득 이야기 – 평생을 위안소에 갇힌 삶
(5) 박차순 이야기 – 아리랑이 유일한 ‘고향’이었던 삶

 
박우득 朴又得
1919년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남. 1935년 16세에 칭다오, 상하이에 10년간 동원됨.

 

중국 상하이(上海)에 피해자 박우득과 현병숙을 만나러 가기 위해 서울을 출발해 부산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갔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서 직항을 포기하고 먼 길을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하이에 도착해 교민 잡지 ‘상하이 좋은 아침’을 만들며 피해자를 지원하던 김구정 씨가 마련해준 숙소로 이동을 했다. 그는 중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낯선 상하이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며 중국어가 능통한 유학생을 붙여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는 상하이의 고층 건물은 암울한 전쟁의 흔적을 순식간에 거두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건물 사이에서 중일전쟁 이전부터 있어 온 위안소를 시내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조계지[1]의 상징인 와이탄(外滩)과 가까운 우장루(呉江路)의 50층이 넘는 빌딩 숲을 헤치고 좁은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깊이 들어설수록 고풍스러운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3층짜리 건물에는 세대 수만큼 10여 개가 넘는 벨이 빼곡히 차 있었다. 꼭대기 층의 벨을 여러 번 누르니 박우득의 딸이 내려와 굳게 닫혔던 철문을 열었다. 

층층이 가파른 목조 계단을 오르고, 나무로 만든 문을 여니 단칸방이 한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침대 두 개, 장롱, 텔레비전이 세간살이의 전부인 듯했다. 방 가운데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그는 고개를 돌려2년 전보다 밝은 모습으로 나를 반기며,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불안한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왔다. 오래전부터 중풍을 앓아 오른쪽 팔다리를 못 썼고, 그동안 안면근육 경련이 심해져 2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가, 입원 치료를 받아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2001년 때만 해도 억지웃음을 지으실 뿐 삶의 활력이 없어 보였다. 지금도 항상 웃고 계신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중간 웃는 모습에 한결 여유가 느껴졌다. 그에게 고향 고성에 관해 물으니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한두 채씩 집이 있고 더 떨어져서 집이 있었다며 마을의 풍광을 이야기했다. 산촌에 살던 그는 중국 땅으로 가기 전까지 외출이라곤 면에서 이루어지는 장날에 가는 게 전부였을 만큼 문밖 출입을 거의 안 하고 살아왔다. 그의 집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조그만 논이기에 많은 노동이 필요치 않았고, 큰 오빠는 남의 배를 타며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생활했다. 하지만 험난한 바다 일에 일찍이 목숨을 잃었다. 친 어머니도 동생을 낳다 죽고 서모가 들어와 지냈으나, 그는 서모의 구박에 못 이겨 급기야 집을 나왔다.

 

위안소에서 해방 후 구락부로

 

이쯤 박우득은 어떤 조선 여자가 중국 상하이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1935년 16세에 10여 명의 여자들과 부산, 단둥(丹东)을 거쳐 배로 칭따오(青島)까지 갔다. 당시 칭따오는 일본군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군도 주둔해 있었다. 박우득은 위안소에서 여러 나라의 군인에게 혹사당했다. 때로는 성폭력을 거부하고, 도망치기를 반복하자 주인은 골칫덩어리라고 생각해 10개월 만에 상하이에 있는 러시아계 여자가 운영하는 마사지 가게에 그를 팔았다. 러시아 주인은 그를 ‘표요타’라 부르며 집안일과 심부름을 비롯해 군인까지 받게 하며 온갖 일을 시켰다. 해방되고 나서도 계속 상하이에 남아 구락부(俱樂部)[2]로 개조된 그 집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마사지 일을 계속했다. 러시아 주인 여자가 떠난 이후에도 그는 그 집에 남아 계속해서 살아왔었다. 자신이 아픔을 겪었던 장소를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의 가슴속에는 지울 수 없는 고통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만 왔다. 

그와 이야기하는 사이 도시 재개발과 이주 담당 공무원이 다녀갔다. 공무원은 올해 말이나 내년쯤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의 집을 들어서는 길목과 주변의 건물들은 이미 헐리고 고층 건물이 세워지는 중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이곳마저 헐릴 계획이었다. 시골로 이주하면 딸과 손자 3대가 살기 때문에 방 3칸이 나오지만, 손자의 교육문제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의 병이 깊어지면 급하게 병원 갈 일에 걱정이 앞섰다. 방 수가 적더라도 시내 부근에 살았으면 하는 것이 그와 가족들의 바람이었다.


“갈 수만 있다면 고향에 가고 싶어요.”

 

경남 고성이 고향인 박우득은 국적이 북한으로 되어 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고향에 갈 수 있냐며 나에게 물었다. 고향의 가족을 찾을 수 없었고,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이들 모두 죽고 없었다. 그래도 그는 고향에 돌아가 마지막 길을 가는 것이 소원이라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 다시 만나길 약속하며 그의 집을 나섰다. 문 앞 계단까지 배웅을 나와 어둡고 가파른 계단 끝에서 조심히 내려가라며 끝까지 바라다보시는 모습에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가 살던 우장루는 개발이 지연되어 이사도 미뤄졌다. 2007년 박우득은 노환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2017년 3월 중국에 남아 있는 위안소 기록을 위해 상하이에 다녀왔다. 그는 없지만, 혹시 주변에 그의 가족들 소식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해서 시간을 내어 발길을 그가 살던 곳으로 향했다. 큰 윤곽의 길만 남겨놓고 미로와 같던 골목길과 즐비하게 늘어섰던 러시아풍의 건물은 눈 씻고 봐도 없었다. 그곳에는 수백 채의 집을 부수고 지은 대형 백화점이 들어섰다. 과거에 찍었던 사진으로 큰 건물을 비교하며 그가 살던 집의 위치를 찾았다. 

그와 같이 살던 딸과 손자의 소식이 궁금하다. 심부전증으로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던 딸과 공부를 잘해 매번 1등을 한다며 갈 때마다 그가 자랑하던 손자를 더 이상 찾을 수도 없고, 그 이후 소식을 아는 사람들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박우득과 그의 가족들은 그저 사진으로 기억될 뿐이다.

 

[사진 설명] 전쟁이 끝난 지 60여년이 지났지만(2003년 기준), 박우득은 위안소에 대해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 기억을 떠올릴 때면 가슴속에 묻힌 울화가 치밀어올라 분노에 찼다.  

[사진 설명] 20년 넘게 앓아온 무릎 관절염과 중풍은 박우득을 3층 집에 가두었다. 오래되어 반 투명해진 창으로 높게 솟은 건물에서 반사된 빛이 건설 소음과 먼지와 함께 들어올 뿐, 바깥 풍경은 삭막하기만 했다.

 

각주

  1. ^ 주로 개항장(開港場)에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
  2. ^ 동호회(同好會) 또는 동아리, 클럽(club)의 일본식 표현. 구락부(俱樂部)는 공통의 관심사나 목표를 가지고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하며, 이러한 모임에 사용하는 건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기사 게재일: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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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세홍

사진가.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의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들을 사진 및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들의 삶을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겹겹프로젝트’를 25년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2020, 글항아리), 『겹겹: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2013, 서해문집)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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