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첫 ‘미술 선생’을 만나다 - 『못다 핀 꽃』 이경신 화가 인터뷰

웹진 <결>편집팀

  • 게시일2021.07.05
  • 최종수정일2021.08.24
상처는 때로 예술로 피어오른다.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응어리를 그림으로 쏟아낸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이야기다. 미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분노와 슬픔, 고통과 회한은 흰 도화지 위에 선과 색으로써 표출됐다. 

그들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은 이경신 화가의 책 『못다 핀 꽃』(휴머니스트, 2018)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나눔의 집에 거주하던 생존자들의 첫 ‘미술 선생’으로, 1993년부터 5년간 진행한 그림 수업의 뒷이야기를 20여 년이 지난 후 세상에 풀어놓았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나온 그는 졸업 후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쓸모를 고민하다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의 한글 선생님을 구한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그곳으로 향한다. 강한 이끌림으로 할머니들을 찾았지만 막상 대면하니 말을 이어나가는 것도 어려웠던 이경신 작가는 결국 가장 자신 있는 도구를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림으로 소통하기. ‘미술 수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처음은 역시 쉽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그림 수업에 할머니들은 힘들어했고, 하얀 스케치북을 마음대로 ‘망치는’ 것도 두려워했다. 그래도 수업은 계속됐다. 그리고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타났다. 할머니들은 그림을 통해 상처를 마주하고 스스로를 치유했으며 성장해나갔다. 

“대학시절, 그림을 그리며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 할머니들을 만났죠.”

할머니들과의 시간은 20대 시절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작가에게 짙은 무늬를 남겼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인간의 존엄과 용기의 아름다움은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했다. 『못다 핀 꽃』으로 늦게나마 수업의 마침표를 찍은 저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경신 화가 ©오늘의 나

 

끌리듯, 만남

Q. 할머니들과의 만남 말고도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많았을 텐데 특히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나요?

김학순 할머니 때문이죠. 대학 4학년인 1991년 8월 15일에 국내에서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 기사가 신문에 났어요. 김 할머니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끌려갔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50년 동안 가둬둔 비밀이 있을 줄이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일이었죠. 하지만 이후 할머니들 이야기는 잊은 채 졸업을 했고, 20대 청춘이 다들 그렇듯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실존적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들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김학순 할머니가 떠오르면서 매우 강하게 끌렸죠. 그 시절 제가 여성으로 살아가며 사회에서 겪은 자잘한 부당함들과 연결되면서 할머니들을 만나 뵙고 싶었어요. 

Q. 어떤 끌림이 있었군요. 

네. 그리고 할머니들이 계신 곳이 저희 학교와 같은 동네였어요. 아마 지역이 달랐으면 조금은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Q. 할머니들과의 미술 수업이 20년 전이에요. 그때 당시를 회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죠.

기록을 더 많이 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도 그림 덕분에 수업 내용을 기억할 수 있었죠. 그림 안에는 이야기가 들어있거든요. 그때 오간 대화,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들이 그림을 보고 다 떠올랐어요.

Q. 그림의 힘이네요. 

네. 사진과 자료를 찾아보면서 좀 더 정교하게 정리를 하긴 했지만, 그림이 없었으면 기억을 못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Q. 수업을 하며 참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책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 있어요. <빼앗긴 순정>에 대한 이야기예요. 할머니는 (성폭력 피해) 당시 너무 어렸고 생리도 하지 않을 때라 남녀 관계를 아예 몰랐어요. 가족도 할머니와 본인 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남자에 대해 이야기해줄 사람도 없었죠. 그래서 처음에 성폭력을 당했을 때 ‘내가 죽는구나’ 싶었던 거예요. 성폭행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거죠. 할머니는 원래 근로정신대로 공장에 있다 도망치던 중 붙잡혀서 위안소로 끌려갔기 때문에 소속이 불분명했어요. 그러다 보니 위안소 여성들로부터도 소외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철저히 혼자였던 거죠. 피해 이후 충격으로 실어증 상태가 이어졌고, 그게 굳어져 50년 동안 평생 말이 없으셨어요. 저를 처음 만났을 때도 할머니는 어둡고 눈빛이 날카롭고 예민하셨어요. 꼭 필요한 말만 하셨죠. 

Q.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처음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위로는 엄두도 못 냈죠.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저에겐 너무 힘들고 무겁게 다가왔어요. 상처를 가진 분들의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도 몰랐죠. 그림을 그리면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겠다 싶어 미술 수업을 시작했고, 그게 미술 치료가 된 거예요. 초기에는 미술 치료에 관심도 없었고 할 줄도 몰랐어요. 아마도 할머니들의 충격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미술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상처를 가진 할머니들에게 다른 무언가가 필요해 보였는데, 우연히 미술잡지에서 미술 치료 기사를 발견했죠. 눈이 번쩍 뜨였어요. 내가 찾고 있던 게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경신 화가 ©오늘의 나

 

그림을 통한 치유, 그리고 감동의 순간

Q. 『못다 핀 꽃』에는 통한의 역사를 겪어낸 당사자들의 구술과 치유 과정이 기록돼 있어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이유죠.

할머니들 그림은 어느 정도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림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는 저만 알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그림이 그려지게 된 과정을 세상에 알리고 마침표를 찍는 게 미술 수업의 끝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고, 여전히 잘못을 덮으려고만 하는 일본정부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나서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미술 수업의 마무리를 결심하며 책을 내게 된 거죠. 피해자들이 평생 어떤 고통에 시달렸는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용기를 내야 했는지 기록해놓은 이 책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가장 아픈 역사적 증거가 되기를 바라요.

Q. 책 작업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요.

어떠한 삶이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산 사람들 중 하나인 할머니들이 그림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어요.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변화한 과정들을 보며 제가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죠. 할머니들이 자신의 상처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싸워냈던 용기와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되찾으려 했던 노력들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 아름다운 분투기를 보고 독자분들도 인간의 자생적인 힘을 믿으면 좋겠어요.

Q. 20년 전이면 미술 치료에 대한 개념이 생소하던 때잖아요. 어떤 점이 힘들고 또 보람됐나요.

할머니들의 상처를 그림으로 이끌어야 할 때가 가장 어려웠어요. 미술 치료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고, 너무 어리기도 했고요. 할머니들의 마음이 다칠까봐 쉽게 도전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죠. 미술 치료라고는 했지만 이게 결국 공동 작업이에요. 저는 살짝 던지기만 했거든요. 근데 할머니들이 그걸 받아서 미술 치료 첫 날부터 너무 잘 해주셨어요.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하셨죠. 그걸 보고 정말 기뻤어요. 길을 헤매다가 지름길을 발견한 기분이었죠.

Q.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작가님과 할머니들 간에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선생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믿어주셨어요. 그림에 한해서는 어미 오리와 아기 오리 같은 관계였죠(웃음).

Q. 할머니들과의 수업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수업이 있다면요?

결정적인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요. 미술 수업의 기초인 데생 단계를 지나 자신의 마음을 끄집어내는 심상 표현 수업을 할 때였어요. 이용수 할머니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셨죠. <복잡한 세상살이>를 시작으로 의미 있는 그림들이 나왔어요. 소녀가 붉은 악귀에 잡혀 있는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을 봤을 때도 충격이었고, 본격적으로 상처를 드러낸 <빼앗긴 순정>을 보여주실 땐 소름이 돋았죠. 그 그림을 보고 자극을 받은 김순덕 할머니가 쏟아낸 <못다 핀 꽃>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대표적인 그림이 됐어요. 그리고 이용녀 할머니의 <끌려가는 조선처녀>까지…. 할머니들이 저에게 그림들을 보여주실 때마다 감동과 보람을 느꼈어요.

Q. 할머니들이 그런 그림을 그리실 거라곤 예상하지 못하셨겠죠.

전혀 못 했죠. 운이 좋게도 할머니들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 점점 발전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심상 표현 수업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상처를 표현할 때는 붓을 스케치북에 쿡쿡쿡 찍으셨어요. 가 닿을 수 없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청춘은 무지개로 표현하셨죠. 그다음부터 할머니들은 ‘상처’하면 무조건 붓을 스케치북에 쿡쿡 찍는 거예요. 유행이 된 거죠. 무지개도 그렇고요.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과 <책임자를 처벌하라>


김순덕 할머니의 <끌려감>

 

Q. 『못다 핀 꽃』에는 할머니들의 그림뿐만 아니라 수업에 참여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을 재현해낸 작가님의 삽화가 함께 실렸어요.

삽화는 제가 할머니들께 받은 믿음과 사랑을 그림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작업이었어요. 미술 수업을 책으로 엮으면서 할머니들과 저의 우정을 공동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제가 할머니들께 드리는 ‘헌화’라고 할까요?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과 <책임자를 처벌하라>에는 일본을 상징하는 벚나무가 나오는데 두 그림을 합해서 나무들 사이에 소녀와 할머니를 세우고 상처로 고통 받았던 강덕경 할머니의 일생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끌려감>에는 수많은 여성들과 군인들을 함께 넣음으로써 이것이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 일본군에 의한 조직적 인권 유린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때 그 곳에서>는 김순덕 할머니가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나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고 그린 첫 번째 그림이에요. 처음으로 당하던 날 줄 서 있던 일본군을 그리셨는데 꼭 어린애 같아 보이거든요. 아이러니죠. 끔찍한 상황을 할머니의 선으로 나타내면 우화처럼 변해요. 그 간극이 문제를 객관화시켜서 보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Q. 할머니들에게는 미술 수업이 낯설었던 만큼 작가님 의도대로 수업을 진행하지 못한 적도 많았을 텐데,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미술 수업이 전시를 위한 것이었다거나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시작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조급함이나 목표가 없었어요. 그래서 즐길 수 있었죠. 힘들게 살아온 할머니들이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을 이용한 건, 제가 그림 그리는 재주밖에 없었기 때문이에요(웃음). 그런데 할머니들이 떠나신 후에도 그림이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으니 그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Q. 할머니들과의 수업이 작가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겠죠. 할머니들을 통해 배우게 된 점이 있다면요? 

제가 할머니들을 처음 만났을 때 할머니들은 주로 누워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셨어요. 농담이긴 하지만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셨는데, 그러던 분들이 그림을 배우면서 당신들도 모르는 사이 달라지셨어요. 서서히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되셨던 것 같아요. 창작의 기쁨과 자아실현의 순간을 경험하면서 생명력을 회복하게 되셨다고 생각해요. 폐암으로 쓰러지셨던 강덕경 할머니가 마지막 병상에서 저에게 남긴 말씀이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어요. “이제 막 재미있게 살려는데… 미술 선생, 내가 2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는데…” 나이 어린 선생인 저에게 할머니 제자가 생을 마감하며 남긴 가장 큰 선물이에요. 

이경신 화가 ©오늘의 나


기억해야 할 이름과 이야기들

Q. 『못다 핀 꽃』이 올해 5월 일본에서 출간됐어요. 

일본에 처음 할머니들을 모시고 갔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일본에도 참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걸 알았거든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분들을 만나고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봤어요. 일본 사회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 일본 내에 왜곡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도 알게 됐죠. 그리고 이 일에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저는 이 책을 통해 일본 독자들이 할머니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라요. 전쟁의 폭력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삶이었지만, 다시 한 번 가슴을 뛰게 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요. 

Q. ‘위안부’ 피해생존자가 14명밖에 남지 않은 현재, 지금의 독자들에게 『못다 핀 꽃』이 어떻게 읽히길 바라나요.

할머니들을 상처 있는 분들로만 생각하거나 ‘위안부’ 문제를 지나간 옛이야기로 여기는 경우가 있잖아요. 근데 그러지 말고, 한 개인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분들에게 공감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인생을 걸고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힌 그 순간부터 현재까지 당차게 삶을 살아낸 할머니들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해요. 할머니들은 상처받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으로써 모범을 보여주셨어요. 할머니들의 마음에 항상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못다 핀 꽃』 일본어판 출판을 계기로 일본 독자들과 만남이 이루어질 것 같아요. 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만남이 두 나라의 얽힌 매듭을 푸는 단초로 발전해 나가길 바랍니다. 만약 제게도 역할이 주어진다면 기쁘게 동참하려 해요. 
 

Credit 

인터뷰: 퍼플레이컴퍼니
사진: 오늘의 나 
일시: 2021년 6월 9일 수요일 
장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로컬스티치 서교2호

*본 인터뷰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방지 예방수칙, 행동수칙에 따라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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