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를 통해 바라본 일본군‘위안부’의 재현 〈1부〉 - 〈여명의 눈동자〉부터 〈허스토리〉까지, 대중매체를 통해 바라본 일본군‘위안부’ 역사의 재현전략

웹진 <결> 편집팀

  • 게시일2019.03.19
  • 최종수정일2024.11.04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결>의 두 번째 좌담회의 주제는 ‘대중매체를 통해 바라본 일본군‘위안부’의 재현'이다. 2015년의 ‘불가역적 합의’와 『제국의 위안부』사태를 경유하여, 한국 사회에는 일본군‘위안부’ 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군‘위안부’를 다룬 극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상영이 증가하고, 소설화되는 빈도도 높아졌다. 이와 동시에 일본군‘위안부’ 재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도 커졌다. 이번 좌담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연구자들의 고민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사회 : 허윤(부산외대 만오교양대학 교수)
패널 : 권은선(중부대 연극영화과, 영화평론가) / 오혜진(한예종, 문학평론가) / 김청강(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1부> - <여명의 눈동자>부터 <허스토리>까지, 대중매체를 통해 바라본 일본군‘위안부’ 역사의 재현전략
<2부> - '위안부'를 둘러싼 재현의 윤리, 어디까지 묘사하고 재현할 것인가
<3부> - 재현물로서 <허스토리>의 성공과 실패

 

<여명의 눈동자>부터 <허스토리>까지,
대중매체를 통해 바라본
일본군‘위안부’ 역사의 재현전략  

 

허윤 

안녕하세요.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의 두 번째 좌담회입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바라본 일본군‘위안부’ 재현을 중심으로 좌담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웹진 <결> 편집위원이고 부산외대에서 재직 중입니다. 참석해주신 선생님들은 중부대 권은선 선생님, 한양대 김청강 선생님, 한예종 오혜진 선생님이십니다. 그러면 일단 돌아가면서 인사하고, 선생님들께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나 혹은 재현 문제에 대해서 관심 갖게 되신 계기나 이유 등을 자유롭게 얘기해주시면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오혜진

저는 한국 근‧현대문학 연구자고요. 주로 식민지기 소설과 비평, 문화론을 공부했습니다. 식민지 문화론을 공부하다 보니, 한국 문학사를 통틀어 유독 너무 많이 재현되거나 혹은 거의 재현되지 않는 섹슈얼리티의 한 종류가 일본군‘위안부’의 섹슈얼리티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위안부’ 역사를 재현한 텍스트들을 최대한 찾아 구해 보면서, 그것에 개재한 정치적 쟁점이 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2015년 12월 28일에 있었던 이른바 “불가역적 최종합의”, 그리고 박유하 선생님의 저작 『제국의 위안부: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뿌리와이파리, 2013)와 관련된 논쟁이 점화되면서 ‘위안부’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 서사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죠. 이런 상황에서 ‘위안부’의 역사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다툰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닐 테고, 더구나 ‘위안부’ 역사에 접근하는 여러 관점, 민족주의나 민족주의 비판, 여성주의, 탈식민주의 등을 서로 대치되는 사조들의 경합으로 이해한다면 곤란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재현과 재현물을 향유하는 행위 자체를 ‘정치적인 것’으로서 사유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재현의 윤리’, ‘재현의 정치’라는 말이 자명한 테제처럼 이야기되는데요. 어떤 소설이나 영화가 재현의 윤리에 어긋났다든지 충실하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할 때, 과연 그 ‘재현의 윤리’란 무엇이고, ‘재현의 윤리’에 충실하기 위해 소설이나 영화는 어떤 관점과 기술, 전략 등을 시도할 수 있는지 논의해보고 싶습니다.

김청강

안녕하세요. 저는 한양대학교에 있는 김청강이라고 합니다. 저는 1950~60년대 한국 대중영화를 가지고 박사 논문을 썼고, 그쪽으로 계속 공부를 해왔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의 수면 위로 나온 건 1990년대 이후인데, 우연히 얼마 전에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다룬 영화들이 그 이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의 처음 알게 되었어요. 과거에는 ‘위안부’ 재현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좀 찾아보고, 우리나라에서 재현된 것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재현된 것들도 찾아보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좀 많이 발견하게 되었죠. 그래서 논문을 한 편 쓴 거고요(김청강, 「‘위안부’는 어떻게 잊혀졌나?-1990년대 이전 대중영화 속 ‘위안부’ 재현」, 『동아시아문화연구』 71, 2017, 149~193쪽). 방금 오혜진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저도 재현의 윤리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 재현의 윤리에 관해서는 '위안부'만의 문제뿐만 아니라 역사적 폭력, 식민지 폭력까지 확장해서 조금 더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위안부' 재현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권은선

안녕하세요. 권은선입니다. 중부대 연극영화학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역할을 바꿔가며 오랫동안 일을 해왔습니다. 앞의 두 분처럼, 저도 '위안부' 문제 전문 연구가라고 말씀드리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제가 나와도 되는지 조금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전에 ‘위안부’ 영화의 재현과 관련된 논문 2편을 발표해서 이 자리에 저를 불러주신 것 같습니다(권은선, 「일본군 ‘위안부’ 영화의 자매애와 증언 전수 가능성」,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 17(8), 2018, 414~421쪽;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화한다는 것의 의미」, 『여성학논집』, 34(1), 2017, 3~28쪽). 그 논문들은, <귀향>(조정래, 2016)을 보고 즉자적으로 몸으로 느낀 불편함과 분노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느낀 그 ‘문제적 관객성’을 영화 안에서의 시각적인 장치의 검토를 통해서 해명해보고 싶었어요. 아울러 그 영화가 구성해내고 있는 ‘위안부’ 이슈에 대한 공통감각과 정치적 효과가 적실한 것인지 규명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연구를 시작했던 것이고, 그 연장 선상에서 계속 고민하는 중입니다.

허윤

저는 최근 일본군‘위안부’ 재현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2015년 이후에 조정래 감독의 <귀향>(2015), 이나정 감독의 KBS 특집극 <눈길>(2016)이 영화로 편집이 되어서 2017년에 개봉을 했고,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2017),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2018)에 이르기까지 상업 영화로 극장에 개봉한 영화가 4편 정도 되고요. 그다음에 2016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일본군‘위안부’ 쟁점 섹션으로 다뤘었고, 2017년 DMZ 영화제에서 이대 한국여성연구원과 같이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진행했고, 2018년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위안부' 기림일 제정을 맞아서 일주일간 특별전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김숨의 소설 연작이 있죠. 『한 명』(현대문학, 2016), 『흐르는 편지』(현대문학, 2018)와 증언소설 『(김복동 증언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현대문학, 2018), 『(길원옥 증언소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이 있는가』(현대문학, 2018) 두 편이 있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다 보니까, 지금 문학과 영화 장에서 일본군‘위안부’라는 소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선생님들 공통으로 <귀향> 얘기들도 해주셨는데, 최근에 일본군'위안부' 재현물의 특징이나 흐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방금 설명한 것처럼 <귀향>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성공을 거두고 관객 수 300만을 넘어섰다는 것이 큰 기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연히 중요한 일이고 역사적으로 재현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 2015년 이후에 강화되면서 텍스트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치열하게 비평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약간 '재미는 없지만, 만듦새는 훌륭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텍스트'라는 말이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재현한 작품들의 큰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네이버 댓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천만이 봐야 하는 영화”라는 식으로 설명이 되지,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비평하려고 하는 작업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죠.

오혜진

'위안부’ 역사가 서사화되기 시작한 게 대략 해방 직후라고 하면, 그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위안부’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에 분명 변화가 있겠죠. 최근만 보더라도 확연한 변화가 느껴집니다. 최근 ‘위안부’ 역사를 다루는 대중서사의 공통적인 전제는 이혜령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 일본군‘위안부’를 국가에 신고‧등록된 ‘위안부’ 피해생존자라고 한정하고, 그 연로한 피해생존자들이 모두 사망하기 전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이때 ‘위안부’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죠.[1] 그런데 실제로 조선인 ‘위안부’의 수는 2만 명 설부터 20만 명 설까지 있을 만큼 그 규모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게 특징인데요. 그렇다면 ‘위안부’의 역사를 산정 가능한 특정 당사자의 문제로 규정하는 발상에는 문제가 있죠. ‘위안부’의 역사를 ‘위안부’였던 이들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이 ‘위안부’ 역사를 역사화하는 오늘날의 한 경향이며, 그것의 정치적 효과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현재 이렇게 ‘위안부’ 문제를 산정 가능한 피해생존자들의 문제로 한정하니, 이 ‘피해생존자’들과의 직접적 연결을 강조하는 것이 곧 ‘위안부’ 역사를 다루는 텍스트들에 매우 중요해집니다. ‘위안부’에 ‘빙의’한다거나,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서사를 갈음하는 재현방식이 선호되죠. 그렇게 할 때 ‘위안부’ 역사를 다룬 서사의 당위성과 윤리성이 담보된다고 믿는 경향이 짙어집니다. 이는 비단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광주항쟁 등과 같은 역사적 폭력을 재현하는 최근 대중 서사에서 널리 확인되는 경향입니다. 광주항쟁을 재현해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의 재현전략도 바로 그것이었죠. 이런 재현전략이 반드시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것이 ‘위안부’ 문제를 역사적‧정치적‧미학적으로 사유하는 최선의 방식인지 질문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런 재현전략이 선호되는 원인을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겠죠. 허윤 선생님의 논문에서 지적된 대로, ‘재현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폭력을 재현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덜기 위해 당사자들의 재현(증언, 기록)으로 재현 불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덜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사자들과 윤리적‧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고, 즉 일종의 ‘진정성의 정치’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요.[2]  또는 반대로, ‘위안부’ 역사를 후대 시민사회의 문제로 사유하기보다는, 지지 가능한 특정 존재를 ‘당사자’라고 규정함으로써 사실 ‘위안부’를 비롯한 식민의 역사를 자기 문제로부터 분리하고 싶은 욕망의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런 것들을 다각도로 사유하는 게 ‘재현의 정치’를 사유하는 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예컨대 식민지기에 ‘위안부’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룬 서사는 거의 없었고, 해방 직후에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으로서 ‘위안부’의 역사를 다룬 소설들이 조금 등장합니다. ‘동네의 아는 처녀가 일본군에게 끌려가 어디에 다녀왔다더라’라는 식이죠. 이때의 화법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빙의하려는 최근 서사의 전략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죠.

김청강

저는 과거에 어떻게 재현이 되어왔는가를 조금 살펴봤기 때문에 그 추이를 좀 본다면, 지금은 피해 생존 할머니들이 계시고 그 할머니들이 운동을 사실 꽤 오랫동안 해오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자장 안에서 이야기가 되고, 그랬던 것에 비해서 그 이전에, 그러니까 운동화 되기 이전에 '위안부'를 표상하는 것은 사실 피해자의 입장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게 체화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더라고’ 돼있기 때문에, 재현들이 사실은 굉장히 거리감이 있죠. ‘위안부’들이 계속해서 나오기는 하지만, 굉장히 추상적으로 나오는 거죠.

어떤 생생한 피해자로서의 목소리 같은 것이 드러나지 않는, 피해를 얘기하지만, 피해자의 목소리는 없는 그런 재현의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영화로는 1960년대에 나왔던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정창화, 1965)가 '위안부'를 드러낸 가장 첫 번째 영화인 것 같은데요. 이 영화 자체가 굉장히 독특한 영화예요. 1965년에 만들어졌고, 당시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한일 간의 문제, 혹은 식민지에 대한 기억을 사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에서 이 영화가 나왔습니다. 남자주인공은 버마전선으로 파견된 장교이고, 거기에서 ‘위안부’를 처음 만나요. 그런데 영화에 '위안부'가 나오는데 그게 어떻게 형상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위안부'가 나오는 방식이 유엔 마담 같은 미군 ‘위안부’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다 한복을 입고 있고, 민족의 피해자라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에 비해서, 1960년대 영화에는 당시에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위안부’의 모습, 그러니까 미군 ‘위안부’의 모습이 영화에 재현되고 있었던 거죠. 피해자의 직접적인 진술이라든지 증언이라든지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위안부'가 있었고 피해가 있었다, 그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것은 표현이 돼있지만, 그게 나의 목소리를 가지고 나의 피해를 증언하는 그런 방식과는 대단히 달랐고, 그래서 거리감이 있는 재현들은 쭉 지속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수용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굉장히 그 맥락들이 달라집니다. 일본인이 재현하는 조선인 '위안부'라든지. 1960년대에 스즈키 세이준의 <춘부전> 같은 경우에는, 원래 <춘부전>이 1947년인가? 그때 다무라 다이지로의 소설에 기반한 건데. 거기에선 주인공이 조선인 여성이었죠. 근데 당시에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오락물로 소비되는 맥락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굉장히 성적으로 대상화된 모습으로 나오는 거죠. 일본군 병사의 애인들, 이런 식으로 일본 사회에서 유통되었던 것이 1960년대에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보면 그 주인공이 일본 여성으로 바뀌어요. '위안부'이긴 한데 일본인. 그리고 거기에 조선인 피해 ‘위안부’ 여성이 등장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굉장히 독특한, 스위칭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이 <춘부전>이 한국에서 <여자 정신대>(나봉한, 1974)라는 영화로 다시 리메이크될 때는 다시 조선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이게 또 스위칭이 일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재현이라는 것이 그 당시에는 피해자의 목소리라는 것이 증언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현의 코드들이 계속 피상적으로 스위칭되면서 만들어졌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거기에 더 진정성이 있거나, 개인의 목소리나 복잡한 목소리들이 들어가 있지 않고, 코드가 스위칭 되면서 순환되는 그런 형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권은선, 김청강, 허윤, 오혜진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권은선

저는 주로 최근에 생산된 대중영화를 눈여겨보고 있는데요. <귀향> 이후에 눈에 띄는 어떤 특징들이 있습니다. <귀향> 이전에 군 '위안부' 소재를 다룬 대중 서사들에는 일본 군인이나 조선인 남자와의 이성애 로맨스가 반드시 주요 서사적 요소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귀향> 이후에는 이성애 로맨스가 탈각되고 여성들 간의 자매애, 혹은 우정이 강조됩니다. 그것은 ‘유령과 함께함’의 형태를 취합니다. 위안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그래서 <눈길>에서처럼 유령이 되어 계속 함께하거나 <귀향>에서처럼 영매와 빙의를 통해 유령을 데려오기도 하고요. 이는 '위안부' 증언 구조의 한 특성과 부합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다른 사람(이미 죽은 자, 영혼)을 대리하여 증언한다’는 감각입니다.

또 다른 서사적 특징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세대 간 배치의 문제입니다. '위안부' 할머니와 후속 세대 인물 간의 관계, 우정이 서사 장치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세대 간 배치는 ‘증언 전수’ 가능성과 후속 세대의 책임의 문제를 함의합니다. <귀향>의 정민(강하나 분) 같은 후속 세대 인물은 그야말로 몸을 내어주는 (빙의) 매개체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눈길>에서 옆집에 거주하는 ‘헬조선’의 소녀나 <아이 캔 스피크>의 구청 직원 청년은, 텍스트 내에서 ‘위안부’의 증언을 듣고 책임감을 느끼는 후속 세대의 형상화입니다.   

그리고 허윤 선생님이 언급하셨던 것처럼, 일본군‘위안부’ 서사가 지금 대중 서사로서의 가능성을 열심히 탐색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특히, 이는 <귀향>의 360만 관객 동원에 힘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장르적으로 보면 <아이 캔 스피크>는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 있고, <허스토리>는 일종의 ‘법정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영화에서 미 하원과 일본 법정에서 수행하는 일본군‘위안부’의 연설 장면은, 마치 1950~1960년대 한국 영화사에 등장했었던 ‘고백하는 여자들’(근대적 여성 주체의 출현)의 귀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귀향>이나 <눈길>이 일종의 고통 전이, 그러니까 오혜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빙의되는 감각’ 같은, 시각적‧서사적 장치에 의존했다면, <아이 캔 스피크>나 <허스토리>는, 이혜령 선생님이 말씀하신, ‘커밍아웃 스토리’ 이후, 공적인 장소에서의 운동가로서의 일본군'위안부'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한편으로는 굉장히 대중적인 장르 서사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고, 기존의 축적된 담론을 대중적인 언어로 녹여내려고 하는 것들이, 최근 ‘위안부’ 영화를 둘러싼 흥미로운 지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청강  

허윤 선생님이 최근에 쓰신 논문 제목이 「할머니와 소녀 그 사이의 여성들」인가요? 그 키워드가 보여주는 부분이 굉장히 명백한 거 같아요. 최근의 재현에서는, 운동가가 된 할머니의 삶과 동일시하는 방식 혹은 폭력이 재현됐던 그 순간 소녀들을 재현하는 방식. 1960년대나 그 이후에 재현됐던 건 다 성인 여성들이거든요. 성인 여성들이 주인공을 바꿔가면서 코드 스위칭이 되는데, 그에 반해서 2015년도 이후 최근에는 성인 여성의 경험으로 되는 것보다는 소녀에게 가해진 폭력, 그리고 현재 운동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 이런 것들이 강조되는 측면이 특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허윤  

30대 이상 세대에게 가장 강렬한 일본군'위안부' 재현의 서사가 <여명의 눈동자>(김종학, 1991)잖아요. 저도 초등학생 때 봤는데, 권은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이성애 로맨스 코드가 굉장히 강렬해서 북한군을 사랑해서 비극적으로 죽는 여자라는 기억만 단편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명절에 온 친척들이 다 모여서 <여명의 눈동자> 재방송을 봤던 거예요. 그런데 드라마의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채시라 씨가 하얀 조선옷을 입고 처연하게 등장했던 기억만 있습니다. 그때 일본군‘위안부’에 대해서 아무도 소녀를 떠올리지 않잖아요. 성인 여성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이게 세대 감각이 확실하게 있는 게, 20대 친구들에게 일본군'위안부' 표상에 대해 물으면, 100% 소녀상을 떠올리더라고요. 기억이 세대별로 분절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여명의 눈동자>는 1970년대 일간스포츠 연재작이잖아요. 소설은 1장부터 강간으로 시작해요.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런 작품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보는 소위 ‘국민 드라마’였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좀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김청강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여명의 눈동자>가 굉장히 충격적인 드라마였던 것만 기억에 남았다가, 논문을 쓰면서 1편을 봤는데, 1편이 딱 윤여옥(채시라)이 강간당하는 것으로 시작을 하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공공 드라마로, 이렇게 공중파에서 방송이 됐던가. 1990년대 초반의 젠더 감수성이라는 것은 정말 너무 놀라울 정도라는. 그리고 더 이상했던 건 뭐냐면, 저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던 1991년도 이후, 적어도 그게 운동화 되기 직전이지만 그때는 그래도 조금 낫지 않았을까 기대했었거든요. 예를 들어서 1980년대보다. 1980년대는 영화가 너무 에로화됐기 때문에. 그런데 사실 가장 성적으로 착취하는 구도를 가졌던 건 1991년도 작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지영호)였어요. 그 감독 자체도 에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그러니까 소재적으로만 가져다가 정말 센세이셔널하게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가 너무나 명백한 그런 영화였던 거잖아요. 그래서 공개적인 증언이 있었던 1991년도 당시에 ‘위안부’ 문제를 소재적으로 소비했다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어떤 폭력이 있었는가 궁금해하는 이런 식의, 여성들이 어떻게 당했지 그 모습이 어떨까? <여명의 눈동자>도 그런 맥락에서 소비되었을 것 같아요.

 

(왼쪽부터) 권은선, 김청강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오혜진 

‘위안부’라는 역사적 존재가 해방 직후까지 ‘소문’의 대상으로만 전해져왔다면, 1991년 고 김학순 님의 증언은 ‘위안부’ 역사 재현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젖혔습니다. 그 증언의 장면이 있었기에, ‘위안부’를 ‘말하는 주체’의 형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최초의 미투’였다고까지 이야기될 정도죠. 이 증언을 계기로 수요집회 등 ‘위안부’ 문제를 ‘운동’의 문제로 볼 수 있게 됐고, 그래서 ‘싸우는 주체’로서의 ‘위안부’ 형상도 등장했습니다. ‘위안부’의 역사를 ‘민족의 수난’이라는 식으로 보던 관점에서 나아가 여성 인권의 문제로 사유하는 경향도 확고해졌죠. 최근 ‘위안부’ 재현 서사에서 새롭게 등장한 변수는 ‘시민사회’인 듯해요. 두 가지 방향인데요. 하나는 ‘위안부’를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를 함께 사는 ‘시민’으로서 그리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위안부’와 연대하는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영화 <눈길>에서 ‘위안부’는 단지 ‘소녀’나 ‘할머니’가 아니라, 일반 시민이자 다른 동료 시민을 보살피는 이 사회의 ‘어른’으로 등장합니다. 가족과 사회가 방기한 여성 청소년 ‘은수(조수향 분)’를 돌보는 유일한 시민이 바로 ‘종분(김영옥 분)’이죠. 이건 ‘위안부’였던 이들이 사회의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만 재현되던 그간의 경향과 다릅니다. 게다가 여성 청소년 은수는, ‘종분’이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말하는 첫 번째 커밍아웃 대상이죠. 국가와 사회에 대한 ‘커밍아웃’ 전에, ‘종분’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이자 여성 시민인 ‘은수’였어요.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옥분(나문희 분)’이 그저 사회에 숨어 조용히 움츠리고 사는 ‘피해자’가 아니라, 구청에 8,000건의 민원을 넣을 만큼 이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열망이 강한 ‘시민’으로 묘사됩니다. 민원을 넣는 행위는 이 사회의 법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지금까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숨겨야 했던 것이 이 사회의 편견과 혐오, 불합리한 법과 제도 때문인데도 ‘옥분’이 사회와 제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는 존재라는 점은 의미심장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 캔 스피크>의 핵심 중 하나는 ‘옥분’이 증언할 수 있도록 돕는 구청 직원 ‘민재(이제훈 분)’의 역할이었죠. <허스토리>는 아예 주인공을 ‘위안부’ 피해생존자라기보다 그들의 증언을 돕는 ‘문정숙(김희애 분)과 여성단체들’로 설정했고요. 연대주체로서의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죠.

이런 최근의 경향은 ‘위안부’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위안부’가 경험한 고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그간의 인식과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귀향> 등의 사례를 보면, 여전히 ‘위안부’ 역사 재현의 핵심은 ‘위안부’가 당한 고통을 ‘실감 나게’ 재현해서 독자/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는 듯합니다. 이는 손희정 선생님의 언급대로, ‘위안부’ 경험을 가진 이들의 가장 큰 고통을 ‘강간의 고통’으로 고착[3]시키는 남근주의적 발상의 소산일 수도 있죠.  

여기서 한나 아렌트가 소개한 루소의 ‘고통과 연민의 원광경’이라는 이야기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루소는 ‘어머니 눈앞에서 야수에게 물어뜯기는 아이와 그 광경을 감옥의 창문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켜보는 죄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요. 이 이야기에서 시모코베 미치코는 세 가지 차원의 고통을 읽어냅니다. “찢기는 아이의 죽음에 이르는 고통, 자식을 짐승에게 물어뜯기는 것을 보고 있는 어머니의 비탄에 찬 고통, 그리고 그것을 목격하면서도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죄수의 고통. 이 중에서 연민compassion의 원형이 되는 것은 세 번째 죄수의 고통이다.”

아랍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오카 마리는 이 이야기를 정확하게 ‘위안부’ 문제에 대입해서 이야기해요. 야수에게 물어뜯기는 아이가 ‘위안부’이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어머니는 “성노예가 되었던 자신의 고통을 지금 증언하고 있는 생존 ‘위안부’ 여성들”이며, ‘감옥 속 죄수’는 야수에게 물어뜯기는 고통을 함께 체험하지는 않았고, 그에 대해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목격한 증인이 됨으로써 그 고통을 ‘분유’하는 존재. 그렇다면 과거에 ‘위안부’라는 고통의 역사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으며, 그것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무력하지만, 대신 그 고통을 ‘분유’해야 하는 존재로서 후대의 시민들이 바로 그 ‘죄수’의 입장에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이해할 때, 사건의 폭력성은 “타자의 고통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압도적인 무력함, 그 고유의 고통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오카 마리는 말합니다.[4] 저는 이 말을, ‘후대 시민들은 ‘위안부’ 역사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바로 그 사실 자체가 고통’이라는 뜻이 아니라, 후대 시민들은 그 ‘무력함’을 고통의 역사를 사유하기 위한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그렇다고 할 때, 현재 ‘위안부’ 관련 대중 서사는 야수에게 물어뜯기는 존재들의 “몸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고통을 재현하는 데에만 주력할 뿐, 그 고통의 역사를 사유하는 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고통과 책무에 대한 상상은 지체돼 있죠. ‘위안부’의 역사를 피해당사자들이 생존해 있을 때 “해결”해야 하는(역으로 말하면, 피해생존자들이 모두 사망하면 종료되는) 문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존재로서 ‘나’의 역할을 성찰하게 하는 문제로서 ‘위안부’ 역사를 상상하는 재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위안부’ 역사 재현의 초점을 그렇게 이동해보면, 그건 ‘위안부’ 할머니에게 빙의하거나, ‘할머니’의 말을 대변한다는 식의 상상력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죠. <아이 캔 스피크>는 흥미로운 영화지만, ‘위안부’ 피해생존자의 가난과 고독, 침묵의 원인을 그녀가 ‘가족과 사회에게 버려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민재’와 그 동생이 옥분에게 ‘유사 가족’을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끝나죠. 이런 발상은 권명아 선생님 책에 잘 설명됐듯, ‘근친성’ 혹은 ‘육친적 상상력’을 경유해서만 동정과 공감, 연대의 대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5] ‘저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였다고 생각해봐’라는 발상. 그런데 누군가의 ‘할머니’나 ‘엄마’가 아니더라도, ‘위안부’ 피해생존자는 사회의 일원이자 시민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한국 사회 공통의 역사로 올리기 위한 ‘증언’을 한 것이고, 그는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이 사회에 개입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죠. <허스토리> 역시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증언과 법정투쟁을 다루는데, 그것은 ‘문정숙(김희애 분)’이라는 영웅적이고 탁월한 개인이 불굴의 의지와 경제력으로 상황을 주도한 덕분으로 묘사됐죠.

‘위안부’라는 존재가 경험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게 급했던 시대, 그것을 ‘민족의 수난’으로만 의미화하던 시대가 있었고, 지금은 또 다르죠. 달라야 하고요. ‘위안부’ 재현의 초점이 이동하는 것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그에 대한 정치화와 재역사화가 필요합니다.

허윤

역사성이 다 소거된 채 언제나 그 시점으로 계속 돌아가는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 점이 큰 문제인 것이죠.

 

각주

  1. ^ 이혜령, 「그녀와 소녀들─일본군 ‘위안부’ 문학/영화를 커밍아웃 서사로 읽기」,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민음사, 2018.   
  2. ^ 허윤,
  3. ^ 손희정,
  4. ^ 오카 마리, 이재봉・사이키 가쓰히로 역,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현암사, 2016, 216~218쪽.
  5. ^ 권명아,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한국사회의 정동을 묻다』, 갈무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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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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