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인은 일본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대만인을 비하하는 말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2000년 4월 9일 육상자위대 창설 기념식에서 “불법 이민이 많은 삼국인이 흉악한 범죄를 되풀이하고 있고, 큰 재해가 일어날 때는 소요조차 예상된다.”고 말해 큰 비난을 샀다. 삼국인이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퍼져 6천여 명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학살된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소문은 후에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자 일본 정부가 수습책의 일환으로 퍼트린 것으로 드러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기 위해 연합군이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전범재판.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28명이 '평화에 반한 죄'(A급 전쟁 범죄)와 '통례의 전쟁범죄'(B급 전쟁범죄)로 처벌받았다. 그러나 식민지였거나 직접적인 전쟁 피해를 입었던 피해국 다수가 재판 과정에서 소외되었고, 미국 등 연합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본의 가해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증거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에서는 이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극동국제군사재판의 한계를 지적하고 시민들의 힘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단체들이 2000년 12월 도쿄에서 일본군성노예 전범여성국제법정(Women’s 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 on the Trial of Japan’s Military Sexual Slavery in 2000)을 개최하였다.
일명 WAM(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주도했던 일본의 여성운동가 고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유산과 자료를 바탕으로 2005년 8월 건립된 일본 최초 전시 성폭력 자료관.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조사와 기록의 보존, 전시 및 심포지엄 개최 등의 활동을 해 왔으며, 일본 국내와 국제 연대 활동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제도의 실태를 알리고 일본 정부가 가해 책임을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해 왔다. (홈페이지: https://wam-peace.org/)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기 위해 연합군이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전범재판. 흔히 도쿄재판으로 불린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28명이 '평화에 반한 죄'(A급 전쟁 범죄)와 '통례의 전쟁범죄'(B급 전쟁범죄)로 처벌받았다. 그러나 식민지였거나 직접적인 전쟁 피해를 입었던 피해국 다수가 재판 과정에서 소외되었고, 미국 등 연합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본의 가해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증거가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에서는 이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극동국제군사재판의 한계를 지적하고 시민들의 힘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단체들이 2000년 12월 도쿄에서 일본군성노예 전범여성국제법정(Women’s 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 on the Trial of Japan’s Military Sexual Slavery in 2000)을 개최하였다.
'액티브 뮤지엄 여성들을 위한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 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일명 WAM(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을 주도했던 일본의 여성운동가 고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유산과 자료를 바탕으로 2005년 8월 건립된 일본 최초 전시 성폭력 자료관.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조사와 기록의 보존, 전시 및 심포지엄 개최 등의 활동을 해 왔으며, 일본 국내와 국제 연대 활동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제도의 실태를 알리고 일본 정부가 가해 책임을 인정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해 왔다. (홈페이지: https://wam-peace.org/)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 특집] 웹진 <결>에서는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을 맞아, '아카이브814'에 등록된 2000년 여성법정 관련 기록물을 법정이 진행된 시간순으로 정리하여 소개한다.
전범 자필진술서라는 형식의 고백이 어떻게 반성이나 성찰의 계기로 작용했을까 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법적 문서로서 진술이라는 점을 고려하고 자필진술서를 다시 보면 법적인 절차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죄로 자백한 것과 윤리적인 반성, 사죄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과거사 청산과 화해에서 독일은 일본의 대립 모델로 여겨진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글은 나치 정부로부터 피해입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마츠노 아키히사(松野明久) / 번역 유연정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 특집] 올해는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년 전 아시아 모두의 시민운동이 되었던 2000년 여성법정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 특집] 일본 방송사 NHK의 PD였던 이케다 에리코는 어떤 과정을 거쳐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의 명예 관장이 되었을까. 그 과정을 담은 글을 통해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다.
2000년 여성법정은 시민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글은 2000년 여성법정의 영향을 받아 2010년에 열린 과테말라 여성인민법정에 관한 이야기다.
[2000년 여성법정 20주년 특집] 2000년 여성법정을 취재한 NHK 방송 ETV2001《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의 제작부터 방영까지 겪었던 우여곡절을 당시 데스크를 담당했던 나가이 사토루의 글로 만나본다.
2000년 여성법정은 시민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글은 2000년 여성법정의 영향을 받아 2018년에 서울에서 열린 베트남전 시민평화법정에 관한 이야기다.